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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링크에서 진행하고 있는 '범죄 타입 커미션' 글입니다.

'범죄에 휘말린 최애 커플'의 이야기를 써드리는 커미션입니다. 이번 범죄는 '테러' 등입니다.


의뢰인께서는 웹툰 2차 HL 페어를 오마카세로 맡겨 주셨습니다.



인간과 A.I의 격차를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 K와 달리, N는 가끔 자신이 A.I와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하고는 했다.

저와 같은 인간과 A.I의 차이는 뭘까. 영혼이 있느냐 없느냐? 피가 흐르느냐 아니냐? N은 그런 걸 유의미한 차이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누군가와 대체할 수 있느냐 아니냐를 결정짓는, 그 어떤 고유한 가치가 제게는 없다. N은 스스로가 손쉽게 대체 가능한 인력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그런 제 처지에 그럭저럭 만족하며 살아왔다.

그런 그에게도 유일하게 가슴을 펴고 자랑할 수 있는 게 딱 하나 있다. 그 누구로도 대체할 수 없는 재원을 모시는 영광을 누리고 있다는 것.

K의 보좌임을 평생의 영광으로 알며 살아가던 그에게 어느날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유일하게 그 자신이 해내야만 하는 일이 주어졌을 때, N이 제일 먼저 느낀 건 자부심이 아니었다. 두려움이었다.


*****


red handed, inside and out:



*****


K을 해치려는 이들은 이전부터 많았다고, 그녀를 아는 이들은 입을 모아 얘기한다. 그녀를 음해하고 끌어내리고, 심지어 육체적으로 해치려고 드는 이들은 군부 내에도 끊이질 않았다고.

자연히, N의 주된 임무 중 하나는 그런 치들의 접근을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되었다. 가끔은 총사령관님의 식사를 먼저 맛보거나 숙소에 먼저 들어갈 때도 있을 정도로.


N이 K를 측근에서 보좌하게 된 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OO인플루엔자 사태가 처음 발발했을 때, 크리쳐의 존재를 확인하러 나간 현장에서 그는 OOOOO가 쏘아 죽인 OOOO의 체액이 하필 그 근처에 서 있던 K의 얼굴에 튀는 순간을 목격했다.

현장에서는 일대 소란이 일었다. 총사령관을 감염자로 간주해야 한다느니, 격리해야 한다느니.

다들 소란만 떨고 있던 그 순간, 일개 대위였던 N은 저도 모르게 그 무리를 뚫고 K에게로 다가가, 품에서 꺼낸 손수건으로 무심코 총사령관의 뺨을 닦아드렸다. 겁도 없이.

감히 무슨 짓을 하는 거냐며 주변에서 불호령을 내리는 걸 들었을 때에야-그리고 자신을 쏘아보는 총사령관의 냉엄한 시선을 봤을 때에야, N은 제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깨달았다.

하여 N은 차마 말할 수 없었다. 총사령관의 뺨이 생각보다 너무 보드랍고 말랑해, 놀랄 정도였다고는.

OO대임에도 소녀처럼 솜털이 보송보송한 뺨 위로 돋은 싸늘한 눈매가 그를 쏘아보지만 않았더라도, N는 자칫 그녀를 귀여워하며 미소짓는 죄를 저지른 뒤 장교로서의 인생을 종쳤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그런 마음을 죽일 만큼은 기민했고, 총사령관께서는 그때의 충정이 마음에 드셨던 것인지 그날 이후로 그를 측근에 앉혀두고 부리기 시작하셨다.

동기들은 결례를 과로사로 갚으라는 뜻일 거라며 이죽거렸지만 N은 군말없이 열심히 일했다. 총사령관을 모실 수만 있다면 살인적인 업무량도, 동료 보좌관들의 질시도 그는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었다.

제 충정 따위, 총사령관에겐 안중에도 없는 것이었음을 알게 되고 나서도 그랬다.

- 너, 날 OOOO 쯤으로 여기고 있지?
- 네?! 결코 그렇지는...!
- 겁도 없이 내 뺨을 닦았던 그날 말야,
- ......!
- 너. 내가 인간이라서 놀란 것처럼 보이던데.

이건 짓궂은 농담일 뿐이다. 함선의 비행이 지나치게 무료한 날이면 총사령관께서는 종종 이렇게 그를 괴롭히곤 하니까. 그 증거로 K는 새빨간 입꼬리를 올리며 웃고 있었지만 N은 당황한 얼굴로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당신이 인간이라서가 아니라, 사랑스럽게 느껴져 놀랐던 거라고 솔직히 털어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 시시하게 뭘 쩔쩔매고 있는 거야?
- 그, 그날은 결례를 저질렀습니다! 송구스럽습니다!
- 그런 줄 알면 목숨 바쳐 일이나 해. 널 뽑아온 이유는 딱 하나, 일을 잘 한다는 평판 때문이니까.

그러니 자신과 국가를 위해 일하다 죽으라며, 눈짓으로 차시중을 시키는 K의 엄포가 N은 가슴 벅차도록 기꺼웠다.

총사령관에게 자신은 A.I보다 유용하되 A.I가 아닌 존재다.

그 사실만으로도 그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증명받은 것처럼 기뻤다.

그 때부터였다. 감히 총사령관을 지키는 방패가 되리라 결심한 것은.

N는 총사령관의 위명 아래 추악한 비리와 부정부패를 저지르는 이들, 목숨 아까운 줄 모르고 그녀를 끌어내리려 드는 이들을 뒤에서 군소리 나오지 않도록 조용히 처리해왔다.

꽃대에 드글거리는 진드기 같은 무리들을 제거하기 위해 군부에 두루두루 약을 치는 것이 그의 소명이 되었다. 가슴에는 늘 총사령관님을 위한 손수건을 품고 있지만, 그 독한 약 냄새도 더러운 핏자국도 절대 그분께서 계신 곳까지 번져서는 안 된다.


그러나 불완전한 인간이었던 N는 딱 한 번, 그 소명을 지키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총사령관의 앞에서 피를 본 것이다.

감히 군의 위력에 힘입어 인신매매를 저지르는 쓰레기 장교들을 적발하기 위해 총사령관과 함께 인신매매 현장을 덮친 날의 일이었다.

적발되리라는 걸 예상하기라도 한 건지, 장교들은 미리 구금해뒀던 OOOO들을 풀어 그들을 공격하려 들었다. 세계 각지에서 빈발하는 OO플루 테러다.

N은 곧바로 권총을 꺼내 그 무리를 쏘아 죽였다. 장교들도 OOOO들도, 남김없이.

총사령관께서 보시는 앞에서 살인을 저질렀다는 죄의식은 N의 가슴에 스치지도 못했다. 그러기에는 사안이 지나치게 심각했으니까-무려 세계 연합 정부의 총사령관이 OO인플루엔자 감염 위험에 또다시 노출되지 않았나.

OOOO의 피를 얼굴에 묻힌 K는 말 없이 N에게 손을 내밀었고, N은 가까스로 그녀에게 푸른 손수건을 건넸다. 연발 사격의 반동으로 파들파들 떨리는 손으로.

- 군의 위신이 걸린 일입니다. 저들은 반정부 테러리스트들이 죽인 걸로 처리하고, 붙잡힌 민간인들은 즉시 보호조치하겠습니다.


미세하게 떨리는 손을 숨기며, N은 K의 앞에서 묵묵히 고개를 숙였다. 그런 그를 보는 둥 마는 둥, 쓰러진 시체들만 둘러보며 코웃음을 친 K는 입꼬리를 비딱하게 틀어올린 채 N에게로 다가와 그의 발을 힘껏 짓밟았다.

- 이따위 허접한 장난질에 내가 놀아날 것 같나, OO 중령?
- .......!
- 여기까지 날 끌어낸 건 너잖아.
- ...알고 계셨습니까.

역시, 제 얄량한 수작질 따위는 주군께는 조금도 통하지 않는 것이다.

이래서 두려웠던 것인데.

제 발을 밟아대기만 하는 주군의 너그러움도 그저 무섭게만 느껴져, N은 통렬한 심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 보나마나 빤하지. 각하의 지시였겠지?
- .......
- OO플루 감염의 위험을 내가 실감하도록, 그래서 A.I 따위로 몸을 대체하게 내버려두도록 겁을 주라는 지시였겠지.


K가 꿰뚫어본 대로, 이번 범죄에 OO플루 테러가 더해진 건 OOOO의 지시로 N이 유도해낸 짓이었다. 척결해야 할 쓰레기들의 거래현장을 이용해 K를 현장으로 유도해내고, OO플루 테러로 감염의 위험을 실감하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OO플루 사태 이후, 팀 오즈에서는 대체 불가능한 세계 정부의 인재들이 OO플루에 감염되지 않도록 똑같이 생긴 A.I를 제작한 뒤 뇌파를 연결해 본체를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해당 기술을 프리드리히 각하에게 적용하기 전, 시범적으로 K에게 적용해보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고.

하지만 A.I를 향한 K의 반발심과 적개심이 상당한 수준이니, 순순히 응하진 않으리라고 본 프리드리히는 N을 따로 불러 K를 적당히 '구슬릴' 것을 지시했다.

각하의 지시라고는 해도 주군에게는 엄연한 배반이다. 당신의 안전을 위해서였다는 핑계 따위는 더없는 오만에 불과할 테고.

N은 죽음을 각오했다. 영원히 배반자로 남는 것은 싫었지만 별 수 없는 일이다. 그는 자신에게 용서를 구할 가치가 있다고는 생각치 않았다.

그러나 K은 그의 머리를 쏘아버리는 대신 그대로 몸을 돌려 현장을 뜨며 물었다.

-날 빼닮은 A.I는 이미 OOOO가 준비해 뒀겠지?
-......?
-내일부터는 현장을 다닐 때마다 그걸로 다니마. 됐나?


아연해진 얼굴을 들자, N의 시야에 앞서 걸어가는 K의 뒷모습이 비쳤다. 그녀의 속을 지레짐작하지 않으려 애쓰며, N은 그녀를 망연히 바라보기만 했다.


저건 아마, 각하의 지시에 따르시려는 것일 뿐이리라.

국민들을 수호하기 위한 총사령관으로서 스스로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한 걸음 물러서시는 것이다.

결코, 자신을 위해 나서주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 앞서 걸어가던 K가 N을 돌아보며 픽 웃었다.

-네놈의 손수건을 더럽히는 건 이번을 마지막으로 해야 하지 않겠나. 중령 따위의 봉급이야 빤할 테니.

그 자신만만한 미소 앞에 N은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목끝까지 북받쳐 오르는 감정에, 그저 숙연히 고개를 숙일 뿐.

-......면목없습니다.

그 순간 N은 깨달았다. 이 사람 앞에서는 죽음을 각오하는 것조차 끝없는 오만일 뿐이라고.

제 목숨은 제가 결정지을 것이 못 된다. 제 죽음도 존재도, 소명도 처음부터 끝까지 K의 것이니.

이동용 소형기에 탑승하기 전, K가 다시 물었다.

- 보아하니, 살인이 처음은 아닌 모양이던데?
- ......그렇습니다.
- 것 봐. 역시 내 눈은 정확하다니까.

일 잘 하게 생겼다고, 처음부터 생각했거든. 그렇게 웃으며 전투기에 올라탄 K가 N을 내려다보며 고했다.

- 감히 오만하게 구는 부하를 내버려 두고 싶지는 않지만, 능동적으로 판단할 줄 아는 통찰력과 기개만큼은 싫지 않다.
- ......
- N. 넌 내 수족이다. 좀 더 긍지를 가지도록 해.

그렇게 말한 후 총사령관은 전투기를 타고 홀연히 떠났다. 고막을 찢을 듯한 파열음과 돌풍으로 그녀의 보좌관을 정신없이 뒤흔들어 놓은 채.

N은 그녀가 솟구쳐 오른 하늘을 하염없이 올려다보며 생각했다.

당신이 날 알아주기 때문에, 인간으로 봐주기 때문에...

그 이유만으로 자신은 인간일 수 있는 것이라고.

앞으로 그 무엇으로 대체되든 상관없다. 어떤 최후가 기다리고 있든 두렵지 않다.

자신은 저 사람을 지켜키는 최후의 방패로 임하다 쓰러지리라고, N은 다시금 굳은 각오를 다졌다.




글을 쓰고 있습니다. 트위터 @cms_pock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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