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 소리야?”

 

윤은 라경을 밀쳐내고는 팔을 들어 교복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았다. 정말 라경의 말대로 교복에서 조금이지만 담배 향기가 나는 것 같았다.

 

‘아, 바로 비벼 꺼뜨렸는데, 그거 한번 뱉었다고 이렇게….’

 

윤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리고는 라경을 보곤 퉁명스럽게 한 마디 내뱉었다.

 

“그런 거 아냐.”

“흠, 그래? 담배 냄새 같지만 뭐, 네가 아니라면 아닌 거겠지.”

 

딱히 별다른 말은 더 없었다. 그저 저 한마디로 끝이었다. 언제나 그랬듯 자신이 무슨 말을 하던, 라경은 대수롭지 않게 넘겨 버렸다. 한 번쯤은 집요하게 물어볼 법도 한데, 늘 저런 식이었다. 윤은 대충 라경의 옆자리에 가서 앉았고, 한 5분쯤 지났을까? 교실 문이 열리며 조금은 귀여운 인상의 여자가 들어왔다. 출석부를 들고 있는 것을 보니 담임 선생님인 것 같았다. 칠판의 이름을 크케 쓰고 돌아선 여자는 상큼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여러분, 안녕? 나는 앞으로 여러분과 1년 동안 함께 할 담임 선생님이고, 이름은 현소현. 담당 과목은 미술. 그럼, 1년 동안 잘 부탁해~.”

 

담임 선생님의 간단한 자기소개가 끝나고, 한 명씩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담임 선생님이 출석을 부르면, 불린 순서대로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하는 식었다. 그렇게 출석 체크 겸 자기소개 시간이 끝나고, 새 교과서도 하나씩 받았다. 윤은 백팩 속에 차곡차곡 교과서를 집어넣었다. 생각보다 많은 교과서와 무거운 무게 때문인지 윤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이건, 백팩 안에 다 못 넣겠는데? 몇 개는 들어야 하나? 야, 송라경!”

“왜?”

“너, 집에 어떻게 갈 거야?”

“나? 우리 붕붕이 타고 가야지? 왜?”

“나도 태워줘.”

“그럼, 자.”

 

라경은 윤을 향해 손바닥을 내밀었다. 윤은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라경은 그저 고개를 까닥일 뿐이었다.

 

“뭐?”

“줘야지, 임마.”

“뭘?”

“내가 우리 붕붕이 고생시켜서 네놈을 태워다 주는데, 돈은 내야 할 거 아냐?”

“아씨, 쪼잔한 자식, 너 돈 없는 것도 아니면서 그러기야?”

“그건 네놈도 똑같지. 어서 내놔 차윤. 시간 없다. 택시도 타면 택시비 내는 마당에 설마, 네 놈은 날로 먹을 생각이었냐? 너 종종 내 붕붕이도 빌려 타면서 그것도 안 받은 걸 고맙게 생각해야지.”

“그래, 아주 고오맙다, 이 자식아.”

 

윤은 지갑에서 지폐 몇 장을 꺼내 라경의 손바닥 위에 올려놨다. 그러자 라경은 곧바로 윤을 향해 잘 모시겠다며 말을 하곤, 손바닥 위의 지폐를 조심히 집어 지갑으로 넣었다. 그 모습이 윤은 어이가 없었지만, 그래도 라경의 말도 틀린 게 없었으니 대꾸를 할 수도 없었다.

 

“야, 붕붕이는 교문 밖에다 세워놨지?”

“그렇지, 그럼 20분 뒤에 교문에서 보자.”

“왜? 지금 안 가?”

“아, 담임 선생님한테 뭐 물어볼 게 있어서.”

“그래라, 그럼.”

 

라경은 빙긋 웃으며, 윤을 향해 손을 흔들고는 교무실로 사라졌다. 윤은 창가로 다가가 밖을 쳐다봤다. 3층인 교실 창밖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운동장과 입학식이 끝나 교과서 무더기를 안고 가는 학생무리들뿐이었다. 그 순간 윤의 시야로 어떤 남자의 손에 이끌려 어디론가 가고 있는 수선화 선생님이 들어왔다. 거의 일방적으로 선화쌤이 끌려가는 듯해 보였고, 계속 남자의 손을 뿌리치려고 하는 것처럼 보였다. 윤은 교과서만 들어 있는 백팩은 교실에 내팽겨치고 선화가 가는 곳으로 뛰어갔다. 운동장을 가로질러 뒤따라간 곳은 사람들이 잘 안 올 것 같은 체육 창고 뒤편이었다. 남자는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비로소 잡은 손을 놓았다. 제법 세게 끌고 왔는지 언뜻 보이는 선화쌤의 손목은 붉어진 것처럼 보였다. 붉어진 손목이 보일 때 마다 윤의 미간도 절로 찌푸려졌다. 윤은 최대한 두 사람에게 안 보이게 벽에 붙어 두 사람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제발, 학교에서는 이러지 좀 말아줄래?”

“선화야….”

“이제, 내 이름도 부르지 마. 그리고 여기 학교야. 제대로 존중해서 불러줬으면 해.”

“선화…, 아니 선화쌤. 우리 이러지 말자.”

“나 이제 더는, 서지혁씨랑 할 얘기가 없거든요?”

“선화야, 우리 그냥 예전으로, 아니 연애할 때로 돌아가면 안 될까?”

“뭐라고요? 정신 차리세요. 서지혁씨 우린 이미 이혼했고, 다시 돌아갈 수 없어요.”

“이혼, 그게 뭐? 이혼한 사이는 친구가 되면 안 돼? 선화 너만 허락하면, 그러면, 우리 행복했었던, 연애 시절로 돌아갈 수 있어.”

“아…, 내가 당신 때문에 지금…. 하, 지금 그걸 보고도 이 말이 나와요?”

“그러니까! 우리가 다시 합치면, 그런 이상한 소문 따위는 사라진다니까? 우린 그저 즐겁게 연애만 하면 되는 거야.”

“당신, 미쳤어. 어떻게 그걸 말이라고….”

“선화야, 너만 허락하면….”

 

-짝

 

찢어질 듯한 타격음과 함께 지혁의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놀란 표정으로 선화를 쳐다봤다. 선화는 분노에 가득 찬 눈으로 지혁을 바라보며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네 그 입에서 이런 얘기 다신 듣고 싶지 않아. 경고야. 서지혁. 다시 또 이런 말 꺼내면 그땐 전쟁이야. 나도 가만있지 않을 거야. 그러니 알아들었으면 좀 꺼져줄래?”

“너….”

 

지혁은 충격을 받은 듯 여전히 놀란 표정으로 자신의 빰을 어루만지며, 돌아서서 바로 자리를 빠져나갔다. 지혁의 모습이 사라진 걸 확인하고 나서야 선화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이내 그녀의 두 볼을 타고 굵은 눈물방울들이 쉴새 없이 흘러내렸다. 윤은 듣지 말아야 할 이야기를 들은 것 같아 괜히 기분이 찜찜했다. 하지만 눈앞에 보이는 선화가 좀 더 신경이 쓰였기에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들고는 선화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리고 소리 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는 선화의 얼굴 앞에 조용히 손수건을 내밀었다. 자신의 시야로 들어온 무심하게 손수건을 내밀고 있는 손에 선화의 고개가 저절로 올라갔고,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윤을 보고는 놀라움에 눈이 커졌다.

 

“너…너….”

“자요. 오해하지 마세요. 듣고 싶어서 들은 게 아니라 소리가 들려서 뭔가 하고 온 것뿐이니까.”

 

윤은 시선을 돌린 채 손수건만 내밀었다. 어쩔 수 없이 선화는 손수건을 받아들었고, 뒤돌아서는 윤에게 말했다.

 

“봤니?”

“네.”
“얼마나.”

“전부요.”

“실망했니?”

“아니요.”

“그럼?”

“….”

“그래.”

 

윤은 침묵했다. 그 침묵에 선화는 고개를 떨궜다.

 

“사실, 걱정됐어요.”

“뭐?”

“쌤이 걱정됐어요. 소리가 들려서 왔다는 거 거짓말이에요.”

“왜?”

“그러게요. 제가 왜 그랬을까요.”

“방금 이런 모습을 봤는데도?”

“그게 무슨 상관인데요?”

“아까도 그렇고, 나한테 왜 그러는 건데?”

“아까도 말했잖아요. 제가 쌤한테 작은 관심이 있다고, 근데 말이에요. 그게 지금 큰 관심으로 바뀔 것 같아서 말이에요.”

“너?”

“사실 쌤이 절 아는 척, 할 때까지 두고 볼 생각이었는데, 그냥 말할게요. 제 이름은 차윤이에요. 앞으로 우린 자주 마주칠 거고, 쌤이 깨달을 때쯤 저와의 관계도 아마 바뀌어 있을 테니, 제 이름 잘 기억해 두세요. 잊지마시구요. 아셨죠?”

“왜 갑자기 이름을…?”

“음…, 그건 작은 관심이 큰 관심으로 변해서? 그 정도로만 해 두죠. 그리고 쓰레기 같은 전 남편 때문에 울지 마세요. 그게 아니더라도 앞으로 울 일 많을 텐데, 물론 다른 의미로….”

“뭐? 그게 무슨….”

“무슨 의미인지 그건 저랑 많이 마주치면 차차…. 아, 그리고, 손수건은 돌려주지 않으셔도 돼요.”

“그래도….”

“쌤이 기억하고 떠올릴 수 있는 저의 흔적 하나 정도는 남겨놔야죠. 아, 같이 있으면 좋겠지만, 전 이만 가봐야 해서요. 그럼.”

 

윤은 선화를 향해 싱긋 웃어 보이고는 뒤돌아서 사라졌다. 선화는 뭐에 홀린 듯 넋을 놓고 멀어져가는 윤을 바라봤다. 그리고 자신의 손바닥에 쥐어진 손수건으로 시선을 돌렸다. 손수건 한 귀퉁이엔 윤의 이름이 선명하게 영어 자수로 새겨져 있었다. 딱 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손수건에 선화는 자신이 정말 이걸 가지고 있어도 되는지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아, 모르겠다. 만나면 다시 돌려주는 게 맞는 거겠지….”

 

선화는 중얼거리며 손수건을 주머니에 넣었다.

 

****

 

“야, 어디 갔다 와?”

 

교문 앞 한 귀퉁이에 기대고 있던 라경이 교문을 나오던 윤을 보고 소리쳤다. 조금은 짜증 난 듯한 목소리에 많은 뜻이 담겨있는 것 같았지만, 윤은 별말 없이 라경의 어깨를 툭툭치고는 라경의 붕붕이로 다가가 자연스럽게 헬멧을 꺼냈다.

 

“전화는 또 왜 안 받았는데?”

“전화 오는지 몰랐지.”

“메시지는?”

“지금 봤어.”

“20분 뒤에 만나자고 해놓고 어떻게 10분이나 더 늦냐, 교실 갔더니 가방도 그대로고….”

“내 가방은 안중에도 없이, 네 몸만 나왔다고? 괘씸한 것.”

“미쳤냐? 내 가방도 무거운데, 네 가방까지 들라고? 그런 헛소리 나불대려면, 당장 꺼져.”

“아…알았다고, 미안하다. 됐냐?”

 

윤은 라경이 더 말을 못 하게 재빨리 헬멧을 썼다. 이에 라경은 한숨을 내쉬고는 붕붕이에서 나머지 헬멧 하나를 꺼내 썼다. 그리고 붕붕이 위로 울라 타자, 라경은 바로 시동을 걸었다. 붕붕이는 웅장한 배기음을 토해냈고, 라경은 그대로 질주했다. 시원하게 질주하는 붕붕이에 윤은 짜릿한 전율을 느꼈다. 물론 운전은 라경이 하고 있었지만, 뒤에 타는 것도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이럴 때면 자유로운 라경의 집 환경이 부러웠다. 자신도 물론 오토바이 정도야 사는 건 문제가 없었지만, 그걸 산 게 들킨다면 집안이 뒤집어지기에, 쉽사리 도전하기가 어려웠다. 윤은 그래서 어제까지는 이 때문이라도 더 빨리 성인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오늘 갑자기 성인이 되고 싶은 이유 한가지가 더 생겨버렸다. 사실 윤은 첫눈에 반한다는 이야기나, 사랑은 갑작스럽게 찾아온다는 둥, 그런 말들을 단 한번도 믿은 적이 없었다. 게다가 여태껏 남의 가십에는 관심조차 없었는데, 왜 유독 수선화 선생님은 처음 봤을 때부터 신경이 쓰이는지, 자신도 모르게 앞으로 자주 볼 거라는 둥, 관계가 바뀔 거라느니, 그런 쓸데없는 말들을 하게 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설마…, 내가?’

 

윤은 순간적으로 혼란스러워짐을 느꼈다. 여전히 바람을 가르며 질주 중인 오토바이 위에서, 10초간 머릿속에 떠다니는 여러 가지 생각들을 정리하며, 가만히 곱씹었다. 그리고 결론에 다다랐고, 그걸 인정하니, 혼란스러움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래, 첫눈에 반한 거야 난. 그럼, 이제 마음이 가는 대로 움직이면 돼.’

 

그렇게 윤이 맘을 정하는 사이 붕붕이의 속도는 조금씩 줄어들며, 어느 주택가 근처에 멈췄다. 윤은 고개를 돌려 주택 하나를 쳐다보고는 재빨리 붕붕이에서 내려서는, 헬멧을 벗어 라경에게 건넸다.

 

“네 덕분에, 편하게 집에 왔네, 고맙다. 이제 어디 가냐?”

“나? 알바 가야지.”

“왜, 넌 그렇게 알바에 집착하는 거냐?”

“네놈은 노동에서 돈을 벌어 쓰는 즐거움을 모르니까 그런 쓰레기 소리를 하는거임. 하긴, 돈 많은 것들이 뭘 알겠니?”

“뭐래?”

“됐고, 난 간다.”

“학교에서 보자.”

“어야~”

 

라경은 윤에게 받은 헬멧을 집어넣고, 바로 붕붕이 위로 올라탄 뒤, 재빠르게 골목을 빠져나갔다. 윤은 허공에 손을 몇 번 흔들고는 뒤돌아서 앞쪽에 보이는 주택 안으로 들어갔다. 대문을 열자 보이는 작은 정원은 꽤 정리가 잘되어 있었고, 조금 더 안쪽으로 보이는 2층짜리 건물의 외관은 집주인의 성격이 잘 드러나듯 간결하고 심플함 그 자체였다. 윤은 익숙하게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머, 들어왔어요? 식사는요?”

“괜찮습니다. 저 먼저 방으로 올라갈게요.”

“네~, 배고프면 말씀하세요.”

“네, 감사합니다.”

 

가정부 아주머니와 간단하게 얘기를 끝낸 윤은 2층에 있는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방문을 열어 가까이에 보이는 책상 근처에 가방을 내려놓고 바로 보이는 침대로 그대로 다이빙했다. 그리고는 주머니를 뒤적거려 잡히는 핸드폰을 침대 위로 슬쩍 던졌다.

 

“아! 손수건 말고, 전화번호를 물어볼걸…, 망했어….”

 

윤은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었다. 왜 신식 문물인 핸드폰을 놔두고 손수건 따위를 주다니, 민망함이 목구멍 위까지 차오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학교에서 쌤을 자주 마주쳐서 전남편 따위가 들어올 자리 따윈 없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생각할수록 괘씸한 남자였다. 자신이 성인이었다면, 그 자리에서 시원하게 몇 마디 욕이라도 해줬을 텐데, 지금만큼 학생의 신분이라는 게 이렇게 짜증이 날 수가 없었다. 물론 선화쌤의 반응을 봤을 땐 자신이 염려 하는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았지만, 그래도 생각하면 싫었다. 윤은 꼭 선화쌤이 자신을 잊을 수 없도록 만들어줘야겠다고 다짐했다.


 


안녕하세요. 작가입니다.

되도록이면 빨리 오려고 했는데, 쉽지가 않습니다...

모쪼록 재밌게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저는 다음회로  찾아뵙겠습니다~



GL소설을 씁니다. 재밌는 소설을 쓰기위해 노력중!!

태인하(燐夏)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