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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그 새끼 이름이 장진태라고?” 

“네.” 

하경이 대야 가득 담긴 빨래를 꾹꾹 밟아 누르며 대답했다. 날씨가 좋으니 미뤄놨던 빨래를 해야겠다며 아침 일찍부터 밖으로 나온 참이었다. 며칠 비가 많이 왔던 탓에 물탱크에 물도 가득 차 있었다. 날씨도 좋고, 물도 많고, 빨래하기에 너무 좋은 조건이잖아요. 빨랫줄을 치며 한참 실없이 웃음을 감추지 못하는 하경을 보고 윤수가 뭐가 그리 좋으냐 물었더니 그렇게 답했다. 별것도 아닌 일에 그렇게 아이처럼 좋아하는 하경을 보니 윤수는 또 슬그머니 마음이 착잡해졌다. 계속 이렇게 웃기만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속을 감추고 억지로 지어 보이는 무심한 표정은 더는 보기 싫었다. 윤수는 대야에 다시 물을 한 바가지 끼얹었다. 

“장수철 조카고요…… 아마 큰 이변이 없다면 그 사람이 다음 보스가 될 거고. 그래서 좀 뭐랄까...... 안쓰러운 게 있죠.” 

“뭔 개소리야. 그딴 쓰레기 새끼가 안쓰럽다니. 넌 애가 진짜.” 

하경의 말에 윤수가 한껏 인상을 쓰며 그를 나무라듯 바라보았다. 후후. 하경이 작게 웃으며 손으로 빨래를 뒤집었다. 

“지켜야 할 게 너무 많아서, 안절부절못하는 거. 꼭 겁 많은 개가 짖는 것처럼 센척하는 거…… 이해하고자 들면 이해는 되는 것뿐이에요. 나라고 그 사람 진짜 안됐어서 그런 생각하는 거 아니고요…… 누구보다 그 인간이 죽어버렸으면 싶으니까.” 

하경이 예의 그 무심한 듯한 표정을 하고서 낑낑대며 대야를 들었다. 그 모습을 본 윤수가 얼른 대야의 한쪽을 잡고 물 비우는 것을 도왔다. 

“걘 뭐 때문에 널 여기 잡아 두는 건데? 네가 살아 내려가면 위험해진다며.” 

“이거 좀 잡아 주세요.” 

하경은 윤수의 말에 대답은 않고 빨래의 한쪽 끝을 그에게 건네고는 천천히 빨래를 비틀기 시작했다. 검은색의 빨래에서 투명한 물이 주르륵 떨어져 바닥을 적셨다. 하경이 가만히 그 물줄기를 응시했다. 

“신기하죠. 더러운 옷도 이렇게 열심히 빨면 결국 투명한 물이 나오는 거.” 

“…… 그러게.” 

“인간도 그렇게 되면 좋겠는데…… 열심히만 하면, 깨끗해지면 좋을 텐데. 어떤 더러운 얼룩도,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 응.” 

“꽉 잡아요.” 

하경이 문득 고개를 들어 윤수를 보며 한번 웃어 보이더니 좀 더 힘주어 빨래를 비틀었다. 그에 맞추어 윤수도 그의 반대 방향으로 힘껏 비틀었다. 얼마 남지 않은 물이 옷에서 방울처럼 똑똑 떨어졌다. 이제쯤 됐다 싶었는지 하경이 옷을 움켜쥐고 탁탁 털어냈다. 그는 그대로 옷을 빨래 줄에 널어놓은 뒤, 대야에 담긴 나머지 빨래들도 차례차례 물기를 짜고 널기를 반복했다. 윤수는 말없이 그런 하경의 옆에서 함께 빨래를 짜고 대야며 바가지들을 정리했다. 

“바람까지 좋네요. 빨래 진짜 잘 마르겠다.” 

하경이 온 얼굴로 바람을 맞듯 하늘을 향해 고개를 쳐들고 살며시 눈을 감았다. 보드라운 바람에 그의 머리칼이 얇은 커튼처럼 사라락 날렸다. 윤수는 가만히 숨을 죽인 채 그 모양을 바라보았다. 곧 눈을 뜬 하경이 그런 윤수를 향해 작게 웃어 보이고는 허벅지에 손을 북북 문대며 현관 앞 계단에 자리를 잡았다. 윤수도 그런 그를 따라 옆에 앉았다. 

“나는…… 잘 모르겠어요, 윤수 씨.” 

하경이 무릎에 턱을 괴고 먼 산을 응시하며 말했다.

 “뭐를?” 

“윤수 씨가 어째서 나를 좋아하는 건지…… 원래 남자를 좋아하는 사람도 아닌 것 같은데. 그러니 그 좋아한다는 말을 곧이 곧대로 믿어도 되는 건지, 또 그래서 내 마음은 어떤 건지, 어디까지 내어주어도 괜찮을지…… 전부 다, 나는 잘 모르겠어요.” 

“……” 

“윤수 씨는 알아요? 윤수 씨의 마음을. 확신할 수 있어요? 지금 그 감정……” 

하경의 담담한 목소리는 눈앞의 빨래를 가볍게 흔들고 지나가는 바람처럼 차분했다. 윤수는 말없이 고개를 숙인 채 진흙이 묻은 신발 끝만 바라보았다. 

“사실은 나는요, 그거든 아니든, 상관없다고 생각해요. 어차피 지금이야 내가 눈앞에 있고, 아니, 오히려 여긴 나 밖에 없는데다 다친 거나 고립된 거나 이런저런 정황 상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거, 아무래도 안 되겠죠…… 그저, 때가 되면 윤수 씨도 알게 되겠지, 한 때의 착각이었다는 걸. 설사 진심이라 하더라도, 헤어져 살다 보면 자연스레 잊게 되겠지, 세상일이란 게 다 그렇듯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어쨌든 여기서 윤수 씨가 내 책임 아래에 있는 동안만큼은, 원하는 대로 해주고 싶어요. 윤수 씨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언젠가 시간이 지난 뒤에, 그냥 그때 좀 해달라는 대로 해줄 걸, 조금만 더 잘 챙겨줄 걸, 그런 후회, 정말 하고 싶지 않거든요.” 

잠시 말을 끊은 하경의 시선은 여전히 허공에 머물러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그 표정이 윤수를 불안하게 했다. 당장 그의 말을 자르고 그를 안심시키고 싶었지만, 그보다는 하경의 마음을 더 듣고 싶다는 생각이 컸다. 좀처럼 속을 보이지 않는 사람이라 어떤 말이든 이렇게 털어놓아주는 게, 겨우 조금은 저를 믿어주는 것이리라 싶어 한편으로는 안도가 되기도 했다. 

“전에도 말했듯이, 나는 윤수 씨 같은 사람이 마음을 쓸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 아니에요. 내 스스로가 누군가를 좋아할 자격도, 반대로 누군가에게 그런 마음을 받을 자격도 없고요. 윤수 씨는 그런 거 자기가 결정하는 거라고 했지만, 어쨌든 인간에게는 보편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부분도 있는 거잖아요…… 이기적이라고, 겁쟁이라고 욕해도 할 수 없지만, 나는 더 이상 감정에 휩쓸리는 게 싫어요. 두근거리고, 애가 타고, 욕심이 생기고, 마음이 아프고…… 그런 감정들, 모르고 살고 싶어요, 그냥 무생물처럼. 장진태가 그냥 이대로 나를 계속 여기에 처박아 놓고, 내가 영원히 이 산을 내려가지 않기를 바란다면, 나는 그냥 그렇게 할 거예요. 이제 와 내려가서 예전처럼 살 자신도, 그러고 싶은 마음도 없어요. 윤수 씨에게는 미안하지만…… 나에게 마음 쓰지 말아달라고 바라는 건, 이렇듯 나는 윤수 씨가 바라는 걸 줄 수 없기 때문이에요.” 

“…… 하경아.” 

윤수가 한참 만에 나직이 하경의 이름을 불렀다. 그는 망설이던 손을 뻗어 살며시 하경의 손을 잡았다. 서늘한 그 감촉에 윤수는 어쩐지 또 마음이 울컥해졌다. 

“내가, 다가가는 게…… 두려워?” 

“……” 

“내가 널 좋아하는 게, 아니, 네가 날 좋아하게 되는 게…… 두려워?” 

윤수의 물음에 하경이 말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윤수가 그런 그의 손을 끌어 손등에 살짝 입을 맞추었다. 

“너는 나한테 아무 것도 미안해 할 것 없어. 내가 상처받을까 봐 걱정할 필요도 없고. 네가 정말 나에게 마음이 없어서 그런 거라면 괜찮아. 억지로 나를 좋아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거니까…… 그런데 만약 그게 아니라면, 네 마음 외에 다른 문제들을 걱정하는 거라면…… 그래서 지금 네가 그렇게 두려운 거라면, 그냥 나 믿고 내 손, 잡아.” 

윤수의 말에 하경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앞머리 사이로 드문드문 드러난 검은 한 쌍의 눈동자가 불안한 듯 흔들리고 있었다. 윤수가 손을 들어 그런 하경의 뺨을 조심스레 감쌌다. 

“내 마음은 분명해. 네가, 좋아. 내 스스로도 당황스러울 정도로. 지금까지 살면서 누구도 너처럼 좋았던 사람, 없었어.”   

“아, 정말...... 어쩜 이래요. 내가 이렇게까지 말했는데, 윤수 씨는 어떻게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그렇게 말할 수가 있냐고.” 

하경이 원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윤수가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그런 하경을 끌어 당겨 품에 안았다. 저항 없이 순순히 끌려오는 몸이 안심 되었다. 햇살을 듬뿍 받은 그의 머리통이 따뜻한 것이, 또 마음이 놓였다. 

“나도 잘 모르겠어, 네가 왜 이렇게 좋은 건지…… 네 말처럼 남자를 좋아하는 일 같은 것도, 내 인생엔 없을 줄 알았는데. 그냥 너만 보면, 아니 그저 너를 떠올리기만 해도 막 몸 여기저기가 간질간질해져. 네가 웃는 걸 보면 기분이 너무 좋아지고, 네가 슬퍼 보이면 나도 마음이 아파. 잠시도 혼자 두고 싶지 않고, 하루 종일 네 기분이 신경 쓰여…… 이런 마음을 어떻게 다른 걸로 착각할 수 있겠어.” 

윤수의 말에 하경이 작게 한숨을 내쉬더니 그의 품에서 빠져 나갔다. 둘은 그대로 잠시 서로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침묵을 깨고 윤수가 먼저 팔을 뻗어 하경의 머리칼을 쓸어 올렸다. 하경은 그런 윤수의 손을 끌어다 잡고는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핏줄이 불거지고 그을린 윤수의 손은 하얗고 작은 하경의 손과 크게 대비되었다.       

“거 참…… 바보 같은 사람이네요, 윤수 씨는.” 

“뭐가.” 

“나 같은 게 뭐가 좋다고, 그렇게.” 

“야, 너 그 말 취소해. 내 취향에 대한 모독이야.” 

푸흐흐. 윤수의 말에 하경이 퍽 유쾌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아마도 윤수가 그를 본 이후로 가장 크게 웃는 것 같았다. 그 환한 모습을 윤수는 그저 말없이 지켜보았다. 이 웃음을 지켜줄 수만 있다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아…… 알겠어요, 취향 존중하겠습니다.” 

하경이 손끝으로 눈가를 찍어냈다. 아이, 눈물이 나도록 웃었네. 아직 웃음기가 남은 얼굴로 그가 작게 중얼거렸다. 

“그래, 그렇게 좀 웃어라, 하경아.” 

윤수가 하경과 마주잡은 손에 꾹 힘을 주며 말했다. 하경이 그런 윤수를 돌아보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오늘 날씨 진짜 좋네요…… 아, 맞다, 저녁에 바비큐 할까요? 어제 장진태가 꽃등심 사왔거든요.” 

하경이 무릎을 탁 치며 좋은 생각이라도 난 듯이 말했다. 

“꽃등심?” 

“네. 가끔 사와요. 특히 자고 가거나 하는 날엔,” 

“자고 가는 날도 있어?” 

“네,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요. 어디 다쳐서 오면 며칠 있다가 갈 때도 있고.” 

“으아, 짜증나.” 

하경의 말을 듣던 윤수는 벌컥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아니 그 새낀 굳이 이 전기도 안 들어오는 산골짝에 와서 자고 갈 이유가 뭐란 말인가. 윤수는 저를 향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하경을 향해 재차 물었다. 

“자고 간다고?” 

“…… 네.” 

“그럼 같이 자? 그 너 강제로 안는 것 말고, 그러니까 한 침대에서 같이 잠을 자냐고.” 

“그야, 뭐…… 그렇죠……” 

하아…… 눈치를 보며 말을 더듬는 하경의 대답에 윤수가 한숨을 토해냈다. 불현듯 그를 안고 잘 때의 따끈하고 말캉말캉한 감촉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섹스야 심심할 때 데리고 논다는 제 말마따나 그저 폭력의 일종이거나 단순히 욕구를 처리하기 위함일 수도 있다. 그런데 같이 잠을 자는 건 다르지. 그의 품 안에서 꾸물대며 안겨있었을 하경을 생각하니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그 새낀 분명히 하경을 마음에 두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와, 눈에서 레이저 나오겠다.” 

불쑥 튀어나온 하경의 말에 윤수가 그를 돌아보았다. 하경이 윤수를 향해 배시시 웃고 있었다. 

“질투해요?” 

“안 하게 생겼냐?” 

“알고 있었잖아요, 새삼.” 

“그거랑은 다르지! 감정 없이 단순히 욕구만 처리하는 거랑, 같이 잠을 자는 거랑 같냐고. 그것도 저 아플 때 굳이 이런 불편한 데까지 찾아온다는 건,” 

“싫어요, 내가.” 

하경이 달래듯 윤수의 손에 제 손을 포개며 말했다. 

“그 사람이랑 자는 거 싫어요. 숨소리도 듣기 싫어요. 그래서 잠들었다 싶으면 돌아눕거나 아예 빠져 나가거나 그래요…… 됐어요?” 

“……” 

“윤수 씨하고 잘 때랑은…… 내 마음이 다르니까…… 하지 마요, 질투 같은 거. 그럴 가치도 없는 인간이니까.” 

장진태의 이야기에 다시 하경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무슨 안 좋은 생각이라도 하는 건지 그가 잠시 멍하니 한 곳을 바라보며 입술을 말아 물었다. 

“무슨 생각해?” 

“…… 장진태 생각이요.” 

하경이 무심히 대답했다. 또 다. 감정을 숨기고 싶을 때 하경은 억지로 무심한 척을 해 보였다. 윤수는 슬며시 불안해지는 마음을 주워 삼켰다. 

“장진태…… 왜 그렇게 너한테 집착하는 건데. 이런 데다 붙들어 놓고…… 약도 억지로 놓는다며.” 

“……” 

윤수의 물음에도 하경은 대답 없이 계속 입술만 짓씹었다. 초점 없는 눈동자는 도무지 어디를 향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윤수는 더욱 초조해졌지만 재촉하지 않기로 하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파란 하늘 아래 가지런히 널린 색색의 빨래들이 바람에 팔랑팔랑 나부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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