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안개가 걷힌 도시엔 밝은 햇살이 드리워졌다. 

근래엔 보기 드물정도로, 어느 때보다 맑은 날. 교회의 주변으로 검은 옷을 입은 귀족들이 하나둘 모인다. 서로 예의와 격식을 갖춰 조용히 인사를 하고 신부들이 지키고 있는 예배당의 입구에 서서 그들에게 조의를 표한다. 서늘한 예배당엔 오랜만에 만난 이와 서로의 안부를 묻는 작은 소란스러움이 가득했다. 


검붉은 마차에서 내린 잭 머독은 예배당으로 향하는 교회 앞의 계단을 천천히 오르며 자신의 옷매무새를 버릇처럼 가다듬었다. 그의 옷깃에는 작은 티도 보이지 않았지만 언제나 당당했던 그의 눈빛은 자신도 정확히 정의할 수 없는, 알 수 없는 불안감에 티가나지 않을 만큼 작게 흔들렸다. 옅은 한숨을 내쉬기까지 했지만 바로 옆에 선 그의 부인은 그가 이 비통한 사정에 짧은 조의를 표한 것이라 생각했다. 집안의 훌륭한 뒷배가 없어진 것이나 다름없으니. 


검소한 듯 보이지만 주변을 장식하고 있는 그 어떤 것도 검소하지 않은 짙은 색의 목관이 예배당의 가장 깊은 곳, 예수상의 바로아래에 자리 잡았다. 성직자가 아니라 흡사 귀족이거나, 최소한 왕의 친인척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성대한 장례식이었다. 이름을 모두 알 수 없을 만큼 희고 푸른색의 꽃들이 주변을 장식하고 교회 안은 그 꽃들의 향기로 가득했다. 모두가 잠시나마 그 멋지고 화려한 순간들을 자신의 오감으로 느끼며 감상에 빠졌지만 이 장례식의 추도사를 읽어 내려갈, 현재 이 도시에서 가장 높은 신분의 그 자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슬픔이 묻어 있는 한편 분노로 인해 입술이 잘게 떠는 그가, 눈이 마주친 사람들 모두에게 인사를 건네며 좌중의 앞에 섰다.


"우리는 한 사람에게 작별의 인사를 하고자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아무런 신호 없이 시작된 그의 첫마디에 예배당 안의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일순간 멈췄다. 


"하지만 지금부터 제가 여러분께 드릴 말은 그를 추도하고 작별의 인사를 남기기 위함이 아닙니다. 그것은 아주 사소하고 개인적이며, 정다운 것이어서 감히 여러분들 앞에 표현하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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