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누퍼 - 미로

이낭님 :)

민선생과 별사탕

23




"면밀히 조사하겠습니다. 일단 지금은 데려가실 이유 없는 것 같고요."



여주의 말에 아미를 붙잡고 있던 형사의 손이 스르륵 풀린다. 다들 얼이 빠진 표정이었다. 정국의 표정을 본 여주가 차마 정국 쪽을 다시 돌아볼 수는 없었다. 쉼 없이 눈물을 흘리는 아미의 손을 꼭 붙잡은 여주가 핸드폰을 꺼내 남준에게 전화를 건다.



"선배, 나 일 쳤어요."

- 뭐?

"빨리 반으로 와주세요."



야, 대체 무슨, 남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전화를 뚝 끊어버린 여주. 손쓸 수도 없이 벌어져 버린 상황에 답답해진 윤기가 앞머리를 쓸어올린다. 여주는 차마 정국 쪽을 쳐다보지는 못했지만, 여전히 저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정국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김여주."



제발, 지금은 부르지 마. 여주가 눈을 질끈 감았다. 여주가 답이 없자 정국이 한 번 더 힘을 주어 여주의 이름을 부른다. 여주가 입술을 꽉 물었다.



"너,"

"..."

"나 때문이야?"



앞뒤 다 잘라먹고 하는 질문이었지만, 여주와 윤기는 정국의 말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신분을 숨기고 학교에 잠복한 이유가 본인 때문인지, 아버지인 전회장을 잡기 위해서였는지. 여주는 답을 하지 못했다.




"끝까지 아니라고는 말 안 하네."



정국이 교실을 빠져나갔다. 여주가 정국을 뒤쫓아나가려고 발을 떼면, 교실로 막 뛰어 들어오는 남준.



"야, 대체 무슨 일인데? 뭐야, 이거?"

"..."



여주가 입술을 꾹 깨물며 남준을 쳐다본다. 나 진짜 다 망했어요, 선배.








여주의 예상대로, 가해 학생의 부모에게 뒷돈을 먹은 경찰이 연루되어 있음을 손쉽게 밝혀낼 수 있었다. 아미의 학교폭력 사건 관할을 여주가 일하는 화양 경찰서로 옮기고, 돈을 먹은 경찰에게는 징계가 내려졌다.



"반장님이 찾으셔."



반장실에서 나온 남준이 여주에게 말했다. 책상에 앉은 채로 머리를 쥐어뜯고 있던 여주가 긴장된 눈빛으로 반장실과 남준을 번갈아 쳐다본다.



"그렇게 봐도 소용없어, 들어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쉰 여주가 반장실의 문을 똑똑, 두드렸다. 들어와, 반장님의 목소리에 여주가 긴장된 얼굴로 문을 열었다. 여주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사건 파일을 뚫어져라 보는 반장님이 보였고, 여주가 최대한 멀찍이 떨어져 앉는다.



"그쪽에 앉으면 내 말이 들려?"

"아닙니다."



반장님의 말 한마디에 최대한 가까운 데로 금방 옮겨앉았지만.

여주가 자리에 앉으면, 사건 파일을 덮고는 안경을 치켜올리며 여주를 쳐다보는 반장. 대화가 시작되기도 전에 여주가 소리친다.



"죄송합니다, 반장님!"

"..."

"너무 앞뒤 생각 않고 일을 저질러버렸습니다!"



무어라 말을 하려던 반장님은 여주에게 계속해보라는 듯 몸을 의자에 푹 묻히듯 기댔다.



"선배들이 몇 년 동안 쫓던 골드문인데, 그런 상황 하나에 그 노력을 수포로 만든 것 같아 정말 진심으로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무대뽀로 내뱉었고, 수습하기도 힘든 거 알고, 계획도 다 틀어진 것 같아 너무 죄송합니다!"



하지만요, 반장님! 여주가 고개를 치켜들며 말했다.



"저는 다시 시간을 돌려도 그렇게 할 것 같습니다! 그때 제가 나서지 않았다면 아미는 꼼짝없이 그 형사에게 잡혀갔을 거고, 그쪽에서 돈 먹고 학폭을 감싸준 비리도 밝혀내지 못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아미는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살았을 거고, 그때 제가 입을 다물었다면 저는 평생 죄책감을 안고 살았을 것 같습니다!"

"..."

"정말 죄송한데, 그 부분은 죄송하지 않습니다!"



할 말 끝이야? 냉정한 반장님의 말에, 우렁차게 소리치던 여주가 깨갱거렸다. 이렇게까지 말했는데도 화가 나셨다면, 더 이상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여주는 최선을 다했고, 후회하지 않았다. 정국이 일은 곤란하기는 하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듯이 새로운 계획을 짜면 되겠지. 매 순간마다 정국이에게 진심이었으니, 그 진심은 통할 거다. 다들 그렇게 말해줬으니 그걸 믿는 수밖에 없었다.



"서장님도 많이 화나셨다, 여주야."

"..."

"중대한 임무를 맡고 잠복하는 형사로서는, 책임지고 경위서를 써야 할 만큼 대책 없는 상황이었다. 너도 알지?"

"알고 있습니다."

"네 말대로 몇 년 동안 강력 1반에서 쫓던 골드문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 수도 있는 상황에 놓였고, 더 이상 전정국을 감시할 수도 없게 됐어. 만약 그 이후에 전회장이 전정국과 접촉해서 어떤 일이 터진다면, 그때 윗선에서는 잠복을 망쳐버린 네 탓을 하게 될 거다."



그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여주가 고개를 푹 숙였다.



"심각한 상황이지만,"

"..."

"그래도 잘했다."



네? 여주가 놀라 고개를 들었다. 실망감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하는 반장님께 죄송했고, 징계까지도 마음을 먹었던 여주가 듣기에는 놀라운 말이었다. 고개를 든 여주의 눈에 미소를 머금은 반장님의 얼굴이 들어왔다.



"훌륭했어. 내가 너였어도 그랬을 거야."

"..."

"고생 많았고, 밖에 나가서 그 아미라는 학생 챙겨. 청소년과에 있을 거야."



반장님. 여주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반장님을 쳐다본다. 야, 얼른 나가라니까? 민망해진 반장이 손을 휘휘 젓는다. 반장실을 나오면 창문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선배들의 모습. 여주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반장님이 뭐라셔?"

"형사 그만두래요."

"뭐어?! 반장님이 그러셨을 리가 없어. 아니, 말도 안 돼. 내가 반장님이랑 얘기를 좀,"

"뻥이에요."

"너 진짜 싫다, 여주야."

"저 걱정 했어요?"



꺼져. 남준이 여주를 휙 지나치며 내뱉는다. 선배, 나 걱정했네에~ 여주의 장난스러운 목소리가 강력 1반을 가득 채운다. 꺼져! 아, 왜요~! 반장실에서도 들리는 둘의 목소리에 사건 파일을 읽던 반장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진다.








3학년 9반은 평소보다 조용했지만, 어딘가 모르게 어수선했다. 다들 책상에 앉아 책을 보고 있기는 한데 딴 생각으로 가득 찬 눈빛들. 조회를 하러 반으로 들어온 윤기는 묘하게 변한 분위기와, 비어있는 여주의 자리를 쳐다본다. 그리고 그 옆에 엎드려있는 정국까지.



"조회 시작한다. 거기, 정국이 좀 깨워."



윤기의 말에 정국의 앞자리에 앉은 친구가 정국을 흔들어 깨운다. 한눈에 봐도 잠은 들지 않고, 그냥 엎드려만 있었던 듯 멀쩡한 눈으로 고개를 드는 정국.



"어제 좀 소란스러운 일이 일어났었지. 쌤도 좀 정신이 없기는 한데, 어쨌든 여주는 이제 학교에 안 나오게 됐다. 아미도 당분간 안 나올 거야."



윤기의 말에 9반이 급격히 소란스러워졌다. 역시 형사가 맞았나 봐, 그럼 학교에는 왜 있었던 거지? 저들끼리 쑥덕대는 소리가 점차 커진다. 반이 시끄러워지자 윤기가 출석부를 들어 교탁을 두어 번 탁탁, 친다.



"쓸데없는 억측 같은 거 하지 말고, 곧 있을 중간고사 준비 열심히 하자. 잊었나 본데 너네 고3이야."

"쌤. 그럼 여주, 열아홉살 아니에요?"



학생 한 명이 손을 들어 묻는다. 정국의 차가운 시선도 질문한 학생에게 향했다가 윤기를 똑바로 쳐다본다.



"조회 여기서 마친다. 그리고, 정국이는 잠깐 따라와."

"..."



윤기의 말에도 정국은 미동도 없다. 응? 알았지? 윤기가 다시 한번 물으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서는 정국. 정국이 일어서는 것을 확인한 윤기가 안심하듯 교실을 빠져나간다. 정국도 천천히 교무실로 향하는데, 자꾸만 교실에서 학생들이 떠드는 소리가 귀에 콕 박히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경찰 맞나 봐."

"그치. 민쌤도 모르셨나 봐."



왜 교무실로 따라오라고 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지는 않았지만, 차마 담임의 호출을 거부할 수는 없었던 정국이 복도로 나왔다. 교무실로 걸어가는 도중, 누군가의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형, 형! 익숙한 목소리에 정국이 짜증스럽게 뒤를 돌았다.



"여주누나 찐 경찰이었다면서요?! 학교에 소문 쫙 났어요! 진짜예요?"



왜 김여주가 네 목소리만 들리면 그렇게 짜증을 냈는지 알 것도 같, 정국이 생각하던 것을 멈췄다. 왜 김여주로 연결되냐.



"짜증 나게 하지 말고 가라."

"형도 몰랐어요? 누나 경찰인 거? 네?"

"가라고, 좀."



지민의 주접에 극혐하던 여주의 모습이 떠올라서 더욱 기분이 나빠진 정국. 이렇게 떠오르는 걸 보면 내가 진짜로 널 친구로 생각했었나 보다. 그게 더 정국의 힘을 빠지게 했다. 지민을 무시하고 지나쳐 교무실로 들어간 정국은, 상담실 문 앞에 서서 손짓하는 윤기를 발견한다.



"왜 부르셨어요?"



정국이 퉁명스럽게 말하며 의자를 당겨 앉는다. 윤기는 차가운 정국의 모습에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잠시 눈을 굴렸다. 정국은 여주의 연락을 모조리 씹는다고 했다. 밤새 걱정만 하느라 제대로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여주의 말도 떠올랐다.



"여주가 많이 걱정하고 있어."

"..."

"내가 끼어들 일은 아니지만,"

"선생님은 알고 계셨어요?"



정국이 윤기의 말을 끊고 물었다. 답을 바라는 눈빛으로 쳐다보는 정국의 모습에 윤기가 짧은 한숨을 내쉰다. 답은 없었어도 그 답을 읽어낸 정국의 얼굴이 더 차갑게 식어버린다.



"선생님은 언제 아셨는데요?"

"나도 얼마 안 됐어. 그리고,"

"됐어요."

"아니. 내 말 들어봐, 전정국."

"..."




"처음 이 학교에 들어온 게 어찌 되었든 여주는 항상 너한테 진심이었어. 진심으로 너를 친동생처럼 아끼고 좋아했어. 그건 내가 장담할게."

"..."

"네가 연락도 안 받는다고 어제 온종일 우울해하더라. 얼굴 보고 사과하고 싶다고."



선생님. 정국이 테이블을 뚫릴 듯 노려보며 말한다. 윤기도 하던 말을 멈추고 정국의 다음 말을 잠자코 기다렸다.



"선생님도 똑같아요. 알고도 모른척하신 거잖아요."

"..."

"김여주, 일부러 저한테 접근한 거."



정국이 윤기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눈빛과 말투에서 많은 감정들이 느껴지는 탓에, 윤기도 더 이상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여주가 우울한 표정으로 핸드폰 화면을 쳐다봤다. 정국이 여주의 연락을 씹은 지 일주일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윤기에게 들은 이야기를 정리해보면, 많은 상처를 받았고 용서할 마음 같은 건 없어 보였다.



1 정국아

만나서 얘기하면 안 될까?

1 해주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

미안해

1 정국아 미안해




- 안으로 진입합니다.



무전기에서 들려오는 선배의 목소리에 여주가 급히 핸드폰을 주머니에 밀어 넣었다. 잠입 중에 핸드폰을 본 것을 걸렸다가는 크게 혼쭐이 났겠지만, 그건 상관없을 정도로 정국에게 온 신경이 쏠려있었다.



- 뚫었습니다.



선배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무전을 타고 흘러왔고, 여주는 신호만 오면 바로 안으로 급습할 준비를 하고 있다.



- 아무것도 없습니다.

- 뭐? 지금 들어간다.



반장님의 지시를 받고 안으로 들어간 여주도 천천히 내부를 살핀다. 지하실에 위치한 은성 물산 본거지였다. 사람이 지냈던걸 증명이라도 하듯 여러 흔적이 있었고, 개 목줄도 두어 개 보였다. 호석이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가 책상을 손으로 쓸어 코에 갖다 댄다.



"마약 맞아요. 증거 채취합니다."



형사들이 바쁘게 증거가 될만한 흔적들을 수집했다. 쾅. 화를 못 이기고 형사 한 명이 두꺼운 철문을 내리치는 소리가 들렸다.



"변백현 그 새끼 아직 학교에 있어?"

"네."



윤기를 통해 변백현의 위치를 확인받고 있던 여주가 자신 있게 답했다. 잠복이 들통나고 학교를 빠져나오게 되면서, 의도치 않게 윤기와의 연애 사실까지 선배들에게 걸려버린 여주. 수사 감정적으로 하지 말라고 호되게 혼도 났다.

증거를 수집하는 마약반과 강력반 몇 명을 제외한 형사들이 지하실을 빠져나왔다. 형사들이 아지트를 쫓는다는 것도 눈치채고 그전에 재빠르게 도망친 것이 분명했다. 학교에 있기는 하지만 물증이 없으니 체포할 수도 없었다.



"아무래도 학교에 뭐가 있는 게 분명한데."

"제가 다시 들어가겠습니다."

"네가 무슨 수로."



잠복도 다 들통난 마당에 어떻게 들어갈 건데? 선배의 말에 여주가 입을 꾹 다물었다. 만약 그 일이 아니었다면, 어떻게든 변백현의 뒤를 캐고 다닐 수 있지 않았을까. 또다시 자신의 실수에 두 눈을 질끈 감는 여주다.



"밤에 진입하겠습니다. 뭐라도 해올게요, 제가."

"변백현이 그거 하나 생각 못 했을까. 얼마나 야비한 놈인데, 다 생각해놨겠지."

"그래도 해볼게요. 다 뚫으면 되죠. 저 할 수 있어요."



여주의 단호한 말에 반장님이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턱을 긁적인다. 한참을 생각에 잠긴듯하더니 천천히 입을 여는 반장.



"골드문의 최대 약점이 전정국이듯이, 우리의 최대 약점도 전정국이다. 정확히는 여주의 최대 약점. 그리고 담임까지."

"..."

"만약 변백현이 그걸 이용한다면?"



반장님의 말에 형사들이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그건 생각해보지 못한 부분인데. 정국과 윤기를 이용해 더 이상 골드문과 은성 물산을 헤집어놓지 못하게 변백현이 수를 쓰기라도 한다면? 여주의 머릿속에 정국과 윤기가 스쳐 지나간다.



"변백현이 먼저 수 쓰기 전에 정국이랑, 민윤기 선생님 보호 요청합니다."








아미는 일주일이 꼬박 지나고 나서야 등교를 할 수 있었다. 반에 들어오자 시선이 집중됨을 느낀 아미가 느린 몸짓으로 책가방을 내려놓는다. 원래 아미의 학교폭력을 조사하던 경찰서에서는 전혀 일이 진척이 되지 않더니, 여주가 있는 화양 경찰서에서는 사건을 낱낱이 파헤쳐 가해자 쪽에서 돈을 먹인 정황을 전부 밝혀내 주었다. 아미를 괴롭히던 가해자 학생 둘은 정학 처분을 받았다.



"정국아."



아미가 용기 내어 정국의 자리로 향했다. 정국은 일주일 내내 입도 열지 않고 학교 수업에만 열중했다. 아미가 말을 걸어오자 공부를 하고 있던 정국이 고개를 들어 아미를 쳐다본다.



"나, 할 말 있어."

"..."

"여주언니에 대해서."



'여주'라는 말에 펜을 돌리던 손짓이 멈춘 정국. 일주일 동안이나 여주와 가장 가깝게 지냈을 아미가 부탁하듯 말한다. 듣고 싶지 않았는데, 정국은 저도 모르게 아미를 따라 반을 나가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복도에 도착하면, 아미는 저를 빤히 내려다보는 정국을 올려다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어디서부터 말을 해야 하지.



"일단, 너도 알지? 나 언니 덕분에 나 괴롭히던 애들한테서 벗어났어."

"..."



그 얘기는 들으면 좀 마음 아픈 얘긴데. 정국이 얼굴을 찡그렸다. 김여주가 자신을 속인 건 속인 거고, 아미의 학교폭력은 다른 얘기였다. 두 개를 뭉뚱그려 해결하려고 하면 더욱 속이 불편했다.



"그전에 우연히 경찰서에서 여주언니 만났거든. 그래서 언니가 경찰인 거 알고 있었고,"

"너도 알고 있었냐?"

"들어봐, 내 말 좀."



더 들을 것도 없겠는데. 정국이 반으로 돌아가려 몸을 휙 돌렸다.



"여주언니 맨날 나 있는 데로 와서 울었어!"

"..."

"나 걱정한다고 울고, 너 걱정한다고 울었어. 그리고 내가 다른 형사님들한테 들은 건데,"

"..."

"예전부터 너 안 얽히게 하려고 엄청 노력했대. 너한테 피해 안 가게 하려고 남들보다 두 배, 세 배로 뛰고, 형사님들 사이에서는 별명이 전정국 누나였대."




"다른 사람들한테 그렇게 보여서 뭐해."

"너도 알고 있었잖아. 언니가 너 많이 아끼는 거."



아미의 말에 정국이 입을 꾹 다물었다.



"너랑 언니랑 되게 친했잖아. 나는 네가 공부만 하는 앤 줄 알았는데 그렇게 잘 웃는 애라는 거, 언니 덕분에 처음 알았어."

"..."

"나뿐만 아니라 모든 애들이 그렇게 느끼고 있을 거야. 언니 덕분에 우리 반 분위기도 되게 좋았잖아. 맨날 사고만 치고, 그 덕분에 민쌤이 뒷목 잡은 적도 많았지만."

"..."

"체육대회도 우승하고, 그리고,"



너 학교 즐겁게 다녔잖아. 아미의 마지막 말에 정국이 물끄러미 아미를 쳐다본다.

아미의 말은 틀린 거 하나 없었다. 부모님이 이혼을 하고 나서, 오랜 시간 동안 즐겁게 학교를 다닌 적이 없었다. 그냥 하루빨리 성인이 되고 나서 혼자 지내고 싶었다. 가끔 찾아오는 아버지도 부담스러웠고, 가끔 보이는 골드문의 덩치들이 저를 감시하는 것도 진절머리 났다.



"기밀이라고 아무도 나한테 너 얘기는 안 해줘서 잘은 모르는데,"

"..."

"정말 단순한 잠복 때문에 너한테 접근한 거라면, 언니가 이렇게까지 너한테 사과하고 싶어서 힘들어할까? 난 그거 아니라고 생각해."



아미의 말에 정국은 머리를 얻어맞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 이렇게까지 정국이 여주에게 서운한 이유는.

여주를 진짜 친구로 생각했기 때문일 거다.








정국은 꽤 오래 여주의 연락을 씹었기에 갑작스럽게 답을 하기에는 조금 머뭇거려졌다. 여주에게 직접 해명을 듣고 싶었지만, 여주에게 연락을 하면 울음소리로 가득 찬 전화만 받게 될까 봐 조금 두렵기도 했다.

민쌤에게 연락을 해봐야 할까. 정국이 핸드폰을 만지작대며 집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집 앞에 서 있는 누군가를 보고는 걸음이 멈춘다.



"이제 오네?"



선생님이 왜 여기에? 정국이 뒷말을 흐린다. 상황 판단을 위해 말을 아끼고는 백현을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



"옆에 같이 다니던 친구 없으니까 좀 외로워 보이네."

"..."

"그 친구 경찰이었다며?"



그다지 친하지도 않은 백현과 여주의 이야기를 할 기분은 아니었다. 정국이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며 물었다.



"선생님도 나 감시하러 온 경찰이에요?"



정국의 말에 백현이 빵 터져 깔깔대며 웃는다. 왜 웃는지를 몰라 더욱 기분이 나빠진 정국이 백현을 노려본다. 여주 말고도 저를 감시한 사람이 있다면, 정말 화가 많이 날 것 같았다.



"이런 이런, 내가 경찰이라고?"

"..."

"달라붙은 경찰 정리하느라 좀 늦게 왔더니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쳤구나?"



뭐야, 무슨. 정국이 말을 잇지 못하고 백현을 빤히 쳐다본다.



"회장님 지시로 도련님 지키러 들어온 사람이에요, 제가."

"..."

"경찰이라고 말하면 섭하죠. 내가 제일 싫어하는 부류인데."



갑작스럽게 말을 높이는 백현에 한번 놀라고, 아버지의 지시로 들어온 골드문 사람이라는 사실에 더욱 충격을 받은 정국. 경찰뿐만 아니라 아버지 쪽에서도 저를 감시하고 있었다. 화가 치밀어 오른다.



"김여주 형사가 도련님 속이고 학교 들어와서 많이 배신감 느꼈죠?"

"..."

"원래는 도련님 모르게 그 형사님 처리하려고 했는데, 일을 터트렸더라고. 참, 정의로운 형사님이야. 안 그래요?"



나 모르게 김여주를 처리하려고 했다고? 정국이 저도 모르게 백현에게서 조금 떨어져 뒷걸음질 친다.



"이제부터 우리 쪽에서 도련님 보호할 거니까 나랑 같이 가요. 사모님도 같이 모시고요."

"선생님이 왜 나랑 우리 엄마를 보호해요? 누가 나를 해치는 것도 아닌데?"

"어, 해치는 건 아니지만, 일에 조금 방해가 된달까?"



무슨 일이요. 정국이 대놓고 반감을 드러내며 물었다.



"회장님은 모든 일을 저에게 넘기고, 도련님과 중국에 가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어 하세요. 그것 때문에 내가 나서서 일을 마무리하고 있었고, 좋게 끝낼 수 있었던 건데 자꾸 귀찮게 누가 들러붙어서."

"..."

"도련님도 회장님께서 감옥 가시는 건 원치 않잖아요? 그냥 우리랑 며칠 지내다 보면, 다 해결되고 회장님도 모든 일을 청산하고 도련님 곁으로 오실 거예요."

"그 누구가, 김여주예요?"



백현은 답 없이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하기만 했다. 김여주냐고요. 정국이 다시 물었다.



"김여주면 뭐가 달라지나. 어차피 도련님 속이고 옆에서 감시한 건 변하지 않는데."

"..."

"목에 칼이 들어와도 찍소리 하나 안 내던 사람이 고작 학교폭력 하나 해결하자고 일을 그렇게 만든 게 퍽 우습기는 한데."



목에 칼이 들어와? 정국은 여주의 목에 붙어있던 반창고를 떠올렸다. 머리 말리다가 드라이기에 데였다고 했는데. 퍼즐이 점차 맞춰지고 있었다.



"정국아. 그 말 듣지 마."



그리고 뒤에서 들려오는 여주의 목소리에, 정국이 놀라 뒤를 돌았다. 여주의 등장에 백현이 작게 욕을 읊조렸다. 여주를 쳐다본 정국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여주의 목 부근으로 향했다. 시간이 꽤 지나서 반창고가 떼어져 있기는 했는데, 선명하게 그어진 칼자국이 정국의 추측을 받쳐주고 있었다.



"내가 다 해명할 테니까, 일단 우리랑 같이 가자, 정국아. 응?"



여주가 애처롭게 말했다. 지금 정국으로서는 백현도 그다지 안전하게 느껴지지 않았고, 그렇다기에는 여주에게 느낀 배신감이 컸다. 여주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마음은 컸지만 당장 여주에게 달려갈 만큼 마음이 풀어진 것도 아니었다.



"아~ 형사님 진짜 걸리적거리네? 짜증 나게."



정국은 여주 뒤에서 백현을 노려보고 있는 경찰들을 쳐다봤다. 그리고는 여주와 시선을 맞춘다.



"김여주."

"..."

"나는, 너 진짜로 친구라고 생각했어."



정국의 말에 여주가 고개를 푹 숙인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일이 터지기 전에 먼저 사실을 고백하고 정국을 보호하려고 했다면 가능했을까? 지금 정국이 저에게 화가 나서 백현을 따라간다고 해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법적으로 정국의 보호자는 전회장이었고, 지금은 변백현이 그 보호자를 대신해 정국을 데려가려고 하는 거였으니까.

정국이 백현을 쳐다봤다. 기분 나쁘게 한쪽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저를 쳐다보는 백현과 눈을 똑바로 마주하며 말한다.





"아버지한테 직접 만나러 오라고 전하세요."



옳지 못한 일을 하는 아버지를 옹호할 생각은 없었다. 정국이 여주를 향해 걸어가면, 형사들이 정국을 에워쌌고 백현이 허공에 대고 욕을 지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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