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자서가 사라졌다. 

자서가 보이지 않는다. 

어디에서도 그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다. 


'아서... 아서야. 너 어디 있어? 어디로 사라진 거야?'



객행이 눈을 떴을 때 자서가 보이지 않았다. 분명 어제 같이 잠들었는데... 술에 취했었지만 지난 밤 자신은 그와 함께 잠들었다. 묵은 원한을 갚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술을 잔뜩 들이키고 취해서 그를 찾아갔다. 그에게 그 동안 말하지 못한 속내를 털어 놓았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으며 입 맞추다 잠들었다. 그런데 깨어보니 그가 없었다. 그의 침상에는 덩그러니 자신만이 누워 있을 뿐이었다. 객행은 알 수 없는 불안감에 바닥에 널브러진 옷을 대충 주워 입고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사계산장이 불에 타버려 자서와 새로 맞아들인 19명의 제자는 새군부에 머무르고 있었다. 객행은 누구라도 보이면 자서의 행방에 관해 물어보려고 이곳저곳을 다 뒤지고 다녔으나 그 어디에서도 그는 물론이고 어떤 인기척도 찾을 수가 없었다. 다들 어디로 간 것인가? 대무와 칠야는? 어떻게 일하는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 걸까? 객행은 사제들이 머무는 곳을 찾아가 소리를 질렀다.


"장성령!" 

"필성명!" 

"아무도 없어? 다들 어디 간 거야?"


"사숙!"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객행이 뒤를 돌아보니 성령이었다. 아무도 없다는 두려움에 숨이 막혀오려고 했는데 성령을 보니 그나마 안심이 되었다. 그는 다급하게 성령의 어깨를 붙잡고 물었다.


"성령아!"


"네, 사숙."


"네 사부가 보이지 않는다. 어디에 갔는지 아느냐?"


"사부님은 평안을 찾으러 가셨습니다."


"아! 그래?"


"네. 사부님께서 사숙이 곤히 잠들었다며 깨우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아... 그랬구나."


객행은 겨우 안도하며 불안감을 지우려고 했다. 그래도 성령 말고는 사람들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아 다시 물었다.


"성령아,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지? 왜 너와 나만 있는 것이냐? 대무는? 칠야는? 아상과 조위녕은 어디로 갔느냐? 왜 다른 제자들은 보이지 않지?"


"그게... 다들 떠났습니다."


"뭐어? 왜?"


객행은 성령의 말에 깜짝 놀랐다. 떠나? 갑자기? 어제만 해도 아무도 그런 내색이 없었다. 아상마저 자신에게 말도 없이 떠나다니... 그들이 떠난 이유를 알 수 없어 성령에게 되물었다. 성령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사부님이... 더 이상 이 곳에 계시지 않기 때문에... 다들 여기 있을 수가 없다고..."


"성령, 그게 무슨 말이냐?"


"사숙... 이제 사부님을 뵐 수 없습니다..."


"!!!!"


객행은 자서를 더는 볼 수 없다는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눈앞이 깜깜해지면서 어지러움을 느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휘청거리는 몸을 추스르고 고개를 들어보니 좀 전까지 자신과 얘기하고 있던 성령마저 사라지고 없었다. 객행은 끔찍한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지독한 악몽이라도 꾸고 있는 걸까?


'다들 어디로 사라진 거야. 그래. 아서가 평안을 찾으러 갔다고 했지? 그곳으로 가봐야겠다.'


객행은 평안은장으로 가기 위해 내력을 써서 있는 힘껏 몸을 날렸다. 그러나 두 다리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날 수가 없다. 경공술을 쓸 수 없었다.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시간이 없다. 어쩔 수 없이 뛰어가기로 했다. 그런데 역시나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절망에 사로잡혀 소리를 질렀다.


"아서! 어디에 있어? 너 어디 있는 거야? 돌아와! 나를 혼자 두지 마. 아서야!! 너 어디에 있어?"


'이게 꿈이라면 어서 깨기를... 네가 없는 이 곳에서 나는 살 수 없어. 이 고통을 견딜 수 없어.'






"노온?"

"노온! 정신 차려."


자서는 괴로운 꿈이라도 꾸는 듯 인상을 찌푸리고 자고 있는 객행을 흔들어 깨웠다. 평소와 달리 늦잠을 자는 그가 걱정이 되어 보러 온 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식은 땀까지 흘리며 자고 있었다. 이름을 몇 차례 불렀으나 도통 일어나지 않아 결국 그를 흔들어 깨울 수밖에 없었다.


"... 아서..."


객행은 처음에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러다가 자신을 걱정스럽게 내려다보고 있는 자서의 얼굴을 알아보았다. 

'아! 꿈이었구나. 아서가 보인다. 바로 여기에 있다.'


"아서야!!"


객행은 손을 뻗어 그를 와락 끌어당겼다. 얼마나 세게 잡아 끌었는지 자서는 그만 객행의 몸 위로 쓰러지고 말았다.


"노온!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다행이다. 꿈이었어. 네가 사라진 게 아니라서 정말 다행이야. 아~~! 넌 모를 거야. 내가 얼마나... 얼마나..."


자신을 끌어안고 꿈이라서 다행이라고 탄식하듯 내뱉은 객행의 그 말에 자서는 가슴이 뻐근해졌다. 자신이 사라지는 꿈을 꿨나 보다. 꿈일 뿐인데도 이렇게 힘들어하는 데 정작 자신이 죽고 나면 객행은 어떻게 될까... 자신은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운명인데... 이미 받아들였는데... 남겨진 그는 그걸 잘 견뎌낼 수 있을까? 자서는 그런 생각들로 인해 가슴이 답답하고 아려서 아무 말도 못 하고 그저 안겨 있었다. 


객행은 자서를 품에 안고 체온을 느끼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자신은 결코 그가 없는 삶을 살아낼 수는 없을 것이다. 꿈이라서 얼마나 다행인가. 대무가 그를 고칠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복수를 끝내고 그와 함께 사계산장을 재건하고 제자를 가르치며 여생을 보낼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말이다. 


물론 자신은 귀곡에 묶인 몸이지만 가끔 자서를 보러 갈 수 있을 것이었다. 이제 그에게는 평생의 지기이자 친애하는 이가 생긴 것이다. 더 이상 천하를 떠도는 외로운 기러기는 아니었다. 가혹하기만 했던 하늘이 드디어 자신에게 선심을 쓰기로 마음을 바꾼 것이다. 다행이다. 다행이야!


객행은 자신이 꽤 오래 자서를 끌어안고 있는데도 그가 가만히 있는 것이 새삼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계속 이렇게 안고 있고 싶었지만 그만 일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조심스레 이름을 불렀다. 


"아서...?"


"......"


"혹시 자...?"


"... 쓸데없는 소리 말고 그만 놔!"


"아! 아하하하. 알았어."


객행은 멋쩍게 웃고는 자서를 감은 팔을 풀고 몸을 일으켰다. 자서도 자세를 바로 잡고 앉았다. 어느새 속내를 감추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객행을 쳐다보았다.


"너, 또 악몽 꾼 거야?"


"어..."


"한 동안 안 꾸더니 왜 또? 이제 복수도 다 끝났는데..."


"아... 예전에 꿨던 악몽이 아니라... 이번엔 네가 사라졌었어. 정말로 놀랐잖아. 너 어디 가는 건 아니지?"


"내가 가긴 어딜 가..."


"그러니까 말야... 아마도 너무 일이 잘 풀리니까 불안해서 그런가 봐. 하하하."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어릴 때, 부모님과 작은 마을에 숨어 지낼 때, 며칠 후면 너와 진 사부님이 우리 가족을 데리러 올 거라고 했었어. 나는 그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거든. 곧 사계산장으로 가게 된다고 기대에 부풀어 있었는데... 귀곡 악귀들이 들이닥쳐서... 모든 게 사라졌지. 그래서... 너무 행복하면 불안해. 곧 나쁜 일이 생길 것 같아서..." 


자서는 객행의 말을 듣고 가만히 그의 손을 잡았다. 그가 느끼는 불안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도 그와 같이 느꼈으니까... 하늘이 질투라도 하듯 기쁜 일 뒤에는 늘 나쁜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자서는 차마 객행의 눈을 바라볼 수 없어 그의 긴 손가락을 지그시 바라보며 손등을 가만가만 두드렸다. 


"괜찮아. 괜한 생각이야... 더는 아무 일도 없을 거야. 노온. 걱정하지 마."


'미안해. 노온... 미안해...'


자서는 사람들이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매정한 사람이라고 불렀던 것을 기억했다. 자신이 생각해도 그렇다. 지금도 노온을 이렇게 감쪽같이 속이는 자신이 얼마나 박정한 사람인지...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은 모른다. 내가 얼마나 겁쟁이에 비겁한 사람인지... 더는 견딜 수 없을 때 늘 도망쳤다. 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지키고 싶었던 사람과 이루고 싶었던 일은 손안의 모래처럼 모두 사라져 버렸다. 잡으려 하면 할수록 내 손을 빠져나갔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스스로를 벌하며 나를 놓아버렸을 때, 그래도 하늘이 무심하지 않은지 소중한 사람들을 만나게 해 주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이제 도망치고 싶지 않은데 하늘은 나를 비웃고 더는 내게 기회를 주지 않을 모양이다. 넌 결코 행복해 질 수 없다는 듯...' 


"아서야.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객행은 자신의 손을 두드리던 자서가 문득 동작을 멈추고 생각에 잠긴 것을 보고 의아해하며 물었다.


"아... 아냐. 근데 노온, 나... 부탁이 있어."


"어? 뭔데?"


"... 만약 내게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긴다면... 네가 나를 대신해서 사계산장을 잘 이끌어주길 바래."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너한테 무슨 일이 생긴다고. 이제 곧 병도 고칠 테고... 나도 옆에 있는데..."


"이 세상에 확실한 건 없어. 그러니..."


"난 그런 거 몰라! 아서! 쓸데없는 말 하지 마."


"노온. 잠시만. 네게 이 말은 꼭 해주고 싶어. 너를 찾고 너와 함께 사계산장을 이어나갈 수 있어서 정말 기뻐. 그리고... 난 네 옆에 언제나 함께 있을 거야. 하지만... 그렇더라도 혹시나... 나에게 무슨 일이 생겨서 너 혼자 남겨진다면 넌... 굳세게 잘 살아야 해. 나 대신 성령과 나머지 제자들을 잘 보살피고 사계산장의 명맥이 끊어지지 않도록 해 줘. 그게 날 위하는 거야."


객행은 자서의 진중한 얘기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들으면 들을수록 마음이 불편해지고 불안해졌다. 그리고 화가 났다. 


"아서!! 너 도대체 왜 그래? 만약은 없어. 만약에라도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나는 너를 따라갈 거야. 동생공사! 잊었어? 그게 안 된다면 내가 먼저 죽는 게 나아. 네가 없는 세상에 사는 것보다 그 편이 백 배, 아니 천 배, 만 배는 나아. 너도 그렇게 알아!"


자서는 자신이 죽은 뒤 객행이 걱정되어 만약이라는 말로 속마음을 이야기했지만 그가 흥분해서 화를 내는 지경에 이르자 노선을 바꾸기로 했다. 


"아하! 그러셔? 노온. 나는 네가 만약에 무슨 일이 생겨서 내 옆에서 사라진다면 너를 위해 굳세게 잘 살아보려고 했는데... 넌 아니구나?"


"어? 뭐? 아서... 뭐... 라고?"


객행은 순간 충격을 받았다. 자신이 기대한 말은 그게 아니었던 것 같다. 물론 아서가 자신을 따라 죽는 것도 바라지 않지만 이렇게 잘 살 거라고 대 놓고 말하다니... 서운했다. 몹시도 서운했다. 그 마음이 얼굴에도 드러났나 보다. 자서는 그 얼굴을 보고는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 노온~. 너 지금 그 표정은 뭐야? 거울이 있으면 한 번 보여주고 싶다. 왜? 네가 만약 죽는다면 나도 너 따라 같이 죽길 바래?"


"무... 무슨... 너라도 잘 살아야지."


"거 봐. 나도 그렇다는 거야. 이제 내 말뜻 알아듣겠어?"


"...어. 알겠어."


"노온. 우리 중 누구에게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지만... 어쨌든 남은 사람은 굳세게 잘 살아나가는 거다. 알았지?"


"알아. 알았다고. 아서. 이제 그 얘기는 그만해."


"그래. 그만 나가서 밥 먹자. 배고프다. 옷 챙겨입고 어서 나와."


자서는 자신이 지을 수 있는 가장 화사한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나갔다. 그 모습을 보자 객행의 마음도 조금은 평온해졌다. 악몽을 꾸긴 했지만 꿈이라서 얼마나 다행인가. 그가 자신을 향해 지어 보인 저 화사한 웃음은 꿈이 아니다. 현실이다. 그러니 아무 일도 없을 것이다. 이제 아상을 시집 보내는 일만 남았다. 그 일만 마무리되면 그와 자신은 사계산장을 재건하고 그 곳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며 살면 될 일이었다. 드디어 객행의 입가에도 미소가 떠올랐다. 








산하령 처음부터 쭉 다시 보기 하다가 객행이 악몽을 꿨다는 대사를 보고 갑자기 쓰고 싶은 내용이 떠올라 글로 옮겨 보았습니다...

객행이 복수를 하고, 아상을 시집 보내기 전 악몽을 꾼 설정으로... 늘 읽어주시고 격려해주시는 분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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