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애들이 들으면 기함할 내용이었다. 나현은 아침만 해도 나가기 귀찮아서 현관에서 미적거리던 자신을 떠올리곤 잠시 반성하는 시간을 가졌다. 조장의 책임감에 할 일이 제일 많아서였지만 막상 해야할 것들을 끝내고 나서야 주위가 보이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다연.


"나도.."


나현은 선의의 거짓말을 하며 보기 좋은 미소를 지었다. 실제로 지금 이 순간은 좋으니까 거짓말은 아닐거라고 합리화하면서. 다연이 할 말을 찾으며 다시 핸드폰으로 시선을 떨어트리고 나서 나현은 다연을 찬찬히 관찰했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밖에서 단 둘이 있던 적이 있었나 싶다. 나현은 순간 긴장해서 필터링을 거치지 않은 말이 나왔다.


"다연이는 남친 없어? 있을 거 같은데."


"...어?"


나현의 말을 들은 다연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나현은 자신이 말 실수를 했나 싶어 곰곰히 생각해보았으나 딱히 그런 건 없었다. 다연은 금새 시무룩한 얼굴이 되곤 뜸을 들이다가 조그맣게 대답했다.


"..없어."


나현은 왠지 어색해진 공기에 '그렇구나'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나 뭔 잘못했나?


걸어서 지하철에 타면서 나현은 분위기를 바꿔야 겠다는 생각에 다른 말을 꺼내려고 했으나, 다연이 더 빨랐다. 다연이 핸드폰을 꺼내더니 무언갈 보곤 비명을 내질러서 나현은 깜짝 놀라서 몸을 떨었다.


"왜 그래?"


다연은 말을 잇지 못하며 핸드폰을 나현에게 보여주었다. 나현은 핸드폰에 있는 사진을 보고 입을 다물 수 없었다. 핸드폰 안에는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는지 옆모습이 찍힌 예지와 카메라를 보며 웃으며 브이를 하고 있는 우연의 모습이 담겨 있다.


'두 사람이 왜 같이 있는 거지? 둘이 알던 사이였나..? 박예지는 우연 언니를 안다고 말한 적이 없었는데.. 우연 언니는 아까 카페에서 안 보이더니 박예지 만나러 갔었구나.'


나현이 하얘진 머릿속을 정리하고 있는데 다연이 더듬거리며 말하기 시작했다. 애써 웃는 모습이다.


"오늘 산책하러 나간다고 했었는데.. 예지 만나러 간 거였구나. 나한테는 말하기 좀 그래서 말을 안 했나보다. 하하.. 그래도 말은 좀 해주지. 서운하게.."


혼자 합리화를 하는 모습이 꽤나 안쓰러워 보여서 나현은 거기서 말을 더 얹지 못했다.


다연은 우연에게 그날 그날 있었던 일을 말하는 편이다. 그날 먹었던 점심, 그날 있었던 일, 그날 어떤 수업을 듣었고 어떤 얘기를 친구랑 했는지. 전부는 아니여도 인상에 남았던 일을 얘기하면 우연은 맞장구를 쳐주며 잘 들어주었다. 당연하게도 예지와 있었던 일도 말했다. 예지가 급식실에서 시비를 걸었던 일이라던지, 지나갈 때 가끔 어깨를 치고간다던지 하는 것들. 우연은 그걸 들으면서 다연의 몫 대신 길길이 날뛰곤 했다. 그리고 대신 학교에 갔었던 날에도 예지와 서로 몸싸움을 하다가 오지 않았는가. 그래서 멋대로 우연은 예지를 별로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다고 그렇게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자신은 틀렸던 모양이다. 우연은 그날 예지를 직접 보고 꽤나 마음에 들었는지 이렇게 같이 만나서 사진도 찍고.. 다연은 더 생각했다가는 울컥할 것 같아서 머리 속을 비우려고 노력했다. 우연이 언제나 자신을 위해주고 격려해줘서 언제나 자신에게 맞춰줄거라고 당연하게 생각했던 마음이 문제였을까?


다연의 시시각각 변하는 표정을 지켜본 나현은 본능이 이끄는 대로 행동했다. 다연을 꽉 안아주었다. 다연의 얼굴이 자신의 어깨에 닿도록 끌어 안았다. 이유는 자신도 잘 몰랐다. 그저 다연의 상처받은 낯이 너무 투명해서 자신에게까지 그 안 쪽이 보였다. 붉어진 눈가를 보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다.


"..."


나현 자신도 자신의 행동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자신이 이렇게 충동적인 사람이었나? 막 아무나 덥썩 안고 보는 사람이었나? 나현이 손을 풀지도 못하고 더 안아주지도 못한 채 어정쩡한 자세로 있으니 다연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채 있다. 나현은 잠시 후에 손을 풀면서 ‘마음대로 안아서 미안’ 대신에 다른 말을 했다.


“울지 마..”


다연은 울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가만히 감정을 억누르고 있는 것이 나현의 말에 봇물 터지듯 올라왔다. 다연은 분위기에 휩쓸려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말을 늘여놓았다. 나현은 다연과 눈을 마주치며 그것을 기꺼이 듣고 있다.


“내가 언니한테 서운한 게 맞는 걸까? 예지를 싫어하길 바랬던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사이 좋게 지내길 바란 것도 아니었어.. 그게 진짜 내 마음이었나봐. 집에 가서 언니를 보면 무슨 말을 해야하지? 친하게 지내지 말아줬으면 좋겠다고? 그건 이상한 얘기잖아. 내가 언니에게 간섭할 만한 얘기가 아닌데..”


다연은 답을 바라고 한 말이 아닌 듯 혼자 말하면서 골몰히 생각에 잠겼다. 나현은 우연이 예지와 친하게 지내려는 의도가 순전히 궁금해졌다. 나현이 예지와 같이 지내면서 알게 된 것은 예지는 그렇게 사람을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친해지려고 다가오는 애들이 가끔 있어도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로 내쳐버린다. 한 마디로 사회성이 최악인 편이다. 우연이 무슨 말로 구워 삶아서 예지와 같이 밖에서 따로 만났는지도 궁금증이 이는 동시에 화도 났다. 본인의 동생이 상처 받았으면 좋겠어서 이런 사진을 보낸 건가? 나현은 우연에게 조그만 복수 겸 있었던 일을 말했다. 우연이 다연에게 말하지 말라고 했던 일.


“네 언니.. 사실 아까 카페에서 만났어. 우리 넷이 있던 카페. 널 보러 왔는지 우리 쪽을 힐끔거리고 있더라.”


다연은 전혀 몰랐는지 화들짝 놀라며 되물었다.


“언제?”


“음료 받으러 갔을 때. 아무래도.. 이런 말 하기 조심스럽지만 네 언니 조금..”


이상하다는 말까지는 하지 않았다. 그건 다연에게도 실례일거 같았기 때문에. 다연은 뒷말을 알아듣고는 입술을 깨물었다. 입맛이 쓰다. 다연은 애써 미소를 짓곤 곰곰히 고민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더니 이내 자신의 얘기를 조곤히 말하기 시작했다.


“나현아 있잖아, 우리 언니. 되게 마음이 여리다? 어렸을 때부터 언니가 누군가한테 뭘 받아오면 꼭 나에게도 나눠주었어. 그게 얼마나 사소한 거든 말이야.”


다연은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귀 뒤로 쓸어올렸다. 나현은 이 순간에도 손이 참 예쁘다 같은 생각을 했다.


“내 성격이 너무 소심해서 어디 가서 해야할 말을 못 하고 왔을 때는 언니가 대신 나서서 내 몫까지 말해주고는 답답할 만 할 텐데도 ‘다음에 이런 일 있으면 또 말해’라면서 막 웃고 그랬는데. 웃기지 않아? 나랑 몇 살이나 차이난다고... 그런데도 그럴 때는 진짜 세상 모두가 날 등져도 언니만 있다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어.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야.”


“...”


다연은 나현을 바라보았다. 바라보는 그 눈에 물기는 옅어져 있었다.


“언니는 이상하지 않아. 그렇게 생각하는 건 잘못됐어.”


나현은 다연이 화를 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다연은 눈 한번 찡그리지 않았다. 그래서 그게 더 미안하게 느껴졌다. 나현은 그런 의도로 말을 한 게 아니라고, 화 나게 할 생각으로 꺼낸 얘기는 아니라고 말하려고 했으나 그때 타이밍 좋게 다연이 내릴 역에서 스크린 도어가 열렸다. 다연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미소지었다. 그리고 학교에서 보자며 손을 흔들고는 지하철에서 내렸다. 문이 닫히고 다연의 모습이 멀어지다 이내 시야에서 보이지 않게되었다. 나현은 마른 세수를 했다. 나 또 말실수 거하게 했구나.



다연은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너무 달려서 주변에서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으나 지금은 그런 것들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다연은 달아오르는 얼굴을 감싸쥐었다. 불과 몇 분 전에 했던 말들이 후회됐다.


‘아무리 그래도 나현이한테 그렇게까지 말할 필요는 없었는데..’


주변에서 하도 우연이 요즘 들어 이상하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 다연은 자신도 모르게 예민해져 있었음을 이제야 인정했다. 나현도 다연을 자극할 의도로 한 말은 아니었겠지만 그 순간 나현의 말은 우연에 대한 욕으로 들렸다.


‘그냥 한 귀로 듣고 그렇구나 하고 흘렸으면 됐던 건데.. 바보처럼. 나 빼고 놀러나간 언니가 뭐가 예쁘다고 감싸준거야.’


다연은 울적한 마음으로 핸드폰을 열었다. 나현에게 방금 한 말은 잊어달라고 구구절절 장문으로 메세지를 쓰다가 나현도 이렇게 긴 메세지를 받으면 당황스러워 할 것 같다는 생각에 핸드폰을 닫아버렸다.


‘요즘 진짜 되는 일이 없네..’


-다연이는 남친 없어? 있을 거 같은데.


순간 떠오른 전의 나현의 말이 다연을 더 울적하게 만들었다. 남친 없냐니.. 다연은 나현의 말을 듣자마자 두 가지를 추론해냈다. 첫번째는 나현이는 여자에 관심 없다는 것이고, 두번째는 자신이 나현에게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우연이 해준 말에서 첫사랑은 실패할 수 밖에 없다는 말을 떠올린 다연은 씁쓸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친구로라도 있는 게 좋다고 이대로가 좋다고 생각했었는데, 자꾸 욕심을 부려서 이런 벌이 내려진 거다. 다연은 어서 집에 가서 씻고 침대에 누워서 슬픈 노래를 틀 생각으로 걸음을 서둘렀다.


***


“어? 생각보다 일찍 왔네?”


집 현관문을 열자마자 부리나케 달려온 우연이 다연을 보며 그렇게 말했다. 다연은 비꼬는 것처럼 말하려고 입을 열었다. 그러나 우연이 빤히 보고 있어서 마음이 조금 약해졌다.


“언니는 예지랑 잘 놀다 왔나봐?”


마음이 약해져서 비꼬기 보다 삐진 것 같은 말투가 되었다. 우연은 다연이 삐졌다는 생각이 들면 몇날 며칠을 따라하면서 놀리곤 했기 때문에 다연은 혹시라도 우연이 그런 기색이 있는지 슬쩍 보았다. 우연이 웃고 있을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그의 입꼬리는 내려가 있다. 우연은 답지 않게 말을 골랐다. 그러더니 하는 말은 전혀 쌩뚱맞은 것이었다.


“너 예전에 유치원 때 막 결혼한다고 떼 쓰던 거 기억나?”


다연은 기억을 바로 떠올렸다. 가끔 떠올리곤 해서 바래지 않고 있던 기억이다. 다연은 그때 그 애와 우연도 같이 셋이서 놀았던 기억을 상기했다. 보통 둘이 놀고는 했지만 우연이 끼워달라고 떼를 써서 셋이 같이 지내기도 했었던.. 최근에는 바빠서 전혀 떠올리지 못 했던 기억이다. 우연이 다른 화제를 꺼낸 것을 눈치 챈 다연은 팔짱을 끼며 입을 열었다.


“괜히 옛날 얘기로 말 돌리네. 그래서 예지랑 잘 놀다 왔냐구. 친구들이랑 놀지 왜 한 살 어린 애들이랑 노는건지 이해가 안 가네.”


우연은 다연이 바라는 대답 대신 집요하게 물었다.


“내 얘기 아직 다 안 끝났어. 그래서 기억 나, 걔?”


“으응.. 당연하지.”


다연은 우연이 재촉하는 말에 얼떨결에 대답했다. 우연은 더욱 더 깊게 파고 들었다.


“걔 이름 기억 나? 생긴 거는?”


다연은 곰곰히 기억을 더듬었다. 얼굴은 가물가물하다. 유치원 때 찍은 사진앨범에 있던 모습만 머릿속에 남았다. 이름은.. 배유정? 뭐 그런 느낌의 이름이었던 것 같다. 확신이 서지 않는 걸 보니 정확한 건 아닌 듯 했다.


“기억 잘 안나. 애초에 그게 몇 년 전인데.. 그런데 갑자기 그건 왜?”


우연은 어깨를 으쓱인다.


“아니 그냥. 나만 기억하나 싶어서.”


“뭐야, 나도 정확하진 않지만 기억은 나거든? 기억력 좋다고 자랑하는 거야 뭐야.”


다연이 툴툴거리자 우연은 다시 평소의 장난기 있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걔 만약 다시 만나면 어떨거 같아?”


“다시 만나면?”


“응, 다시 만나면. 우연히든 뭐든.”


다시 만난다면 못 알아볼거 같다고 다연은 생각했다. 애초에 그 애는 자신을 기억 못 할 수도 있다. 만나도 서로 못 알아보고 지나칠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서로 알아본다는 전제 하에 말을 꺼냈다.


“뭐, 반갑겠지.. 그리고 잘 지냈냐고 묻지 않을까. 그리고 그 동안 어떻게 살았냐고 그때 연락 계속 기다렸는데 왜 연락 안 했냐고 묻고.. 그러지 않을까?”


“연락 안 해서 서운했구나. 이때까지 기억하고 있고.”


우연이 애를 다루듯 살살 달래는 말투를 하는 것을 다연은 눈치채지 못하고 말을 이어갔다.


“당연하지. 그때 내가 걔를 얼마나 좋아했는데. 진짜 평생 친구라고 생각했단 말이야.”


우연이 그렇게 말하고 있는 다연을 숨 막히게 끌어안았다. 다연은 ‘또 시작이네’라고 생각하며 잠자코 있었다. 우연이 이렇게 멋대로 애 취급하는 게 한 두번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래봤자 한 살 차이면서’라고 다연은 생각했다. 우연은 항상 연장자 노릇하는 걸 좋아했다. 특히 자신 앞에서는 더욱. 그러나 다연은 그것을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 자신도 보살핌 받는 존재가 되는 것은 싫지만은 않아서. 우연은 다연의 등에 얼굴을 파묻은 채 웅얼거리며 말했다.


“내 새끼..”


다연은 어이없다는 듯이 대꾸했다.


“나 언니 자식 아니거든? 엄마 자식이거든.”


“애 같아선 어디 가서 사기나 안 당할 까봐 이 언니는 매일 걱정이다.”


다연은 ‘걱정되는 건 언니인데..’ 라고 생각했으나 말로 하지는 않았다. 다시 말다툼을 하고 싶은 기분이 지금은 들지 않았다. 그저 간만에 평화로운 이 순간을 만끽하기로 했다.


***


드디어 수행평가 발표날이 다가왔다. 다연은 나현을 도와 발표자료를 쓰느라 밤을 샜다. 사실 그 정도로 중요한 과제는 아니지만 나현을 돕는 다는 사실에 밤을 새는 지도 모르고 쓴 탓도 있다. 학교에 가니, 지현은 긴장했는지 웃고 있지만 다리를 달달거리고 있다. 다연도 긴장해서 손톱만 물어뜯었다. 서영은 아무렇지도 않은지 핸드폰만 만지작거리고 있다.


"집중 좀 해.. 폰 그만 만지고."


다연이 보다 못해 서영에게 한 마디 했다. 서영은 핸드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러자 볼펜을 만지작거리며 달깍거리기 시작했다. 다연은 가만히 듣고 있다가 참다 못해 서영의 손을 제지했다. 서영은 그것도 좋은지 마냥 웃었다. 바보 같이 웃는 모습에 다연은 한숨을 내쉬었다. 서영은 긴장을 별로 하지 않는 타입인 것 같다.


"막 떨려? 내가 손 잡아줄까?"


".. 그렇게까지는 아니야."


서영이 한 말에 다연이 대답했다. 다연은 나현을 보았다. 어제 괜히 서로 마음 상하는 일을 만들어서 말을 걸기가 애매했다. 말을 걸고 싶기는 한데 타이밍이 별로인 것 같기도 해서 계속 망설이고 있었다. 나현이 고개를 돌려 다연을 보았다가,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다연은 심장이 떨어져 내리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


나현은 평소 같다. 이럴 때 보면 기계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자신이라면 안절부절 못 할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 다연으로 하여금 그렇게 느끼게 했다. 항상 그런점이 나현의 멋진 점이라고 생각했으나 오늘만은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긴장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알 수 없다는 점에서 다연에게 있어 안 좋게 작용했다. 지현이 그런 다연을 보고 말을 걸었다.


"어차피 발표는 나현이가 하는데, 왜 그렇게 긴장하고 있어?"


그 말에 다연은 웃음으로 대답했다. 나현이 실수할 까봐 다연 자신이 더 긴장되었다. 같이 준비했는 데 실수라도 하면 나현이 혼자 속상해할 모습이 그려졌다.


차례가 되고 일어서는 나현을 다연이 조심스레 붙잡았다. 나현이 돌아보는 찰나에 다연은 입모양으로 말했다. '파이팅'이라고. 나현은 안심하라는 듯이 살짝 웃었다.


나현의 어조는 나긋나긋하다. 그래서 듣는 사람이 그 목소리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다현은 쭉 봐왔던 내용이긴 했으나 나현이 발언하고 있는 모습을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마치 어떤 사소한 것도 대단한 것이라도 있는 것처럼 얘기하는 힘이 나현에게는 있었다. 다연이 귀 기울여 손에 땀을 쥐면서 듣고 있을 때였다.


쾅.


반의 뒷문이 거칠게 열리며 낯 익은 인물이 들어왔다. 올라간 큰 눈에 꽉 묶고 있는 머리. 그 동안 밖에 많이 나가지는 않았는지 마지막으로 봤을때보다 하얘보였다. 반 뒤에 앉아있던 국어 선생이 못 마땅하다는 듯이 눈을 찌푸렸다. 그러나 그 인물은 신경 쓰지 않고 터벅터벅 걸어와 자신의 자리였던 곳에 앉았다.


나현은 그 인물을 보고 놀라서 눈이 동그래져 있었으나 다시 평정을 되찾고 말 하던 내용을 이어갔다. 그 인물이 오고 난 후 부터 어딘가 불안정한 음정으로 바뀌었다. 발표를 빨리 마치려는지 나현은 속도감 있게 나머지 내용을 말하기 시작했다.다연의 뒤에 있던 반 아이 둘이 서로 쑥덕대기 시작했다. 아마 예지에 대한 내용인 듯 했다. 얼마 가지 않아 예지 쪽에서 짜증 가득한 말이 나왔다.


"씨발, 이나현 말이 안 들리잖아."


두 사람은 예지를 노려보더니 입을 다물었다. 괜히 예지와 엮이면 피곤해질 걸 알아서 건드리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조용해진 교실에 다시 나현의 목소리가 들린다. 나현은 이제 발표자료로 아예 얼굴을 비스듬히 가리면서 말하고 있다. 예지는 턱을 괴고 나현을 빤히 보면서 입술을 잘근거리고 있다.


다연은 반 친구가 다시 학교에 정상 등교한 상황을 싫어해야하는 건지 좋아해야하는 건지 알 수 없었으나 이것 하나는 확실했다. 안 그래도 머리가 복잡한데 오늘부터 상황이 더 복잡해질거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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