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타입 썸네일 왜그래 나한테


화이트 데이에 꼭 받고 싶은 게 있다고 했다. 다른 건 절대 안 받을 거니까 미리 준비하지 말라고도. 쉽게 사거나 구할 수 없는 거면 어떡하나 걱정스러우면서도, 사쿠라가 받고 싶은 거라면 꼭 해주고 싶었다. 그게 무엇이냐고 물어도 고개만 절레절레, 오늘 만나자고만 했다. 이제 어떻게 준비해야 돼? 물건은 맞아? 사는 거야 아니면 만드는 거야? 궁금한 걸 한참 쏟아내도 너는 좀처럼 대답은 않다가, 어느새 가만히 마주보았다. 사쿠라와 아무 말 없이 마주보는 순간은 괜히 벅차서 숨이 멎는다. 온전히 그 시간과 공간속에 시선이 교차한 순간은 너와 나만 남은 것 같아서. 그렇게 멈춘 숨에 익숙해질 쯤이면 살풋 웃어주는데, 그 때 접은 눈 끝으로 흐르는 웃음이 가장 사랑스럽다.

너는 내 손을 잡고 활짝 웃었다. 나는 그게 대답이라도 된 양, 무엇을 궁금해했는지 잊어버리고 말았다.






Happy White Day

샤오랑 × 사쿠라






사쿠라가 받고 싶다는 건 이 작고 동그란 틴 케이스에 여섯 개 들어있는 오렌지 맛 사탕이었다. 당연히 비싼 무언가는 아닐거라고 생각했었지만, 혹시 몰라서 들고 나왔던 한도 없는 신용카드가 이토록, 완벽히 쓸모없을 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다. 내가 아는 사쿠라는 무언가 받았으면 하는 게 있다고 말해주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요구도 지극히 사쿠라답다고 생각한다. 나와는 다르게, 하고 싶은 말을 어렵게 돌려말하지 않을테니까.

정말 이거야? 응, 이거. 사쿠라는 똑 떨어지는 대답과 함께 자꾸만 나를 보고 웃었다. 사쿠라는 원래 잘 웃지만, 기쁠 때 더 예쁘게 웃는다.

화이트데이 선물용 포장세트도 살펴보라는 가게 점원의 친절한 말씀은 감사하지만 사쿠라는 여전히 내 손에 든 오렌지 사탕만을 보고 있다.

왜 하필 오렌지 맛일까? 커다란 종합 사탕 봉지에서 가장 무난하지만 인기가 없다고나 해야할지, 적어도 나에게는 다른 무엇도 아닌 사탕을 고를 때라면 더욱 선택할 용의가 없었다. 심지어 지나치게 평범해서 어느 슈퍼에서나 살 수 있는, 여러 개도 아니고 낱개로 하나. 상대적으로 같은 제품의 딸기 맛이나 망고 맛 쪽이 더 잘 팔리는 것 같았다. 평소에 그 사탕을 먹는 사쿠라를 본 기억이 전혀 없어서, 특별히 좋아라는 것이라고도 생각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케이스라도 예쁜 구석이 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라, 아마 메이린이 알았더라면 차라리 전문 제과점에서 파는 선물용 제품을 사서, 내용물은 비우고 사쿠라가 말하는 그 사탕을 채워주는 것이 백배는 나을거라고 나를 핀잔했을 거다. 사쿠라가 미리 지정해준 게 있더라면 생각을 해봤을 수도 있겠는데, 바로 오늘 만나 같이 가게에 들어가서 그 사탕을 집어들고 바로 '이거'라고 골라내는 사쿠라의 섬세한 요구에 다른 수가 끼어들 틈이란 없었다고 닿지 않을 항변을 해본다.

그 작은 사탕 케이스를 들고 흩뜨린 예상밖의 감상을 억지로 늘어놓는 나를, 사쿠라가 불렀다. 



"아, 미안. 여기."

"고마워."



발렌타인 보답으로 더 좋은, 기뻐할만한 선물을 해주고 싶었다. 요즘은 사탕보다 달콤하고 예쁜 디저트들도 많은 것 같았다. 와플이나 도너츠, 쿠키, 젤리도 있고, 파는 것만큼 예쁘게는 아니더라도 케이크나 마카롱이라면 직접 만들어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먹는 게 아니라면 향기로운 꽃이나 향수도 좋은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주목받는 아이템이 '향'과 관련된 것들이라고, 생화는 아니더라도 드라이 플라워라든지, 개인이 커스텀하는 향수라든지. 다가오는 화이트데이 연인을 위해 선물로 좋을거라던 어느 셀럽의 이야기도 떠올랐다. 

그런 면에서라면 이 사탕도 향이 참 진하기는 했다. 사쿠라는 얇은 비닐 포장을 뜯고 케이스를 열어 사탕 하나를 꺼내먹었다. 화학적으로 만든 향일테지만, 사쿠라한테서 달콤한 향이 주변을 감싼다. 곧 내게도 하나를 권유하겠지만 남은 건 겨우 다섯 개, 사쿠라에게 개수 따위는 전혀 개의치 않을 문제겠지만 말이다.



"샤오랑군도 하나 먹을래?"

"아니야, 나는 됐어."



사쿠라는 두 번 묻지 않고 사탕을 자기 입술로 물어먹었다. 사탕이 어지간히 작은 모양이었다.

가게를 나오면서 왜 이 사탕이 받고 싶었느냐고 물었다. 사쿠라는 아주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게 되물었다. 샤오랑군은 이거 싫어해? 아니, 나도 좋아해. 반사적으로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왜 솔직하게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지 못했을까? 잡은 손에 땀이 차는 것 같았다. 이상하게, 긍정의 대답을 해야할 것만 같았다. 사쿠라는 방긋 웃으며 내가 좋아하니까 자기도 좋아하는거라고, 엉뚱한 대답을 했다. 왠지 사쿠라 발걸음이 더 가벼워 보여서 더 묻지 못했다. 어설프게 캐묻지 않는 것 역시 예의라고 생각한다. 또, 멋대로 추측하지 않는 것도. 그치만 향만치 달콤한 추억이라도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왜냐면, 찰나에 보인 사쿠라 웃음도 그만큼 달콤했으니까. 



"역시 샤오랑군은 오렌지 맛 사탕 별로 안 좋아하는 거 아니야?"

"어?"

"아니면 이 향 별로야?"

"아니, 그, 개수도 겨우 네 개밖에 안 남았고, 그보다 내가 선물해준 걸 되돌려 받는 것도 좀 그렇잖아."



말이 빠른 게 스스로도 느껴지는데, 그치만 '별로', '안 좋아 한다'에 부정 할 수 없었다. 주절거리는 입이 생각하는 속도를 맞추지 못해 자꾸 더듬거리기까지 하니, 도통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지 나도 잘 모르겠는 것이다.



"그럼 잠깐만,"



거짓말에 재주도 없거니와, 사쿠라한테라면 더욱 거짓말 같은 거 할 생각 없는데 왜 대답은 어설프게 해가지고 제 발을 저리는지. 다시 잡은 손에 땀이 차는 것 같았다. 사쿠라는 주변을 요리 조리 살피더니 내 앞으로 바짝 다가 섰다. 



"조금만, 고개 숙여봐."



사쿠라가 어깨를 잡고 살짝 당겼다. 너와 내 주변을 덮은 달큰한 오렌지 향보다 마주보는 맑은 눈이 훨씬 달콤하다. 지금 내가 이렇게 긴장한 이유는 그 쓸데 없이 했던 거짓말이 들킬까봐가 아니라 사쿠라가 너무 가까워서인데, 분명 말해봤자 안 믿어줄 것이다. 나는 아직도 네 앞에서는 순간이면 목이 타고 눈가가 간지럽다. 그럼에도 눈 한번 깜빡이고 침 한번 삼키는 순간이 아쉬워, 두 눈 가득 너를 담는다. 이렇게 마주보면 더욱, 오렌지 향이 코를 찔렀다. 너를 마주보는 내 기분이 감각으로 전해진다면, 그래서 너도 느낄 수 있다면 이렇게 짙고 감미로운 향기가 마를 새 없이 가득할 것이다.



"..."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계속, 적어도 내게는 이 향이 그치지 않을 것이다. 입술이 닿으면서 사쿠라한테 나던 달콤한 오렌지 향이 내게로 온통 끼쳐왔다. 원래도 작았던 것 같은데, 녹아서 더 작아진 사탕이 부드럽게 혀를 타고 넘어오면, 인정하기 싫게도 입맞춤이 끝나있었다.



"조금 달다, 그치."



생긋 웃는 사쿠라를 부드럽게 끌어안고 다시 입을 맞췄다. 조금 달다니, 혀가 저릴만큼, 세상에서 가장 달다. 유치하지만 감히, 이 황홀한 키스를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는 별로 중요한 게 아니었다. 달은 것도 나고, 아쉬운 것도 나였다. 정말 너는, 탄식이 흘렀다. 허리를 감은 손은 애가 타 가만히 두질 못하고 쓸어내렸다. 사쿠라는 잡고만 있던 손 마디를 짚어온다. 숨이 모자라 입술이 떨어지는 찰나에 들이키는 숨도 달아서 너를 어떻게 참을 수 있을지, 조금도 알 수 없다. 아직도 놓지 않은 네 손을 어깨 위로 올리면 자연스레 그 어깨를 당겨안는 너와 마찬가지로, 나는 네 턱을 바짝 당겨 혀를 섞었다. 억울할 정도로 네가 너무 좋아서, 영원히 곁에만 있어주었으면 좋겠다고 바란다. 그러나 항상 사쿠라는 이상과 같아서, 다시 내가 어떻게 이 이상을 바랄 수 있겠느냐고 자책하게 한다. 네가 있는 현실에 나를 돌려놓고 가두어버린다.



"아닌데, 이 사탕 너무 달아."

"중요한 건 아니지만 사탕은 아까 녹았어요, 샤오랑군."



그랬어? 다시 먹어보면 제대로 알 것도 같은데. 코 끝이 닿은 그대로 고개를 틀면 잔뜩 멀어지는 듯 다시 유지되는 간격조차 달다. 잔 웃음을 따라서 흩어지는 오렌지 향이 이제는 너로부터인건지 아니면 나의 것인지 구분할 수 없다. 무슨 말을 더 해야 할지 몰라서 너를 따라 웃었다. 그럼 사쿠라는 가끔, 눈썹 사이를 좁히고 너무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뭐가 또 너무한데, 응? 보채듯 묻는 내 말에 다시금 웃을 때, 그게 얼마나 예쁜지, 다시 입을 맞추고 싶을 만큼인 줄 너는 모르겠지. 결국 네 뺨에 입술을 묻는다.



"키스한 다음에 바로 그렇게 근사하게 웃지 말기."

"뭐?"

"그리고 뽀뽀도 하지 말기. 그러다가 또 키스할 거 같단 말야."



그거야 말로 너무한거 아니냐고, 허리를 굽혀 네 어깨 위에 고개를 걸치고는 힘껏 안았다. 빈 틈 없이 꽉 안아도 품에 남도록 작은 사쿠라인데도, 사쿠라가 발꿈치를 들어 나를 도로 안아주면 되려 내가 작아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마치 너를 좋아하기 시작했던 초등학생때처럼. 아무렴, 그때부터 네가 내 하늘이고 세상인데, 내가 조금 컸다고 한들 하늘을 세상을 한 품에 안을 수 있을 리가 없다.



"사실 샤오랑군 사탕같은 거 안 좋아하잖아."

"그래, 맞아."



단 거 입에 물려서 안 좋아하는 거 맞는데, 알면서 왜 물어본거야, 사쿠라는 정말 어린 아이 달래듯 뒷머리를 쓰다듬었다. 사실 방금은, 왠지 거짓말이라도 해야될 것 같은 느낌이었어. 말도 안되는 변명이지만 되는 대로 말을 뱉었다.



"그럼 사쿠라는 왜 오렌지 맛 사탕인데?"

"그야, 샤오랑이 포도 맛보다 오렌지 맛 좋아한다고 그랬으니까."



기억 나? 초등학생때 나랑 사탕 바꿨던 거. 사쿠라의 묘한 웃음 끝에야 비로소 떠오르고야 말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맛이니까 바꾸자고, 우겼었다.

같은 맛 사탕을 뽑은 사람끼리 새로운 짝꿍이래서, 오렌지 맛을 뽑은 사쿠라랑 같이 앉겠다고 또 다른 오렌지 맛을 뽑은 누군가에게 잔뜩 졸랐다. 내가 무슨 맛을 뽑았는지, 또 내가 바꿔달라고 우겼던 상대방은 여자였는지 남자였는지조차 기억나질 않지만, 그렇게 좋아한다면 본인의 것과 바꾸어 주겠다고 온 사쿠라 얼굴은 어제 본 듯 선명하게 그려진다. 사쿠라는 방긋 웃었다. 내가 사탕과 바꾸고 싶은 건 바로 그 예쁜 웃음이었던 양, 무슨 말을 하고 있었는지 잊어버리고 사쿠라와 사탕을 바꾸고 말았다. 그렇게, 오렌지 맛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맛이 되었다.



"기억났어?"

"아니, 하나도 기억 안 나."

"샤오랑군 거짓말 정말 못하는데,"



왜 잊고 있었지? 이제는 허리를 피고 싶을 만치 뻐근한데도, 좀처럼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뒷머리를 쓰다듬는 속도가 늦어지고 다시 달콤한 오렌지 향이 주변을 메운다. 사쿠라가 다시 케이스를 열어서 내 입으로 하나, 네 입으로 하나를 집어넣었기 때문이다. 



"그 때는 진짜로 샤오랑군이 오렌지 맛 좋아하는 줄 알았어. 그래서 바꿔준다고 그랬던건데."

"..."

"근데 샤오랑군 사탕 바꾸고 표정이 묘하게 공허하다가 갑자기 찌푸려서 조금 무서웠어."

"하..."

"나중에 생각해보니까 어쩌면 오렌지 맛보다 좋아하는 게 있어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거야."



알았으니까 그만해줘, 제발. 애먼 사쿠라 어깨에 고개를 묻어버렸다. 사탕을 으득 씹어버렸지만, 그 소리에 네 웃음소리가 덮힐까봐 우물거림도 멈췄다. 내가 모르는 나를 어떻게 기억하든, 그게 너를 웃게 한다면 조금 창피스러워도 좋았다. 이렇게 고개를 파묻어 예쁘게 웃고 있을 너를 못보는건 좀 아깝지만, 이 작은 떨림조차 내게는 선물과 같다.

그 때 내가 사탕 바꿔줘서 엄청 미웠지. 장난기 서린 목소리가 뒷머리를 가볍게 빗어내리는 손가락보다 간지럽다. 밉기는 커녕, 그래서 네가 더 좋았다. 다음 날 아침 네 책상 위에, 오렌지 맛 사탕을 사다놓은 게 나인 걸 알고도 굳이 내게 하나를 나눠줬던 네가, 미울 리 없었다. 그래서 하필 이 사탕이었구나. 향만남은 입에서 쓴 맛이 나는 것 같았다. 아무튼 귀여웠어, 샤오랑군. 나를 달래보겠다고 등허리를 다독거리는 사쿠라한테 다시 듬뿍 오렌지 향이 났다. 사쿠라 귀 아래에 코가 닿을 듯 말듯, 가볍게 부비며 말했다. 



"첫째, 네가 좋아서 바꿔달랬던 건데 네가 미울 게 뭐 있어."

"샤오랑군 방금 그 말 완전 팔불출 같았어."

"둘째, 그리고 이거 무슨 맛인지 하나도 모르겠어."

"아, 심술쟁이. 그렇게 씹어먹으니까 그렇지."

"셋째, 그래. 심술났어. 그때 나랑 사탕 바꿔서 포도 맛이된 너랑 짝이 된다고 좋아했던, 우리 반 어떤 애도 같이 떠올랐어."

"뭐야, 그게 누구였는데?"

"누구든."



결국 네 목에 입술을 묻었다. 사실 그런 애가 있었는지 조차 모르겠지만, 나는 어쨌든 그 애가 제일 부러웠을테니까. 그냥 그 때처럼 내 거짓말에, 너는 알면서도 속아줬으면 좋겠다. 다 알면서 져주는 척, 마저 나를 달래줬으면 좋겠다.



"그럼, 사쿠라가 밉지는 않지만, 무슨 맛인지도 모르겠을 사탕만 잔뜩 먹여서 심통 난 샤오랑군은 어떻게 풀어주면 돼?"



뜸을 들이다 그대로 어깨에 고개를 기대어 말했다. 키스해줘. 어리광을 피우는 내가 스스로 생각해도 유치했지만, 그런 나를 위해 뺨을 쓰다듬는 사쿠라의 손길은 상냥하기만 하다. 그래서 오늘은 네가 또 다시 키스해줄 것 같았다. 그럼 아주 진하고 달콤한 키스로, 오래도록 맞춘 입을 떼지 않을 것이다.

사쿠라는 사탕 케이스를 열어 마지막 사탕을 입에 물었고, 나는 혀를 내어 입술을 핥았다.






마지막 사탕인 줄 알았던 건, 숫자를 세고 있었다는 소리죠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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