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가방은 매일같이 무거웠다.




 드르르르륵- 귀를 파고드는 드릴 소리가 집안 전체를 울린지 어느덧 일주일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눈을 뜨자 보이는 흰 벽지에 성우는 괴로운 소음에서 벗어나고자 베개로 머리를 둘러쌌다. 뒹굴뒹굴, 그 상태로 몇차례 몸을 굴리던 성우는 머리가 깨질듯이 울려대는 드릴소리에 신경질적으로 이불을 발로 찼다. 거기에 가미된 알람소리가 성우의 귀를 파고들어 베개 속을 침범하자 결국 성우는 누워있던 몸을 일으켰다.

 아래층에선 막바지 작업이 한창인지 잔뜩 신경을 긁어대는 기계음으로 가득했다. 눈을 뜬 채 만 채 얼굴을 잔뜩 찌푸린 성우가 화장실로 달려가 칫솔을 물었다. 교복 바지에 헛발질하며 다리를 끼워넣고선 입에 물린 칫솔을 잡고 양치질을 잇는다. 치카치카- 

자신의 아래층으로는 짐들을 나르는 이사차가 위아래로 파란 박스들을 옮기고 있었다. 성우는 아침부터 요란히도 울리는 소리에 창문을 흘긋 쳐다보았다. 아랫집이 그렇게 소음으로 저를 괴롭히더니 오늘 드디어 입주를 하는 모양이었다.

 

“…이사 한번 거창하게 하네.”

 

 하얀 거품이 떨어질까 우물거린 성우는 칫솔질을 거칠게 이었다. 성우의 말이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근 일주일간 아래층의 인테리어 공사 때문에 성우는 매일같이 날카로운 신경으로 아침을 시작해야했다. 층간소음으로 살인도 일어난다더니, 성우는 왜 그런지 새삼 알 것 같았다.

창으로부터 시선을 거둔 성우는 시계를 확인하곤 허둥지둥 급하게 화장실로 향했다. 늦지 않으려면 서둘러야 했다.

 결국 교복 단추도 다 채우지 못하고 급하게 현관문을 열었다. 성우는 손에 쥔 삼각김밥의 포장을 까며 반대 손으로는 신발을 마저 고쳐 신었다. 등교시간은 늘 1분 1초가 목숨같다. 매일같이 느끼지만 같은 시간도 상황에 따라 이렇게 다르게 흘러가는 법이었다.


"..."


늦겨울 햇빛에 눈이 부신다. 성우가 손목에 걸린 시계를 다시금 확인하곤 두손으로 가방을 동여매며 달음박질했다. 귓가를 자극해오는 아랫집의 소음이 점점 아득해져가며 잔류하던 졸음이 바깥공기를 쐬자 저 멀리 날아간다. 아침공기는 여전히 쌀쌀했고 하늘은 하루가 다르게 점점 높아져간다. 매일같이 변함없이 반복되는 외로운 등교길이다.

 

 

 

 

인간연고 01

냥연

 

 

 


 평상시라면 등교에 지친 학생들이 엎어져 조회를 기다려야 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볼 수 있었는데, 오늘따라 평소에는 볼 수 없는 산만한 분위기가 교실을 채웠다. 가장 앞자리에 위치한 자신의 자리를 향해 걸어가며 성우는 이 소란스러움의 원인을 재빨리 읽어보고자 귀를 열었다. 들리는 조각조각의 이야기들로는 무슨 일인지 파악하기가 영 쉽지 않았다.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하는 아이들을 한차례 둘러본 성우는 여전히 반 풍경을 응시하며 천천히 가방을 내려놓았다. 너무 급하게 왔는지 등 언저리가 땀으로 흥건하다. 

 

“...왜들 저러는 거야?”


성우가 두꺼운 코트를 반으로 접어 정갈하게 의자에 걸어놓았다. 옆에서 책을 읽는 자신의 짝이 저보다 빨리 학교를 왔으니 뭐라도 알까 싶어 물었다. 


“누구 전학 왔대”

“우리 반에?”

“아니 이과에”


 새 학기 이맘때쯤이면 이런 식으로 가십거리가 늘 생기기 마련이었다. 대상은 선생님부터 학생까지 범위가 넓지만 빠르게 불타오른 이야기는 금방 가라앉곤 했다. 성우가 다시한번 반을 둘러보고선 가방에서 안경집과 필통을 주섬주섬 꺼냈다.

 

“근데 왜들 저래?”

“뭐?”

“우리 반도 아닌데 애들 왜 저러냐고.”

 

 책에서 시선을 떼지 않던 성우의 짝이 성우를 뭘 자꾸 묻냐는 듯 귀찮은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자꾸 말을 거는 성우가 귀찮았는지 짝은 목소리에 힘을 주며 답했다.

 

“잘생겼대.”

 

 그 한마디에 모든것에 납득이 간다. 구설수에 오를만한 최고의 건덕지다. 흔한 가십거리에 휘둘리는 주변 사람들도 있는가하면 성우처럼 별 관심이 없는 아이들도 있었고, 성우의 짝도 성우와 다르진 않아서 별 관심이 있는 눈빛은 아니었다. 제법 늦은 시기인 고3때 전학을 왔으니, 제법 말이 오갈만 했다.

 이런 저런 소문을 마구 퍼뜨리고 휩쓸리는 아이들을 한심하게 보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성우는 그런류의 사람이 아니었을 뿐이었다. 정확히는 그런 바람같은 이야기들에 휩쓸리지 않고자 노력하며 살아온 것이 맞았다. 이리저리 휘몰아치는 소문들 사이에서 자신의 틀을 지키기 위해서는 일종의 '차단'이 필요했다. 모든 것에 관심을 가지기에 시간이 부족한 것이 당연했다. 막상 3학년이 되어보니, 겁먹었던때는 의미가 없을정도로 하던 것을 꾸준히 유지하는 것이 별것도 아니었지만 별것도 아닌 것을 유지하는 것이 제일 힘든 일이기도 했다.

 아무튼 정말 흔하고 뻔한 상황이라고 성우는 생각하고 있던 와중이었다. 가방에서 책을 한뭉치 무겁게 꺼내는데 성우의 짝이 끝나가는 듯 보였던 대화를 이어갔다.

 

“공부를 좀 잘하나봐.”

 

시선도 마주하지 않고 무심하게 던져진 말에 성우의 관심없던 말초신경이 반응했다. 그렇다고 이제와서 정말? 얼만큼? 많이 잘한데? 어느정돈데? 따위의 질문을 연발하는 것은 영 못하겠어서. 성우는 책을 덮는 짝에게 반쯤은 장난스레 말을 던졌다.

 

“너도 잘하잖아.”

“근데 뭐, 내가 잘생겼냐?”

“그 정도면 뭐.”

 

피식. 어이없는 두 웃음.

 

“나처럼 잘하는거 말고.”

“뭔 소리야?”

“성우 너처럼 공부를 잘한다고.”

“그게 뭔데.”

“아니, 좀 말고 진짜 공부를 많이 잘한다고.”

“그걸 어떻게 아는데.”

 

 성우가 안경집에서 안경을 꺼냈다. 딸깍, 계속되는 성우의 반문에 성우의 짝은 정말 귀찮은 듯 한숨을 푹 쉬었다. 잠자코 딸깍이며 닫히는 안경집을 응시하더니 다시금 성우에게 눈을 맞춰온다. 오늘따라 뭐이리 말이 많냐는 표정이 역력했다. 

 성우도 그럴만한 것이 공부를 잘하는 것이 이곳에서 딱히 특별한 것은 아니다. 애초에 공부를 잘한다는 기준이 개인마다 다른거여서 전교 등수 두자리들도 자기가 잘한다면 잘한다고 우길 수 있는 것이어서. 그렇지 않더라도 이 학교에는 애당초 소위 공부 좀 한다는 애들이 많았다. 더군다나 전학을 온다면 아무 실력 없이 당차게만 들어와서 해결될 문제는 아니지 않은가.

 

“3월 모의. 이과 애들 다 발렸다더라.”

“...황민현도?”

“응.”

  

  아, 잘하는거 맞네. 성우는 속으로 왜 그렇게 많은 말이 오고가는지에 대해 다시한번 수긍했다. 그래 뭐, 잘생기고 공부까지 그렇게 잘하면 무슨 외계 생명체마냥 신기하게 바라보는게 당연하네.

 성우는 다시 저의 책으로 고개를 돌리며 턱을 괴었다. 문과생인 성우에게는 크게 관련이 있다면 있고 없다면 없는 내용이었지만, 늘 전교권 학생들의 성적싸움은 치맛바람이 센 학부모들 사이에서 큰 이슈거리가 되기 마련이었다. 딱히 자신에게 중요한 점은 아니었지만, 남들에게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 차고도 넘치니까.

 이 학교는 시설이 구리고, 시공한지 굉장히 오랜 시간이 되어 비가 오는 날이면 1층 교실에서도 물이 새는 교실이 있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년 저출산이 문제가 되고있는 상황 속에서도 정원을 꽉꽉 채워 학생들이 입학하는 이유는 교육학군 한가운데 위치한 학교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만큼 공부를 잘한다는 것이 그다지 놀라운 사실은 아니었으나, 그 수준이 3년째 성적장학생인 황민현을 제치는 학생이라면 말이 다를만도 했다. 

황민현은 정말이지 무섭도록 공부를 잘하는 애였으니 절대적 왕좌의 자리에 있는 아이었다. 비단 성적의 수치로만 따질 것이아니라, 생활습관이랄지, 심화반에서의 활동을 하는 모습을 봐오자면, 분명 독한 구석이 있었다.


 성우는 그 사실이 자신에게도 해당하는지는 깨닫지 못한 채 중얼거렸다.

 

“진짜 잘하긴 하나보네.”

 

  큰 파장이 학교 안에서 일고 있는 것이 눈에 훤히 보였다만 이내 그러다 말 것이 분명했다. 세상이란게 애초에 강자가 등장한 후엔 더 강한 사람이 등장하는 법이었다. 그러니 실망할 이유도, 흔들릴 필요도 없어야 했다.


 성우가 문제집 끄트머리를 샤프로 툭툭 내리쳤다. 창문사이로 불어오는 초봄 바람이 머리칼을 가볍게 쓰다듬는다. 차마 완벽히 지워지지 않은 잡념이 성우의 머리속에서 맴맴-거리며 돌아다닌다. 황민현을 이겼다? 다시 생각해도 대단한 사실임을 부정할 순 없다.
















 학교 수업은 따분함의 연속이다. 노곤한 선생의 목소리를 자장가 삼아 엎드려 자는 아이들은 마치 수면실을 연상케했다. 그 평평한 아이들의 등판들 사이로 한그루의 나무처럼 앉아서 수업을 듣는 학생은 성우와 자신의 짝을 포함해 끽해야 너다섯명이었다. 그나마 새학기여서 이정도였고, 그마저도 수업을 듣기보단 자신의 산더미같은 숙제를 기계적으로 풀기 바빴다.

  수업이 끝나기 5분전 주어진 자습시간에 성우는 몸을 돌려 그런 아이들을 한번 쭉 둘러보았다. 3학년이 되자 지난 2년간의 풍경과는 다르게 한층 속도가 늦춰진 새학기의 풍경이 처음인데도 원래부터 이래온듯 자연스러웠다. 

자신의 옆으로 보이는 창밖으로 바람이 부는지 나무들이 약하게 흔들거렸다. 늦겨울 날씨의 초봄 햇빛은 뜨겁진 않지만 그 어떨때보다 강하게 내리쬔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환절기의 풍경은 늘 이리 상반된 모습들이 동시에 보여지곤 했다. 두 계절의 과도기인 환절기의 풍경처럼, 어른과 학생의 사이에서 게을러진 고등학생의 몸과 마음 또한 환절기의 한 시기일 터였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자연스럽게 서로를 향한 말수는 조금씩 줄어들었고 학교 내에서 개인주의는 점점 심해졌다. 개인플레이, 솔로플레이. 선배들한테 말로만 듣던 단어들이 이 시끄러운 학교에서 과연 실현이 될까 싶었지만 성우는 그게 가능함을 새삼 깨달았다. 입시가 막상 가시광선 안으로 들어서기 시작하니, 그동안 감정노동하며 챙겨오던 친구관계와 폭풍처럼 전교를 휩쓸던 소문들이 부질없음을 하나 둘 몸소 체험해서일지도 몰랐다. 하나 둘 흩어져있던 학생들이 입소문을 타 유명한 학원들로 쏠리기 시작하고, 학원을 가도 익숙한 얼굴들이 많아 학교라고 착각이 들 정도로 눈에 익은 풍경의 연속이었다.

 학교, 학원, 독서실, 집. 그중에서도 학교에서의 시간은 지금처럼 가장 빠르게 흐른다. 잠깐 다른생각을 하고 있자면 금방 하교시간이 되어있곤 하는 것이다. 여느 수험생이 그렇게 생각하겠다만, 가끔은 학교에서의 시간이 시간낭비라는 생각도 들었다.

 

  학교 교문을 나오며 손목시계를 체크한 성우는 한결 발걸음을 늦추었다. 학교에서 점심을 먹었다지만 학원가기 전에 한 끼 식사를 더 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밥먹는 시간 아껴가면서 한글자라도 더 공부한다는 마음으로 무언가에 집착하듯 살았었는데 수험생이되니까 그것도 체력이 짜쳐서 못할 짓이었다. 가는 길에 간단히 패스트푸드점에 들려 챙겨먹어야겠다 생각하며 성우는 귀에 이어폰을 꽂았다. 

오늘같은 날에는 봄다운 노래가 어울린다.

 

“아, 덥다.”

 

  몇일 내내 계절이 바뀌면서 일교차가 심했다. 아침에만 해도 쌀쌀해 부들부들 떨며 등교했건만, 낮에는 등 뒤로 땀이 차 겉옷을 벗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성우는 옷을 벗을까 하다 가방을 내려놓고 겉옷을 벗는 번거로움이 귀찮아 걸을 때마다 등뒤로 쩍쩍 갈라지는 땀들을 얼굴을 찌푸려가며 참았다. 가게가 머지않았으니 버틸만했다. 하늘은 아침보다 눈에 띄게 더 높았다. 천고마비라고 가을이 하늘이 굉장히 높다고 한다지만 가을 못지 않게 봄하늘도 속이 탁 트이듯 넓다. 

언제부터 자신이 이리 하늘을 자주 쳐다보았는가. 이따금씩 성우가 스스로 묻는 질문이었다. 자신이 이렇게나 하늘을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성우 스스로도 모르지 않았다. 

다만 마주하고 싶진 않았을 뿐이었다. 단순히 하늘이 예쁘고, 날이 푸르다는 그런 단순한 이유가 아니었기에. 깊게 빠져들면 헤어나오지 못하는 생각들 중 하나였다. 그러니 사전에 그러한 생각들은 스스로 제어할 줄을 알아야했다. 그저 고3이었기에, 공부 말고 다른 모든 것들은 재밌게 느껴질 나이라서 그런 것이라고. 성우는 어느순간부터 스스로를 그렇게 세뇌시켜왔다.

 













 패스트 푸드점을 들어서자 이곳저곳에 아이들이 모여 옹기종기 식사를 하고 있었다. 서로의 어깨가 채이고 발이 밟혀도 누구 하나 뭐라하지 않을만큼 하교 후의 패스트푸드점은 북적스러웠다. 

빈자리를 찾던 성우는 사방을 둘러보아도 가득찬 머리들에 이곳에서의 식사를 포기하고 나가려던 참이었다. 빠르게 스치는 시선 끝, 창가자리 쪽에 황민현이 앉아있었다. 성우는 맞은편 자리가 비어있음을 확인하고선 누가 뺏으랴 종종 걸음으로 빈자리를 향했다.

  

“자리 없지? 없으면 나 좀 앉는다.”

 

 갑작스레 등장한 성우에 조금 놀랐는지 민현은 성우를 빤히 바라보다가 이내 상에 있는 자신의 짐을 옆으로 치워주었다. 자리에 앉으면서 성우는 민현의 얼굴을 흘긋 살폈다. 학교 내에서 전학생이 이슈는 이슈였는지 그다지 달가운 표정은 아니었다. 

분명 누군가라도 어깨를 치며 농담을 던졌을 것이었다. 야 너 어떡하냐 라이벌 생겨서? 이런류의 구설수들에 신경쓰지 않으려는 듯 민현은 햄버거를 물으며 단어 책만을 응시했다.


 황민현과 그다지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성우에겐 심화반 활동을 하면서 자주 마주칠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문과와 이과에서 공부 이야기만 나오면 가장 많이 입에 오르는 둘인 만큼, 둘은 서로에 대해 많이 알았지만 아는 만큼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다. 오히려 선생님들이 서로보다 둘을 더 잘 안다고 보아도 무방했다.

  

 가방을 내려놓고 자리를 맡은 성우가 주문을 위해 카운터에 줄을 섰다. 매번 똑같은 메뉴를 시키면서도성우는 빼곡한 머리들 사이로 까치발을 하며 메뉴판을 확인했다. 뭐 다른거 먹을게 있나 싶어 살펴보지만 오늘도 예외는 아니다. 성우는 햄버거를 좋아하지 않기에 주로 치킨너겟과 같은 사이드 메뉴로 배를 채우곤 했다. 

 

“넌 왜 햄버거 안 먹냐.”

 

 줄곧 자신의 단어장만을 보고 있던 민현이 멈칫하며 성우에게 물었다. 음식이 담긴 식판을 내려놓는 성우는 별안간 뜬금 없는 질문에 민현의 손에 들린 햄버거를 응시했다. 그리고선 삐죽 튀어나온 토마토와 양배추를 보고 미간을 좁히며 대답했다. 별다른 의미가 담긴 질문은 아니었다.

 

“야채 있어서.”

 

 별다른 의미가 더 담기지 않은 답이었다. 민현은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다시 자신의 단어장으로 고개를 박았다.

  실상을 까놓고 보자면 모든 가십거리는 당사자들이 만들지 않는다. 정작 학생들은 자기 할 것 멀쩡히 하는데, 타이틀을 붙이고 라이벌 구도로 만드는 건 전부 선생들이었고 학부모들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조성한 경쟁의 분위기가 표준상향화를 시킬것이라 믿는 듯 했다. 

하지만 학생들은 이맘때쯤 그다지 서로에게 관심이 있지 않았다. 19살, 사사로운 것으로 감정노동을 하기엔 경험이 제법 많았고, 라이벌 의식같은 유치한 마음으로 공부하기엔 시간이 부족한 때였다.


  그러니 민현이 그 짧은 안녕이라는 두글자 인사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가게를 나가도 냉담하다고 말할 이유는 없었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상속에서 내일도 모레도, 적어도 남은 수험생활동안 반복될 장면들이었기에 서로가 서로에게 존재하는 중요한 의미같은 건 없었다. 

원래가 그런거라지만, 성우과 민현은 유난히 왕래가 오가지 않는 편이기도 했다. 역설적인 일이다. 사람들은 둘을 묶어 1등이라고 칭하지만 정작 둘은 서로에게 긴밀하지 않다.


  민현이 가고 남은 맞은 편 빈자리에 성우는 다리를 올려놓았다. 너겟 한조각을 입에 물며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본다. 눈이 부시게 들어서는 오후 네시의 햇빛에 성우가 눈을 찡그렸다. 신호등의 불이 파랗게 바뀌자 사람들이 제각기 다리를 뻗어 걸음을 바삐했다. 그 속에서 웃는 사람들의 웃음이, 뛰는 사람의 자유로움이 눈에 자꾸 밟힌다. 

가게 안의 성우에게는 그들처럼 주어진 건 없었다. 신호등 위에서 짧은 교복치마를 입고 깔깔거리며 걷는 여학생들을 그저 부럽게 쳐다보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여 자리 있어요?”

 

  갑작스레 오른편에서 들려오는 사투리 어린 말에 성우가 흠칫하며 고개를 돌렸다. 저와 같은 교복을 입은 학생이 손에는 식판을 든채 저에게 물어온다. 보아하니 일단 시킨 음식이 나오긴 했는데 자리가 없어서 서성이는 듯 했다. 

성우는 급급히 맞은편 의자에서 다리를 내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럼 내 좀 앉을게요- 맞은편에 가방도 벗지 않고 불편하게 앉아오는 상대방에, 성우는 우리학교에 사투리를 쓰는 애가 있나하고 기억을 더듬었다. 메신저백을 매고다니는거 보면 체육 하는앤가. 좀전까지 자신의 발이 얹혀있던 의자임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은 아무렇지 않은 듯 감자튀김을 입에 넣기 시작했다.

창밖으론 신호등이 다시금 빨갛게 바뀐다. 성우는 고개를 돌려 여전히 창밖을 응시했다.

 

“거 뭐 볼게 있어요?”

 

건너편에서 상대방이 다시금 말을 걸어왔다. 경상도 어조가 잔뜩 엉겨붙은 말투에 성우는 방금 전 질문이 자신을 향한 것임을 인지하는데에도 시간이 걸렸다. 고개를 돌리자 질문의 주인공은 성우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성우는 무슨 반응을 보여야하나 싶었다. 내리쬐는 햇빛이 맞은편에서 해맑게 웃고있는 상대방을 잔뜩 비춰놓는다. 

뭐지 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흔히 식당에서 자리가 없으면 같은 학교학생끼리 모르더라도 같이 앉는 일은 허다한편이었지만 그런 잠깐의 순간에 이렇게 말을 걸어오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얼굴이라도 알면 모를까 생판 모르는 얼굴이 이래오는 것은 처음이다. 하물며 학교에서조차 아는 얼굴이 그다지 없는 성우에게는 익숙치 않은 상대의 행동에 적잖이 당황하기에 충분했다. 

분명 글자는 어설프게 서울말인데 성조에서 경상도 사투리를 숨길 수 없는 듯 보였다. 성우는 대답없이 시선을 내려 맞은 편 사내의 명찰을 바라보았다.

 

 

강다니엘. 

 


 아무리 학교가 작은 학교가 아니라지만, 흔한 이름도 아니고 이런 이름의 소유자를 내가 모르고 있었나 성우는 곱씹어보았다. 명찰에서 머무는 성우의 시선을 느꼈는지 다니엘은 똑같이 자신의 명찰을 만지작거리며 어설프게 웃었다.

 

“아, 내 오늘 전학을 와가지고요, 처음 볼낍니다.”

 

 성우는 고개를 들어 다니엘을 쳐다보았다. 전학생, 잘생긴 외모. 성우는 머릿속에서 잠시 머물다간 기억 사이로 무언가 번뜩 떠올랐다. 그러니까, 내 눈 앞에 있는 네가,

 

“448...?”

“예?”

 

 무의식중에 사고를 거치지 않고 입 밖으로 튀어나온 말이었다. 다니엘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성우를 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렸지만 이내 눈꼬리를 접어오며 소리 내어 웃었다. 하하하하. 성우는 그 웃음에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몰라 가만히 있었다. 당황했다는 듯 성우의 두 눈이 꿈뻑이고 있었다. 

 

“제 점수가 그래 유명한가보이.”

 

 그럴 수밖에 없었다. 오늘 학교에서는 ‘448점 전학생이’라는 말이 강다니엘’ 이란 이름보다 빨리 돌아다녔으니 말이다. 비록 모의고사라지만 어디 448점이 뉘 집 개 이름이던가.


 그러니까 말이다, 잘생겼고, 이마를 깐 채 피어싱을 하고 있으며, 기럭지가 우월한데, 공부를 잘한다는 소문은 흔히 상상하면 티비속 드라마를 찢고 나올법한 사람이었기에 성우는 그게 가능한가 싶었다. 소문의 특성상 과장되었겠지-하고 생각했는데, 그게 이질감 없이 가능할 수도 있다는 건 이렇게 눈앞에서 마주하는 순간에 인정하는 것이었다. 모든게 환상적인 소문 속에서 다니엘은 그 환상을 잃지 않은 채 보편성을 지닌 모습이었다.

다른 말로, 성우가 처음 마주한 다니엘은, 어딘가를 언짢게해왔다.

 

“공부 잘하네.”


성우가 제법 퉁명스런 어조로 말했다.


“에이, 내보다 잘하는 아아들 서울 오니까 빼까리드만.”

 

 자연스레 말이 놓인다. 성우는 조금 벙찐 얼굴로 예상 외의 반응을 보이는 다니엘을 쳐다보았다.

 너는 무엇이 그리 즐거워서 늘 그렇게 웃을 수 있는 걸까. 성우는 이유도 모른 채 자신의 마음 한 켠이 불편해지는 것을 느껴야했다. 그러니까, 방금 마주한 다니엘 너란 사람은 성우의 상식으로서는 조금 말이 안돼는 것이다. 아니면  그냥 모든 상황에서도 저렇게 긍정적인건가 싶으면서도, 상식적으로는 조금 이해가 되지 않아서. 

 시계를 흘깃 본 성우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이런식으로 시간을 태우다간 학원에 늦을 것 같았다.

 

“아, 내 먹을 때까지만 기다려도.”

 

....? 뭐지 이건?

 자신을 향해오는 다니엘의 시선에 성우의 눈이 묘하게 커졌다. 그 모습이 재밌는지 다니엘은 여전히 생글한 얼굴로 다시금 식판을 천천히 내려놓는 성우를 쳐다보았다. 그 느린 손짓엔 당황함이 담겨있었다. 

누군가가 자신에게 이런 말을 해오는 것은 지나치게 오랜만이다. 뭐 이런 애가 다 있나 싶다가도, 성우는 매몰차게 쌩까는 것도 참 뭐해서 반 타의적으로 자리에 앉으려 했다. 그래, 부산에서 그렇게 공부 한따까리 하다 온 애는 밥이나 어떻게 먹는지 보잔 생각도 들고. 

다니엘의 해맑은 웃음에 성우가 충동적으로 다시 짜증이 치밀었지만 않았다면 정말로 앉아있으려 했다. 성우는 표정을 굳히며 입을 열었다.

 

“너는..”

“...”

“...참 밝아서 좋겠다.”

 

 그 말과 함께 성우는 다시 저의 식판을 들고 발걸음을 옮기고자 몸을 틀었다. 이만하면 성우는 자신이 너와 이야기할 기분이 아니란 것을 충분히 표현했다고 생각했다. 처음만난 다니엘에게 싸가지 없는 새끼로 보일거란 생각이 찰나에 스쳤지만 상관없었다. 그저 지금은 이유 없이 부글거리는 저의 속을 달래는게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생각은 저를 부르는 목소리에 다시금 사그라들었다.

 

“옹..성우”


 성우는 틀던 몸을 다시 되돌릴 수 밖에 없었다.


“...”

 

 가볍지 않게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다니엘의 목소리가 바닥에 가라앉는다. 신경질을 내려던 성우의 마음이 그 세글자에 즈려밟힌다. 짧은 시간동안 다니엘의 한마디가 온 공간의 흐름을 뒤틀어 놓는 기분에, 성우의 귓가에서 가벼운 가게  속 소음이 먹혀들었다. 

갑작스럽게 닥쳐오는 이상증상에 성우의 입은 빈틈없이 다물려졌다.

 마음이 왜 이리 짜증이 뒤섞인 불편한 마음이 피어오르는지 몰라도 지금 상황에서 자신이 감정적으로 행동해선 안되는 것을 성우는 알고 있었다. 적어도 다니엘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고 난 순간부턴 그래야 할 것 같았다. 한숨을 내쉬며 멈춰선 성우가 진득한 다니엘의 시선을 애써 피해본다. 

흘깃 보이는 창밖으로 신호등이 다시금 파란빛으로 바뀌었다. 다니엘은 여전히 잔뜩 내리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니는 와 햄버거 안묵노.”

 

 뭐라는거야 미친놈이. 

 어이가 휴거해버린 성우가 다니엘의 말을 무시하고 급하게 패스트 푸드점을 나왔다. 누군 잘생겼다하고 누군 공부를 잘한다하고 누구는 만화를 찢고나왔다지만 성우에게는 새로운 전학생이 그저 또라인 듯 했다. 얘가 이런거 알고 다들 호들갑 떠는건가. 예상치도 못한 감정의 폭이 성우의 몸을 뒤덮는다. 피가 빠르게 도는 것이 말로는 형용불가적인 기분이었다. 속에선 짜증이 치밀어오른다.

 

 

 






 

 횡단보도가 좀처럼 파란불을 허락해주지 않았다. 뒤돌아볼 생각도 없었지만 혹여나 뒤에서 다니엘이 따라오면 어쩌나 싶어 마음이 초조했다.

 다니엘이 저에게 잘못한게 없다는 것은 성우 스스로도 안다. 조금 엉뚱한 모습이 있긴 했지만, 같은 학교 학생끼리 말을 걸어오는 것이 생각해보면 그다지 이상한 일도 아니란 것 또한 성우 스스로 알았다. 모르는건 하나다. 자신의 마음이 이렇게 복잡하고 자꾸만 짜증이 이는 이유를 모르겠다. 다니엘이 나보다 공부를 잘해서? 나보다 키가 아주 조금 더 커서?

 그런 단순한 것들에 질투를 하고 시기심을 가지기엔 너무 커버린 나이었다. 적어도 성우에겐 그랬다. 이미 그러한 것들을 겪고 우여곡절하며 자라온 시간들은 성우에게 벌써 아득한 옛날에 불과했다.

 하지만 자신이 느낀 감정은 좋게 말하면 동경이었으나 좋지 않게 말하면 질투에 불과할지도 몰랐다. 정확하겐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 다 자신의 감정을 설명할 순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성우가 목 끝까지 채웠던 교복 단추의 가장 윗단추를 풀었다.

 

 너는 어찌 그렇게 해맑게 웃을 수 있을까. 이 시기에.

 

 의아함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처음 보는 사람과 친해지려고 하는 짓 따위 같은 거, 어린 날에나 하는 장난질에 불과한거라고. 그것의 목적이 어찌되었든 흔히 말하는 친목질을 하며 한심하게 몰려다니는 애들을 보며 관심을 주지도 않았을 뿐더러 그 모습이 좋게 보이지도 않았다. 더군다나 백번 양보해서 이해해준다고 해도 성우는 스스로에게 집중해야할 시기였다. 틀을 지켜야 했고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생활패턴과 자신의 자리를 지키지 못했을 것이라 성우는 확신했다. 누군가는 그런 성우를 바라보며 공부에 대한 집착이라고 하지만 성우는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오히려 이게 당연한거 아닌가. 그렇게 이 세상을 향해 차단의 영역 하나없이 마냥 웃어오기만 하면 어떻게 자기 자신을 컨트롤 할 수 있는건데? 

 상호보완적으로 연결되있는 모든 시스템이 사람 사이에 오고가는 감정으로 인해 아무렇지 않게 무너지는 기분, 그런 기분이 끔찍해 이 모든 걸 애써 미뤄두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하나 둘 벽을 쌓아 올려온게 성우였다. 누군가 성우에게 성적을 어떻게 그렇게 잘받나요? 하면 성우는 망설임 없이 대답할 것이었다. 혼자 살면 된다고. 자기만을 위해서.

 

그러니 의아한 것이 당연했다. 나는 이렇게 자기절제력을 가지려 안달복달인데. 너는 뭐가 그리 즐거운 걸까.  성우의 상식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다. 


 신호등 불이 바뀌었다. 해가 점점 길어지고 있었다. 매일 비슷한 시간에 걷는 이 사거리 횡단보도 위에서의 하늘이 날이 갈수록 점점 밝아지고 있었다. 아득히 먼 하늘로부터 식곤증이 몰려온다. 하늘이 몽롱했고 눈꺼풀은 자꾸만 내려왔다. 성우는 아침보다 더한 잡념에 시달려야 했다.

 복잡하다. 분명 질투는 아닌데, 자신이 100프로 옳다고 생각하던 상식을 누군가 예외라며 깨뜨려버린다.

 




 

 




 

 

 



 성우의 방심이라면 방심이었다. 이 동네는 학원이 겹치고 중첩되고 나서도 또 겹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다. 그건 부산에서 전학을 왔던 미국에서 전학을 왔던 구분이 없는 사실이었을 것이다.

  학원 수업이 시작되기 직전 허겁지겁 뒷편으로 문이 열렸다. 고요하고 차분하던 학원 교실이 문소리에 의해 산란되자 다들 고개를 돌려 누가 이렇게 문 소리를 크게 내나 하며 뒷문 쪽을 바라보았다.

  새로받은 프린트들을 확인하며 한박자 늦게 고개를 돌린 성우는 그때서야 아차 싶더랬다. 그러니 저 자식이 아무리 저렇게 쌩날라리 마냥 하고 다녀도 이 좁다면 좁은 동네에서 같은 학원을 다니지 않을 이유는 없었기 때문에,

 

“여 자리 없제.”

 

 안경을 쓰던 벙찐 성우에게 물어온다. 화려하게 등장한 다니엘 덕에 주변의 시선이 성우에게로도 쏠렸다. 애초에 성우의 대답을 들을 생각은 안중에도 없었는지 다니엘은 성우의 옆자리에 다시금 부피큰 몸을 쑤셔넣으며 앉았다. 자신이 앉을때는 딱히 작다고 생각이 든 적 없던 학원 의자가 저 큰 덩치에게는 작아보인다.

여 자리 없제. 패스트푸드점에서와 똑같은 질문 속에 이번에는 확신이 담겨있다. 아까와는 다른 뻔뻔한 다니엘의 태도에 성우는 기가 막혔다. 이리됬든 저리됬든 도망가다 잡힌 샘이어서. 그 사실이 무안해 성우는 다니엘을 무시하고 시선을 돌렸다. 얽혀오는 사방의 시선들에 얼굴이 화끈했다. 

 

 선생님이 앞에서 떠드는 내용들이 귀로 들어오지 않았다. 학기초인만큼 이미 다들 알고 있을 내용들일 것이었다. 멍하니 책을 바라다보며 성우는 도통 집중을 하지 못했다. 옆자리에 앉은 다니엘은 수업이 시작하자 걱정했던 만큼 저를 괴롭히지 않았다. 

성우는 힐끔힐끔 옆으로 다니엘을 살폈다. 생긴 것 만큼이나 날끼 있는 글자를 빼곡하게 자신의 프린트에 적어온다. 그리고선 텅 빈 자신의 프린트를 발견하며 성우는 깨닫는다. 오히려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는 건 자신이었다.

  

-니는 햄버거 와 안묵노.

 

 그렇지만 머리 속을 가득 채워오는 것은 프린트 따위가 아니었다. 불과 몇시간 전이었다. 분명 민현에게도 같은 질문을 받았지만 느낌이 다르다. 다니엘의 질문에는 무언가 자신에게 푹하고 찌르는 게 있었다.

 어렵사리 쌓아온 주변사람들과의 벽 사이에서, 민현이 자신에게 얼굴조차 보지 않고 벽 뒤에서 성우에게 물었다면, 다니엘은 그 견고한 벽을 말 한마디로 부셔버리는 느낌이라고 표현할 수 있었다. 그 투박한듯 다정한 말투가 머리 속에서 둥둥 떠다니며 지워지지 않는다.

 성우가 고개를 돌려 다니엘의 옆모습을 빤히 쳐다보았다. 너는 어떻게 그렇게 모든 것에 여유로우면서도,

  

“니도 묵을래?”

 

 자신 스스로에게 그렇게 엄격할 수 있을까.

 성우는 다니엘이 건낸 매운 껌을 아무 표정 없이 받아 입에 넣었다. 그러면서도 시선을 다니엘에게로부터 떼지 않고선 딱딱한 겉 껍질을 입으로 꾹 씹었다. 입안에 매운 박하향이 크게 퍼지자 성우가 두 눈을 반사적으로 힘껏 감았다. 그게 재밌는지 옆에서 파하하 하고 크지않게 다니엘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왜 웃어. 넌 안매워?”

“내는 하루에 한통씩 비우는데.”

 

자신보다도 더한 졸음을 참는 저 통제력. 그 사실에 기분이 또다시 바닥으로 추락한다. 갑작스럽게 등장한 저의 옆자리의 인물덕에 오늘 하교 이후 성우의 머리는 비워질 틈이 없었다.

 모든 순간의 와중에서 자신에게만 혹독하고 나머지 세상에게 관대하다는 것. 그건 절대 쉽지 않았다. 성우는 그걸 뼈저리게 알았다. 자기 자신에게 혹독해져야 하는 순간에는, 남들에게 무너지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보이기 힘든 법이었다. 그렇기에 성우는 학년이 올라오면서 그 누가 시키지도 않았음에도 자신의 벽을 세우고 담장을 만들어왔다. 분명 선택지는 그것 하나였고 그 순간순간이 쉬운 작업은 아니었는데.

 

“재수 없어.”

 

 너한텐 뭐가 그리 쉬워보이지. 어쩌면 진심이 담겼을지도 몰랐다. 그렇기에 자연스레 공격적으로 들렸을 것임이 분명했다. 성우는 입 밖으로 내뱉고 후회했지만, 다니엘의 반응은 그런 성우의 기분조차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미안타.”

 "..."


 왜 자기가 사과를 하는걸까. 성우는 분한 마음에 자신의 책으로 고개를 떨궜다. 말할수록 자신만 나쁜 애가 되어가는 기분이다.

 다니엘은 사람들에게 미움 받지 않는 법을 아는 듯 했다. 미워하다가도 결국 미운마음을 가진 스스로에게 잘못을 전가하도록 상대를 만들어 놓는다. 아까만 해도 그랬고, 지금도 그랬다.

 적어도 지금까지 본 짧은 시간의 다니엘은 그랬다. 갑작스레 엉뚱하게도 상대를 두드려 놓고, 상대가 반응하고자 하면 자신은 크게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서 복잡한 마음으로 미운마음이 들면 그런 마음을 품는 자신을 못돼보이게 만들어버리는, 그 생각치도 못한 제 3의 방법을 이용한다. 그니까 쉽게 말해서 영리하고 간사하다는 것이다.

 누구든지 자신이 스스로를 제어하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이 있다. 다니엘이 스스로에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방법이라고, 성우가 만난 지 3시간동안 내린 판단은 그랬다. 문제는 그 방법이 가능한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저와는 너무나도 다른 느낌을 가졌기에, 이 다니엘이라는 아이는 성우와 가까이 있을때 영향을 적지않게 미친다는 것이었다. 지금처럼 치밀어오르는 짜증, 분함, 나는 지금까지 무엇때문에 이리 힘들었는가 싶은 마음때문에.

 

 다니엘과 성우는 수업 내내 말이 없었다. 각자의 입안에선 이미 매운맛이 다 빠진 껌들만 질겅질겅 씹히고 있었다.

 

 

 

 

 

 

 

   




 수업이 끝나자 다니엘은, 부산스럽게 자신의 자리에서 일어나 학원 문을 나서는 성우를 눈으로 좇았다. 다음 학원까지의 시간이 급한지 성우는 손목에 채인 시계를 보며 인사도 없이 걸음을 빨리하는 듯 했다. 느릿느릿 책상 위를 나뒹구는 펜들을 정리하던 다니엘이 한 템포 속도를 빨리한다. 전학 온지 첫째 날치고는 다소 버거운 일과였다.

 가로등이 켜진 큰길과 골목길 사이로 많은 아이들이 가방을 맨 채 얽혀 돌아다녔다. 이 시간대에 학원에서 학원으로 옮겨가는 학생들이 많은 건 부산이나 서울이나 같은 듯 싶었다. 수험생에게 주어지는 합법적 자유시간. 이동시간이다.

 다니엘은 인위적인 가로등과 네온 빛 사이로 익숙한 뒤통수를 찾는다. 저보다 빨리 앞서나갔지만 사거리 신호등에서 결국 거리가 비슷해지고 말았다. 뭐가 그리 초조한지 저와 비슷한 키의 뒤통수는 계속 시계를 확인하고 있었다. 덩달아 다니엘도 시계를 확인한다. 그다지 늦지 않았다.

 신호가 바뀌자 성우는 뜀박질로 횡단보도를 가로질렀다. 서울에 온 이후로 가장 익숙한 저 뒤통수가 사람들 사이로 섞여 사라져갔다.

 

 저 조그만 뒤통수는 저가 학교에서 얼마나 입에 오르고 내리는지 알지나 모르겠다고 다니엘은 생각했다. 

 전학 오자마자 교무실에서 전학절차를 거치고 있을 때부터 들었던 이름이 있었다. 옹성우, 황민현. 선생들이 정확히 뭐라 하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많이 유명한가 싶었다. 처음에는 문제아라 자주 언급되는지 알았으나 같은 반 황민현을 보고나서 오히려 정반대 의미의 타이틀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저가 본 황민현은 삭막한 사람 그 자체였다. 표정도 감정도 크게 변화가 없었고 자신의 일만을 꾸준히 해오는. 보는사람마저도 답답한 기분을 안겨주는 사람이었다. 처음 알게 된 사람이 그렇게나 건조하니 다니엘은 전학을 오고 나서 앞으로의 서울에서의 삶에 대해 좋은 방향으로 생각이 나아가지 않았다. 그리고선 교무실에서 들었던 이름을 떠올리는 것이었다. 옹성우였나, 가도 이런기가.

 

 유리문을 밀고선 다니엘이 또 다른 학원에 들어선다. 어젯밤 학원에서 상담을 하면서조차 로비에 붙혀져 있는 순위표에서 황민현과 옹성우를 발견했더랬다. 공동으로 1순위로 올라있는 두 이름을 보며 다니엘은 얼굴보다도 더 먼저 성우라는 이름이 익숙해져왔다. 햄버거콜라 세트도 아니고, 황민현의 이름이 있는 곳에 옹성우의 이름이 있고 옹성우의 이름이 있는 곳엔 마찬가지로 황민현의 이름이 있었다. 허나 그다지 친하지는 않는지 실제로 같이 다니는 모습은 본 기억이 없었다.

  대형 강의실 문을 열고 다니엘은 또다시 저의 눈에서 벗어난 익숙한 뒤통수를 찾는다. 남짓 열 번째 정도 되어 보이는 열에 그 자그마한 콜라가 앉아있다. 바삐 무언갈 정리하는지 어깨너머로 보이는 손길이 산만했다. 다니엘은 책상들을 지나치면서도 성우의 뒤통수에서 시선을 떼지않았다. 그러니까 자신의 눈앞에 있는 이 조그만 뒤통수는 저가 본 황민현과는 사뭇 다르다는 것이었다.


“여 자리가 또 없네.”

 

  다니엘이 능청을 떨며 다시금 몸을 구겨 성우의 옆자리에 앉아온다. 이어서 예상한대로 놀란 토끼눈의 표정이 옆으로 붙어온다. 그 표정으로부터 다니엘은 성우와 민현의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다. 

패스트푸드점에서 눈을 동그랗게 떠오며 다니엘을 바라봐올때도, 그리고 지금도. 언뜻 보기엔 민현과 성우는 크게 다르지 않다. 둘다 차갑고, 남들에게 냉소적이지만 성우는 한가지를 더 가지고 있었다. 이렇게 눈이 동그래져서 다니엘을 바라봐올 수 있는 능력.

 

“...뭐야? 너 여기도 다녀?”

 

  차가웠지만서도 자신의 감정을 표정으로 드러내는 사람, 궁금한 것을 물어보는 과정 속에서 단순히 정보가 아닌 눈 앞에 존재하는 사람에 대해 물어볼 줄 아는 사람. 재수 없다고 저를 말하더라도, 달리말해 그만큼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받는 사람이며, 그 말을 내뱉고 무표정 속에서도 숨김없이 드러난 죄책감과 당혹감. 

그게 바로 다니엘에겐 성우라는 이 아이가, 본디 처음부터 황민현처럼 냉혈인간은 아니란 증거였다.

 

“와. 것도 재수없드나.”


다니엘이 성우의 속을 막대로 휘젓는다. 억지로 숨기려는 것 같아, 숨김없이 드러나는 그 표정이 더 보고싶다.


“...”

 

 제아무리 변화없는 표정으로 미안하고 당혹스러운 감정을 감추고자 해도 성우는 모든 걸 감출 수 없는 사람이었다. 다니엘이 본 성우는 처음에도, 지금 이 순간에도 그랬다. 성우는 처음부터 황민현같이 냉혈인간인, 그런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스스로를 만든 사람일 뿐.

 

“그럼 것도 미안타.”

 

 성우가 옆에서 고개를 떨궜다. 그 얄팍한 어깨를 일으킬 정도로 못된 마음은 아니었어서. 다니엘은 고개숙인 성우를 잠자코 바라보았다.

 참말로 정도 눈물도 적다. 다니엘이 서울에 올라오고 나서, 가장 삭막한 19살에 겪은 사람들은 그랬다. 선생들도 학생들도, 이질적인 공간 속에서 더더욱 그리 느껴질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의 옛 친구들이 그리웠고 조금만 차타고 나가면 흘러오는 잔잔한 바다향기가 그리웠다.

 다니엘은 마음 속에서 잔뜩 폭풍이 몰아칠 성우를 모른 척 하며 가방에서 책을 꺼냈다. 곧이어 선생이라 보이는 작자가 눈앞에 등장한다. 부산에 있을 땐 아무리 커도 이렇게까지 큰 강의실은 본적이 없었는데.

 그런 희소성보다도 더욱 희소하게 다니엘은 성우에게 바다 향기를 맡을 때 느껴지는 익숙한 편안함을 느꼈을 것이다. 숨이 텁텁하게 잔뜩 막힌 순간에 성우를 봤을 때 숨기지 못한 따듯함을 성우에게로 발견했을 것이다.

  

 그래서 다니엘은 성우의 얼굴을 보기 전부터, 그리고 오늘 우연히 마주한 그 순간부터는 더욱, 성우가 궁금해졌을지도 몰랐다.

 










  늘 이런식인가보다. 것도 미안타? 사람을 이렇게 엿을 먹이네.

  이리 생각하면서도 자신이 돌이킬 수 없는 말을 내뱉은 순간부터 성우의 마음 한켠엔 미안한 마음이 자리 잡고 있었다. 누가 오늘 처음 본 사람으로부터 재수없단 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좋겠는가 말이다. 하지만 욕을 먹으면 욕을 먹었지, 이런 식으로 한방 먹히는 건 생각치도 못했다. 

그 장본인은 옆에서 멀쩡하게, 평화롭게 공부를 한다. 성우는 마음속에서 어떠한 단어로도 대체 불가능할 그 감정이 또다시 끓었다. 속이 터질 것 같다. 이런 식으로 자신이 나쁜 사람이 되어가는 건 기분이 추락하기에 적당하다.

 내가 얼마나 힘들게 기준을 세우고 오직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게 만들었는데. 자신의 옆에 있는 이 인간은 정말 아무렇지 않게 모든 걸 제어한다. 자기 스스로를, 남과의 관계를, 그리고 남의 마음조차도.

그게 괘씸하다는거다. 성우는 그제서야 자신의 마음을 인정했다. 그래 탐난다면 탐나는 거였다. 차마 너의 그 능력조차 내가 질투하지 못할지라도, 내 구역의 내 심리를 제멋대로 문을 부시고 들어와 아무것도 집중하지 못하게 만드는 이 놈이 괘씸하다는 거다.

 

“..하”

 

 성우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숙여 교실을 빠져나왔다. 옆에서 샤프를 든 채 자신을 바라봐오는 다니엘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저 가슴 깊은 곳에서 끓어오른 근본 없는 감정은 어느새 분노로 변해있었다. 화가 치밀어서 견딜 수 없다.

  빠르게 번화가를 거쳐 아파트 단지까지 쉴 틈없이 걷는다. 밤하늘을 느낄 여유도 없이, 배고픈지도 모르고 발걸음만을 놀린다. 누군가 저에게 인사를 건냈던 것 같기도 했지만 받아줬는지 무시했는지조차 기억이 나지않았다. 

감정이 회오리처럼 요동친다. 마구마구. 다 말이 안됀다.

 





  차소리와 사람들소리로 가득했던 번화가를 벗어났다. 아파트 단지로 들어서는 골목 어귀에 발을 들이고 나서야 한층 소음이 가라앉았다. 그제서야 하나 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마음이 천천히 가라앉고 호흡이 돌아오는 것도 부족해 눈을 감아본다. 하나, 둘. 

한층 더 차분해지는 마음과 함께 귀에 소리가 들려온다. 바람에 날려 푸드덕거리는 나무 소리, 간간히 멀어지고 가까워지는 차소리, 동네 유치원 종일반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 그리고 자신의 발걸음에 맞춰 뒤따라오는 소리까지.

 명확한 시간을 알지는 못한다. 어느 기점 이래로 다니엘이 자신을 따라오고 있다는 사실만을 알고 있었다. 감정에 휩싸여 정신을 못차리고 있는 와중에도 어느순간부터 인식을 하고 있었던 사실이었다. 쟤 왜 따라와. 

감정적인 상태에서 뒤돌아 따라오지 말라고 할 용기는 없었다. 입 밖으로 무슨 말이 튀어나올 줄 몰랐기에 그저 걸어오는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어딘가로부터 도망치는 기분이 자꾸 들었지만 그 대상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다니엘 곁에서 벗어나고 싶은건지, 아니면 이 감정에서 도망치고 싶은 건지.


 성우의 운동화 소리가 아스팔트위로 끌린다. 앞에서 걸음을 멈추자 뒤에서 주기적으로 들려오던 걸음소리도 멎는다. 짹짹, 정체모를 새소리가 열대우림같은 공간 속으로 울렸다. 번쩍- 동시에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가로등이 켜졌다. 자신의 아파트가 가로등을 켜는 시각은 9시 반이다. 그 사실에 성우는 피로감이 몰려왔다. 

눈앞으로 성우의 그림자와 보지 않아도 누군지 알 수 있는 그림자가 겹쳐 드리워졌다.  성우는 자신의 뒤로부터 길게 뻗은 그림자를 응시했다.


“..왜 자꾸 따라와.”


 성우가 몸을 반정도 돌리고선 다니엘을 옆모습으로 마주했다. 애써 시선은 다니엘에게 붙히지 않는다. 어두운 하늘로부터 성우의 얼굴에 그림자가 얼룩덜룩 묻었다.

 

"왜 따라 오냐구."


  그 말이 물기가 잔뜩 젖어있어서 다니엘은 잠시간 말을 잇지 못했다.

 

“..내 따라가는거 아인데.”

“..그럼 뭔데.”

“..내도 집이 그짝이다.”

  

 가로등 아래 성우의 얼굴 위로 잔뜩 그늘이 진다. 성우는 한숨을 작게 내쉬며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렸다. 정해지지 않은 어딘가를 응시하며 눈가를 비비는 듯했다. 분한마음의 표출이다.

 다니엘은 그런 성우의 뒷모습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첫 만남으로서는 그다지 평범치 않은 분위기였다. 몇시간 사이 무슨 일이 흘러왔는지, 갑작스레 내려앉은 분위기가 남들이 보면 너네 왜그래? 하며 이해하지 못할 것이었다.

 하지만 다니엘과 성우는 안다. 둘은 처음 서로를 본 순간부터 서로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강다니엘.”

“...”

“야.”

“...와”

“..잘들어.”

 

 다니엘의 대답이 땅에 가라앉을듯 낮다. 성우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을 이었다. 자꾸 목끝까지 올라오는 물기를 삼켜야만 했다.

 가로등이 파드듯 거리는 것이 위태롭다.

  

 “내 옆자리에 앉지도 말고, 나 따라오지도 마. 학교에서 봐도 인사하지 말고, 식당에서 나를 마주쳐도 왜 햄버거를 먹지 않냐고 묻지도 말고, 웃지도 마. 그니까... 그니까 그냥 우리 오늘 못만난걸로하자.”

 

 이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나를 더 이상 자극하지 마. 너가 어떤 사람이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너한테 느껴야만 했던 이 불편한 감정이 무엇인지도 궁금하지 않아.

차단. 틀을 지키기 위해선 필요한 조건이다. 

 그 짧은 몇시간, 성우는 다니엘을 처음 본 순간부터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남과의 감정적 상호작용은 성우에게 익숙치 않다. 그러니 이런 사람에게 면역체계 따위가 있을리가 없는 것이다. 다니엘을 처음 본 순간부터 스쳐지나간 폭풍같은 이 감정이 무엇인지 조차 규명할 수 없는 것이다.

 앞에 서있는 다니엘의 표정이 조금씩 굳어갔다. 뱉어진 말과 찰나의 순간에, 하루 내내 밝았던 다니엘의 모습이 조금씩 미간을 좁히며 미묘하게 변해간다. 몇 마디가 더 오간 숨막히는 공간 속에서 성우는 다니엘을 등지고 걸음을 옮겼다. 자꾸 머릿속에서 다니엘의 굳은 표정이 밟혔다.

 

 

 

 

 








 삐빅- 도어락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절로 다리에 힘이 풀린 성우는 현관문에 기대어 주저앉았다. 소모가 너무 크다, 그만큼 버거운 하루였다. 비로소 홀로 있을 수 있는 공간에 들어서자 모든 긴장이 풀려온다.

 

-와 그래야 하는데.

-그래야 내가 날 지킬 수 있으니까.

 

 마지막 대화였다.  집안에 들어서고 나서도 성우의 머릿속에는 불과 몇 분 전의 원인 제공자와의 대화로 가득했다. 감정적으로 더 휘둘리는 일은 사전에 차단을 해버려야한다. 처음 겪어보는 일도 아니었다. 우여곡절 끝에 배워낸 모든 것이 이리 휘청이는 것을 제외하고는.


-...


 성우는 미묘하게 굳어갔던 다니엘의 얼굴을 떠올리다 이내 머리를 휘휘 저으며 생각을 그만 두었다. 알수 없는 온도 차였다. 그저 자신의 발언에 의해서만은 아니었다. 패스트푸드점에서의 다니엘과 사람들이 없는 저와 다니엘만의 모습은 왜인지 모르게 이질스럽게 차이가 났다. 

 주저앉은 현관 바닥이 냉기어리게 시렸다. 성우는 자신의 앞으로 펼쳐진 텅 빈 집을 바라보았다.  훅, 하고 상실감이 몰아닥친다.

성우는 몸을 일으켜 식탁으로 향했다. 그리고선 두 손으로 자신의 엄마 사진이 들어있는 액자를 조심스레 들어올렸다.

 유난히 모든 말로 설명하기 힘든 그런 날이 있다.

 

“..나 잘하고 있었는데.”

 

 엄마 나 진짜 잘하고 있었는데. 눈물이 차오를듯한 감정에 휩싸인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하루가 모두 씻겨내려가는 안정적인 기분. 그 정도가 너무 세찰라 성우는 서둘러 사진을 내려놓고 시선을 돌렸다. 

 어쩔 수 없었다. 한번 시작된다면, 꽁꽁 가둬놓은 모든 감정이 터져버리고 나면, 어렵사리 스스로를 세우기 위해 쌓아온 모든 것들이 무너질 것이 뻔했다.

 

“조만간 보러갈게.”

 

성우는 사진에 시선을 주지도 않은 채 중얼거렸다. 그리고선 자신의 책상위에 자리한 달력의 크게 표시되어있는 어느 날을 기억한다. 엄마의 기일이 이번 주 주말이었다.

 엄마 있잖아, 나 엄마랑 약속한데로, 씩씩하게 살고 있었는데, 남의 말에 상처받지 않기로 했는데,

 성우는 쇼파에 몸을 눕듯이 기대어 달력을 여전히 응시한다.

 가끔은 무너지면 안 될까. 모르는 척 어딘가에 기대면 안 될까. 그냥 말이야, 상처를 안받는건 너무 힘들어. 오늘같이 너무나도 흔들리는 날엔.

 

그러니 상처를 받아도 그만큼 위로를 받는 사람이 되면 안 될까.

 

 하루가 벅차게 길다. 문득 '위로'라는 말 앞에서 다니엘이 떠오른다. 다니엘의 굳은 표정이 머리 속을 가득 채워온다. 오늘 처음 만난 너의 얼굴이 밤하늘을 잔뜩 수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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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발행 18.04.06 / 03:25 Am

재발행 18.07.02 / 10:16 Pm


혼자일때만이 익숙한 성우에게 찾아온, 갑작스럽게 찾아온 다니엘이라는 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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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의 시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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