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자와

바쿠고가 입원한지 한 달이 지났고 나는 어지간히도 엉망이 되었다. 퀭한 얼굴과 뻗친 곱슬머리, 거울 속 내 모습을 찬찬히 살폈다. 겉으로 보기에는 전과 달라진 것 없이 꽤 그럴듯한 행색을 한 남자가 서있을 뿐이다. 모든 게 하나씩 망쳐지고 있는 와중에 그나마 멀쩡해 보였다. 불행 중 다행이군, 혼잣말을 중얼거렸더니 뒤에서 카츠키가 다가와 등에 손을 얹었다.


"빨리 가요."

거울에 비치는 카츠키의 뒷모습은 왠지 모르게 들떠 보였다.


나는 사실 요 몇 주간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 여자 저 여자에게 옮겨 다니며 박아대고 온통 섹스에 미친놈처럼 굴었다. 집에 데려와 식사를 하며 다정하게 굴기도 하고 옷을 찢어버리고 거칠게 밀어붙이기도 했다. 그리고는 끝나자마자 정신없이 밖으로 내몰았다. 그동안 만난 그녀들은 각기 다른 얼굴과 몸을 가지고 있는데 웃기게도 다 한 구석씩 바쿠고와 닮은 부분이 있었던 거다. 어떤 여자는 손에 굳은살이 박힌 게, 어떤 여자는 그와 같은 머리색, 어떤 여자는 허리의 곡선. 그렇게 전부 다 하나씩은 바쿠고와 같았다. 그것을 깨닫자마자 여자를 불러들이는 짓은 관뒀다. 나는 어떻게 해도 카츠키에게 발정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는 동안 아이는 점점 회복된다. 결국 모든 상처가 아물듯이 흉터가 남게 돼도 다 나아질 거다. 바쿠고는 조금씩 미도리야의 일을 털어놓았고 몸도 좋아지고 있었다. 어느순간 찾아오는 정적은 여전히 답답하고 어려웠지만 당황하진 않았다. 모든게 정상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완전히 안심할 수가 없었는데 그건 나의 이 말도 안되는 상태와 그의 불안함 때문이다. 바쿠고가 말하는 정보는 극히 한정적이다. 그것은 세심한 계산을 거친 확률에서 나오는 것인지, 그는 알려야 할 것과 숨겨야 할 것을 구분 지어 말했다. 의심받지 않도록 가끔 중요한 것을 말해주고 대부분은 관계없는 것들을 털어놓는다. 나는 그 부분을 굳이 지적하지는 않았다. 머리 좋은 아이가 어른을 속이려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겠지. 저것 또한 나아지는 과정 중 하나라고 생각하며 두고 보기로 한 것이다.

카츠키는 병원 앞을 산책하는 것 빼면 대부분의 시간을 병실안에 있다. 책을 읽거나, 문제집을 풀거나 하는 모습은 학생역활에 충실했지만 나는 그것이 좀 안타까웠다. 날씨도 풀리고 있었고 가끔 나갔다 오는 것도 나쁘진 않을 거다. 그래서 쉽게 제한한 것이 어디 가고 싶은 곳을 가자였는데 카츠키는 생각지도 못한 것을 말했다. 미도리야에게 면회를 가고 싶다고 했다. 물론 우리는 꽤 오랜 시간을 싸웠다. 나는 안된다는 설득을 하고 바쿠고는 자신이 가서 데쿠가 제대로 묶여있는지 확인을 해야겠다고 소리쳤다. 혹시라도 그가 다시 나와 목을 조를까 봐 무섭다며 그 안에 갇혀있는지 확인하지 않으면 불안하다는 말에 더 이상 나는 말릴 수가 없었다.




"선생님!"

현관에서 부르는 목소리가 재촉한다. 고개를 빼꼼 내밀고 보는 게 영락없는 어린애 같아서 조금 우스웠다. 지금 가는 곳은 놀이공원이 아닌 교도소인데도 카츠키는 역시 들떠있다. 단순히 밖으로 나가게 돼서 즐거운 것은 아닐 거다. 미도리야가 무섭다고 말했던 것이 언제였는지 가물가물하다. 아이는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많이 밝아졌다. 밤새 우는 일도 적어졌고 안정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문득 거기서 자길 찾고 있을 미도리야가 생각난다며 소름 끼쳐하곤 했는데 이번에 그 애가 절대 다시는 나오지 못한다는 걸 눈으로 확인했으면 좋겠다.

"나와서 차 시동 걸라고요! 빨리!"

인상을 찌푸리는 얼굴이 밉지가 않은걸 보면 나는 역시 바쿠고를 많이 아끼고 있다. 그게 가끔은 두렵기도 하다. 나는 무언가를 소중히 여기고 사랑을 쏟아붓기엔 너무 늦었는데, 그걸 알면서도 그런다.








-

면회실 안으로 들어가는 카츠키의 모습은 작고 한없이 여려 보였다. 그 두꺼운 문 안에 있을 흉악한 범죄자가 당장에라도 아이의 목덜미를 물어뜯을 것만 같아서 손바닥에 긴장이 서렸다. 이곳에 데려온 게 후회되었다. 끝까지 말리는 거였는데. 두근대는 심장은 진정되지 않았다. 저 안으로 들어가면 바쿠고가 다신 나오지 않을 것만 같다.


"어이, 바쿠고"

"뭐야, 왜 선생님?"


소리 내서 불렀지만 딱히 할 말은 없다. 대충 끝내고 나오라며 얼버무리자 바쿠고가 뭐 그런 걸 굳이 말하냐는 듯 피식 웃어버린다. 카츠키는 면회실 안으로 들어간다. 문이 닫히고 나는 밖에서 유리창을 바라보며 초조함을 삼키고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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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쿠고


들어서자마자 숨을 멈추었다. 데쿠는 마치 늘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여러 쇠사슬, 자물쇠, 고리 같은 것에 칭칭 감겨 커다래진 데쿠는 이상한 악기 같아 보이기도 했다. 나를 보았음에도 말이 없다. 그 거대한 것이, 마치 나를 관찰하듯이.


걸어가서 맞은편 의자에 앉기까지가 너무나 어색했다. 내가 제대로 걷기는 하는 건지 의심이 갈 정도로 긴장으로 울렁거린다. 의자를 끼익 거리며 마주 보고 앉았을 때는 내 머릿속 말이 데쿠한테 까지 들릴 것 같았다.


나와 데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쿠는 이 공간을 다 점령하고 있었다. 창백한 얼굴 위로 짙은 색 머리카락이 흐트러져 있고 두 눈동자는 가만히 나를 응시한다. 그는 낯설었다. 조용히 숨을 죽이고 있지만 두 눈은 건조하고, 나에게 몰두하고, 전율을 남긴다. 나는 이런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내가 없었을 때, 데쿠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나는 눈 앞에 있는 이 사람이 데쿠라고 확신할 수 없었다.


"오랜만이야. 마지막으로 봤을 때보다 좋아 보여."

미소 지으며 데쿠가 말했다. 목소리에 나는 화들짝 놀랐다. 아주 부드럽고, 리듬 없이 단조롭다. 고저 없는 그 목소리가 인간이 아닌 것이 인간을 흉내 내듯 들려서 소름이 끼쳤다.
웃고 있는 입술이 살아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그려놓은 선 같다. 데쿠의 작은 움직임에 구속구에 달린 사슬이 찰그락 거리고 부딪혔다.


"니가 할 말은 아니지."

내가 말했다. 부딪히는 사슬 소리 때문에 긴장감이 증폭된다. 그가 다시 미소를 짓는다.


"아, 참. 그랬지. 널 그런.... 병신 꼴로 만든 게 나니까. 그런데 니가 직접 올 줄은 몰랐네."

약에 취한 듯 느리게 말하는 어조에 불안해진 나는 데쿠를 만져보고 싶었다. 죽어있는 것만 같다.


"선생님은 어때?"

"뭐?"

"그 사람 자지는 잡아봤어? 정액 맛은 어때? 좀 쓸 거 같은데."


순식간에 당혹스러움이 밀려들었다. 스프링이 달린 것처럼 벌떡 일어나 책상에서 물러섰다.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어쩔 수 없어. 난 계속 그 생각뿐이었거든, 캇쨩. 니가 귀여운 입술로 흐물거리는 벌레 같은 자지를 빨아서 세우고 단단한 막대기로 만들어서 네 엉덩이에 찔러 넣는 것만 생각했어."


기습적으로 나오는 적나라한 말들이 얼굴에 터질 것처럼 열이 오르게 하고 모욕감에 떨게 만들었다. 나는 살짝 비틀거렸고 데쿠는 그걸 놓치지 않았다.


"아, 너희 아직 안 했구나. 미안."


하하하, 크게 웃어버린 데쿠가 몸을 앞뒤로 흔들며 정신 사납게 발을 구른다. 그 거칠고 불안한 모습에 뒷걸음질을 쳤다. 정말 미친것 같아 보였다.


"내가, 하하. 내가 얼마나 니 생각을 했는지 몰라, 카츠키. 지금도 내 자지가 아플 정도야. 오늘 네가 온다는 말을 듣고 나서부터 계속 서있었어."

"입 다물어! 그 딴말 들으려 온 게 아니야. 그래봤자 넌 여기에 갇혀있고 다신 나오지 못하는 처지라고!"

"꼭 생쥐처럼 짹짹거리네."


내 말을 가볍게 흘리며 빈정댄 말에 몸이 차갑게 식었다.


"넌 참 다행이야. 너한테 그 짓을 해줄 남자는 널리고 널렸으니까. 누가 널 역겹다고 생각하겠어."

"그만 닥치라고 말했다"

"아이자와 좀 불러줄래?"


나는 낮게 소리쳤지만 떠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내가 하는 모든 말이 들리지가 않는 것 같았다. 아이자와를 불러달라고 한 데쿠는 이죽거리며 미소를 짓는다. 데쿠가 창문 쪽으로 상체를 틀며 보이지도 않을 텐데 아이자와를 찾는 듯 집요하게 눈을 떼지 않았다.


"네 선생은 자기가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면 개 하고도 붙어먹을 인간이야."

"데쿠."

"넌 그리고 그 인간이 하자는 데로 하게 될 거야."

"그만해라."


나는 침착하게 말하려 했지만 구역질을 하는 것 같은 목소리만 난다. 하려던 말이 사라진다. 데쿠는 듣고 싶지 않았던 말들을 이미 알고 있기라도 한 듯 나를 들쑤셔놓았다.


"가엽기도 하지. 바둥대는 니 꼴 좀 봐."

"아니야. 가라앉지 않으려고 헤엄치는 거지."


얕보이고 싶지 않아 말했지만 내 목소리는 작은 속삭임에 불과하다. 반면에 데쿠는 말 한마디로 나를 얼어붙게 만든다.


"아이자와를 불러와."

"..왜?"

"난 이미 경고했거든. 경험이라는 건 무언가를 견디는 일이지."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언젠가는 알게 될거야. 날 믿어, 카츠키. 둘 중 선택해야 한다면 넌 나를 선택해야 해."


과연 아이자와 선생님을 불러 이 불편한 대화를 전달하는 것이 최선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벌집을 쑤시면 안 된다고 말하지만 누구든지 무슨 일이건 일어나기를 기다린다. 아니라고. 벌에 쏘이는 것 따위는 두렵지 않다고. 부당하고 끔찍한 참견을 그대로 내버려두진 않을 거라고 다짐했지만 눈 앞의 범죄자의 유일한 피해자인 나는 두려웠다.


"갈거야?"
내가 돌아서자 데쿠가 묻는다.

나는 그 질문에 담긴 애절함이 놀랍다. 정말 내가 없었던 동안 데쿠에겐 무언가가 스며들었다. 그것은 광기와, 절박함, 그 괴물 같은 성질 속의 연약.

"다시 올 거야."

나는 착잡한 심정이 되어 약속했다. 할 말은 많았다. 데쿠에게도, 아이자와에게도.



그리고 데쿠를 뒤로 한 채 한 발짝 내디뎠을 때 뭔가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문이 활짝 열린 채 불을 밝히지 않은 바깥이 드러나있다.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멈춰섰다.
그를 본 순간 속이 울렁거린다. 뒤에선 신이 나서 웃는 소리가 들리고, 독이 오른 채 잔뜩 흥분한 얼굴로 바닥을 가로지르는 선생님을 본다.


"아이자와!"

데쿠가 온몸으로 쇠를 부딪히며 짤그락거렸다. 선생님은 나를 바로 지나치고 데쿠의 앞에 거침없이 다가선다. 철제 책상을 내리치는 소리에 나는 굳어버렸다.

"너 같은 놈은 단 한순간도 믿을 수가 없어."

낮게 읊조리는 말은 증오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기준선을 침범한 남자에게 집중하며 전혀 다른 사람처럼 돌변했다.


"당신은 왜 이렇게 나약하지?"

데쿠는 다정한 목소리로 묻는다.



아이자와가 팔을 휘둘러 데쿠의 머리를 쳤다. 의자가 뒤로 넘어가며 크게 넘어진다. 나는 말리려고 하다가 멈춰섰다. 선생님이 다시 주먹을 쳐든다. 그러나 이번엔 몸을 감은 사슬 위로 살짝 대고 말았다. 단단한 주먹이 거친 숨과 함께 거두어진다.

"너야말로 아무것도 아니야. 이번엔 내가 경고하지"

목소리가 면회실 안에 울려 퍼진다.


"내 손에 죽지 않으려면."

아이자와 선생님이 중얼거렸다. "입 다물어."










-


집으로 향하는 차 안에선 아무런 말이 없었다. 이대로라면 이 공간에서 투명인간이 되어버릴 거라고, 그렇게 되면 다시는 날 찾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내가 옆에 있는 걸 잊어버리기라도 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선생님은 앞만 보고 있었다. 나는 그의 옆좌석에서 눈치를 보는 순한 개처럼 앉아있다.

차는 교도소에서 멀어지고 있지만 나는 복도의 어둠 속을 멍하니 떠올린다. 밝은 면회실 안과 선생님이 걸어왔던 대리석 타일 바닥. 서늘한 바람 한 줄기가 분 것 같다. 뒷목의 털이 곤두선다. 바로 뒤에서 누군가 내쉬는 숨이 닿는 것 같은 느낌이 든 순간 선생님을 불렀다.


"바쿠고, 나중에."

"선생님!"

선생님은 대답이 없었다. 나는 내가 왜 이토록 두려운 건지 알 수가 없다. 이것은 데쿠 때문이 아니다. 검은 복도 건너편에는 또 하나의 문이 열렸다가 닫힌다. 이런 끊임없는 불길한 이미지들로 머릿속이 가득 찬다. 나는 그 상상에 불과할 뿐인 두려움에 압도당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옆을 바라보았다.

"아이자와 선생님."

결국 선생님이 한숨을 내쉬며 내쪽을 돌아본 순간 울음을 터트릴 뻔했다.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내가 지금 나의 편이라고 할 만한 사람은 이 사람 한 명뿐이라는 것이다. 난 선생님 말곤 없는 거야.

"아직도 무서워?"

선생님이 말했다. 나는 그가 어떻게 내 두려움을 눈치챌 수 있었던 건지 궁금하다. 날 보고 있지 않았으면서, 몰래 관찰이라도 하고 있었던 걸까. 마주 보는 눈은 적극적이고, 피곤에 절여져 있지만 무언가를 얻어내는 데에서 물러나지 않을 집요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 앞에서 옴짝달싹 못 하는 기분이다.

밖에는 어느덧 비가 내린다. 차 안은 싸한 냄새로 가득하고 창문을 두드리는 비는 친근하게 다가온다. 핸들을 잡은 선생님의 두 손은 혈관이 굵게 튀어나와있었다. 아빠도 그랬던 것 같다. 어른들은 다 늙으면 그런가. 수염이 바늘처럼 꽂힌 피곤한 얼굴은 아빠를 떠올리게 한다. 조용히 말없이 쳐다보는 것도. 그리고 나는 그 아빠를 연상케 하는 턱을 가진 남자와 몇 번이고 키스한다. 나는 사실 이 관계가 편하진 않았다. 중요한 걸 앞두고 한 발짝 물러서 망설이고 있는듯한 느낌이다. 선생님이 날 관찰할 매보다는 늑대가 되어줬으면 좋겠다. 그러면 이렇게 어정쩡한 자리가 아닌, 나의 역할은 분명해질 것이다.


"전 그냥, 고맙다고 하려고요."

오랫동안 닫혔다 나온 목소리는 무언가에 걸린 듯 매끄럽지 못했다. "면회실에서 말이에요, 밖에서 다 듣고 있었......"

"고마워할 필요 없다."

아이자와 선생님이 한쪽 눈썹을 씰룩거린다.
"난 네 선생이고, 거기서 널 그냥 두고 있는 게 더 이상한 거니까."

"하지만 화내 줘서 고맙다고요."

최소한의 동작으로 계산적이지 않은 무지함을 흉내 내려 애쓰며 손을 내밀었다. 떨리는 손길로 선생님의 셔츠 자락을 만지작거린다. 나는 내가 싸 보이지 않기를 바라며 그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완전한 섞임을, 선생님의 애인이 되는 이미지를 실체화시키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반응하지 않았다.

"그래."

손을 내려 선생님의 허벅지 위에 얹혀놓았다. 지금껏 한 번도 이런 식으로 그를 만져본 적은 없었다. 그야, 그는 내 담임선생님이니까. 바지의 천 밑으로 근육질의 다리가 느껴진다. 단단한 근육, 이토록 고압적인 남자의 다리. 

"선생님이 운전할 때가 너무 멋져요."

선생님의 입술이 비틀어 올려진다. 그 순간 내가 말을 잘못했음을 깨닫고 입을 벌린 채 다물지 못했다.

"뭐라고?" 선생님이 말한다.
그가 얼마나 당혹스러워하면서도 웃겨하는지 알 수가 있었다. 나는 뭐든 간에 변명하려 했다. 그러나 더듬거리는 내 말을 끊은 건 인도 옆으로 빠져나가 주차되는 차였다.

"아니..... 그게 하려던 말은, "

"이리 와."

선생님이 내 말을 자른다. 놀랍게도 그는 머리카락을 거칠게 쓸어 넘기며 상체를 내쪽으로 넘겼다.

"죄송해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나는 내가 뭘 죄송하다는 건지는 모르겠다. 그냥 그렇게 말해야 할 것 같았다. 선생님이 몸을 숙이고 나를 습격하듯 다가와 입술에 키스했다. 입 안에 들어온 혀가 나를 공격하고 나는 긴장하지 않으려고 신경을 도사렸다. 입술을 조금 더 벌린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한 꺼풀 얇은 막으로 감싸진 기분이었다. 이 압력을 분출시킬 수만 있다면. 내가 두려움과 부담감에 굴복해버리기 전에, 얼른 손을 그의 사타구니에 가져다 댔다. 나는 그것을 바로 찾는다. 내가 잘 알고 있는 그것. 그러나 그것은 단단한 막대기가 아닌 흐물흐물한 겉껍데기를 가진 늘어진 힘줄 같았다.

아이자와 선생님은 펄쩍 뛰며 나를 밀쳐내고 얼굴을 굳힌다. "카츠키," 이건 잘못되었다. 이게 아니었나보다. "이런 빌어먹을!"

"선생님, 아니야. 전....."

"가."

"....그건 단지.."

"나가!"

나는 차문을 열고 비틀거리듯 빠져나갔다. 문 손잡이를 잡고 가만히 서있자 선생님이 팔을 길게 뻗어 문을 닫아버렸다. 도어락이 잠기는 소리가 들리고 그대로 출발해버린 차는 멀리 사라져 버린다. 혼자 남겨진 나는 비를 맞고 있었다. 두려움을 느낀다. 인적이 드문 것도 아닌 길거리에서 그저 우산 없이 비를 맞을 뿐인데도 두려워졌다. 피부를 적히는 빗줄기가 나를 조롱하는 것처럼 차갑게 흘러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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