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현햄..

-어. 다니엘.. 

-저 잠만 봐요

-어.. 30분 쯤 후에 학교 앞 스벅 괜찮아?

-네.. 그때 봐요


민현은 자신에게 당연히 전화가 올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자기와 현준이 친구라는 사실을 알았으니.. 성우 현준의 관계를 묻겠지.


“햄!”

“묻고 싶은 거 있지?”

“그 새끼랑..”

“니엘아. 너한테 현준이가 쓰레기일거라는 건 아는데.. 어쨌든 나한텐 친구거든. 선배, 형 따위 호칭은 바라지 않는데 이름은 제대로 불러줘.”

“...이현준이랑 성우랑 뭔 사이에요?”

“흠.. 너랑 이현준이랑 비슷한 관계일거야.”

“뭔 소리에요 그게..”

“너.. 고등학교때 상탔지? 그거 원래 현준이가 받기로 내정되어 있던 거 알아?”

“네?”

“걔네 외가가 L그룹이야. 그리고 그 대회 후원이 L그룹이고. 대충 짐작가?”

“네.. 근데 전 그때 그런거 몰랐고, 저희 집이나 이런데서 손 쓴 것도 없고..”

“그게 문제였어. 니 실력으로 상을 받은게. 사실 현준이는 그 대회 나가기 싫어했어. 쪽팔리고, 자존심상해서.. 그렇게 집안 빽으로 받는 상 싫다고. 근데 그래도 대학은 가야하고... 딱 한번 자존심 숙이자고 생각했는데.. 그걸 니가 실력으로 가져갔어. 안그래도 열등감에.. 자격지심도 있는데.. 자존심까지 구겨진거지. 그래서 너 괴롭힌거야.”

“제가 그거 듣고 어떤 반응으로 보여야 하는데요? 아.. 미안하다.. 이래야 해요?”

“아니.. 그거 아니고.. 어쨌든 현준이가 잘못한 건 사실이니까. 암튼.. 너 그래서 전학가고 나서 현준이도 계속 방황했었고.. 너한테도 미안한 마음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야..”

“하이고.. 퍽이나..”

“의외로 여린 성격이야. 현준이.”


민현은 자몽에이드를 한 모금 마시며 계속 말을 이어갔다.


“근데 그런 기분을.. 성우한테도 느껴버린거지. 둘이 연습하다 현준이가 좀 다쳤어. 물론 그거 자체는 그렇게 크지 않았는데.. 그걸 핑계로 무용을 그만두고, 집안 빽으로 성우 콩쿨 출전을 막아버렸어..”

“허.. 미쳤네. 미쳤어.. 근데 이제 와서 유학을 같이 가자고요?”

“현준이는 무용쪽으로 가는 건 아냐. 아마 이론이나 마케팅.. 뭐.. 이런 쪽으로 갈거 같고.”

“도대체.. 뭔 생각인지 알 수가 없다..”


민현과의 대화끝에 이현준의 번호를 받았다.


-야!

-누구세..

-강의건이다. 니 어디고?

-...짝눈까리였나.. 

-니 내좀 보자

-어딘데?

-학교 앞 스벅. 

-내 지금 한남동인데..

-내가 갈게. 장소나 찍어보내라. 


정말 용건만 간단한 통화였다. 서로 군더더기 없이, 왜 전화했냐, 왜 만나냐란 말은 필요없다. 그저 머리가 시키는대로 말이 나왔고 몸을 움직였다. 한남동에 널리고 널린게 카페건만 이현준이 보낸 장소는 데이트 할 때나 올법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이었다. 


“야..니랑 내랑 여서 뭐하자고?”

“앉아라. 내 밥 못먹어서 그런다. 온김에 니도 뭐 먹던가.”


일단 싸우자고 온 건 아니니까 얌전히 앉아 메뉴판을 보았다. 가격에 솔직히 좀 놀랐지만, 이왕 온거 비싸고 맛난거나 먹자 싶어 스테이크와 가벼운 샐러드를 시켰다. 서버에게 메뉴를 시키는 모습을 보던 현준은 피식 웃었다.


“안먹는단 말은 안하네.”

“니네 집 돈 많다메? 근데 뭐가 문제고? 밥 한끼 얻어먹는다고.”


다니엘과 현준은 별 말 없이 서로 마주 앉아 시선만 맞추고있었다. 그 적막을 먼저 깬 것은 현준이었다.


“그때 미안했다.”

“어.. 니 내한테 미안해해야하는 거 맞다.”


풉.. 아.. 종잡을 수 없는 새끼네..하며 터져나오는 웃음을 감추지 않으며 중얼거렸다.


“민현햄한테 들었다. 내 상받았던.. 그거.”

“어.. 우리집 어른들이 모자란 자식 사랑하는 방법이 그렇다. 안그래도 꼴통에 또라이 취급 받는데.. 자식새끼 대학도 이상한데 가면 더 망가질까봐 돈끌어와서 그런거 만들더라.”

“니 부모 욕하지 마라. 결국 돈 이용해서 사람 가지고 논건 니다.”


현준은 아무 말이 없었다.


“고등학교때도 껄렁한 애들 끌고 다니며 괴롭힌것도 니였고, 성우 출전 못하게 막게 한 것도 니다. 결국 니가 돈 있는 니 부모님 이용해서 한 짓이라. 그걸 왜 부모님 탓하노? 글고 니가 지금 내한테 미안하다고 하면 뭐하노? 그때 망가진 건, 그때 우리 엄마 상처받은 건.. 안없어진다. 그게 니가 한 짓이다.”


다니엘은 화를 내는 것도 질타의 말투도 아니었다. 그저 조용조용 자신의 생각을 말할 뿐이다. 현준은 그저 조용히 그 모든 말을 듣고 있었다. 다니엘의 말이 맞으니까. 그 모든 일의 시작은 자신이었다. 다니엘을.. 그리고 성우를 망가뜨리려고 한 것은 자신이었다. 그 알량한 돈 몇 푼에 양심을 판 것은 자신이었다. 

음식이 나오자 다니엘은 마치 아무 일 없다는 듯 고기를 썰고, 샐러드를 먹고, 맛있다고 얘기했다.


“나는.. 니랑 성우가 진짜 신기하다..”

“뭐가?”

“우예 다시 춤을 출 수가 있노?”


학교폭력의 가해자가 되었어도, 머나먼 타국에서 힘든 시간을 보냈어도, 원하던 콩쿨의 출전 자체가 막혔더래도.. 왜 포기하지 않는걸까. 


“왠줄 아나? 이거 말고는..아무 것도 발 붙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랬다. 성우도 다니엘도.. 절실했다. 사람들의 시선에서, 세상의 기대에서.. 흔들리기만 할 순 없었다. 어디 한 곳에라도 발을 붙이고 버텨야했다. 조금이라도 작은 틈이라도 비집고 들어가야만했다. 


니는 돈도 있고, 니 일이면 남의 자식 앞길 막는 일도 해줄 부모도 있고.. 뭐.. 성우랑 내는.. 춤 아니면 세상에 못서있는다. 겨우 이걸로 지구에 붙어있는 거다. 니가 연습 열심히 한거.. 나도 안다. 성우도 잘 알고.. 근데 우리는 이걸로 보여줘야한다. 우리 존재를. 내 눈때문에 고생한 엄마에게도 당당하게 보여야하고, 춤추는 거 못마땅해하는 부모님들에게도.. 단순히 내 만족으로 춤을 출 수 없다. 우리는. 


억양의 고조도 느껴지지 않을만큼 담담한 말투였다. 아니 오히려 시시하다고 느껴질만큼 툭 그 진심을 털어놓았다. 현준은 주문했던 파스타를 몇 번 뒤적거릴뿐 도통 입에 넣질 못했다. 


“야! 좀 그냥 쳐먹어라. 내 입맛까지 떨어진다!”

“이씹! 이게 한 살 어린새끼가 오냐오냐 해줬더니!”

“나이 드셔서 파스타는 안드시고 싶나봐요? 나이 많은게 자랑이가?”


깐죽거리면서도 다니엘은 스테이크를 크게 썰어 현준의 접시에 놓아줬다. 아나, 무라. 무심한 그 손짓에 현준은 콧등이 시큰해졌다. 혹시나 눈물이 보일까 현준은 고개를 숙여 스테이크를 썰면서 말했다.


“그래서 니가 날 만나자고 한 궁극적인 이유는 옹성우 데려가지 마라. 이거가?”

“..성우가 간다고 하면 말릴 자격은 없다. 그건 형이 택하는 거지. 나는 그 의견을 지지해줘야하고. 근데.. 이런식은 아닌 듯 해서. 니 지금 성우형 목줄 잡고 흔들고 싶은거잖아. 니 부모 돈으로.”

“아니라곤 못하겠네.”

“성우가 간다면, 지가 알아서 목줄 잡히더라도.. 좋은 기회 잡고싶다고 하면 할말 없지. 그만큼 간절한 거 아니까 내가 그걸 우예 막겠노? 이제 본지 얼마나 됐다고..”

“도대체 옹성우가 니한테 뭔데 이 지랄이고?”

“흠.. 중력?”

“우웩.. 그게뭐고.. 오그라들게..”

“근데.. 그런거다. 우리 엄마 말고, 춤 말고도.. 아.. 내가 여기 있어도 되겠다 싶은거.”

“어.. 그렇단다.. 성우야. 좋겠네.”


현준의 말에 뭔가싶어 뒤돌아보자 성우가 뒤에 버티고 있었다. 오글거리는 말을 이렇게 본인이 있는데서 해버리다니.. 다니엘의 귀는 피가 날 정도로 붉게 타올랐다. 


“나 유학 안간다고 말하려고 왔더니.. 왜 내 애인이 너한테 이렇게 구구절절하게 고백을 하고 있는거야?”


애인이래. 이 쪽팔린 와중에 애인이란 말에 이젠 온몸이 붉게 변하는 거 같다. 성우는 그런다니엘의 모습에 피식 웃으며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주곤, 자연스럽게 자리에 앉아 메뉴를 추가하고, 기분 좋게 와인까지 추가해서 한잔 나누어 마시기까지 했다. 성우는 유학은 거절한다고 했고, 그저 가끔 안부나 주고받자고 했다. 아, 현준은 콩쿨에 맘껏나가라고 그건 이미 부모님한테 말해서 이제 나갈 수 있을거라고, 미안했다는 사과까지 야무지게 했다. 

 

현준과 헤어져 성우와 함께 집으로 오는 길에 둘은 서로의 눈을 보며 손을 꼭 잡았다.


“내가 중력이야?”

“아.. 부끄럽구로....”

“근데.. 너도 나한테 그래. 니 눈을 보면 내가 우주에 떠있는 거 같다가 니 손을 잡으면 다시 발이 땅에 닿는 것 같아. 근데.. 그래도 나 간다고 하면 안붙잡을 거야?”

“..만약 간다면.. 나는 니 못잡는다. 진짜다. 잡고 싶더라도.. 아니 분명 잡고싶을거다. 근데.. 니가 원하는 거니까.. 난 못잡는다. 대신..”

“대신?”

“내가 따라간다.”


이제.. 겨우 지구의 중력에 적응한 거 같은데.. 니가 떠나면 난 또.. 이 세상에서 떠돌아다닐 거 같아.. 무서우니까. 내가 널 따라가야지.


다니엘의 고백에 가슴이 몽글몽글 간지러워지는 성우는 애써 그 감정을 감추며 헐.. 패기가 좀 있으시네.. 하고 웃어버렸다. 다니엘과 성우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 편의점에서 맥주와 간단한 안주거리를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이미 와인도 가볍게 했으니 오늘은 그냥 취하자! 하면서.


집으로 돌아와 이런 저런 얘기들을 나누다 둘의 시선이 마주쳤다. 성우는 조용히 다니엘의 앞으로 다가와 앉았다. 다니엘의 다시 사이에 들어앉아 마주보는 자세에서 성우는 가볍게 다니엘과 입을 맞추었다. 딸꾹! 다니엘의 입에서 갑자기 시작된 딸꾹질에 갑자기 둘의 입에서 풉!하는 웃음이 터져나왔다.


“어.. 어.. 놀라가지고...”

“나.. 니 우주에 빠져서 좀 더 있고 싶어.”


성우의 말에 다니엘은 손발이 오그라드는 흉내를 내었다. 


“아오! 서울 아들은 우예 이래 오그라드는 말도 잘하노?”

“자기야~ 우리 뽀뽀만 할거야?”

“우와.. 끼부리는 거 봐라..”

“아잉~자기야~”


다니엘은 성우의 머리를 당겨 깊게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점점 체중을 실어 자신의 몸으로 밀어 바닥으로 눕혔다. 천천히 성우의 상의를 벗겨 쇄골부터 훑어내려갔다. 


“어.. .. 허.. 저기.. 침대로.. 으응? 등.. 아포..자기야...응?”


성우의 말에 다니엘은가볍게 성우를 들고 침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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