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ft 펑

다프트 펑크가 해체했다. 공식적으로 접할 수 있는건 유튜브 영상 하나 띡 올라온게 다다. 그 외에는 온갖 언론의 보도자료 기사 정도? 이 소식을 처음 접한게 아침에 잠에서 깨서 습관적으로 트위터를 열어서였는데, 누가 다프트 펑크가 은퇴를 했다는거다. 엥? 도대체 뭔 소리여 싶어서 찾아보니 정확히는 둘이서 이제 그만 합시다 라고 합의를 했다는 모양. 그니까 뭐 해체지. 하기사 밴드의 본분이라는게 해체 아니겠는가.

사실 뭐 그렇게 충격을 받거나 슬프고 그러지는 않았다. 이 자식들이 투어를 하냐 신곡을 내냐... 그래도 그 어떤 가능성 자체가 영원히 끝났다고 하니까 묘하게 기분이 조금 멜랑꼴리해지는 것은 어쩔수가 없다. 한때는 침대에 누워 라디오에서 나오는 Something About US를 들으면서 싱숭생숭한 마음에 밤잠을 못이루기도 했으니까.

소식을 들은 이후로 몇일간을 다프트 펑크의 앨범을 들으면서 지냈다. 스트리밍 서비스의 은혜에 힘입어 출시된 모든 앨범을 쭉 정주행할 수 있었다. 사실 실물로 갖고 있는 앨범은 몇장 없어서 가지고 있는 것 만으로는 이곡 저곡 다 들어가며 애수에 젖기는 좀 무리가 있었거든.


다프트 펑크의 음악을 처음 접한게 아마 중학생때였던 것 같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 시기에 우리집 TV에서는 유럽 어딘가(프랑스로 추정다) 국가의 음악 방송이 나왔는데, 한국의 인기가요 같은 프로그램과는 달리 뮤직비디오만 주구장창 나오는 채널이었다. 맹세컨데, 어쩌다 한번 나오는 진행자가 쓰는 말은 확실히 영어는 아니었다. 여튼 절찬리 꼬꼬마 오타쿠의 길을 걷고 있던 중학생 시절, 가요따윈 듣지 않아! 노선을 걷는 입장에서 해외 뮤지션의 감각적인(...) 뮤직비디오가 하루 종일 나오는 TV 채널이라는 것은 신의 축복과도 같은 것이었다. 여튼 이 때 접해서 내 인생을 뒤흔든 뮤지션이 참 많다. 다프트 펑크가 그렇고, 자미로콰이, 피닉스, 레드 핫 칠리 페퍼스... 지금 생각해보면 세계를 뒤흔드는 뮤지션들을 알게 된게 뭐 그리 매니악한 즐거움이라고 그렇게 뻐기고 싶었는지. 하지만 인터넷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기도 전, CD도 아니고 카세트 테이프로 음악을 들어야 했던 깡촌의 중학생 입장에서는 기존의 세계가 10배도 더 크게 열리는 놀라운 사건이었다.

그러고보니 위에서 인터넷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기도 전이라고 했지. 사실 엄밀히 말하면 본격적으로 열리기 시작한 시대하고 하는게 맞겠다. 모뎀으로 천리안 들어가다가, ISBN이 짱 빠르다고 했다가, ADSL이 어쩌구 광랜이 어쩌구...이게 도대체 몇년도에 일어났던 일인지가 헷갈릴 정도로 네트워크 환경이 급변을 하던 시기였더랬다. 하여간 여차저차해서 우리집에도 ADSL이 설치되고, 누나는 수험생, 부모님은 자영업자인 시점에 인터넷 주 사용자라고 해봤자 나 하나 정도인 집에서 내가 컴퓨터로 하는 일이라는게 뻔했다. 고사양 컴퓨터가 없어서 게임에 빠지지 못했던 것 정도가 예외라면 예외인가?


윈앰프 로고

여튼 이 시기에 빠져든게 하나 있으니 바로 윈앰프 음악방송이다. 윈앰프란 무엇이냐? 음악파일 재생에 최적화된 프로그램이다. 그 시기 소리바다니 뭐니 하는 프로그램으로 불법 음악 공유가 되던 MP3 파일을 쉽고 간단하게 틀 수 있는 방법 되겠다. 윈도우 기본 프로그램인 미디어 플레이어도 있긴 한데 걔는 뭔가 좀 움직이는게 무겁고 직관적이지 못하달까? 음악에 따라 특유의 파형 애니메이션을 보여주는 것 정도가 매력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그게 뭔지 궁금하다면 링크를 눌러주세용). 

너희가 스큐어모피즘을 아느냐

이때는 음악 듣는 프로그램이라고 하면 윈앰프가 국룰이었다. 어쩌면 글로벌 룰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이 윈앰프는 이 음악을 듣는 것 외에도 또 하나 강력한 기능이 있었으니, 바로 인터넷으로 실시간 음악방송을 할 수 있다는 거였다. 이게 윈앰프 프로그램만 가지고 되는 건 아니고, 몇가지 플러그인을 설치해야 하는 것으로 기억한다. 호스트는 방송 채널을 열고, 게스트는 호스트가 알려준 IP 주소를 입력해서 방송을 들을 수 있는 뭐 그런 식이었을 거다. 지금이야 애플도 구글도 뛰어들어 아웅다웅하는게 미디어 스트리밍 서비스다보니 어지간한 음악은 다 검색하자 마자 들을수 있는 시대지만 그때는 컴퓨터로 음악을 들으려면 어떻게 음반 CD를 구해서 MP3 파일로 추출하거나 소리바다같은 걸로 전 세계의 불법 공유자들아 힘을 보태줘! 하는 식으로 구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구하기 힘든 음악은 고작 4~5mb 하는게 일주일도 넘게 걸리고 그랬던 생각이 난다(불법 공유입니다...).

아이고 어르신 추억여행 그만하세요~~!

그런 상황이다보니 근성과 운이 함께 했거나 대도시에 살거나 돈이 많은 사람들이 아니고서야 MP3 파일로 갖춰진 방대한 음악 컬렉션을 가진 사람이 몇 없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이 가진 음악을 듣는 방법이 바로 이런 윈앰프 음악방송이었다. 비슷한 취향을 가진 오타쿠들끼리 커뮤니티를 만들어서 놀던 시기이니 음악적 취향도 얼마나 비슷비슷하겠는가? 서로서로 돌아가면서 음악도 틀고 어디서 마이크 구해와서 가라로 멘트도 치고 그랬다.

이 시기에 정말 많이 들었던 음악 중 하나가 바로 다프트 펑크의 음악이다. 이 때는 언젠간 자라서 성인이 되면 해외여행을 가서 이 빌어먹을 불란서 일렉트로니카 듀오의 음악을 라이브로 들어보리라 했는데 결국 이렇게 되고 말았구나. 큰 시대의 뭔가가 하나 저물었다...고까지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냥 좀 허전할 뿐이다. 워낙에 새로운 콘텐츠가 많이 나오고 평생을 새로운 것들에 자극받고 또 무뎌지면서 살아갈 거라고 생각하지만, 아무래도 10대 중후반부에 접한 것들이 내 정서의 핵심부에 미친 영향이라는 게 너무 클 수 밖에 없나보다. 그동안 고마웠어요 다프트 펑크. 은근슬쩍 재결합해도 모른척 해줄게. 안그럴 것 같지만.







GAE BAL JA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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