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 언젠가는 네가 말해줄 거라 믿어

Subject : 가을 하늘

Date : 28th, Aug, 2016

Written by. Kashire카시레

엊그제만 해도 무더위가 기승을 부렸으나 더 이상은 아니었다. 가을의 초입에 들어선 모양인지 바이루인은 일어나자마자 느껴지는 냉기에 몸을 떨었다. 그러자 조금씩 잠에서 벗어나고 있던 구하이가 그걸 보고는 바이루인의 뒷덜미를 잡고는 냉큼 끌어내렸다. 덕분에 상반신만 일으켰던 바이루인이 다시 침대에 누운 모양새가 되어 버렸다. 구하이는 바이루인이 침대에 다시 눕자 바로 이불을 풀어 바이루인의 가슴까지 덮고는 바이루인의 가슴에 기댄 채 그를 끌어안았다.


“무거워.”

“춥잖아. 내가 따뜻하게 해줄게.”

“됐거든.”


구하이의 배려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바이루인이 버둥거리며 이불을 죄다 멀리 보낸 것으로 막을 내렸다. 얼마나 세게 버둥거렸으면, 이불이 침대를 빠져 나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구하이는 조금이라도 바이루인의 온기를 느끼고 싶었기에 바이루인의 단호한 행동에 입을 삐죽 내밀었다.


그러나 바이루인은 구하이를 달래기보다는 콧방귀만 뀔 뿐이었다.


“어디서 개수작이야. 구하이. 은근슬쩍 또 만지려고!”

“왜에- 인즈는 너무 의심이 많아. 나는 정말 따뜻하게 해주려고 했을 뿐이지. 내가 얼마나 젠틀한데.”


그 말에 바이루인은 더 말할 것도 없이 구하이의 왼쪽 구레나룻을 잡고는 약하게 들어올렸다. 예상치 못한 공격에 구하이가 무조건적인 항복의 의사로 두 손을 들어 보였다. 아야. 아야. 잘못했어. 잘못했어. 인즈. 다신 안 그럴게.

확답을 받고 나서야 바이루인이 구레나룻에서 손을 떼었다.


“진작 그렇게 나올 것이지. 애꿎은 구레나룻은 왜 괴롭게 해.”

“…인즈는 무심해. 쩨쩨해. 야박해. 어쩜 그럴 수 있어. 내가 뭘 잘못했다고.”


아까와는 다른 대답을 내놓자 바이루인이 눈에 불을 키고는 다시 구하이에게 다가왔다. 또다시 구레나룻이 잡힐 거란 걸 예감하자 구하이가 침대에 바싹 엎드렸다.


“존경하는 인즈 님, 잘못 했습니다. 다신 그러지 않을 터이니 너그러이 그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바이루인이 흠칫 다가오던 행동을 멈추었다. 생각해보니 그저 체력 소모만 하는 짓을 왜 하나 싶어 결국 구하이에게 다신 그러지 말라며 단단히 일러두고는 씻기 위해 방을 나섰다.


그런 바이루인의 뒷모습을 보며 구하이는 어느새 엎드렸던 자세에서 옆으로 얼굴을 팔로 받친 채 누운 자세로 있었다.


“우리 마누라는 너무 새침해. 데리고 살기 너무 힘들어. 그래도 어쩌겠어. 나는 좋은 남편이니까, 새침한 마누라라도 데리고 살아야지.”


바이루인이 들었으면, 아침부터 주구장창 깨졌을 말이지만, 씻으러 간 바이루인이 그걸 알 일은 없었다. 그저 샤워기를 틀고 온수로 씻고 있음에도 약간의 오한이 들었을 뿐이었다.


*


모든 수업이 끝났음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학생들은 하나 둘 씩 자리에서 일어나 교실 문을 나섰다. 이미 구하이도 가방을 정리한 상태였지만, 바이루인은 수업이 끝난 줄도 모르고 잠에 빠진 상태였다. 항상 많이 자는 것 같은데 어쩌면 수업 시간에도 저리 잘 자는 지.


바이루인이 들었으면 기함을 칠 구하이의 생각이었다. 밤에 잠도 못 자게 끊임없이 만지고 쪽쪽거리는 터라 요새 바이루인의 눈에 그늘이 진 것은 사실이었다.


요치와 양멍은 구하이가 근처에 있어 차마 바이루인을 깨울 생각을 하지 못한 채 눈치를 보며 교실 문을 나섰다. 구하이는 아무도 없게 되자 비로소 바이루인을 조심스레 깨웠다.

인즈. 인즈. 일어나.

그 말에 부스스 바이루인이 눈을 비비며 자리에서 슬슬 일어섰다. 이미 바이루인의 짐은 구하이가 먼저 싸놓은 상태였기에 바이루인은 별다른 행동 없이 집에 구하이에게 소매를 잡힌 채 움직였다.


“인즈, 바로 집에 갈 거야?”

“…왜?”


여전히 잠에서 깨지 못한 듯 몽롱한 정신으로 바이루인이 간신히 말을 이었다.


“집에 가는 길에 있는 공원에서 산책이라도 좀 할래? 그 모습으로 집에 갔다간 아버님이 잠만 자는 줄 알겠다. 물론 성적이 그렇게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우웅…”


구하이는 천천히 바이루인을 이끌었다. 혹시라도 잠에 취한 바이루인이 넘어지기라도 할까봐 바이루인의 소매를 그 어느 때보다도 세게 움켜쥐었다.


*


둘 다 긴 교복을 입고 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갑작스레 추워진 날씨에 오들오들 떨었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구하이는 좋았다. 이제 겨우 잠에서 깨어난 바이루인을 데리고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이 마냥 좋았다. 자전거는 과감하게 학교에 두고 왔다. 자물쇠를 걸어놓긴 했지만 그래도 훔쳐간다면, 새로 사면 그만이지.


구하이의 뱃속은 편했다. 지금은 이 나른함을 즐기고 싶었다. 바이루인과 함께 하는 이 시간을. 오직 자신과 인즈, 이렇게 둘만 있는 이 시간이 마냥 좋았다.


“벌써 저녁인가.”


바이루인은 여전히 구하이에게 소매가 잡힌 상태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저녁이 다 된 터라 석양이 하늘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가을 하늘답게 단풍처럼 진 석양이 예쁘다 생각했다. 그 어느 계절의 석양보다 더 붉게 타오르는 것이 인상적이어서 바이루인은 저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고는 석양을 바라보았다.


“조금 앉았다 갈래?”


구경하고 싶은 마음이 없잖아 있던 바이루인에게는 좋은 소식이었다. 그 물음에 고개를 주억거리자 구하이는 바이루인을 데리고 길 옆 언덕진 곳을 조금씩 내려갔다. 그제야 바이루인의 소매를 놓고는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등에 진 가방을 내려놓았다. 그리곤 자신의 교복 점퍼 지퍼를 내렸다.


“뭐해?”

“앉지 말고 있어봐. 그냥 앉으면 병 나.”


바이루인이 앉으려고 하는 행동도 저지한 채 구하이가 재빨리 자신의 교복 점퍼를 바닥에다 깔고는 바이루인의 허리를 잡고는 조심스레 자리에 앉혔다.


“나 네 여자 아니거든.”

“내 마누라이긴 하잖아?”

“아오, 저걸 그냥-”

“헤헤, 인즈야. 때리는 건 좋지만, 너무 때리면 남편이 아야 합니다.”

“저 놈의 주둥아리 사살하는 사람에게 내가 100위안을 준다.”

“에잇, 잠깐만 기다려. 내가 마실 것 사가지고 올게.”


재빨리 바이루인을 피해 구하이가 근처에 있는 가게로 음료를 사러 갔다. 바이루인이 다른 생각을 할 새도 없이 구하이가 음료를 가진 채 돌아와 바이루인의 옆에 버젓이 앉았다.


“인즈, 여기.”

“고마워.”


구하이가 건넨 음료를 바이루인이 받아들었다. 따뜻하다. 초저녁이긴 하지만, 갑작스레 쌀쌀해진 날씨에 혹여나 바이루인이 감기에도 걸릴까 구하이는 염려스러웠다. 그래서 시원한 음료보다는 따뜻하게 데워져 있는 음료를 사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구하이의 판단은 괜찮았던 것인지, 바이루인이 음료를 두 손으로 쥔 채 손을 녹였다.


애써 무덤덤한 척 한 것이지만, 사실은 확 바뀌어진 날씨에 추워하는 것은 분명했다.


“하늘 예쁘다.”

“그러게.”


둘의 대화를 듣는다면 분명 쓸모 없는 대화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의미가 없는 대화였다. 그래도 구하이는 좋았다. 옆에서 석양을, 하늘을 구경하고 있는 바이루인의 모습을 감상하는 것이 좋았다.


“인즈.”

“응?”

“나의 인즈.”

“…또 부끄럽게끔. 왜 이래.”

“좋아해. 인즈.”

“…”

“사랑해. 인즈.”

“…”

“인즈, 말해줘. 너도 날 사랑해?”


끊임없이 확인 받기를 원한다. 인즈가 자신에게 사랑한다면 말해줬으면 좋겠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그런 적이 없었다. 그저 어렴풋이 자신과 같은 감정이란 것도 알게끔 내포하는 말만 내뱉을 뿐.


서운할 수도 있지만, 그것 나름대로 인즈가 저를 사랑하는 방식이라 생각하며 이해하기로 했다. 언젠가는 인즈가 자신에게 먼저 그런 말을 해줄 날이 한 번이라도 오겠지.라는 말을 속으로 중얼거렸다.


“알면서 만날 물어보는 너도 참 짓궂다.”


그 말에 구하이가 눈을 휘며 웃었다. 역시나. 직접적으로 사랑한다 하지 않지만 인즈는 분명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 그걸 느끼곤 구하이는 바이루인이 아까까지도 눈에 담았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 어느 때보다도 붉게 타오르는 감정이 꼭 인즈를 향한 자신의 감정 같았다.


하늘에서 시선을 뗀 구하이가 바이루인을 바라보기 위해 다시 고개를 내렸다. 순간, 아직도 하늘을 보지 않고 구하이를 빤히 보고 있는 바이루인이 구하이의 눈에 들어왔다.


“구하이.”

“응. 인즈.”

“…이런 말 하는 거 너무 민망한 거 아는데… 언젠가는… 네가 원하는 말을 해주도록 노력할게. 지금은 너무 민망해…”


저가 말하고도 민망한 것인지 바이루인이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돌렸다. 꼭 붉힌 얼굴이 방금까지도 자신의 눈에 담았던 하늘같아 웃음이 나왔다.

아아. 이래서 내가 인즈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거야.

구하이의 작은 속삭임에 바이루인의 얼굴이 한껏 더 달아오른 것은 구하이만 알 수 있는 작은 일이었다.


* 후기


오늘은 겨우 전력 갖고 왔습니다.

아르바이트 가기 전에 올리고 갑니다. 9시에 부랴부랴 전력 주제를 확인해서 어떻게든 써서 올려요...

덕분에 퀄 망.... 근데 내 글은 원래 다 퀄 망이었지. 하하...ㅋㅋㅋㅋ

1/7,8 디페와 로망스 나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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