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정상적인 사람의 정의는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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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감히 아버지에게 대들어!”

“...대체 왜-...”

“아직도 요망한 입을 나불댈 것이냐?”

“...아닙니다.”

“내일 또한 약물 투여를 하겠다. 다 준비해 놓도록.”

“네.”

“...네.”


잿빛 눈을 감아 현재의 장면을 삭제시킨다. 그를 바라보고 있던 시큰둥한 표정의 이도, 자신에게 실망함에도 어리숙한 표정을 보여주고 있는 자신의 모습 모두 그의 머릿속에서 사라지도록. 건사하지 못할 뇌리들이 하나 둘씩 자리에서 빠져나온다. 순식간에 공허해져버린 마음속은 그 누구도 온전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리라. 그럼에도, 그는 눈을 떠 보이지 않는다. 많은 이들이 동경해왔던 영롱하기 그지없는 녹안을 외부로부터 보호를 위해 눈꺼풀을 떼어내지 않았다. 자신이 발을 내딛고 서 있는 가시밭길의 정확한 위치 또한 알아내지 못한 채로. 이미, 그는 머릿속에서 지워버린 지 오래였다. 당당하게 붉은 빛이 도는 바닥을 맨 발로 내딛어 자리에 대한 경의를 표한다. 앙상한 두 팔을 허공으로 뻗어 천천히 허공에 그려진 필사의 두드러지는 감촉을 손가락 사이로 느껴본다. 예술의 경지를 넘은 필사임에도 불구하고, 촉감은 둔탁했다. 묘한 이질감, 더 이상의 끈기는 사라져버린 지 오래. 검붉은 혈로 바래져버린 두 손을 통해 허공을 문질렀다. 완벽했던 글자의 한 부분마저 흐려지고 소멸되어 버릴 때까지. 아버지가 그리도 지켜내고 싶었던 단어를 처참하게, 짓밟는다. 창백한 손가락이 지나간 자리에는 희미하게 빛나는 검디검은 선만이 존재했으며, 단어 또한 분산되어 저 멀리, 저 멀리. 한 아이의 손가락을 타고 바람의 실려 자유로움을 만끽했다. 옛 것은 붕괴되고 돌아오는 예술이 탄생하였으니, 누가 이를 거부하겠는가. 아이의 입가에 슬며시 햇빛이 앉아 일렁대는 바람의 향연을 즐긴다. 선과 선이 이어, 점과 점이 만나 탄생한 아이의 본질. 동그랗게 생긴 눈, 볼을 찢어놓은 듯, 끝이 보이지 않은 올라간 입 고리. 그리고 입 고리를 팽팽하게 잡아당기고 있는 두 손가락. 자신의 손가락.


‘쯧, 쓸모도 없군.’

‘소문 들으셨어요? 그 도련님이...’

‘비정상적인 아이잖아요. 우리가 이해하죠. 뭐, 별 수 있나요.’

‘그 도련님은 좀... 그래요, 하여튼.’


눈을 떴다. 새빨갛게 물들어버린 녹안은 쉽사리 정신을 차리지 못해 어지럼증을 동반한다. 그럼에도, 그는 억지로 그에게 비춰진 새로운 세상에 녹아들기를 바라며 억지로라도 눈꺼풀을 들어올린다. 시야를 확보하자마자 주위로 보이는 검붉게 굳어버린 누군가의 혈과 생을 다한 생명체들이 난비하게 쓰러져 있는 회색빛 복도. 간간하게 피어오르는 탁한 연기를 보고 있자니, 드디어 그의 몸이 실감을 했다. 아무렇지도 않았던 두 손은 점차 떨려오며 주체할 수 없었고, 상체를 지탱하고 있던 하체조차 비실거리며 주저앉기를 바라고 있었으니. 이곳은 전투를 벌이고 보여 지는 처참한 흔적에 불과했다. 그는 오직 전투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한 사람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음을 깨달았을 때, 본 위치에 있었던 입 고리가 슬며시 올라가기 시작했다. 알 수 없는 쾌감. 묘한 성취감이 그의 몸을 감싸 안으며 성배를 들자 권한다. 붉은 액체로 그려진 참혹함 속에서. 정체불명의 손이 그에게 권했다. 그가 이를 말릴 수 있을까? 그는 마른 침을 삼키며 후들거리는 손을 꾹 쥐어 보였다. 한 때는 밝게 빛나던 눈동자는 탁하게 변질되어 바닥만을 향했고, 그의 입 고리 또한. 그러자 검푸른 머리칼, 진주 같은 백안. 창백한 피부를 더불어 앙상하기 짝이 없는 팔로 푸른색 확성기를 들고 있는 사내가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대화를 청한다. 검정색과 푸른색의 조화로 어우러진 전투복으로 몸을 덮고서는 그와 맞지 않는 태도. 속내를 전혀 알 수 없는 무표정의 가면을 쓰고서는 실실 웃음을 보이고 있는 그가 영 못마땅했는지 한숨을 푹 내쉬어보였다.


“너, 괜찮은 거 맞아?”

“...응, 왜?”

“오늘따라 정신 못 차리고 있잖아. 정신 차려. 지금 전투 중인 거, 잊었어?”

“당연히 안 잊었지. 어떻게 잊어.”

“그런 얼굴이라 그렇지.”

“...아닌데.”

“...아무튼, 오늘이 날인 건, 당연히 기억하고 있겠지?”

“응?”

“네 아버지 뵈러 가는 날.”

“...아, 하하. 내가 그걸 어떻게 잊을 수 있겠어, 형.”


오늘이 그것을 보여드릴 처음이자 마지막 날이 될 텐데. 그이가 웃음을 보인다. 끔찍하게도 잔인한 웃음을 보여주었다. 비릿한 혈의 향이 온 몸을 감돎에도 불구하고 밝은 웃음만을 요구했다. 아아, 아버지, 저는 언제나 아버지의 아들인 사실을, 잊지 않으셨길 바라요. 그러지 아니하다면, 제 놀이가 재미없어지기 마련이니. 자신의 구원자를 향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약간 끄덕인다. 복잡적인 의미가 담겨 있겠다만, 그이는 멍청하게도 알겠다는 뜻으로 이해한 모양인지, 성치 않은 표정으로 답장을 보냈다. 활기참을 상징하는 주황 머리칼을 휘날리며, 앞으로 전진 했다. 홀로, 적진의 심장으로 달려가 아름다운 선물을 선사해줄 예정이니. 그의 오른손에는 작디작은 선물이 포장되어 있었다. 작지만, 그 무엇보다도 위력이 강력한, 폭탄. 참으로 광대다운 발상이 아닐 수 없었다. 그의 발걸음을 가로막는 생 없는 초라한 물체들은 처참하게 그의 발굽 아래로 짓밟혔다. 언제나 그와 아버지를 향한 자리는 뚫려 있어야만 했다. 그래야, 그래야 자신이 그토록 보여주고 싶었던 축제를 즐길 수 있도록 만들 수 있지 않겠는가. 아아, 아버지. 기대해도 좋습니다. 그간의 가르침을 끊임없이 생각해 고안한 마지막 선물이니까요.


그의 얼굴이 보인다. 그렇게도 보고 싶지 않았던, 고위 간부의 얼굴이 드러나고 있다. 저 만치에서, 몇 걸음도 되지 않은 거리에서 벽의 한 파편이 그들의 앞길을 가로막은 채로 묵묵히 서 있다. 그럼에도, 그는, 제미니는 웃었다. 광대의 무대가 막이 올랐다. 아버지에게 보여드리는, 황홀하기 그지없는 춤.


“아버지, 안녕하신가요.”

“...”

“제가 오늘 선물을 준비했어요, 아버지.”

“놓아라. 너는 언제나-.”

“혁명군의, 광대. 저는 광대입니다, 아버지. 하하!”


제가, 오늘 이 자리에서 진정한 정상적임을 보여드리죠, 아버지. 제가, 보여드리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정상적인 사람의 정의입니다!”


이 자리에서, 이 영광스러운 자리에서 정의를 보여드리겠습니다!

404 ERROR 《에러 뜬 종이의 혁명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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