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캐붕주의
  • 급전개 주의
  • 오탈자 점검 x
  • 가볍게 즐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이무기 고죠 x 제물 이타도리

“윽, 우웩…”


이타도리는 피를 토해내었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다. 온 몸의 뼈가 바스라진 것 처럼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아니, 버스가 가드레일을 박고 절벽 에서 떨어진 것 치고는 그정도야 경상일지도 몰랐다. 이타도리의 눈 앞에는 불과 10분 전만 하여도 수학여행에 신이 나 재잘거리던 친구들은 고깃덩이들로 변해 나무와 바위에 치덕치덕 자국을 남긴채 죽어있었다.


“욱, 우으…!”


 이타도리는 공포와 절망, 그리고 슬픔에 울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죽어가는 몸을 어떻게든 살리려던 정신은 이타도리를 깨진 창문으로 나가라고 손과 발에 명령하고 있었다.

 이타도리는 천천히 천천히 버스에서 몸을 내밀었다. 깨진 유리 조각이 몸이 찔리고, 스쳐가 고통을 자아내지만 이타도리는 멈출 수 없었다. 살아 남을 것이다. 살아 남아서, 알려야 했다. 떨어지기 전 도로에 일어난 하얀 안개와, 갑작스럽게 웃음을 멈추지 못한 버스 기사. 이것은 단순한 사고가 아닐 것이다. 이타도리의 사고가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큭, 크으…!!”


 불과 몇 m. 이타도리가 자신의 자리에서 바깥까지 기어나온 거리의 차이였다. 하지만 그만큼의 움직임조차 이타도리의 생명의 불씨를 꺼뜨리는 듯 빠르게 체력을 빼앗았고 이타도리는 점점 시야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죽으면, 안 돼. 죽기… 싫은데…’


 이타도리는 풀숲에 손을 뻗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힘을 내야하는데. 이타도리는 곧 풀숲이 흔들리는 것을 보고 눈을 감았다. 눈이 감기는 것과 동시에 희미하게 닫히지 않은 청각으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녀석 희미하게 숨이 붙어 있습니다.”


“이 분이다. 산신님께서 선택한 제물이.”


“얼른 데려가! 죽게 두면 안 된다!”


* * *


 이타도리는 머리가 아플 정도로 달콤한 향을 맡으며 눈을 떴다. 까슬한 다다미 바닥, 그 위에 깔린 부드러운 이불, 이타도리는 그 위에서 하얀 기모노를 입은 채 눈을 떴다.

 온 몸에 난 상처들을 통한 고통은 대부분 사그라져 있었다. 대학병원에 가서도 장기입원을 각오해야 하는 중상이었음에도 붕대와 거즈가 붙어 있긴 했지만 고통도 핏자국도 남아 있지 않았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자리에서 일어난 그 순간에도 고통은 없었다. 이타도리는 신기해서 몇 번이나 그 자리에서 몇 번이나 뛰어보았지만 근육이 당기는 느낌만 희미하게 들 뿐, 그 사고가 거짓말이라는 듯 멀쩡했다. 금방이라도 죽어가는 몸이 멀쩡해지자, 이타도리는 그재서야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여긴..”


 사방이 뻥 뚫려 있고 격자무늬의 두꺼운 나무기둥이 견고하게 들어온 사람의 탈출을 막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일반 미닫이문이 한번더 둘러싼 방속의 방이었다.

 그것을 제외하면 이타도리가 누워 있던 이불 세트와 키가 낮은 탁자, 그리고 물병으로 보이는 둥근 원통형의 도자기 그릇이 있었다. 마치 최대한의 접촉을 줄이기 위해서라는 듯 살기 위한 최소한의 도구들만을 제외한다면 이곳은 그저 깨끗한 감옥에 가까웠다. 

 곧, 이타도리의 귓가에 작은 소음이 들려왔다. 이타도리의 인기척을 들은 것일까, 사람의 발소리로 생각되는 것이 점점 더 커져왔고 곧 정면의 미닫이문이 부드럽게 열리며 고개를 푹 숙인 늙은 노인이 들어왔다.


“일어나셨습니까.”


“아, 네. 그러니까 절 살려주신..?”


“예. 그 참담 속에서 유일하게 숨이 붙어 계시기에, 이리 급하게 데려왔습니다. 저는 야마모토 유키치라고 합니다.”


 참담. 이타도리는 그 끔찍하던 광경을 다시 떠올리며 작게 침음했다. 아주 약간이나마, 자신 말고도 다른 생존자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사라졌다. 그래도, 이타도리 자신이라도 살아남았으니 그나마 천운이 따라준 것이겠지. 이타도리는 곧장 머리를 숙여 야마모토라는 노인에게 인사를 건냈다.


“전 이타도리 유지라고 합니다,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아뇨, 오히려 감사는 이쪽에서 해야 합니다. 제물님.”


 이타도리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물? 그러고보니 버스에서 탈출했을 때에도 들었던 말 같았다. 제물이라니. 흔히 게임이나, 동화에서 나오는 그 괴물에게 받혀지는 사람의 이야기가 아닌가. 과학이 발전한 지금 그런 미신들은 다 없어졌다고 들었는데. 이타도리는 설마하는 마음으로 입을 열었다.


“저기, 제물이라뇨? 제가요?”


“예. 그 참담에서도 목숨을 건진 것은 분명 ‘고죠신’님의 축복 덕분일 겁니다.”


“고죠신이라니..”


“저희 마을에서 모시는 신입니다. 기적을 일으키시고, 저희를 굽어 살피는 신이지요. 하지만 그분의 축복은 무한한 것이 아니기에, 저희는 축복을 받은 인간을 제물로 받쳐 그 영험한 축복을 다시 환원 받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축복을 받은 사람이 바로 당신입니다. 어찌 이렇게 부러울 수가.”


 이타도리는 머릿속이 멍해졌다. 아무리 자신이 성적이 낮다고 하여도 지금 저 할아버지가 말하는 말이 어떠한 의미를 내포하는지는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살아남은 것은 그 고죠신이라는 신 덕분이고, 그 신에게 자신을 받쳐 다시 행복을 누리겠다, 뭐 이런 의미였다.

 아무리 좋게 해석해보려고 해도 결국 자신을 제물로 받친다는, 이미 구닥다리가 되어버린 인신공양을 아무렇지도 않게 운운하고 있던 것이다. 이 노인은. 이타도리는 그 사실을 알자마자 바로 소리쳤다.


“그게 무슨 소리에요! 도와준 건 감사하지만, 전 집으로 돌아가야 해요! 친구들이, 선생님이 죽은 대형사고라고요!”


 이타도리는 친구들의 시체를 떠올리며 간절하게 외쳤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자신이 제물이니 뭐니에 발이 묶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야마모토는 그 말에 매우 단호하게 말하였다.


“안 됩니다.”


“어째서!”


“이미 당신이 제물로 정해진 이상, 고죠신님께서 내보내주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까, 그 놈의 고죠신이 뭐라고 절 이렇게 붙잡는 건데요..!!”


 야마모토는 입을 다물었다. 물 흐르는 듯 자연스럽고, 또한 정중하게 몸을 일으켜 등을 보일 뿐이다. 이타도리가 열심히 노인을 불러보지만 그는 뒤돌아보지 않았고 그 상태로 곧 “식사를 가지고 오겠습니다.”라는 짧은 말과 함께 방을 떠났다. 결국 이타도리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머리를 헝클이며 혼란스러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도대체 뭐냐고..”


*  *  *


 이타도리가 방에 갇히고 대략 3일이 지났다. 창문도, 시계도 없으니 대략 이타도리의 체감상의 느낌으로 판단한 것이다. 그동안 이타도리는 이 집의 구조 전체는 아니어도, 대략 어떠한 구조인지 알 수 있었다. 먼저 아침에 일어나면 세숫대야에 물을 담아 준다. 그것으로 간단한 세안을 하고 식사를 한다. 그 이후에는 계속 달큼한 냄새, 이제는 코가 완전히 익숙해진 향을 피운다.


‘그보다 특이한 향이네.’


 보통 향이라고 하면 디퓨저처럼 액체 위에 막대를 꽂아두거나, 혹은 피워서 향을 내는 두 종류가 있다. 적어도 이타도리는 그 두 종류를 많이 접해왔다.

 하지만 이 향은 둥그렇고 납작한 모양이었다. 푸른색의 여러각도에서 무지개색으로 빛나는 것 같기도 한, 뱀이나 생선의 비늘 같았다. 이것이 불꽃에  타오르자 몽롱한 향을 풍겼다.


‘…지금은 향이 중요한 게 아니지.’


 이타도리는 고개를 들고 문쪽을 바라보았다. 아침 식사가 끝나면 그 이후로 아무것도 시키지도 않고 점심시간을 기다린다. 점심을 가볍게 먹은 후에는 향을 바꾸는데, 그 향에는 수면을 유발하는 향을 냈고 자고 일어나면 어느샌가 저녁 식사가 도착해 있다. 그것까지 먹고 나서야 유일하게 그 방을 나갈 수 있는 시간이 생긴다, 바로 목욕 시간. 반드시 하루에 한 번, 미끄러운 듯 향기로운 물에 들어가 몸을 천으로 얼굴을 가린 여성들에게 씻겨진다. 그리고 다시 방에 데려와져 그대로 밤을 보내는데, 이타도리에게는 그 목욕시간이 기회였다. 그때만큼은 항상 문 앞을 서성이는 기척이 없기 때문이었다.


“더 이상은 미룰 수 없어.”


 이타도리는 저녁식사를 마치고 마음을 굳게 먹었다. 힘과 재빠른 다리라면, 자신 있었다. 과장된 표현이라면 총이라도 가지고 오지 않는 이상 따라잡히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이타도리는 고분고분하게 기모노를 정리하며 자신을 데리러오는 사람들을 기다렸다.


“실례하겠습니다.”


 그들의 등장은 그리 늦지 않았다. 눈에 천을 두른 자들은 고개를 푹 숙이고 인사를 건낸 후 이타도리에게 다가왔다. 이타도리의 어깨를 아프지 않을 정도로만 잡아 눌러 목욕탕으로 안내한다. 아무리 좋은 집이라 하여도 작은 마을에서 지을 수 있는 집에는 한계가 있다. 창문 넘어 복도에는 달빛이 희미하게 스며들어온다. 이타도리는 정원과 이어진 문을 힐끔힐끔 확인하며 침을 삼켰다. 곧, 얼굴을 전부 가린 여성들이 머리를 숙이고 있다. 그녀들이 일어나 이타도리가 인계되는 그 짧은 틈, 그 틈을 이타도리는 노렸다.


“꺄악!”


“으악!”


 자신에게 닿은 팔을 전부 거칠게 쳐내며 이타도리는 달렸다. 곧장 미닫이문을 열 틈도 없다. 그대로 발로 차 멀리 뻥 차버리고 버선만 신은 발로 정원을 달려 담장을 훌쩍 뛰어넘었다. 자신의 등 뒤에서는 “어디가시는 겁니까!” 와 “돌아오세요!”라는 간절한 외침이 들려왔지만 그것에 ‘아, 예. 죄송합니다.’하고 돌아갈 정도로 이타도리는 멍청하지 않았다. 이타도리의 인기척이 점점 멀어지고 나서야 그들은 곧 큰 소리로 “제물님께서 도망가셨다!!” 라고 소리쳤고 이타도리는 그 소리를 기점으로 더욱 빠르게 도망가기 시작했다.


“헉, 헉..”


 이타도리는 산 속을 해쳐나갔다. 아무리 발이 빠르다 해도, 외부인인 자신과 현지인인 그들, 누가 더 빠르게 길을 막을 수 있는 지는 뻔했다. 그동안 숲을 해매며 기모노가 더러워지고, 발이 까졌다. 게다가 몸을 심하게 움직인 탓인지 상처들이 점점 더 욱신거리며 아파오기 시작했다. 


“도대체, 왜 내리막길이 안 보이는 거야!”


 이타도리는 아파오는 상처를 붙잡고 실증이 날 정도로 푸른 풀들을 보며 소리쳤다. 대충이긴 하지만 2시간 정도 올라왔다. 그리 가파른 산처럼 보이지도 않았고, 잘만 하면 빠져나갈 수 있겠다는 희망이 시간이 지날수록 상처와 함께 꺼져가고 있다.

 이타도리는 등 뒤를 바라보았다. 벌써 숲 속을 뒤지기 시작한 것인지 멀리서 빛무리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타도리는 작게 욕을 내뱉고는 다시 숲 속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악!”


 인간에게 시야가 잘 보이지 않는 다는 것은 커다란 문제이다. 장애물이 어디에 있을지 모르니, 갑작스러운 상처에도 속수무책일 것이다. 이타도리는 자신의 허리깨를 스치는 날카로운 나뭇가지에 비명을 질렀다. 이타도리는 그 자리를 기억하고 있다. 유리조각이 박혔던 오른쪽 상처. 가장 더디게 낫고 있던 상처였다. 그 치명상이 곧 기모노를 젖게 만들었다. 스물거리며 흘러나오는 피냄새가, 이타도리의 코를 찌를 정도로 강렬했다.


“하아, 하아..!”


 일단 상처 지혈이 먼저다. 죽어버리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간다. 이타도리는 적어도 달빛이 잘 드는 곳을 찾기 위해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곧 저 멀리서 희미하게 폭포 소리 같은 청량한 소리를 쫓아 그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 계곡까지 가는데 이타도리는 정말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었다. 피냄새를 맡고 멧돼지나 곰 같은 야생동물들과 마주치면, 정말로 죽을 목숨이었는데 다행히 벌레 하나 마주치지 않고 계곡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타도리는 곧장 오비를 풀었다. 기모노가 젖은 것을 보고 예상은 했지만, 거즈와 붕대 전부 새빨갛게 젖어 있었다.


“으윽, 으..!”


 이타도리는 온 몸에 전기처럼 흐르는 고통을 참으며 붕대와 거즈를 풀어내었다. 찢어진 상처에서는 피가 도끼에 찢긴 나무 마냥 흘러나오고 있었고 이타도리는 계곡의 물로 씻어내었다. 자신의 상처를 자신이 씻는 것 만큼 괴로운 일이 또 있을까. 이타도리는 어금니를 꽉 깨물며 상처부위를 씻어내었고 붕대를 돌려 상처를 지혈하였다.


“하아..”


 일단 급한 불은 껐지만, 언제까지나 여기에 쭉 박혀 있는 것도 안 된다. 이타도리는 몸을 일으켰지만 출혈량이 상당했는지 비틀거렸고 계곡 특유의 미끄러운 바닥에 몸을 가누지 못하고 그대로 넘어졌다.


“어이쿠,”


 원래라면 그대로 돌바닥에 널부러져야 했을 이타도리의 몸을 누군가가 받아내었다. 부드럽고, 탄탄하다. 어느정도 단련된 사람의 몸. 하지만 이상하게시리 싸늘한 체온. 이타도리는 눈을 떠 그 사람을 확인했다.


“...와,”


 피를 너무 많이 흘린 탓일까, 자신을 붙잡아 준 사람에게 손을 뻗었다. 어쩌면 마을의 인원일지도 모름에도 불과하고. 그정도로 그 남자는 아름다웠다. 구름처럼 새하얀 머리카락과, 푸른 하늘을 그대로 굳힌 듯한 푸른 눈동자, 그 안에는 세로로 찢어진 동공이 신비로움을 자아내었다. 달빛 때문인지 원래 그런 것인지 창백할 정도로 빛나는 피부에 이타도리가 무의식적으로 손을 얹자 아무 표정도 없는 남자의 얼굴에 웃음이 깃든다.


“내 얼굴이 마음에 들어?”


 목소리조차 귓가를 녹이는 듯한 매혹적이다. 이타도리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고 남자는 살며시 미소 지어 보였다.


“그거 다행이네. 몸이 안 좋다면 잠깐 쉬어도 괜찮은데.”


 남자가 몸을 숙인다. 이타도리는 사양하려고 “전 괜찮습니다.”라고 말하며 몸을 일으키지만 몸에 들어간 힘이 전부 상처로 흘러내려가는 느낌에 다시 주저앉으려던 것을 남자가 부드럽게 안아들어 무릎에 이타도리의 얼굴을 올려놓았다. 


“괜찮으니까 쉬다 가렴.”


 아이를 달래는 듯한 상냥한 목소리와 어울리 않게, 자신을 붙잡는 손에는 힘이 들어가 있다. 분명 거절하고 벗어나야 했지만 그의 품은 포근함과 아늑함, 마치 자신이 돌아와야 하는 집처럼 따스했다. 부드럽게 그가 머리를 쓰다듬으면 흔들리는 옷자락에서 희미하게 향기가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마음과 몸의 긴장이 풀리고,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하면서, 잠이 들 것 같은…


 갇혀 있던 방에서, 지독할 정도로 맡아온 향이었다.


* * *


“… 윽!”


 이타도리는 강렬한 매스꺼움에 눈을 떴다. 금방이라도 토할 것 같은 기분에 입을 가린채 몸을 일으켰고, 눈동자에 비치는 것은 새하얀 이불이었다. 


‘이불? 설마!’


 이타도리는 고개를 들고 주변을 살펴보았다. 자신이 이곳에 와서 쭉 머물었던 나무 창살이 있는 다다미 방이었다. 

 도대체 언제 이쪽으로 끌려온 것일까, 이타도리는 기묘한 남자의 품에서 잠들어버린 자신을 욕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윽!”


 하지만 일어서는 순간 이타도리는 주저 앉을 수 밖에 없었다. 옆구리의 상처 때문이 아니었다. 기분 나쁜 고통은 그것보다 아래에 있었다. 이타도리는 새하얀 기모노를 치우며 자신의 발목을 바라보았고, 그곳에는 발목 뒤를 날카로운 무언가로 그어버린 흔적이 남아 있었다.


“실례합니다.”


 이타도리의 비명을 들은 것인지 지긋지긋하게 자신에게 예의를 차리던 야마모토라는 노인의 목소리었다. 

 그들은 이타도리의 허락도 없이 문을 열었고, 곧 이타도리는 ‘한 쪽 눈이 없는’ 그 노인과 시종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 당신들, 어째서 눈이..”


“고죠신 님의 벌입니다. 제물을 도망치게 두었다는 것과, 당신의 몸에 상처를 나게 한 것에 대한 벌이지요. 하지만 괜찮습니다. 그 분은 자비로우신 분이기에 우리 마을의 사람들의 오른눈으로 모두 용서해 주셨으니까요.”


“뭐, 마을…? 그렇다면 마을 사람들 전체가 지금!”


“괜찮습니다. 당신만 있으면 고죠님은 곧 용이 되실 겁니다. 그러면 마을의 모든 질병과 고통은 사라질테죠.”


 이타도리는 입을 열고 있었지만,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지금 겨우 자신이 도망친 것 가지고 신이라는 작자가 마을 사람들의 눈을 하나씩 다 뽑아갔다는 것인가? 그동안 자신을 모셔온 마을의 사람들을?


‘재앙신이잖아…!’


 이타도리는 이를 바득 갈았다. 자신이 그딴 성격 나쁜 신 따위에게 받쳐진다고 생각하니 공포가 샘솓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타도리는 약간의 죄책감은 느꼈다. 자신이 도망친 탓에 마을 사람들, 대충 어림 잡아도 50구 정도 되어 보이는 마을 사람들의 한쪽 눈이 사라졌다고 생각하니 약간이나마 죄책감이 들었다.


“말해주세요. 도대체 고죠신이 뭡니까? 또 용이라느니, 그런 건 또 뭐고요.”


“그건….”


 야마모토 노인은 얕게 침음하였다. 자신을 따라온 시종들을 번갈아 보고, 이타도리를 바라보았다. 텅 비어버린 오른쪽 눈과 이타도리의 눈이 마주치자 이타도리는 본능적으로 기분나쁘다는 느낌을 받았다.


“… 고죠신 님은 이무기입니다.”


“이무기요? 제가 아는, 그 뱀이 오래 살아서 되는

용의 진화 전 단계…?”


“그렇습니다. 이무기는 신통한 힘을 다루며 오랜 세월동안 도를 닦아 깨달음을 얻어 용으로 승천하지요. 하지만 고죠신님은 다릅니다.”


“고죠님은 우리 마을 사람들을 어여삐 여겨, 오래 전 홍수가 나 한 아이가 물에 빠져 죽을 뻔 한 것을 사람에게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는 규율을 깨고 도왔습다. 그래서 결국 고죠신님은 용으로 승천할 수 없게 되었지요.”


 이타도리는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지금까지 들으면 아주 좋은 이야기었겠지만, 정말로 그가 선한 신이었다면 제물을 요구하지도, 마을 사람들의 눈알을 뽑아가지도 않았을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고죠신님께 매우 감사해 하였습니다. 앞으로 마을을 위해 힘써달란 의미로 제사를 올리고 무녀를 보내 춤을 추게 하여 이 마을에 머물게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하지만 고죠신님은 반응하지 않으셨지요.”


“… 그래서요?”


“긴박해진 마을 사람들은, 제물을 받치기 시작했습니다. 단순히 곡양, 가축, 비단 같은 것들로 시작하였지만…. 누가 상상이나 하였겠습니까, 과일 바구니에 아이가 들어가 있을 줄은.”


 호흡이 잠깐 동안 끊긴다. 노인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고 이타도리는 어느샌가 그 이야기에 빠져든 듯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 상자는 안에서도, 겉에서도 열 수 없습니다. 신께 받치는 것을 산짐승들이나 인간이 쉽게 손을 대면 안 되었으니까요. 그게 화근이었지요. 아이는 굶어 죽었지만, 그와 동시에 고죠신님이 나타난 겁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10년에 한 명 사람을 받쳐라, 덜도 말고 더도 말고 딱 100명을 받치면 물러나겠다. 그때까지 이 마을을 수호해 줄 것을 약속한다.’라고요. 그게 벌써 999년 전입니다.”


“그러면, 나는….”


“당신은 마지막 100번째 제물입니다. 이타도리 유지님.”


 처음으로 제물이나 당신이 아닌 이름으로 불렸다. 하지만 이타도리는 결코 웃을 수 없었다. 어째서 마을 사람들이 이렇게 철저하게 자신을 가두는지 이제야 이해가 갔다. 마지막 제물, 더 이상 사람을 받치지 않아도 된다. 신이라는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는 마지막 제물이 운 나쁘게도 자신이었던 것이다.

 노인은 작게 숨을 고른 후 나지막하게 말하였다. 매우 정중하였지만, 이타도리에게 그 노인의 한 마디 한마디가 공포로 다가왔다.


“당신의 몸에 상처를 낸 것은 정말 대단히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신님을 만나는 것에 두려워 할 필요 없습니다. 그 분 께서는 당신을 아주 마음에 들어 하시고 계시니까요….”


 노인은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 고개를 푹 숙인 뒤 문을 닫았다. 이타도리는 나가는 그를 보고 마지막 발악으로 풀어달라, 내보내달라 라고 외쳐보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주위는 다시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이타도리는 주저 앉은 채로 발목에 난 상처를 울상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


 다음날, 이타도리는 평소와는 다른 소란스러움을 느꼈다. 문풍지 넘어 사람들이 오가는 것이 보였고 뭐라 말하는 것인지 들리지는 않았지만 쉴 틈 없이 바삐 움직이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이타도리는 이불에서 나가지 않고 있었다. 나가고 싶어도 나갈 수 없었다. 발목이 그 지경이 되었기에 어기적 거리며 걷는 것은 가능했지만, 더 이상 남은 희망도 없었기에 일어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실례합니다.”


 그런 이타도리를 일으켜 세운 것은 언제나 목욕을 시켜주던 여인들이었다. 평소와 다르게 축제에서나 볼 것 같은 화려한 기모노를 걸친 채 이타도리에게 인사를 건내었다.


“… 오늘 무슨 축제날인가요?”


“… ….”


 여인들은 말이 없었다. 대신, 이타도리의 겨드랑이에 팔을 끼워 억지로 일으켜 세운 후 목욕탕으로 데려갔다. 정말로 무슨 날인지, 걸어가는 길 부터 비단을 깔아두었고 목욕물에는 현기증이 날 정도로 매화향이 가득하였다.

 목욕탕에서 꺼내지면 이타도리는 정성스레 물기를 제거한 뒤 폼이 넉넉한 흰 소복을 둘렀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평소라면 다시 그 방에 돌아가야 할테지만, 목욕을 도와주는 여인들이 아닌, 또다른 여인들이 나타나 이타도리를 어느 방으로 이끌었다. 이번에는 비단길에 이어, 꽃잎들이 흩뿌러져 있다. 튤립인지, 장미인지, 아니면 또다른 붉은 꽃잎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어쨋든 축복을 해주는 것 같았다.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어느 방에서 홀로 남겨진 이타도리는 익숙하지 않은 긴장감에 몸을 뻣뻣히 굳혔다. 여전히 사람들은 바삐 움직이고, 그 그림자를 보며 이타도리는 주변을 두리번 거리고 있었다.


“실례할게.”


 문이 열리고, 이타도리의 눈동자에 눈에 띄는 백발이 들어왔다. 다른 사람보다 키가 크고, 화려한 기모노를 걸친 그 남자. 이타도리는 그 모습을 어둠속에서 보았지만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형은…!”


“안녕, 유지.”


 남자는 발 소리 하나 내지 않고 이타도리의 곁에 다가선다. 축축하게 젖은 머리를 쓰다듬고, 이타도리의 어깨를 잡아 부드럽게 자신쪽을 바라보도록 돌렸다.


“…형도 마을 사람이었군요.”


“일단은. 하지만 곧 나갈 예정이야.”


“나가요?”


“그래. 드디어 내가 원하던 것이 손에 들어오거든.”


 남자는 아주 행복한 듯 웃으며 이타도리의 옷깃을 매만지며 정리하였다. 분명 옷깃을 정리하는 것 뿐인데, 살짝씩 닿는 고죠의 손길에 이타도리는 몸이 뜨거워지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리고, 또다시 정신이 몽롱해지는 것 같은 향이…


“잠깐 일어나보련.”


 이타도리는 멍하니 남자의 말에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분명 일어나면 찢어진 다리가 아파야 했는데 전혀 아프지 않았다. 남자는 그런 이타도리의 위 아래를 쭉 살피더니 ‘품에서’ 화려한 기모노를 꺼내었다. 그것은 마치 고전 연극용 의상 같았다. 이름을 붙인다면… 푸른 뱀. 그래, 그것이 딱 어울렸다. 흰색에서 푸른색으로 물든 비늘들이 마치 실처럼 연결되어 희미한 빛에도 보석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후후, 어울리네.”


 남자는 이타도리에게 기모노를 대어보며 작게 웃었다. 그리고 이타도리에게 걸쳐주며, 차곡차곡 이타도리에게 옷을 입혔다. 입히는 방법은 여성의 기모노와 같이, 순백색의 오비를 둘러 단단히 조인다.


“자, 이제 화장을 하자.”


이타도리를 다시 앉힌 남자는 색조 화장품들을 잡았다. ‘진한 화장은 아무래도 냄새가 강해서 싫어.’라고 중얼거린 남자는 이타도리에게 아주 연하게 분을 올리고, 눈썹을 그려주며, 연분홍빛 연지를 새끼손가락에 묻혀 이타도리의 입술에 문질렀다.


“눈동자…”


“응?”


 남자의 손가락이 멈춘다. 이타도리는 남자의 눈가를 쓰다듬으며 말하였다.


“예쁘네요.”


“…고마워.”


 남자는 곧 이타도리를 잡아올렸다. 그리고 들어온 방향의 반대쪽 문을 열었고, 소란이 잦아든 복도에 나와 새빨갛게 물든 비단길을 걷고 걸어 산을 오른다.

 그동안 모든 사람들은 이타도리의 등 뒤에 서서, 단 한명만을 앞세워 걸어갔다. 하지만 이 남자는 이타도리와 나란히 걸으며 꽤나 가파른 산을 가볍게 오른다.


“궁금했지? 산을 올라도 올라도 끝이 나오지 않던 이유.”


“… ….”


 향에 취한 듯 몽롱하던 이타도리의 대답을 들을 세도 없이 남자는 혼자 신이 난 듯 말한다.


“이 마을은 숨겨졌거든. 내 마음대로 나타나게 할 수도, 숨길 수도 있어. 내 영역범위라면 어떠한 일도 일으킬 수 있지. 설령, 버스 추락 사고라던지.”


“… ….”


“유지를 보고 정말 놀랐어. 내가 도와준 아이…. 그 아이와 아주 닮은 얼굴이었거든. 그동안 얼마나 찾아 헤맸는지를 몰라. 왜인지 알아?”


 기모노를 입고 산을 오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남자는 이타도리에게 손을 내밀었고 이타도리는 그 손을 잡고 도움 딛기로 바위를 올랐다. 아파야 할 발목 따위, 어떻게 되어도 좋다는 듯.


“그 애가, 내 신력을 가져갔어. 원래라면 불가능 하겠지만, 그 아이는 그릇이었던거야! 아, 그릇이 뭔지 모르지? 쉽게 말해 반려와 비슷한 거야.”


“반려…”


“그래. 신의 힘을 담을 수 있고, 신의 아이를 품을 수 있는 아주 희귀한 인간. 아주 귀중한 존재였지. 나와… 약혼까지 한 사이였어, 유지는. 그 간사한 인간들에게 속아 상자에 들어가지만 않았어도.”


 곧, 가까운 곳에서 차가울 정도로 시원한 물소리가 들려온다. 바다의 파도소리, 아니 그것은 폭포가 떨어지는 소리였다. 하지만 얼마나 거대한 것인지 파도소리로 착각할 정도로 소리가 컸다.


“하지만 유지는 상냥하니까, 그들을 욕하지 않겠지. 이번에도 그래. 내가 눈을 파버렸는데도 자신을 자책했잖아? 그런 유지에게 물을게.”


 딱, 남자의 손가락이 서로 부딪치며 소리가 났다. 몽롱하던 이타도리의 정신이 퍼뜩 들며, 곧 한 발자국만 앞서나가면 떨어져 시체조차 찾이 못할 것 같은 깊고 높은 계곡을 보고 기겁하며 물러났다.


“유지가 죽을래, 아니면 마을 사람들을 희생할래.”


“뭐, 뭐?”


 이타도리는 무슨 소리냐는 듯 남자를 바라보았다. 이런 시끄러운 폭포소리에서도 남자의 말은 똑바로 전달되었고, 실수로라도 떨어지면 죽는 데도 남자는 겁 없이 절벽의 끝에서 이타도리에게 묻고 있었다.


“유지가 죽으면 난 용이 될거야. 마을에 건 저주도 사라지겠지. 다친 눈도 돌아와. 하지만 그 누구도, 이 이 세상 어느 사람들도 네 존재를 기억하지 못해. 제물이 된다는 건 그런 거야.”


“그런….”


“반대로 마을 사람들이 죽으면 유지는 살 수 있어. 하지만 반대로 유지는 모든 것을 망각하겠지. 가족에 대한 것, 친구에 대한 것, 마을에 대한 것. 모두 망각한 상태로 내 신부가 되는 거야.”


 이타도리는 할아버지와, 선생님, 그리고 친구들을 떠올렸다. 이타도리는 사고가 난 그날 친구들의 비정상적인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어떻게든 살려고 발버둥 쳤다. 하지만 지금 자신또한 죽음의 갈림길에 섰고, 산다는 것을 선택한다면 친구들과 선생님은 영영 의미 없는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자신이 죽는다면….


“결정했어?”


 유지는 주먹을 세게 쥐었다. 죽음은 두렵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지금, 이타도리를 걱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고, 불쌍하게 죽어나간 친구들은 이 세계에 남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사태를 일으킨 고죠신. 그 악신으로 인한 희생이 단 한사람으로 끝낼 수 있다면. 그렇다면 답은 뻔했다.


“정했어.”


이타도리는 남자와 마주섰다. 매섭게 떨어지는 물줄기가 얼마나 센 것인지, 위에 있는데도 땅이 울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이타도리는 남자를 올려다 보았다. 


“난, 나의 죽음을 선택하겠어. 나만 사라진다면, 마응 사람들도 친구들도 그리고… 고죠신님 당신도 용이 되어 행복해질 거 아니야.”


 그리고 이타도리는 폭포 밑으로 몸을 날렸다. 몸은 빠르게 떨어져, 물에 부딪치는 순간 사지가 분해되고 떨어지는 폭포의 수압에 의해 갈갈히 찢기겠지. 하지만, 그럼에도 마을 사람들이, 친구들이 남을 수 있다면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다. 

…그렇게 생각했다.


“틀렸어, 유지!”


 순간 이타도리의 몸이 무언가에 휘감긴다. 까끌까끌하고, 차가운 듯 미지근하다. 눈을 떠 그것을 확인한다면, 그것은 푸른색과 흰색이 오묘하게 섞인 뱀의 몸통이었다. 


“네 친구들도, 마을 사람들도 전부 내가 먹었어!


 쾅!

커다란 물줄기가 흩뿌려진다. 이타도리는 뱀의 비늘로 물 한방울 튀기지 않았고, 곧 뱀은 먹잇감을 붙잡은 듯 이타도리를 더욱 강하게 조였다.


“아, 아악…!”


 이타도리의 비명이 산에 울려퍼지는데도 다가오는 이는 없다. 그저 우뚝 선 나무들이 흔들릴 뿐이다.


“인간을 한번이라도 맛 본 이상, 어떻게 하든 간에 이무기는 용은 될 수 없어.”


 고죠의 말에 따라 뱀들이 기어나온다. 뱀들은 찢어진 눈을 빛내며 둘을 바라보고 있었고 혀를 날름거리고 있었다.


“강철이라고 알아? 용이 되다가 실패한 이무기를 가르키는 말이야. 용이 되기 글렀다면, 날 이렇게 만든 사랑스럽고 증오스러운 유지와 영원히 함께하겠어.”




이타른 버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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