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MemcTxtNv9Q


너랑 있으니까 좋아. 

제니퍼가 말했다. 달이 밝았다. 제니퍼는 침을 꿀꺽 삼켰다. 목이 자꾸 탔다. 이런 말은, 서로 사이에 처음 있었다. 센이 제니퍼의 민소매를 입어 드러난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나도.

행복하지?

지금은. 

그럼 언제는 아니야?

가끔. 나는 싸우기 싫어. 센이 중얼거렸다. 둘은 아까까지만 해도 전투의 중간에 있었다. 센의 볼에 오늘 생긴 상처가 나 있었다. 흘러내린 핏방울이 까만 눈물처럼 말라붙어 있다. 센은 보통 잘 울지 않는 사람이었다. 제니퍼가 센의 상처를 응시한다. 

나도 싫어. 그런데 계속되잖아. 제니퍼가 말하면서 센의 상처를 치료해야겠다고 생각했는지 곧 그의 머리를 어깨에서 밀어내고 일어선다. 

크리스는 어디 있어?

지금 잠들었을걸. 약 발라줄게. 우리도 구급상자 있어. 

부엌 찬장에서 그게 왜 나오는지 모를 십자가가 그려진 상자를 꺼내온 제니퍼는 뚜껑을 열고 능숙하게 연고를 찾아 면봉에 뭍힌다. 센은 얌전하게 앉아 치료를 받는다. 이런 류의 다정함은 이미 익숙해져 있다. 소독용 솜으로 굳은 피를 닦아내고 연고를 바르고 거즈를 환부에 고정하는 일련의 과정이 제니퍼의 양손 아래서 순조롭게 진행된다. 

아까처럼 앉자. 센이 반창고를 통에 채 정리해 넣지도 못한 제니퍼의 몸을 잡아당긴다. 

제니퍼는 순순히 따른다. 아직 싸우느라 긴장했던 것이 덜 풀린 모양이었다. 소파에 몸을 파묻으며 바람 빠지듯 한숨을 쉬었다. 그런 제니퍼의 어깨에 센이 다시 머리를 기대고 붙어 앉았다. 

아까 필사적이더라. 

센의 말에 제니퍼가 센을 휙 돌아본다. 그렇게 위험했으니까 당연히 걱정이 되어서 그랬던 건데 왜 그런 식으로 말하느냐는 표정이다. 전투 중 센이 제니퍼에게 날아오던 사제 하나의 공격을 기계팔로 막아냈고, 갑자기 제니퍼와 사제 사이에 끼어든 센이 다칠까 바로 그를 낚아채 제니퍼가 순간이동을 하는 해프닝이 벌어졌었다. 

필사적일 수밖에 없었으니까. 

네 쪽으로 공격이 날아오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어. 

그래, 잘했어.

난 너 위해서 죽을 수도 있다니까. 

제니퍼가 센을 째려봤다. 

말 쉽게 하지 마라. 

아까 그 새끼가 네 몸에 생채기라도 냈으면 나는 그 새끼를 죽였을 거야. 

생채기는 네가 났잖아. 제니퍼가 센의 볼을 손으로 쓰다듬는다. 센이 퉁명스레 대답한다. 말이 그렇다는 거지. 입이 댓발 나와서 중얼댄다. 내민 입에 제니퍼가 마른 입술을 짧게 맞추고, 양팔로 센의 목을 껴안고 고개를 한껏 파묻은 뒤 작게 중얼였다.

내 옆에 있어, 센 프라우드. 


그는 제니퍼 곁에 있어야만 했다. 어차피 떠날 곳도 이제는 없었다. 센은 언제 죽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며 지내온 지 오래되었다. 인간은 혼자서는 살지 못한다. 서로가 서로의 삶의 이유가 되어주기 때문에 목숨을 향유할 의지를 갖는 게 인간이란 동물이었다. 

센은 그날 대역이 되어 그대로 죽어 버릴 생각이었다. 꽤 의미있는 끝맺음이라고 생각했다. 엘사 녀석이 조금, 아니 그래도 많이 슬퍼할까 싶어 걱정이 되었지만 천성이 덤덤하니 괜찮지 않을까. 불타면서도 센은 아무 생각이 없었다. 불길 속에서 제니퍼의 얼굴이 보이기 전까지는. 제니퍼가 자신을 구하러 오는 상황을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센은 놀랐고, 제니퍼가 자신에게 살라고 소리치는 걸 보고 더 놀랐다. 선택을 방해하고 운명을 방해하고. 그전까지도 담배를 피우다 건물 옥상을 찾게 될 때, 그러니까 결국 옥상에 올라가 아득한 아래를 바라보면서 유쾌하지 못한 잡념들을 삼킬 때 제니퍼가 전화를 거는 상황이 있긴 했지만 이렇게 큰 방해는 처음이었다. 가장 사랑했던 친구와 가족을 떠올렸다.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섰을 때 이들을 생각하며 삶을 골랐던 센이었다. 이들이 살아있었다면 자신의 죽음을 원치는 않을 것 같다는 게 그 까닭이었다. 

그들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완전히 믿게 되었을 때쯤 또다시 삶의 이유가 흐려져갔다. 존재하지 않는 걸 매달릴 밧줄 삼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죽음은 너무 센에게 가깝게 느껴졌다. 때로는 따뜻하고 안락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아무도 죽음을 방해하지 않을 것 같아서 선택했는데, 그랬는데 제니퍼가 센의 삶을 붙잡은 거다. 

그 후로 제니퍼를 보면서 살아가야지라고 떠올린 적은 없었지만 센은 꼭 그래서 살아가는 사람처럼 보였다. 사랑은 삶에 갑작스러운 활기를 가져다준다. 매일 죽고 싶었지만 제니퍼의 존재 하나만으로 센은 살고 싶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여기까지 드랍함..

끝없는 달리기

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