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게 해 주오

07



 그 애는 장훈의 뒤를 쫄래쫄래 쫓아 사무실까지 쫓아 들어왔다. 이제 직원도 그 애의 방문에 익숙해졌는지 찾아오든 말든 그저 흘긋 시선만 던졌다가 말았다. 제집인 양 드나드는 군식구 하나쯤이야, 안상구에게도 이미 익숙해졌으니 잔소리할 상황도 아니었다. 그 애는 제법 자연스럽게 소파 한쪽을 차지하고 앉아 노트를 꺼내 들었다. 모니터 액정에 시선을 맞추던 장훈이 저도 모르게 그 애를 흘긋 쳐다보다가 툭 핀잔을 던졌다.


 “아직 내 업무 시간입니다.”

 “오늘 칼퇴해요?”

 “일 읎으믄요.”


 직원이 흘긋 장훈을 쳐다보았다. 장훈이 턱짓하자 직원은 서류 몇 장을 팔락이며 넘기더니 예의 똑 부러지는 투로 대꾸했다.


 “오늘 온다고 따로 상담한 분은 안 계신데요. 오늘 김 쌤이 세 시에 온다 캤는데 그거는…….”

 “그거 내일로 미뤘어요. 내한테 전화해가.”

 “그럼 별일만 안 생기믄 칼퇴 되죠. 근데 검사님, 그 아무리 요즘 일이 없다고는 해도 사무실이 너무, 좀……. 만남의 광장 아니에요. 그래도 상담받으러 오는 사람들이 있긴 있는데. 그 있는 사람까지 다 내삐릴 생각은,”


 직원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경쾌하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애가 책상에 펼쳐 놓았던 노트를 주워들고 장훈을 돌아보았다. 장훈이 들어오라 마라 말하지도 않았는데 대뜸 문이 열렸다. 얼굴보다 먼저 삐죽 내민 구둣발은 번지르르했고, 그다음으로 틈새를 비집고 들어온 낯짝에는 벙글벙글 웃음이 걸려 있었다. 마주하는 순간 그 애가 신나게 웃어 버렸다.


 “대표님!”

 “오랜만이여, 오랜만.”

 “니들이 이라고 있으니까 내 일이 안 된다이가, 이 섀끼들아. 확 소금을 치뿌까.”

 “우리가 잡놈이여? 소금을 치게?”

 “맞아, 맞아.”

 “우리? 우리는 무슨 얼어 뒤질 우리고. 니가, 마. 니가 언제 임마랑 그래 친했다고 우리야. 지랄하고 있네. 돌아 나가라.”


 언성이 높아지자 직원은 곁눈질로 장훈을 한 번 살피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떠들어 봐야 소용도 없겠다는 확신이 들어서였다. 상구는 그 애와 같이 익숙한 태도로 소파 안쪽까지 걸어 들어오더니 그 애가 앉은 소파 위쪽에 팔을 기대어 얹고 턱을 괴었다. 그 애가 고개를 비스듬히 들어 상구를 올려다보았다. 시선이 가볍게 부딪쳤다 떨어졌다.


 “나도 오늘은 놀자고 들른 거 아닌게 고 싸가지 한 박자만 줄이고 얘기나 들어 봐.”

 “얘기, 뭐. 무신 얘기.”

 “뉴스 봤어?”

 “뭐. 이강희? 좆같아도 나올 때 되긴 했지. 니 뭐, 저, 얘기 들은 거 읎어? 빵에 있다고 조용할 놈 아이잖아.”

 “나도 허벌라게 바빴는디 구체적인 말까지 다 줘들을 시간은 있었것소. 주기적으로 전달받긴 했는디 뭐 눈에 딱 잡히는 거시기는 읎었고, 손모가지를 한 번 날렸은게 섣불리 움직이지는 몬헐 것이여.”


 상구가 정수기 쪽으로 걸음을 옮겨 무작정 믹스커피 한 봉지를 이로 뜯었다. 종이컵 안에 가루를 털어 넣는 손목 스냅이 예사롭지 않았다. 한두 번 해보는 움직임이 아니었다. 장훈이 의자를 바깥쪽으로 쭉 밀어 빼고서 상구를 비스듬히 쳐다보았다. 그 애는 웬일로 말없이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이강희가 손목 하나 날리고도 조용히 지낼 것 같나.”

 “조용히 산다고는 말 안 혔소. 제아무리 이강희라도 지금 여론이 여론인디……, 글로 밥 벌어 묵는다는 양반이 펜으로 장난질했으믄 공개적으로 복귀허기는 당장 어렵고. 한동안 잠수를 타든지, 아니믄 조용히 누굴 만나든지 고 중에 하나일 거여.”

 “수감된 기간이 일 년이 넘는다. 그 안에서 손가락만 빨고 있을 인간이 아인데……. 애초에 이쯤 기나왔다는 거는 누구랑 쿵짝짝이 맞았다는 거지.”

 “우리가 이강희 오른팔을 잘랐지 왼팔을 자른 건 아인게. 아직 다리도 남었소. 안 그른가. 시간 좀 지났은게, 여기저기서 끌어다 줬것제. 시간 지나믄 오른팔 허것다는 놈들도 생길란지 누가 알어.”


 장훈이 한 손으로 얼굴을 누르듯 매만졌다. 이강희의 출소는 일종의 신호탄이었다. 하긴, 스스로 죄를 인정하고 대가를 겸허히 받아들일 것이라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았다. 여태껏 많은 범죄자를 보았고 그들을 법 앞에 세워 제각기 숫자 아래 매달아왔지만, 사실 이강희만한 놈은 없었다. 장훈을 검찰 외부로 끄집어낸 사건이었으니 말 다 했다.

 이강희는 눈치가 빠르고 약삭빠른 놈이었다. 장훈이 굳이 칼을 휘두르지 않는다면 그도 제 오른팔쯤이야, 잊지는 못한다 해도 굳이 값을 매기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강희의 길목을 막지만 않는다면 물론 그렇겠지. 그렇다면 장훈은 또다시 이강희의 기사를 아침마다 확인하는 삶을 살아야 했다. 일부분은 사실이나 대부분이 거짓인, 진실과는 사실 아무런 관계도 없는, 차라리 창작이나 허구에 더 가까운, 기사라고 하기에는 민망한 글자 놀이를 들여다보고 있어야만 했다. ……그러나 사실 이강희가 없더라도, 아버지의 말마따나, ‘세상의 나쁜 놈들은 전부 다 잡아 처넣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장훈은 손바닥으로 얼굴을 덮은 채 잠시 말이 없었다. 상구는 태평하게 커피 한 잔을 훌쩍 다 마시고서 쓰레기통에 빈 종이컵을 던져 넣고 있었다.


 “……니 이강희 꼬리 따고 있어?”

 “혹시 모른게 애기들 한둘 시켜서 대충 상황만 보고 있으. 씁, 이강희 나오기 전에 여의도 길목을 미리 닦아 놨어야 하는디.”

 “뻔데기는 스포트 받을 준비도 안 했는데 지 혼자 배때지를 가른다고 지랄이네. 드가라, 드가. 이강희 얘기하니까 골 울린다.”

 “옘병.”


 손을 휘휘 젓고서 장훈이 반대편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애는 여전히 다리를 외로 꼬고 소파에 기대어 앉아 발끝만 까딱거렸다. 노트를 한 손에 펼쳐 쥔 채 펜 끝을 이마에 툭툭 두드리는 것이 아무래도 생각에 잠겨 있는 눈치였다.

 깡패 새끼들 잡아넣는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일을 그만두고 적당히 법률 자문이나 하면서 크고 작은 변호를 도맡아 한 지가 인제 반년을 좀 넘었다. 비교적 다치거나 위험할 일은 없었다. 정신적으로 몰려 있는 느낌도 별로 없었다. 예전 같았으면 사무실에 낯선 사람이 찾아오는 그 순간 의심부터 했을 터였다. 무슨 목적으로, 왜, 어떻게, 그리고 뒷조사부터 했겠지. 그나마 이강희를 깜빵에 처넣고서 한동안 여유 있게 살았으니 날선 반응을 하지는 않았더랬다.

 그 애는 일어났던 일들 대부분을 알고 있는 눈치였다. 차라리 잘된 일이었다. 앞으로 상황이 불안정해진다면 그 애를 드나들지 못하도록 설득하기엔 쉬울 것이었다. 아니, 무슨 일이 생기지 않더라도 경고 정도는 해줘야 하나? 눈치가 있다면 드나들지 않을까? 장훈이 선뜻 말을 꺼내지 못하고 미간만 찡그리자 그 애가 먼저 상념에서 깨어 고개를 돌렸다. 옆얼굴에 부딪히는 곧은 시선이 느껴졌다. 장훈은 짧은 한숨과 함께 손을 내저었다.


 “무슨 말 할지 알죠.”

 “잘 모르겠는데.”

 “알믄서 모른 척하믄 티 난다. 얼굴에.”

 “내가 거짓말이 쪼끔 서툴러서……. 난 검사님이랑 인제 안 사이인데 이강희 눈 피해야 할 정도예요?”

 “말마따나. 인제는 아는 사이잖아.”

 “보고 싶어서 어뜩하나…….”


 명백한 농담조로 그 애가 말끝을 잡아 늘이며 흐흐 웃었다. 저런 식의 농담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장훈은 가끔 감이 잡히질 않았다. 애들 장난 같은 농담이 틀림없었다. 염병하네, 하고 무게 없이 핀잔을 주자 그 애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대표님은 어때요. 나 오면 안 될 것 같애요?”

 “이강희가 나오자마자 니 신변을 조질 여유는 읎제. 고짝도 자기 패를 함 보고, 상황 파악도 쪼까 허고. 뭐……, 복수의 꼬리를 계속 물 것인지, 아이믄 어차피 우리 싸가지는 인자 검사도 아인게 우선 넘겨불고 지 자리 잡는 일이나 먼저 헐 것인지는 동태를 봐야 알 것 같어.”

 “혹시라도 이강희가 딴맘 묵으믄. 니는 애 달래라 카니까 안심을 시키네.”

 “사실만 말혔소. 아가씨가 물었은게. 애초에 위험이야 기정사실이었고……, 우리 아가씨가 요 사무실에 직접 걸어 들어왔을 때부터 위험이야 지뢰밭이나 다름없었제.”

 “그때랑 지금이랑…….”


 짧은 진동 소리가 장훈의 말을 맥없이 끊었다. 상구가 뒷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들고 미안하다는 듯 가볍게 손짓을 해 보였다. 성질을 내기도 전에 대화가 끊겨 버렸으니 장훈의 표정이 팍 일그러졌다. 상구가 귓가에 휴대전화를 붙이고 ‘어, 어. 그려. 지금 가.’ 같은 간단한 말들을 던지더니 장훈을 돌아보았다.


 “나 댕겨올라니까 얘기나 마무리혀.”

 “중요한 얘기가.”

 “시방 나도 일을 혀야지 만날 이강희 꼬리만 밟것소? 개미 좆만한 거라도 털어와야 혼이 안 나겠네.”


 상구가 문을 열고 홱하니 나가 버리자 철문이 퉁, 하고 부닥치는 소리를 내더니 일순 잠잠히 가라앉았다. 어깨를 누르는 정적에 장훈이 손끝으로 미간을 가볍게 짚어 눌렀다. 그 애는 손끝으로 볼펜 끝을 둥글게 매만지다가, 노트의 스프링 부분을 손톱으로 긁어 일정치 않은 소리를 내면서 정신없이 굴었다. 장훈이 뭐라 한마디 하려는 순간 그 애가 무릎을 가슴 쪽으로 당겨 앉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없어서 그래요?”

 “……도와달라고 한 적 읎잖아.”

 “도움이 됐으면 가라고는 안 했을 성격인데……. 검사님은.”


 그 애가 하는 말에는 악의도, 적의도, 장난기도 없었다. 흐르듯 톡톡 내뱉는 말은 약간 가볍게도 느껴졌고 무의미하게도 느껴졌다. 그러나 일부 사실이었다. 도움이 되었다면 뭐라도 같이 해봤겠지. 하지만 생각해 보면 어린애고, 그리 잘 아는 사이도 아니고, 부탁이라는 건 항상 공짜가 아니다. 대가를 요구하는 법이다. 그러니 ‘만약’이라는 가정을 한다면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렸다. 장훈이 미간을 찡그렸다. 그 애는 무릎에 팔을 비스듬히 기댄 채 손끝으로 턱을 애매하게 받쳤다.


 “……지랄……. 니가 내를 우예 잘 아는데. 우리 한 달 됐다. 만난 지.”

 “나는 검사님을 그보다 더 오래 알았지.”

 “그래, 그 니가 본 게 내 전부가 아이에요. 니 연예인 볼 때 뭐, 인터뷰 몇 개, 동영상 몇 번 보고 ‘내는 이 사람 다 알았다’카나. 아이잖아. 내는…….”


 상황에 휩쓸려서 또 목소리가 넘실거렸다가 우뚝 멈추었다. 원체 쉽게 흥분하는 성정이라지만 잘못하면 또 화를 낼 것 같았다. 장훈은 한숨으로 말끝을 덮고 고개를 돌렸다. 그 애는 펜 끝을 노트 위에 긁듯이 두드리다가,


 “전부 알라고 굳이 여기까지 온 건데요.”


 했다. 장훈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종잡을 수 없는 부류였다. 뭐라고 대답해 줘야 할지, 무슨 말을 돌려줘야 할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무방비한 상태로 서 있다가는 주변 사람의 팔다리가 잘려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런 꼴을 두 번 보고 싶지는 않았다. 그게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면 감사해야겠지만…….

 머지않은 시일 내에 결정해야만 했다. 이 깔깔거리는 미소를 ‘주변’의 일부로 삼을 것인지, 영원히 이방으로 쫓아내 버릴 것인지. 장훈은 눈을 꾹 감았다가 우선 웃고 말았다.


 “니 앞에서는 무슨 말을 몬하겠다.”

 “그런 말도 좀 많이 들었어요.”

 “오야, 맹랑한 윤사화 씨.”

 “그 말도…….”


 그 애가 소파에 등을 기대며 웃었다. 장훈은 미간을 찡그리며 웃었다. 누군가 입가를 밀어 올리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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