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블로썸에서 판매한 단편집 12월에 수록된 단편중 하나인 '겨울'입니다. 소장본 가격과 글자수 대비하여 가격 책정 하였습니다





겨울이었다. 날씨가 제정신이 아닌지, 새하얀 눈발 대신 축축한 빗물이 때리던 날. 나는 추위에 몸을 오들오들 떨었다. 아무리 옷깃을 여며도 찬바람이 틈새로 파고들어, 고통스러움에 새우처럼 등을 굽혔다. 이럴 줄 알았으면 목도리를 하고 나올걸, 하고 뒤늦게 후회를 했다. 차는 오지 않고, 나는 죄인처럼 고개를 푹 숙인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느껴지는 차가움이 싫다. 그냥 집안에서만 종일 있고 싶다. 그런 허무맹랑한 생각을 하며, 나를 부르는 소리에 주위를 둘러보았다. 저 멀리서 시꺼먼 차가 나를 향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아이고- 우리 아씨, 날도 추운데 학교 안에 들어가서 기다리지 않으시고…….”

송구 아범이 황급히 두르고 있던 목도리를 풀어 내게로 내민다. 나는 한사코 거절하였으나, 아씨가 고뿔에 들면 주인 나리께 혼나는 건 자신이라며 내게 두를 것을 청했다. 아버지는 정말로 그럴 사람이라, 어쩔 수 없이 목도리를 받았다. 손에 꼭 쥐고만 있다, 나를 흘끔 보는 눈빛에 어쩔 수 없이 목에 둘렀다. 아, 이래서 목도리를 하고 싶지 않았는데.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기분 나쁜 담배 냄새가 났다.

집에 도착하면 미리 기다리고 있던 송구 어멈이 나를 반겼다. 날이 춥다며 거친 손으로 내 손을 삭삭 비볐다. 아씨, 가방 주셔요. 나는 조용히 가방을 내밀었다. 송구 어멈은 쉴 새 없이 내게 학교는 어땠냐, 저번에 그 건방진 놈은 어떻게 되었느냐 묻는다. 나는 간단히 괜찮았다고 말을 하고 방으로 향했다.

“따뜻한 차를 들이겠습니다.

“아니야. 나는 괜찮……”

멀리서, 흙을 가지고 놀았는지 시꺼먼 손을 쪽쪽 빨고 있는 송구가 보였다. 먹고 싶은 눈치라 고개를 돌려 송구 어멈에게 그럼 조금만 내오란 말을 했다. 제 자식 때문임을 눈치챈 송구 어멈은 고개를 몇 번 숙여 죄송하다고 말을 하곤 제 아들에게로 달려가 등짝을 몇 번 때렸다. 이게 어디서 식탐을 부려, 이 못난 것아. 그 호통에 송구가 울었다. 나는 괜찮다고 말을 하곤 송구에게 이리 오라는 손짓을 해 보였다. 송구가 손등으로 제 눈가를 닦으며 쪼르르 달려왔다. 송구 어멈은 나를 향해 몇 번이고 죄송하다 인사를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곤 문을 닫았다.

퀴퀴하다. 분명, 이 냄새는 송구에게서 나는 것이리라. 슬그머니 문을 열려다 추울까 봐서 그러길 그만두었다. 너, 이거 먹을래. 가방에 들어있던 달달한 사탕이 생각나 내미니 고개를 끄덕인다. 어떻게 먹는 것인지 몰라 포장지까지 입안에 털어 넣으려는 것을 말리곤, 알맹이만 쏙 빼내 입에 넣어주었다. 아, 참 달아요. 송구가 그리 말하며 웃는다.

다과상이 들어오면 그것을 송구에게로 밀어주곤, 나는 내 이부자리로 가 앉았다. 우선 시린 손과 발을 녹이고 있으니, 송구가 내게도 먹어보라며 손에 든 것을 내민다. 시꺼먼 손이 눈에 띈다.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괜찮다고 말을 하니, 그럼 송구는 고개를 끄덕이곤 다과를 먹는다.

그대로 책을 읽으려는데, 가슴이 쿵, 쿵 하고 뛴다. 아픈 것은 아니었다. 단지 세차게 뛸 뿐이었다. 가슴팍에 손을 가져다 대곤 반대편 손으로 바닥을 짚었다. 온몸의 기운이 빠지고 머리가 멍하다. 또 다. 또. 이를 악물었다. 약을 먹어도 낫질 않는 이 병이 또 지랄 맞게 굴기 시작했다.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수면 시간은 평소와 같았다. 그렇다면 찬 바람을 너무 맞아서 그런 것일까, 입맛이 없다는 이유로 점심을 건너뛰어서, 그것도 아니면 그냥 콱 죽으려고 몸이 미쳐버린 것은 아닐까. 쿵쿵 뛰는 것이 멈추면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가슴 속부터 느껴지는 찌릿함에 표정을 찌푸렸다. 열심히 먹던 송구가 내게 무슨 일이시냐 묻는다. 제 어미를 부르겠다는 말에 괜찮다는 말을 하려 입을 열지만, 잇새로 새어 나가는 것은 앓는 소리였다. 개처럼 끙끙 앓으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눈물이 왈칵 나왔다. 이불을 쥐어뜯을 기세로 강하게 붙잡았다. 이러다 손톱이 떨어져 나가는 게 아닐 정도로 이불을 긁었다.

“아씨!”

송구 어멈이 내 쪽으로 달려왔다. 약은 드셨느냐 물었다.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곤 가슴팍을 쥐어뜯었다. 속이 뜨겁다. 그리 말하니 송구 어멈이 황급히 송구를 불렀다.

“가서 그 물을 가지고 오너라! 어서!”

그 말에 송구가 황급히 달려나갔다. 송구 어멈은 내 팔뚝을 주무르며 괜찮을 것이라 말했다. 도대체 무엇이 괜찮단 말이니. 입술을 꽉 깨물었다. 아프다. 깨문 입술도, 불타는 듯한 가슴도, 그리고 송구 어멈이 주무르는 팔뚝도.

곧 송구가 물병 하나를 들고 방 안으로 헐레벌떡 들어왔다. 어머니, 여기. 병을 건네받은 송구 어멈은 내 입가로 입구를 가져다 댔다. 아씨, 마셔요. 입을 살짝 벌리면 그 틈새로 따뜻한 물이 들어왔다. 마시는 건지, 흘리는 건지 모를 정도로 물이 내 목을 타고 흘렀다. 천으로 입가를 닦은 송구 어멈이 나를 똑바로 눕혔다.

“죽을 것 같아.”

그 말을 하니 그런 말 마시라며 나를 달랜다. 괜찮으실 거예요. 또 그 말을 내뱉는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 말 할 거면 썩 꺼져버리라고 말을 하고 싶었지만, 아직도 남아있는 고통에 그럴 수가 없었다. 여전히 이를 악물고 이불을 꼭 쥔 손이 파르르 떨렸다.

나를 재미있는 것이라도 되는 것처럼 보고 있는 송구가 보였다. 그게 기분이 나빠, 나가란 뜻으로 ‘송구, 송구’를 불렀다. 그럼 송구 어멈이 다급하게 송구 더러 나가란 말을 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서서히 찬물이 들어오듯, 뜨거움이 가신다. 그럼 나는 아까보다는 편해진 얼굴로 송구 어멈을 보았다. 이마에 맺힌 땀을 닦는 것을 그대로 두었다. 무슨 물인지는 모르겠으나, 마실 때마다 이렇게 금방 통증이 가라앉다니. 그 신기한 물이 궁금하여 무슨 물이냐 물으니, 대답하기를 주저한다. 무슨 물이냐 묻지 않니. 다시 물으니 조용히,

“……약초를 달인 물입니다. 저희 자식놈 배 아프다고 칭얼거릴 때도 먹이면 귀신같이 얌전해집니다.”

하고 말한다. 약초. 조용히 그 말을 중얼거리니 불편하시냐 물어온다. 불편하기는. 작게 기침을 하곤 몸을 돌려 누웠다.

“마실 때마다 고통이 줄어들기에 궁금해서 물어본 거야. 아예 방에 가져다 두는 게 좋겠어. 고통은 밤낮 가리지 않고 찾아오니까.”

“예. 그럼 새로운 것을 가져다 놓겠습니다.”

“응.”

“뭐……, 더 시키실 일은 없으십니까?”

“없어. 피곤해. ……이만 쉬고 싶어.”

송구 어멈이 밖으로 나간다. 그럼 나는 자기 위해 두 눈을 감았다. 몸은 피곤한데, 정신은 멀쩡하다. 그냥 이대로, 잠들다가 콱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이불을 머리끝까지 잡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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