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하나 병 소재 有








1#.




무더위가 아직 가시지 않은 여름의 끝지락, 아마 그때쯤이었다고 이글은 회상했다. 유독 바람 한점 없이 후덥지근 했던 여름 날씨 덕에 가뜩이나 낮에는 잠만 자기 일쑤였던 자신을 야행성으로 만들어 주는 것에 한몫을 단단히 거들고 있었다. 해가 지고 슬슬 바람이 불어오는 늦은 밤에서야 밖을 쏘다니며 멋대로 돌아다니기 바빴던 제가 유독 그날 따라 본가로 들리고자 했던 것은 단순한 변덕에 불과했었다. 어쩌면 아마 궁금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 명목만 남은 구질구질한 집안에 발목이 채여 홀로 남겨졌던 자신의 큰형이.



"지금 반겨주는 사람은 없겠지?"



건성으로 흘끗 쳐다본 시계 바늘은 정확히 4시 10분전을 가리키고 있었다. 해가 떠있을 시간이라면야 점심 후 티타임에 알맞게 맞춰갈 수 있는 때였지만 애석하게도 지금은 모두가 잠든 새벽이었다. 동이 트려면 앞으로 두 시간은 더 기다려야 했지만 자신은 어깨만 으쓱하고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홀든가의 정문을 통과했다. 제 아무리 식솔이라고는 하나, 해도 채 뜨지 못한 이른 시간에 찾아오는 것은 누구의 말을 빌리자면 품위없는 짓 이었고, 또 누군가의 말을 빌리자면 조금의 예의도 차리지 않은 행동이었지만─ 그런 말들 따위가 천하의 이글 홀든에게 영향을 끼칠 리 만무했다.


위용을 드높인답시고 쓸데없이 웅장하기만 한 대문을 활짝 열자 크기에 비해 다소 조용한 삐걱임 소리가 울렸다. 그 사이로 익숙히 걸음을 내딛고 매우 오랜만에 들린 집 내부를 찬찬히 뜯어보았지만 변한 것이 없음에 이글은 쯔, 짧게 혀를 찼다. 집안은 자신이 마지막으로 보았던 때와 조금의 변함도 없었다. 고지식할정도로 귀족의 품위를 중시하는 값비싼 예술품들이 장식되어 화려하게 내부 곳곳을 꾸미고 있는 것도 여전했다. 개인 자금도 떨어져 가는데 한두개 정도 집어갈까, 진지하게 고민하던 자신은 곧 찾아온 적막감에 인상을 찌푸렸다. 지나치리만큼 고요한 복도는 전과 다를 바 없었으나 어찌된 영문인지 묘하게 낯선 기색이 감돌았다. 그러나 그 이유를 알 수 없어 두 눈을 깜박이던 것도 잠시, 이글은 아. 하고 짧은 탄식을 흘렸다. 



"큰형 잔소리가 없어서 그런가."



벨져야 워낙 개인주의에 자기에게 피해만 안준다면 전부 무시해버리는 성향이 강했고, 그렇기에 항상 늦게 집으로 들어오는 이글에 대해서는 별다른 참견이나 신경조차 쓰지 않았지만 다이무스는 달랐다. 이글이 술을 잔뜩 먹고 새벽을 넘긴 시간까지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근 한시간 동안 설교와 잔소리를 늘어놓았던 적도 제법 있었으니. 유독 손이 많이 가는 막내 동생이라 더 신경을 써주었던 것인지, 홀든가에 유래 없을 먹칠을 할까 염려스러워 그리 했던 것인지는 모르지만 어쨌거나 이글은 그 뒤로 귀가 시간을 종종 당기고는 했다. 한번 시작된 잔소리는 육하원칙을 정확히 맞추고 자신에게 논리와 이유, 근거를 들어가며 최소 한시간 이상은 퍼부어졌기에 결정한 큰형과의 타협이었다. 그럼에도 밤늦게 쏘다니는 버릇은 고치지를 못해 여러번 야단을 맞곤 했다. 그렇다고 그것이 그렇게 귀찮다거나 기분 나쁜 일은 아니었지만.


이 시간쯤 도착했을 때 어김없이 이어지던 잔소리의 부재가 내심 허전해졌지만 그것을 애써 부정하며 이글은 자신의 방 쪽으로 걸음을 돌렸다. 길디 긴 복도가 지독히 길고 멀어보이는 것에 불현듯 찾아온 근본 모를 불쾌감이 들었다. 아무도 없는 텅 빈 공간이 자신이 이곳에서 누군가의 환영도 받지 못할 존재라는 것을 넌지시 알려주었기 때문인지, 내심 그 예전처럼 반겨줄거라 생각했던 이가 보이지 않아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상황이야 어찌되었던 이글의 머릿속은 태평하기 그지 없었다. 오랜만에 들린 집이니 한숨이라도 자고 갈까, 아니면 다음에 다시 올까. 어느쪽이든 상관없는 고민으로 그저 느긋하니 주변을 살피던 와중, 문득 뒤에서 묵묵한 인기척이 느껴진 것에 이글은 퍼뜩 몸을 돌렸다.



"이글?"

"아, 깜짝이야!"



툭 내뱉어진 중저음의 목소리는 또렷하게 자신의 이름을 붙들고 있었기에 아무도 없을것이라 생각했던 공간에서 이글은 펄쩍 놀라 짧은 비명을 내질렀다. 그 요란스러운 반응이 상당히 익숙한 듯, 특유 무표정으로 어떤 동요도 비치지 않은채 귀만 슬쩍 틀어막는 시늉을 하는 남자가 보였다. 실크로 된 가운을 걸친채, 한손에는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는 머그잔을 들고 이쪽을 넌지시 바라보고 있는 익숙한 누군가의 모습에 이글은 안도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넌더리가 날 정도로 익숙한 형제의 모습은 이 집 만큼이나 조금의 변함도 없어보여 자신도 모르게 실없는 웃음이 나왔다.



"뭐야, 놀랐잖아 큰 형~"

"이 시간에 무슨일이냐."

"아 그냥 뭐......"

"말했을텐데. 제 아무리 본가라 해도 최소한의 예의는 지키라고. 지금 시간에 찾아오는 것은 정도를 상당히 벗어난 행동이라는 건 자각하고 있겠지. 그리고, 네가 정장을 입고 정당한 절차를 밟아 찾아오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겠다만 하다못해 최소한 귀족으로서의 장소에 대한 품위는 지키거라. 흐트러진 머리꼴이며, 피묻은 경갑을 벗지 않고 홀든가의 문턱을 밟는 것에 좋지 않은 소문이라도 난다면 결국 돌고 돌아 네 손해로 돌아갈 뿐이다, 이글."



말끝을 흐리며 답을 뭉뚱그리자 다이무스의 미간이 조금 좁혀졌지만 그뿐이었다. 추궁하고 캐물어봤자 순순히 답해줄 성격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던 덕분이었다. 단지, 아주 오랜만에 돌아온 막냇동생을 향해 그 예전처럼 푹푹 정곡을 찔러대는 잔소리를 던졌을 뿐이다. 그 어김없는 모습에 자신은 이제 반쯤 질린 얼굴로 큰 형의 꾸중을 수십분 동안 감내해야 했지만 썩 기분 상할 일은 아니었다. 집으로 발을 들이면서 문득 느꼈던 냉막한 허전함이 큰형을 보면서 저멀리 내동댕이 쳐지는 것을 인지하기에 그때의 자신은 아직 철이 덜 들어 있었다고 생각한다.



"알았어. 알았다구. 오자마자 잔소리는. ...근데 큰 형, 그건 뭐야?"

"......약이다."



자신이 건성으로 듣던 말던 꿋꿋이 여전한 잔소리를 늘어놓고 다시 몸을 돌리려는 다이무스의 손에 들린 머그잔이 왜인지 눈에 밟혔다. 쓰디쓴 독한 풀내음을 풍기는 그것은 차나 커피라고 하기에는 괴랄한 향을 사방으로 퍼트리고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찌푸려진 인상의 이글을 보며 다이무스는 잠깐 말을 아꼈다가 짧게 대꾸해주었다. 의외라면 의외인 그 대답에 자신이 엑, 하고 얼빠진 탄사를 뱉은  것은 덤이었다.



"야아악~? 뭐야, 어디 아파? 언제부터 그랬는데?"

"......한달전이다. 소란 떨 일은 아니니 목소리는 낮춰라."

"어련하시겠어."



잠시의 망설임 끝에 이어지는 제 큰 형의 발언에 이글은 허, 짧게 탄식을 토했다. 한달.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다이무스에게 있어서는 상당히 긴 시간이었음이 확실했다. 마지막으로 기억하고 있던 큰 형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은 아무리 대조해 보아도 명백히 차이를 드러내고 있었으니까. 조금 야윈 듯한 몸도, 창백하게 질린 얼굴도. 단순한 감기나 몸살따위로 이렇게 오래가지는 않을뿐더러, 한달이라는 시간동안 신체강화능력자인 그를 저리 메마르게 할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이글은 지금 다이무스에게 무언가 이변이 일어났다는 것을 짐작했다.



"무슨일인데, 큰 형."



딱딱히 굳은 목소리가 다이무스에게는 경종을 울리듯이 들렸을 터였다. 결코 넘어가지 않을 단호함이 서린 동생의 음성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침묵을 고수하던 그를 보며 이글은 머리를 거칠게 헝클어 트렸다. 그래. 세상은 늘 그랬듯 공평했다. 그 절대적인 법칙은 이번에도 적용되었다. 변한 것이 없다 한들, 그것이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는 좋은 표본 앞에서 저도 모르게 쓴웃음을 뱉었다. 



"제발 속 시원히 말 좀 해, 답답해."

"이글."



집 나간 동생이라 할지라도 엮인 일이라면 수번, 수십번이고 말을 늘어놓으며 수분, 수십분 동안 잘도 말하는 주제에 정작 그 자신과 관련되어 버리면 전부 함구해버린다. 그것이 이글은 진저리나게 답답했다. 자기 자신에게는 유독 너무나도 엄격한 큰 형의 방식은 예전부터 불만이었다. 


말을 하지 않으면 형이 어떤 상황인지, 어떤 생각인지도 모르잖아.


한참 질풍노도 청소년기때 그런 말을 던진적이 있었다. 어릴적 언젠가부터 쌓아진 위태한 불만은 그렇게 터졌었다. 그건 자신이 보기에 상당히 불공평했으며 동시에 부조리했다. 감정을 숨길 수 없는 자신과 감정을 숨길 의의를 느끼지 못하는 벨져를 언제고 갈무리하며 다독였던 자신들의 형은 정작 제 감정에 있어서는 소름끼치게 단단했다. 실은 가장 무르디 무른 주제에 어떤 표정도, 어떤 말도 자아내지 않고 묵묵히 등을 돌리던 형의 모습을 잘 알기에 울컥 모아 튀어나왔던 말은 다음 순간 산산히 흩어졌다.


때로는 모르는 게 더 좋은 경우도 있는 법이다, 이글.


처음으로 아스라이 웃던 다이무스의 표정은 그날 이후로 제 망막에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알듯 모를듯 미묘하게 선정된 단어들의 조합은 그때 당시 제가 이해하기에는 난해하며 어려운 것들 뿐이었다. 어쩌면 자신의 앞에서 그런 웃음을 지으며 저를 바라보았던 큰 형의 모습에 홀려 따지고 싶었던, 짚어내고 싶었던 모든 것을 잠시 지워 버렸던 것일 수도 있겠다. 그래. 그 말의 주제를, 중요한 논점을 지금 떠올린 자신은 침음성을 삼킬 수 밖에 없었다. 미처 지적하지 못했던 하나의 문제가 입 안에서 유독 맴돌았다. 


그건, 형에게 있어서 '좋은 경우' 야?  ─아니면?





2#.




"방금 뭐라고 했지."



살풋 찡그려진 표정에 탁탐찮은 듯한 투박한 말투는 누가 보아도 그가 지금 이 상황을 그닥 달가워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지만 애시당초 그런것에 신경을 쓰는 섬세한 성격은 아니었기에 자신은 평소처럼 유한 웃음으로 가볍게 답해주었다.



"당분간은 잠시 머물러 있겠다고." 

"......."



이번 침묵은 제법 길었다. 묵묵히 거절의 말을 고르고자 하는 큰형의 뻔한 모습이 유독 심기를 거슬렀다. 전에는 그렇게 귀찮게 집으로 오라며 편지다발까지 보냈으면서 막상 이곳에 머무른다니까 왜 저런 반응인건지. 불현듯 밀려오는 심술을 못이기고 먼저 등을 돌렸다. 자신이 시야 너머로 사라질때까지 뒤에서는 조용한 시선이 따갑게 달라붙었지만 결국 어떤 말도 들려오지 않았다.


오랜만에 찾은 자신의 방은 조금의 변함도 없이 그대로였다. 정갈하게 정리된 가구들과 먼지 한톨 없는 바닥에 그만 질려버렸다. 홀든가는 자신을 놓아줄 생각따윈 조금도 없어보였다. 가출한지 수년이 지났음에도 자신의 흔적 하나하나 그대로 새겨, 이리 가꾼것을 보면. 금방이라도 돌아올 것임을 믿는 숨막히는 확신의 표시에 진저리가 나 고개를 흔들었다. 이곳에 평생을 묶인 자신의 큰형에게 참담한 애도를 표하며 침대 위로 털썩 몸을 던졌다. 



"막내 도련님, 식사하세요."



얼마 잔 것 같지도 않았는데, 저 멀리서 익숙한 메이드의 음성이 달큰했던 꿈을 밀어내는 것이 느껴졌다. 자는 사이에 엉킨 머리를 짜증스레 빗어내리며 시간을 확인하고는 아이고, 앓는 소리를 절로 내었다. 아침 6시. 자신이 잠든 지 고작 두시간이 흐른 후였다. 지하연합쪽에 있더라면 이미 한참 꿈나라를 여행할 시간이건만 본가 쪽은 그 나태함을 결코 허용해주지 않는 곳이었다.



"아 10분만......"

"큰 도련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젠장. 나랑 똑같이 잠들었을텐데 벌써? ...생활 리듬 한번 고상하네."



베개를 붙잡고 얼굴을 진창 묻었지만 고저없이 이어지는 메이드의 다음말에는 천하의 이글 홀든이라 해도 벌떡 몸을 일으켜야 하는 내용이었다.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건 이미 한참전에 일어나 씻고 출근 준비까지 다 했다는 말이 분명했다. 결국 적당히 세수만 끝마친 뒤 자신은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주방쪽으로 향했다.



"좋은 아침, 큰형."



하도 하품을 해서 눈가에 찔끔 고이는 눈물을 건성으로 닦아내고 털썩, 식탁 의자에 앉았지만 조금의 반응도 없는 고요함에 머리를 기웃이며 여직 졸음이 담긴 눈을 들어 정면을 바라보았다.



"형?"

".......늦었구나 이글."



한 텀후 들려온 답이었지만 다이무스는 그것을 끝으로 고개를 내리고 식사에 집중했다. 그러나 자신은 이런 점에서 적어도 제 큰 형보다는 눈치가 빨랐다. 단정하게 갈아입고 출근준비까지 끝마친 다이무스의 얼굴에서 한순간 자잘하게 느껴진 그 감정을 이미 눈치챘기에 이글은 마찬가지로 여상히 웃어버리고는 마주 식사에 눈을 돌렸다. 자신들이 떠난 이후, 그의 식사는 언제나 혼자만의 만찬이었을 것이다. 그 자리가 잠시라도 채워진 것에 대한 가벼운 만족감을 곧이대로 드러내는 것을 보자 작은 웃음이 터졌다.



"......그래 가지고~ 그 마녀가 눈 부릅뜨고 쫓아오는데 진짜 무서웠다니까. 엘리 그 꼬맹이는 저만치서 막 웃고 있는데 하여간 애들이 더해. 애들이."



조금의 의미도 없는 가벼운 말을 속살이며 식탁 언저리에 퍼트렸다. 평범한 일상. 그저 그런 하루. 전에는 그랬었고, 이번에는 말야- 하고 이어지는 자신의 수다에 다이무스는 묵묵히 평소와 같은 표정으로 그 어떤 말도 내비치지 않은채 듣고만 있었다. 어찌보면 그것은 기이한 광경이었다. 한 사람은 다양한 표정변화를 자아내며 여러가지 이야기를 두서없이 늘어놓기만 하고, 다른 한사람은 어떤 말도 아끼며 무심한 표정으로 식사에만 열중하는 것 처럼 보여졌으니. 이쯤 되면 무시당하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법도 했지만 이글은 예전부터 남들보다 동체시력이 좋았다. 그 덕분에 여느 사람들이라면 눈치채지도 못할 큰형의 반응을 곧잘 집어낼 수 있었다.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오면 나이프와 포크를 쥐고 우아하게 고기를 썰던 큰 형의 손이 조금 느려진다. 관심있는 분야의 얘기가 나올때는 중간 중간 시선을 들어 이쪽을 보기도 하고, 지하연합의 최근 정세에 가벼이 말을 뱉을때는 절로 눈썹을 슬쩍 찌푸리기도 한다. 말만 안한다 뿐이지 결국 자신이 하는 평범한 말 한마디 한마디를 주의깊게 듣고 있는 그 모습에 기분이 절로 유쾌해져 갔던 것은 사실이었다. 반 각 정도의 아침 식사를 끝낸 후, 다이무스는 냅킨으로 톡톡 입가를 정리했다. 정갈하게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제 형의 모습에 이글은 깨끗하게 비운 접시를 적당히 두고 자신도 몸을 일으켰다. 



"이글."

"엉?"



그러나 어떤 문제가 있었던 것인지, 방으로 돌아가려는 저를 붙잡은 다이무스의 부름에 고개를 돌리자 어느덧 코앞까지 다가와 있는 그의 모습이 보였다. 순식간에 가까워진 형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헛숨을 들이키자, 다이무스는 미간을 살풋 찡그리며 냅킨을 집어들고 제 입가 부분을 톡톡 두드렸다. 검사의 손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저와 같이 자상과 흉으로 얼룩져 있는 투박한 손이 자신의 입술을 훑으며 지나갈때 쯤에 이글은 어딘가가 내려앉은 기분으로 멍하게 그것을 바라보았다. 지금, 당장이라도 그의 손을 잡아서──



"나이가 몇인데 이리 묻히고 다니나."



몽롱했던 정신은 익숙한 핀잔에 퍼뜩 제자리를 찾았다. 뻗어졌던 제 손은 중간에 방향을 틀고 멈칫거렸다. 방금, 뭐하려고 했더라. 얼빠진 표정을 지으며 채 답을 못하는 자신을, 다이무스는 왜인지 무겁게 가라앉은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들어가라."

"어? 아, 엉. 잘다녀와 큰형!"



짧게 떨어진 축객령에 자신은 아직도 어딘가 이상하던 느낌을 가까스로 떨치며 평소처럼 씩 웃었다. 손까지 흔들며 그를 배웅하자, 우직히 앞으로 걸어나가던 발걸음 소리는 잠깐 멈췄다. 다시금 한 템포의 쉬어가기 후, 나지막한 목소리가 유독 제게는 선명하게 들려왔다.



"......다녀오마."





3#.




홀든가에 머무른지 한달이 지나갔다. 눈깜짝할 사이 지나간 시간을 미처 실감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그런대로 발전이 있었냐 하면 큰 형과 자신의 관계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일방적으로 자신의 감정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고 해야할까. 그것도 아니면 뒤늦은 자각이라고나 할까. 어느쪽이든 일단 단정지을 수 있는 것은 지금 자신의 마음을 억누르는 것만으로도 벅찰 정도로 커져 있다고 하면 될지도 모르겠다.



"큰혀어엉~"

"......이글."



부쩍 어리광이 늘었구나.


그런 의미를 담은 듯한 한숨을 쉬면서도 다이무스는 별다른 내색없이 칭얼거리며 안겨오는 이글의 등을 서투르게 두드렸다. 묵묵한 친철에, 보이지 않는 호의에 기대어 비열하게 차마 말하지 못하는 그 감정들을 온전히 그에게로 실어 짓누르는 행위에도 다이무스는 묵인해주었다. 굳게, 곧고 강직하게 자란 자신의 큰형은 유독 동생들에게는 너무나 약했으니.


그 예전 자신을 스쳐간 수많은 여자들에게 그러했듯이, 큰 형에게도 같은 행동을 했지만 예상외로 떨어지는 제제는 없었다. 가벼운 접촉. 스킨쉽. 성적 행위를 떠올리게 하는 경한 행동  그 어떤 것에도 다이무스는 별다른 거부의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수동적인. 어떻게 보면 이미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다는 듯이. 그것이 체념에 가까운 일종의 포기였는지, 이미 식어버린 어떤 것의 잔재였는지는 모른다. 아마 그걸 확인할 수 있던 반응도 없었을 것이다. 그때도, 지금도.


연인이라 하기에는 분명 모자라고 부족한. 형제애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벅차디 벅찼던 자신과 큰 형의 관계를 정의짓기에 한달 남짓했던 시간은 너무나 짧았다. 언제부터 눈치챘어야 할까. 조금씩 변해가는 자신과 그의 관계에서 하루가 멀다하고 지독히 말라가는 그의 몸과, 하루에도 몇번이고 약을 입에 털고 안쓰러이 숨을 뱉는 그의 모습에서 눈치챘어야 했을까. 아니면 이 지긋지긋한 가문에 돌아오자마자 보았던 자신의 큰 형이 마시던 그 쓴 약을 본 순간부터 눈치를 채야 했을까. 그것도 아니면 그 전부터─.





4#.




"......이글."

"왔어? 작은 형."



비가 추적추적 끈적한 습기를 사방으로 뿌리며 내리던 어느 가을밤이었다. 온통 검은색과 하얀색으로 도배된 공간에서는 숨죽인 울음소리가, 시끄러운 곡성이 사납게 퍼져가고 있었다. 끈적하게 달라붙는 누군가의 그림자가 주변을 감쌌다. 여자들의 서글픈 울음과 사내들의 안타까운 한숨이 공기중으로 숨죽여 퍼져갔다. 그 모든 것의 종착지에서 발견한 제 동생을 보며 벨져는 침음을 삼켰다. 


평소와 같은 얼굴로, 비에 젖은 머리를 털며 표표히 인사하는 막냇동생의 모습은 기이한 위화감을 일으켰다. 제 큰 형의 갑작스러운 부고도 충분히 충격이었건만, 부랴부랴 달려온 장례식장안에는 어딘가 기이한 분위기로 저를 반겨주는 동생이 보인다. 대체, 하고 짧은 의문을 막 생각하려던 머리속을 엉망으로 헤집은 목소리가 들린 것은 그때였다.



"알고 있었지? 큰 형의 병."

"─이글."



덤덤하게 뱉어진 그 한마디에 모든 것을 유추했다. 큰 형의 갑작스러운 죽음. 정신이 반쯤 나간듯한 이글의 상태. 비극과 불행이 한데 어우러져 섞어낸 상황에 비탄하며 벨져는 고운 얼굴을 찌푸렸다. 해줄 말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그래."

"큰 형도, 알고 있었지? 발병의 원인도. 이렇게 될 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전부. 제일 먼저 알아차린 것도 형아였으니."



모든 것을 추려내어 천천히 실토하는 제 작은형의 모습을 이글은 가만히 바라보았다. 먹먹하게 흐려진 하늘에서는 아직도 차가운 빗물이 거세게 몸을 두들기는 중이었다. 표정을 잃은 얼굴로 벨져는 고개를 돌렸다. 큰 형의 몸이 좋지 않아지게 된 것은 약 세달전의 일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다이무스에게 은밀한 부름을 받고 본가로 잠시 돌아갔던 것도. 거기서 이어졌던 것은 담담히 자신의 병을 말하고, 그 원인과 결과를 늘어놓으며 또렷하게 이어졌던 이른 유언과도 같은 말은 아직도 묵직하게 가슴을 짓눌렀다.


─절대, 이글에게 말하지 말아다오.


결국 끝에 끝까지 어리석은 남자였다. 쓰고 짙게 통증을 박아두고 간 형을 원망하다 이글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이제 그는 울고 있었다. 하염없이, 비명이 차라리 나아보일 정도로 가슴을 쥐어 뜯으며 괴롭게 고통스런 울음을 토했다. 땅바닥으로 쓰러지듯이 주저앉은 막냇동생의 모습은 예상했던 것보다도 처참해 그 이상을 보지 못하고 벨져는 두 눈을 감았다.


─누군가에게 사랑받으면 몸에서 꽃이 자라나, 결국엔 꽃에 양분을 뺏겨 숙주가 사망한다. ......발병의 원인도 이미 알고는 있다. 그러니 이제 내게 남은 시간은 얼마 없을것이다, 벨져. 그 후, 그 아이를 부탁한다.


그렇게 무심하게, 자신의 일임에도 별다른 동요 없이 말을 이어나가던 자신의 형은 그리 말하며 처음으로 시선을 피했다. 동생에 대한 한결같은 걱정, 연민. 동정. 그 어디에도 자신의 처지에 대해서는 가타부타 생각조차 못하며 그리도 제 막냇동생만을 걱정하더니, 결국 모든 것의 결말은 뻔한 삼류영화 마냥 끝나버렸다. 



"이글. 그만 일어나라. 형아는 이제."



매듭을 짓고자 확고이 말을 고르는 벨져를 문득, 이글이 허하게 웃으며 바라보았다. 그래. 어찌됬든 알고 있었다. 다이무스가 죽어버렸다는 것도. 그 원인이 자신이라는 것도. 끔찍하다면 끔찍하고, 처참하다면 처참스럽다. 악에 받힌 울음을 한사코 토해내며 이글은 거세게 내리는 빗속에서 하염없이 쏟아졌던 눈물을 닦고 몸을 추스렸다. 그리고 이제는 마지막으로 보게 될 그의 종착지, 푸른 묘비에 써진 그의 이름을 되새기며 자신은 큰 형에 대한 마지막 배웅을 끝냈다.


...내 감정이  당신을 죽게 했다는 것이 고통스럽다.
또한, 당신은 나를 한번도 사랑한 적이 없다는 것이 슬프다. 


───다이무스와 같이 지내면서 이글은, 단 한번도 그 병이 발병한 적이 없었다.









 내가 봐도 글에 구멍이 너무 많다;ㅁ;

해석이 필요하네요 큐ㅠㅠㅠㅠㅠㅠ


이글은 아주 예전부터 다이무스를 좋아했지만 그걸 자각하지 못하는 상태였음

다무는 발병하자마자 이글이 자기 좋아한다는 것을 눈치챔. 그러나 그냥 내버려두고 대신 상태를 호전시키는 약을 먹기 시작함(위 병은 치료약이 없음.)

다무는 이글을 사랑했음. 어디까지나 가족으로서. 죽는 그날에도 한번도 그 감정은 변하지 않음. 이글이 그걸 뒤늦게 알게됨.(만약 이글을 이성으로서 사랑했으면 이글도 그 병에 걸렸거나 같이 죽던가 그랬을 것)


정도입니다. 결론은 이글 혼자 짝사랑.

사퍼 / 다무른 애정합니다♥ / 마이너틱 왼쪽도 다무가 오른쪽이라면 ok!

하무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