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썬/단편] 안내방송 후속편 입니다.








W. 이지















수능이 끝난 고3 교실은 매우 소란스러웠다. 이제 학교생활이 끝났다고 안 오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예체능 준비로 인해 학교가 아닌 학원으로 가는 아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경우를 제외하곤 다 교실에 남아 지루하고 따분하게 남은 출석 일수를 채우며 학교생활을 해야 했다.




"얘들아! 오늘 과학쌤 아프셔서 안 들어오신대!"


"오, 그럼 교실에서 막 떠들어도 되는 건가!"


"음악실로 오라는데? 거기서 음악쌤이 영화 보여준대."


"음악쌤이 보여주는 영화면 뭐... '사운드 오브 뮤직'아니면 '말할 수 없는 비밀'... 아악, 가기 싫어!"




반장의 말에 휘인은 초등학교 때부터 음악 시간이라면 무진장 봐왔던 영화들을 나열하며 별이 옆에서 절규했다. 핸드폰 게임을 하고 있던 별이는 휘인이 옆에서 계속 치대자 계속 밀어내다 이내 죽었는지 한숨을 쉬며 이어폰을 뺐다.




"아, 정휘인 좀!"


"이봐, 문별이. 우리 다시 '사운드 오브 뮤직' 보게 생겼어."


"무슨 말이야?"


"우리 음악실 가서 영화 본대. 과학쌤 아픔."


"과학쌤이면... 혜진쌤이 아프다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나도 안 믿기는데 아프시다잖아! 아, 가기 싫어. 우리 그냥 교실에 짱박혀있을까?"


"뭐래- 근데 우리 어디 간다고?"


"음악실. 가기 귀찮지? 그치? 가지 말까?"


"야, 음악실이면 가야지! 빨리 나와."


"아, 가기 싫어 가기 싫어 가기 싫어-"


"너희들도 빨리 나와! 음악실 가야 돼!"




별이의 선두 지휘로 자기 반 아이들을 모두 반 밖으로 내보냈다. 본래 귀찮아하며 잘 나서지 않은 별이가 찰떡 서니 없는 고3들을 내보내자 반장은 살짝 감동을 받았다. 가기 싫다며 찡찡대는 아이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내보내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기에 반장은 별이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뿌듯함을 감추지 못했다. 우리 별이... 수능 끝나니깐 살아났구나.


2학기 중간고사 때의 첫 만남 이후로 별이는 공부할 시간을 틈틈이 쪼개 용선을 만났다. 고1 담당 선생님과 고3의 접점은 모래 속 바늘 찾기였지만 그래도 별이의 주도적인 만남으로 맨날 마주쳤다. 수능이 끝난 이후에는 방과 후부터 퇴근 시간까지 옆에 붙어 조잘조잘 대니 용선의 옆자리인 혜진이 시끄럽다며 핀잔을 주기도 했다.




"용선쌤 보고 싶으면 너만 가서 보던가 왜 나까지 가야 돼! 어차피 나 하나 없어도 우리 반 잘 돌아가!"


"웃기고 있네. 반에서 지랄견처럼 돌아다니는 애가 무슨. 빨리 가자! 용선쌤 보러!"


"흐엉, 사운드 오브 뮤직을 몇 번이나 보는겨..."




꿍얼거리는 휘인을 무시하고 제일 먼저 음악실 문을 연 별이는 얼굴을 쏙 내밀어 용선을 찾았다.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를 하고 있던 용선은 별이가 보이자 웃으면서 들어오라 손짓했다.




"별이 왔어? 아직 쉬는 시간 안 끝났는데 일찍 왔네?"


"쌤 보려고 일찍 왔어요!"




자신 앞에 쪼르르 달려온 별이가 귀여워 머리를 쓰다듬은 용선은 자리에 가 앉으라며 별이 엉덩이를 툭툭 쳤다. 아이들이 하나둘 자리에 다 앉자 용선이 책상 앞에서 일어나 앞으로 나왔다.




"알다시피 생명 선생님인 혜진쌤이 아파서 내가 대신 맡게 됐네? 편하게 영화나 보고 가."


"쌤, 뭐 봐요? 설마 '사운드 오브 뮤직'?"


"에이, 고3이면 여태까지 질리게 봤을 텐데 내가 그걸 보여줄 수는 없지!"


"오오...!"


"별아, 빔프로젝터 좀 켜줄래?"


"아, 네!"




별이가 빔프로젝터를 켜자 용선은 컴퓨터를 연결했다. 미리 준비한 영화 파일이 화면에 크게 보였다.




"13일의... 금요일?"


"공포 영화 싫어하는 사람은 안 봐도 괜찮아. 어때, 괜찮지?"


"오오...!!"


"아, 그리고 이 영화..."


"......"


"청불이다."


"오오!!!"




청불이라는 말에 아이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용선이 크큭 웃으며 다시 한번 물었다.




"얘들아, 이거 비밀이다? 우리 음악실에서 뭐 보고 있는 거지?"


"13일의 ㄱ..."


"'사운드 오브 뮤직'이요!!"




눈치 없는 학생의 말을 자르고 휘인이 크게 소리쳤다. 그런 휘인을 보며 용선은 엄지를 들었다. 이제 고등학교 다 끝나가는데 이런 추억 정도는 만들어야 되지 않겠어?




"별아, 선생님 옆으로 올래? 옆에서 영화 잘 재생되고 있는지 좀 봐줘."


"아..."


"쌤! 문별이 공포영화 못 봐요!"


"응? 진짜?"


"야, 아니거든? 정휘인이 거짓말한 거예요, 쌤!"




그래그래, 용선이 작게 웃으며 영화를 재생시켰다. 말을 하지도 않았지만 아이들은 불을 끄고 커튼을 쳤다. 공포영화를 싫어하는 아이들은 한쪽 구석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이어폰을 끼고 자거나 핸드폰을 했다. 원래 대로였다면 진작에 저 무리에 껴 있어야 할 별이가 용선 옆에 앉아서 빔프로젝터 화면이 아닌 컴퓨터로 보고 있었다.




와, 씨... 나 큰일 났다...




땀 찬 손을 체육복 바지에 닦으며 용선을 자라봤다. 용선쌤, 어찌 저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나이까... 덤덤하게 옆에 앉아 영화를 보고 있던 용선이 쳐다보는 걸 느꼈는지 고개를 돌려 별이를 바라보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손짓했다. 별이가 얼굴을 용선 앞으로 가져가니 용선은 별이의 귀에 대고 작게 말했다.




"왜? 무서워?"


"아, 아뇨..."


"진짜로?"


"... 사실 조금..."




그 말에 푸흐 웃은 용선은 별이의 손을 잡았다. 엏, 저 땀... 괜찮아, 뭐 어때? 어깨를 으쓱하며 다시 영화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내가 용선쌤 손을 잡고 있다니...! 목석처럼 굳어버린 별이는 다시 고개를 돌려 컴퓨터를 바라보다 이내 눈을 감았다. 저걸 보느니 정휘인한테 내 초상화를 맡기겠다 싶었다.







-

이어지는 내용이 궁금하세요? 포스트를 구매하고 이어지는 내용을 감상해보세요.

  • 텍스트 702 공백 제외
500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