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로드 개빡쳤음! 튀어!”


그건 마른 하늘의 날벼락 같은 외침이었다.

적어도 조슈아에겐 그렇게 느껴졌다.


“…뭐야.”


프라우의 가볍다 못해 방정맞기까지 한 외침에 뭐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것마저도 귀찮아진 그는 겨우 한마디만 내뱉었다.


“프라우!!!!”


그리고 다음 순간 그는 정말 깜짝 놀랐다.

붉게 상기된 얼굴의 로드가 씩씩대며 복도로 나왔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머리에선 김도 올라오는 것 같았다.

아니, 착각이 아니었다.

그녀의 머리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었다.


“가만 안 둬!”


그리곤 조슈아가 뭐라 할 틈도 없이 빠른 속도로 복도를 가로질러 달려갔다. (물론 로드 기준이다. 조슈아 기준으로는 걷는 것보다 조금 빠른 수준이었다.)

그는 파견 후 보고서를 날림으로 적은 덕에 (잘 갔다 옴. 끝. 이었다.) 다시 작성한 보고서를 제출하러 가는 길이었다. 집무실 안을 흘끗 들여다본 그는 이내 상황을 유추할 수 있었다.

책상 위 어지럽게 흩어진 서류들과 그 위에 엎어져 있는 찻잔 하나.

보나마나 저 천둥벌거숭이 같은 것이 장난을 걸었을 터였다.


잔업은 절대 사양이지만 왜인지 로드가 불쌍해져 그는 큰맘 먹고 책상 위의 서류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축축한 종이들에 손대기는 싫었기에 염력을 이용해 옮기던 중 그는 검붉은 피가 묻어 있는 휴지 뭉치를 발견했다.


“쯧.”


혀를 한번 찬 그는 약간의 고민에 빠졌다.

하긴 프라우 녀석이 시비 털기는 좋아하긴 해도 이 정도로 도발을 걸지는 않는데 싶었다.


최근 발견된 환상종 문제로 재정적으로 어려움이 많다는 것 정도는 그도 알고 있었다. 그에 따른 골치 아픈 일들을 해결해 나가느라 그 유리 같이 약한 몸으로 무리 했으리라는 것도.


모른체하고 그냥 보고서만 놓고 방으로 가서 쉴까도 생각했지만 불안해 보이던 로드의 상태를 그도 알고 있었기에 쉽사리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조슈아는 일년에 한번 정도는 좋은 일을 하는 게 정신 건강에 좋을 것이라는 논리로 이번만 그녀를 돕기로 했다.

그는 자리에 앉아 서류들을 훑어보고 당장 결재가 필요한 것과 아직 여유가 있는 서류, 그리고 안 봐도 되는 보고서를 분류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동안 주인이 없는 집무실에 종이 넘기는 소리가 사락거렸다.







그 시각, 프라우는 어떻게 하면 그녀를 방으로 데려갈까를 고민 중이었다.

최근 체력적으로 한계인 것이 눈에 빤해서 몰래몰래 감시하고 있던 차였다. 그러던 중 그녀가 코피까지 쏟는 모습에 눈이 돌아가 찻잔을 들이키는 그녀의 목울대를 살짝 친 것 밖에는 없었다.

맹세코 나비가 꽃에 앉는 충격보다 덜했다고 확신했건만 왜인지 로드는 홍자를 얼굴에 뒤집어 쓴상태가 되어버렸다. (프라우가 의도한 것은 약간 사레에 들려 쉬는 로드의 모습이었다)


“이번엔 또 무슨 일입니까?”

“오.”


코너 너머로 인기척이 느껴졌고 이내 그것이 자이라임을 알아차렸다.

프라우는 직감적으로 그녀를 설득 못하면 자신이 망함을 알아차렸다. 자초지정을 안다면 그녀도 협조하겠지만 그걸 설명할 시간이 없었다.


“허억, 허억 프라우!”


평소라면 이정도 장난에도 참을 인을 그리며 참아 냈을 그녀였지만 몇 일간의 수면 부족은 그녀의 인내심을 바닥내었고 거기에 프라우가 불을 당긴 꼴이었다.


“로드!”


피곤함에 쩔어 길게 드리운 다크서클에 붉게 상기된 얼굴, 젖어서 얼굴에 붙어 있는 머리카락 등은 그녀를 심각한 상태로 보이게 했고 이번엔 자이라의 분노에 불을 붙였다.


“허억, 자이라, 걔 좀 잡아봐.”

“예, 로드!”

“젠장, 아니라고!”


처음엔 장난이었지만 분노에 찬 자이라가 술래잡기에 합세한 순간 이미 장난의 범위를 벗어났다.

프라우는 로드를 지치게 하기 위해 긴 동선으로 도망 다녔으나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


부웅-!


하필 대련을 하러 가는 중이었는지 자이라는 들고 있던 연습용 목검을 휘둘렀다.

몇 번 뒤로 튕기며 그것을 피하던 프라우는 이내 블레이드를 꺼내 들었다. 설득도 쉽지 않을 것이 분명했고 무엇보다 그녀는 걸어오는 싸움을 마다하는 이는 아니었다.


“좋아! 붙어보자고!”


캉-!!


그녀의 블레이드와 자이라의 목검이 부딪혀 날카로운 소음이 발생했다. 저건 목검이 아니었다.


“철검입니다. 제가 훈련을 위해 특별히 주문한 거죠.”

“호오, 재미있겠는데?”


끼기긱


둘의 무기가 힘겨루기를 하는 소음이 성 복도를 울렸다.

아발론의 좁은 복도는 둘의 에너지를 버티기엔 무리였다.


몇 번의 충돌이 있고 결국 벽 한쪽이 무너져 내리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자 이제 둘 다 그만하면 된 것 같네만.”


깡-!!!!


둘 사이에 그림자가 끼어 들더니 프라우의 블레이드는 창대로 자이라의 검은 창날과 충돌했다.

헬가였다.


“벽을 부수면 루인 경에게 한소리 들을텐데. 무슨 상황인지는 모르겠으나 여기서 그만들 하지.”

“치, 알았어.”

“…알겠습니다.”


둘은 순순히 무기를 거두었다. 프라우는 창을 등 뒤로 깔끔히 갈무리하는 헬가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전력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설렁설렁하는 대련은 아니었다. 나름 힘이 실린 블레이드였는데 그녀는 깔끔한 동작으로 둘 사이를 파고들었을 뿐만 아니라 한번에 둘의 무기를 멈추었다.


“할머니, 나랑 대련하자.”

“오호. 아직 힘이 남아 있는 게냐?”


불타오르는 프라우를 바라본 헬가는 입꼬리를 올렸다.


“그건 나중에 이야기하자꾸나. 일단은,”


그녀는 프라우에게서 눈을 떼어 복도 한 켠을 바라보았다.


“로드부터 챙기자꾸나.”









둘의 파괴적인 대련을 보던 로드는 어지러움을 느꼈다.

최근 무리한 탓에 체력이 거의 0에 수렴하고 있었는데 거기에 얼굴에 부어진 미적지근한 홍차가 식으며 체온을 빼앗은 탓에 오한이 들고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그런 그녀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걱정 가득한 헬가의 눈이었다.






목이 사포마냥 까끌거렸다.

물을 마시고 싶었지만 손가락이, 아니 온몸이 천근만근이었다.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보니 걱정이 한 가득 실린 얼굴들이 눈에 들어왔다.


“무, 물,”


가까스로 물을 요청하자 수저로 조심스럽게 떠서 흘려 보내는 손길이 느껴졌다. 바네사였다.

벌컥벌컥 마시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왜인지 그녀는 티스푼으로 조금씩만 입에 넣어주고 있었다.


“이틀을 꼬박 앓아 누우셨어요. 갑자기 물을 마시면 잘 넘기시지 못할 수도 있어요.”


그녀의 말에 로드는 미간을 좁혔다. 이틀이라니? 자신이 이틀이나 침대에 누워 있었단 말인가?!

먼저 드는 생각들은 급한 서류들에 대한 것이었다. 환상종으로 인한 피해 복구 관련 예산으로 빨리 승인해주지 않으면 일반 백성들의 생활에 불편을 끼칠 수 있는 부분들이었다.


“제가 급한 것은 처리해두었습니다.”


루인이었다.


“그렇게 무리되실 때까지 서류 처리를 해달라는 말은 아니었습니다.”

“음, 미안.”


왜인지 화난 목소리에 어물어물 사과를 했고 그 모습에 루인은 한숨을 폭 쉬었다.


“로드, 다들 걱정했어요.”

“음, 그렇겠네.”


그녀는 머쓱한 표정으로 볼을 긁적였다. 아직 부어 있는 목은 침을 삼키기도 어려웠지만 그녀는 몸을 일으키려 했다.


우당탕탕-!


그리고 그런 그녀를 바네사가 말리려 했지만 갑작스레 침실문이 열리고 댐의 물 마냥 쏟아져 들어온 기사들의 모습에 놀라 둘 다 눈만 깜빡였다.


“어, 그게 로드! 지나가다 바네사의 바이올린 소리가 멈춰서 이제 괜찮은가 싶어서, 헤헤. 이제 괜찮은 거지?”


뒷머리를 긁적이며 해사하게 웃는 프람과,


“엿듣는 건 실례임은 알았으나 로드의 상태가 너무 궁금해서…”


얼굴을 붉히는 요한과,


“그대. 내가 파견간 사이에 아팠다면서요?! 지금은 괜찮은 건가요, 그대?”


여느 때와 같이 화려한 라이레이와,


“걱정했네. 젊은 이가 벌써 골골대면 어찌하누?”


걱정 어린 목소리의 헬가와,


“로드, 미안해애! 지금은 좀 어때?”


여전히 촐싹대는 프라우와,


“로드! 괜찮으신 건가요?”


울망울망거리는 슈나이더까지.


파견을 가지 않은 기사들은 다 문 앞에 모여 있던 것 같았다.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진 상태를 정리한 것은 바네사의 엄한 목소리였다.

아직 휴식이 필요하다는 말과 함께 모두를 데리고 방을 나섰고 방 안에는 루인만이 남았다.


“좀 더 쉬십시오. 급한 건 제가 다 처리하고 있으니 너무 걱정 마십시오.”

“응, 미안해. 부탁할게, 루인.”


방을 나서려던 그는 멈칫했다.


“이건 아셔야 할 것 같아서요.”

“?”

“제가 집무실에 갔을 때, 조슈아 경이 서류정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조슈아가?”


루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혼자 남은 로드는 왠지 방안이 따뜻해 진 것만 같이 느꼈다.

소란스럽지만 평화로운 아발론의 풍경이였다.








이온님의 썰을 기반으로 적어본 건데 끝 마무리를 어찌해야할지를 몰라서 이상하게 끝내버렸네요ㅠㅠ

생각하신 느낌이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글의 흐름이 여기저기로 튀는 거 같아 퀄은 마음에 안드는데 오랜만에 붙잡고 쓴 거기도 해서 일단 올려봅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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