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실루엣이 시야에 들어왔다. 특유의 길고 붉은 코트를 걸쳤는데도 기장이 남아도는 길쭉한 몸과 누구라도 단번에 기억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갈색 곱슬머리. 그 강렬한 인상 또한 그가 헤픈 언행에도 불구하고 우주의 거상으로 돋움할 수 있었던 과정에 한몫 기여했겠으리라. 사카모토 타츠마가 뱃전에 서 있었다. 무츠는 저 바보가 웬일로 배 위에서 꼿꼿이 서 있는지에 대한 옅은 의문을 머릿속에 흘려보내며 그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지난 경유지였던 행성에 착륙하는 과정에서 불의의 작은 사고로 파손된 쾌원대 비품들의 재구매 건에 대한 최종결재를 받고, 그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 무책임한 함장에 대한 문책을 할 셈이었다. 비록 그때 현장에서 머리를 밟아 응징하는 것으로 일단락하긴 하였으나. 


  “어이, 너.”


  호명하지 않아도 평이한 목소리가 자신을 부른다는 것에 한 점의 의심도 없이 슥 돌아본 사카모토의 얼굴에서 보통과는 다른 점을 찾아낸 무츠는 미미하게 눈썹을 치켜올렸다. 느낀 것은 놀라움이라기보다는 궁금에 가까운 감정이었겠다. 이미 그들은 서로에게 놀랄 수 있는 관계는 지나쳤으니. 


  “늬가 그 색안경을 벗을 날이 올 줄은 몰랐는데 말이여.”


  무츠는 아하하하, 섭섭하게 왜 그려? 따위의 시답잖은 소리를 하는 제 상사를 무시하고는 빤히 그 두 눈을 들여다보았다. 장난스러움을 담아 반짝이는 푸른색은 일견 바다를 닮았되 빛을 담아 투명하게 연해질 적에는 하늘을 끌어온 것과 같은 색채여서 새삼스럽게도 그 경계선, 자신이 이 얼간이를 따르기로 시작한 날에도 일고 있었을 잔잔한 풍랑을 상기하게 하였다. 쯧, 내적으로 혀를 차고는 지어내는 무츠의 미소는 언제나 신발 밑창이 잠기는 연안의 해수 정도로 얕았으나 사카모토는 신기하게도 또 언제나 어떻게인지 그 표정을 받아내 싱글거렸고, 지금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너도 이미지 체인지라도 하는 중인가? 부하의 물음에 그가 장난스레 눈을 깜박였다. 



  “세상이 밝아 보이잖어. 가끔은 이런 날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감?”


  물끄러미 수평선을 응시하는 그의 파란 시선을 쫓아 먼 바다를 내다본 무츠가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연스레 그의 옷깃에서 달랑대는 선글라스를 집어들어 썼다. 그런가, 네가 보는 바다는 이런 색이겠구나. 그 말을 입 밖으로 내지는 않은 채 무츠는 갈색이 연하게 덧칠된 세계를 잠시간 관조하다 안경을 벗어 건네고, 그를 다시 목에 거는 대신 익숙하게 소매로 대강 닦아 얼굴에 쓴 사카모토가 툭 입을 열었다. 


  “자, 어뗘?”


  “네 말대로… 환하군.”


  그리 답하고 짐짓 쳐다본 사카모토의 눈에서는 렌즈로는 감출 수 없는 빛이 반짝였다. 색안경에 가려진 홍채는 하늘과 바다를 나눠 닮은 티끌 없는 푸른색보다는 훨씬 짙었으나, 그것이 네가 보는 세상의 빛깔이라면 그것 또한 퍽 어울린다 생각한 쾌원대의 부함장은 다시 눈길을 멀리 던졌다. 잠시간의 편안한 정적이 지나갔다. 


  “뭐, 그쯤 하고. 어느 바보가 목받침을 깨먹은 조종석 의자에 대한 건인데…”

1차 자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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