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에 흠뻑 젖은 루다가 연습실 바닥에 드러누워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컴백을 열흘 앞두고 아직도 뭔가 부족한 것 같단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아서 숙소로 돌아가질 못했다. 항상 안무에 대한 불안감이 큰 편이라 무대에 오르는 순간까지 복기하고 또 복기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었다.


“혀엉- 집에 좀 가자. 나 졸려.”


덩달아 연습실에 미역처럼 늘어져 있던 메인 댄서 리오가 우는 소리를 했다. 벌써 새벽 두 시였다.


“다섯 번만 더 하고 가자.”

“아 그럼 나 먼저 가면 안 돼? 나 진짜 미칠 것 같아. 개졸려.”

“안무 팀도 쌤도 다 가서 물어볼 사람이 없잖아. 쫌만 더 기다려주라. 나 진짜 딱 다섯 번만 더 할게.”

“아아-. 아! 빨리 해.”


주저앉아 다리를 버둥거리던 리오가 옆으로 누워 거울을 보며 입술을 삐죽거렸다. 어차피 보채봐야 정말 그 다섯 번을 다 채울 때까지 루다가 연습실을 떠나지 않을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고마워. 쫌만 기다려줘.”

“그렇게 웃지 마. 더 정들어. 잘 생기면 다냐?”


리오는 루다에게 틱틱대면서도 착하게 재생 버튼을 눌러주었다. 금세 안무와 노래에 집중하는 루다를 보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천생이 가수다, 저 형은. 가지고 태어난 재능과 노력이 더해지니 빛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부드럽지만 강단 있는 성정. 거기다 몸담고 있는 분야에 그 누구보타 열정적이니,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만 했고 함께 길을 걸어가는 동생들에게 존경 받는 것도 당연했다.

어렵지 않게 다섯 번의 라이브와 안무 연습을 마친 루다가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집에 간다는 생각에 기뻐하며 벌떡 일어난 리오가 후다닥 루다에게 달려갔다.


“부축해줄까? 괜찮겠어?”

“어어-. 숨만 좀 고르고. 나 이번엔 하나도 안 틀렸지?”

“응. 안무는 완벽. 라이브까지 너무너무 완벽. 그러니까 제발 집에 가자.”

“너 그냥 집에 가고 싶어서 나 일으켜주는 거지?”

“예에쓰.”


장난꾸러기 리오가 익살스럽게 대꾸하며 루다의 양손을 잡아 쭉 당겨 일으켰다. 컴백을 앞두고 몇 킬로 몸무게를 감량하며 식사량을 줄였으니 힘이 모자랐다. 루다는 남은 힘을 쥐어 짜 다리에 힘을 주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괴한 곡소리가 절로 났다.


“루다 형 그런 소리 낼 때마다 우리 할아버지 생각 나.”

“야아- 아마 내 무릎이 우리 할아버지보다 더 안 좋을 거 같아.”

“응. 나도 그래. 나 지난번에 우리 할아버지랑 손 잡고 한의원 갔잖아.”

“푸학! 침 맞으러?”

“엉. 침 잘 놔준다 그래서 따라갔지. 어른들 사이에 껴서 30분 기다리는데 겁내 민망.”


이리 튀고 저리 튀는 이상한 대화를 나누며 낄낄거리는 두 사람이 천천히 연습실을 빠져나왔다.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던 매니저의 배웅을 받으며 차에 올랐고, 뻥 뚫린 길목을 천천히 빠져나와 숙소에 도착했다. 예정보다 빠르게 진행되는 컴백에 멤버들을 비롯하여 여러 사람들이 고생하는 중이었다.

루다는 침대에 누워 잠들기 전까지 티저 영상에 달린 댓글들을 보며 팬들의 반응을 살폈다. 댓글 창은 눈물 바다였고, 많은 이들의 통장이 준비 되어있다는 TMI가 즐비했다. 힘들어도 행복했다.

바늘구멍 같은 등용문을 지나 데뷔를 하게 되더라도,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그룹을 유지하게 되는 것도 운이 크게 따라줘야만 하는 세상이었다. 한창 대세의 파도에 오른 위시라고 해서 무명의 시절이 없던 것이 아니었다. 열정과 노력은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는 곧은 신념을 잃지 않았던 것이 기본이었고, 나머지는 운의 흐름에 맡기는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걔 중 운 좋은 사람이 루다였다.

열성 팬의 직캠 영상으로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것부터가 시작이었다. 그 다음부터는 말도 안 되게 불어나는 팬덤의 화력을 보며 회사 사람들은 물론이고 위시 멤버들 모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까지도 레전드 영상으로 남아있는 그날의 직캠 영상은 루다도 하루에 두 번 씩은 돌려보는 아주 감사한 영상이었다. 성지순례를 왔다는 댓글들을 보며 좋아요를 누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자제하는 편이었다. 안 그래도 팬들 사이에서 써치킹으로 소문났는데 더 시끄럽게 지내면 곤란할 것 같았다.

 

 

*

 

 

루다가 늦은 하루를 마무리하며 꿈나라로 빠질 무렵, 경헌은 자다가도 깨서 티저 영상을 재생시켰다.

24시간도 채 지나지 않은 영상의 총 조회 수에 심심치 않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을 정도였다. 돌아서면 티저 영상이 그리워서 재생시키고. 일이 다 끝난 기념으로 재생하고. 집에 가기 전에 한 번 더 보고. 잠들기 전까지 다섯 번만 더 보고. 자려다가 눈 감는데 루다의 눈빛이 떠올라 또 보고. 아주 지독하기 짝이 없는 중독이었다.

세 시간 간신히 수면한 경헌은 출근하기 무섭게 예약 판매 안내 문구를 꼼꼼히 살폈다. 예판 싸인회 응모가 있을 거란 헛소문에 총알 장전하고 기다렸는데 싸인회에 대한 별 다른 공지가 없어 실망스러웠다. 눈에 띄게 아쉬움 가득한 상무님의 모습을 보며 재준은 생각했다. 뭔가 또 일이 제대로 안됐구나. 회사 일 말고 위시 덕‘일’이. 관자놀이를 꾹꾹 지압하는 경헌을 보며 재준이 조심스럽게 말을 붙였다.


“상무님? 괜찮으세요? 두통약 떨어지신 건가요?”

“한 알 정도 남았어. 나 신경 쓰지 말고 박 비서 일 해.”

“상무님 살피는 게 제 일인걸요.”

“안 어울리는 소리 하지 말고.”

“네, 죄송합니다. 위시에 무슨 일 있나요?”

“아니-. 별 일은 아니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게 없어져서 그런 거지. 괜찮아.”


너무 일상적인 톤으로 자연스럽게 나눈 대화라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회사 일인 줄 알 정도였다.


“아. 예판 싸인회 말씀하시는 거죠? 아까 제 여자 친구도 발끈 하더라고요. 확실한 정보라고 소문났다는데 그게 아니었다고.”

“나보다 박 비서가 잘 아네.”

“하하! 뭐-. 어쩌다 보니…….”


재준이 삼킨 말이 뱉은 말보다 더 많았지만 사회생활을 하며 이정도 쯤은 얼마든지 참아줄 수 있었다. 그리고 곧장 화제를 돌려 경헌에게 온 연락들을 차례대로 알렸다.


“마지막으로 사모님께서 저녁 식사 함께 하자 전달해달라고 하셨습니다. 상무님께서 전화를 안 받으신다고. 일부러 안 받으신 거 맞죠?”

“어. 잘 둘러댔지?”

“제가 없는 회의 만드는 데 도가 터서요. 정중히 거절했습니다.”

“그래. 우리 어머니가 포기를 모르셔.”

“그냥 식사정돈데- 왜 그렇게 불편해 하세요?”


결재 건에 열심히 코멘트를 달던 경헌의 손가락이 우뚝 멈췄다. 그는 꽤 놀랍다는 눈빛으로 재준을 쳐다보며 되물었다.


“박 비서는 명절 때 결혼하란 소리 많이 안 들어봤나 봐?”

“뭐- 그렇죠. 그런 소리 들을 즈음에 지금 애인이 생겼고. 곧 결혼할 거니까요.”

“그래. 그럼 내 심경을 모르지. 식사하러 나갔는데 그 자리에 어머니가 아니고 모르는 여성분이 앉아 계셨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야.”


경헌의 나이가 올해로 서른 셋. 굴지의 대기업 재벌 3세, 자사 식품 라인 상무직에 앉아있으니 직업 조건도 최상급. 거기다 잘생기고 똑똑한데 매너도 좋았다. 그러니 한가락 하는 집안의 부모들이 순번 대기표를 뽑고 자신의 딸과 경헌을 이어주고 싶어 하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리고 경헌은 당연히 그런 수순에 이골이 난 상태였고.


“그냥 식사 정도만 하고 그만 만나면 되잖아요?”

“남의 집 귀한 따님들 시간 뺏는 거 아니다.”

“아니면 결혼 안 하겠다고 딱 말씀하시던가.”


재준이 가장 확실한 방법은 이게 아니냐며 호언장담했다. 물론 경헌이 그 말을 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었다. 이미 예전하고도 더 예전에 얘기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뿐.


“내가 어떤 말까지 했는지 알아?”

“무슨 말이요?”

“……아니다. 됐다. 뭐 이런 거까지 얘기할 필요는 없으니까.”


재준은 과거를 회상하며 한숨을 쉬는 경헌이 어떤 미친 짓을 했을까 궁금했다. 하지만 쉽게 입을 떼지 않는 경헌을 보며 재준이 킬킬거렸다.


“에이-. 상무님 뭐 설마.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그게 이루다 씨다. 이 사람 아니면 결혼 안한다, 뭐 그런 얘기 하셨어요?”


오늘도 잔잔하고 고요한 호수에 돌을 던진 사람은 재준이었다. 그 말을 들은 경헌도 풉큭큭 소리 내어 웃었다.


“아 진짜 내가 그렇게 했을 것 같아? 내 이미지 박 비서한텐 그런가보네? 엄청 직설적이고 뭐 그런?”

“좀 그렇긴 해요.”

“하하하-. 좋게 봐줬네. 근데 그렇게까진 안 했어.”

“그쵸? 상무님이 뭐 애도 아니고- 설마…….”

“그냥 남자 좋아한다고 했지.”


네?

뭐라고요?

상무님 책상 위에 마지막 남은 결재판을 올리던 재준의 손길이 멈칫했다. 네? 뭐라고요? 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도 못했다. 너무 놀라서.


“어떻게 이루다 씨에 대해서 얘기하겠어. 그건 너무 실례지.”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

할 말을 완벽하게 상실한 재준이 금붕어처럼 입술만 뻐끔거렸다. 재준의 손에서 결재 건을 빼앗아 온 경헌은 아마도 멀게는 몇 년 전 가깝게는 몇 달 전이었을 일들을 아무렇지 않게 회상했다. 마치, 재미없게 읽은 책을 리뷰하듯이 건조하게.


“근데 언제였더라? 아무튼. 언제는 한 번 어머니가 밥 같이 먹자고 먹자고 사정 사정을 하셔서 마지못해 나갔는데. 그 자리엔 웬 멀끔한 남자가 앉아있더라. 되게 수줍은 얼굴로. 아주 대단한 여사님이야 정말.”

“……하하. 네…….”


님도 대단한 거 왜 아직 모르시는지 모르겠네요.

사회생활 만렙을 코앞에 둔 재준이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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