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벌써 12시인가? 다이치는 손목시계를 보았다. 시간은 8시 반이었다. 다이치는 당황했다. 뭐지? 혹시 마지막으로 남은 두 명에게만 적용되는 특별 규칙이 있나? 그렇다면 왜 이제야 방송하는 거지? 대체 뭐지?

요란하던 팡파르의 볼륨이 줄어들고 목소리가 나왔다.

<5번 타나카 류노스케 군, 3번 아즈마네 아사히 군, 9번 카게야마 토비오 군,>

<수고 많으셨습니다.>
<1번 사와무라 다이치 군,>
<축하합니다.>

정전된 것처럼 머릿속이 새까매졌다.


다이치는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갔다. 카게야마가 보였다. 

카게야마는 고요했다. 여전히 사거리 한가운데 가만히 있었다. 그러나 더 이상 앉아 있지 않았다. 카게야마는 바닥에 조용히 쓰러져 있었다.


그게 아니라고, 내가 생각하는 그게 아닐 거라고 다이치는 짧은 순간 속으로 수천 번 외쳤다. 비명이 나올 것 같았다. 

앞뒤도 재지 않고 달려가 다이치는 쓰러진 카게야마를 안아올렸다. 

주룩 피가 흘렀다. 바닥은 이미 피로 흥건했다. 카게야마의 이마에 작은 구멍이 뚫려 있었다. 뒷머리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 탄환이 관통한 흔적이었다.

카게야마의 눈에는 초점이 없었다. 늘어진 입으로 힘없이 혀가 삐져나왔다.

카게야마의 목걸이는, 꺼져 있었다.

권총은 카게야마의 손에 쥐여져 있었다.


“카게야마……?”

대답은 없었다.


스피커에서는 방송이 계속 흘러나왔다. 우승자가 정해졌다고 했다. 20시간 27분만이라고 했다. 우승자는 이제 스테이지를 떠날 수 있다고 했다. 게임 스테이지 출입문이 열렸다고 했다. 거대한 철문 밖에 우승자를 위한 호송차가 대기하고 있다고 했다. 축하한다고 했다.


“카게야마.”

대체 왜.

“카게야마. 카게야마.”

왜 벌써. 내가 아직 여기 있는데. 무서워서? 싸우기 싫어서? 아플까 봐 겁나서? 왜?

“카게야마……!”

너는 살고 싶지 않았어?


생각하던 다이치는 깨달았다. 아, 그랬구나.
바람이다.
카게야마는 바람에 놀란 거다.
 
카게야마는 타다닥 하는 낯선 소리를 듣자마자 앞뒤 가리지 않고 쐈었다. 그 소리가 발소리처럼 들려서. 그 소리마저도 경계하지 않을 수 없어서.


적막 속에서 점점 귀가 예민해져서.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라도 들리면 온몸에 공포가 차오르며 자기도 모르게 방아쇠에 건 손가락이 움직여서. 쏘지 않곤 견딜 수 없어서.

그러면서도 허탈해서. 그만 포기하고 싶어서. 그런데도 포기할 수 없어서. 살고 싶어서. 죽고 싶지 않아서. 죽임당하고 싶지 않아서. 그러는 사이 점점 온몸이 예민해져서. 아주 가는 바람과 부드러운 살랑임조차도 흠칫흠칫 공포로밖엔 느껴지지 않아서. 맨정신으론 버틸 수 없을 지경까지 치달아서.


그러다가 어느 순간 모든 게 도저히 더 견디지 못할 만큼,

외로워져서.


“카게야마. 제발.”

다이치는 애원했다. 대답은, 없었다.


스피커에서는 같은 방송이 반복되고 있었다. 축하한다고 했다.


다이치는 스피커를 보았다.

다이치는 도끼를 들었다.

스피커를 향해 휘둘렀다. 연결부가 부서지며 스피커는 추락했다. 다이치는 스피커에 대고 도끼질을 했다. 도끼날이 아스팔트 바닥에 부딪쳐 깡 깡 울렸다. 금속, 고무, 플라스틱 부품들이 나뒹굴었다.


다이치는 GPS 단말기를 켰다.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점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얼마 걷지 않아 시체가 보였다. 목이 너덜너덜해진 시체였다. 야마구치 타다시의 시체였다.

그 다음 점을 향해 갔다. 커다란 날붙이에 난자당한 시체가 있었다. 눈을 부릅뜬 채로 굳어버린, 히나타 쇼요의 시체였다.

그 다음 점을 향해 갔다. 가슴을 깊이 베인 시미즈 키요코와 히나타와 비슷한 꼴로 난자당한 야치 히토카의 시체가 있었다. 그 다음. 형체가 없는 츠키시마 케이. 이마가 쪼개진 타나카 류노스케. 담요 아래 웅크린 키노시타 히사시. 목을 찔린 엔노시타 치카라. 상반신을 마구 찔린 니시노야 유우. 머리가 뚫린 나리타 카즈히토. 

다이치는 계속 걸었다. GPS는 다이치를 23동 앞으로 안내했다. 그 안에 피부가 검푸르게 변한 스가와라 코시와 단검에 목을 베인 아즈마네 아사히가 있다는 것을 다이치는 알고 있었다.


그 다음 점을 찾아 다이치는 걸었다.

그러고 나니, 그 점은 카게야마 토비오였다. 원점이었다.


다이치는 믿을 수 없었다.

이게 끝일 리가 없어.

아직 어딘가에 누군가 살아 있지. 그렇지.

나는 아직 우승하지 않았어.


카게야마와 야마구치와 히나타와…… 하고 이어지는 기나긴 주회로를 다이치는 다시 돌기 시작했다.


스피커에서는 팡파르가 하염없이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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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밤 11시, 킬 더 크로우 5. 에필로그가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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