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 갑자기 급한 일이 들어와서 못 갈 것 같아."

"야! 너 온다 그래서 탕수육도 시켰는데! 이미 출발해서 취소도 안 된단 말야."

"진짜 미안. 음식값은 알려주면 나중에 보내줄게."

 전화를 끊자마자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한숨이 터져 나왔다. 갈 곳을 잃은 대량의 음식이야 조금은 버려지겠지만 저녁까지 먹으면 된다. 그것보다 오늘은 혼자서 밥을 먹지 않아도 된다는 기대가 빗나가버려 상당히 낙심했다. 주변에선 다들 집에서 일하는 걸 부러워하고 가끔 만나 넋두리를 듣자면 직장 생활은 참 힘들겠다고 생각도 하지만, 집이 곧 직장이니 일과 휴식에 분별이 없어 사람이 점차 피폐해지고, 밖에 나갈 일이 줄어들어 폐쇄적이 되어간다. 그러다 대화 상대가 미치도록 그리워지면 가끔 주변에서 일하는 친구를 불러 같이 점심을 먹는데 다시 혼자가 되어버렸다.

 소파 위에 휴대전화를 대충 던져버리고 이번 주말에는 무리해서라도 밖에 좀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초인종이 울렸다.

 "배달이요."

 '어, 목소리가…….'

 대충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문을 열자 커다란 헬멧을 뒤집어쓴 기사분이 서계셨다. 가볍게 인사하니 아무런 대답 없이 묵묵히 들어와 음식을 꺼내놓기 시작했다. 그래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나보다 한 뼘 정도 차이 나는 160 남짓으로 보이는 키에 헬멧 아래로 내려온 검은 생머리, 그리고 가늘고 예쁜 손까지. '여자 배달기사분은 처음이네'라고 생각했다.

 그 순간, 꼬르륵하는 소리가 꽤 크게 울렸다. 나한테서 나는 소리인 줄 알고 깜짝 놀라 불현듯 배를 양손으로 감추듯 잡았는데 내 배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었다. 대신 음식을 내려놓던 기사분의 손동작이 한동안 멈췄다. 부끄러웠는지 남은 음식들을 순식간에 꺼내놓은 뒤 바로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맛있게 드세요."

 그렇게 말하고선 문을 열고 나가는 기사분의 손을, 극에 달한 외로움 때문인지 남거나 버려질 음식에 대한 걱정인지 아직도 모르겠으나, 무심코 붙잡고 말았다. 돌아보는 기사분의 얼굴은 헬멧에 가려 보이지 않았으나 분명히 눈이 맞았다고 생각한다.

"저기, 괜찮으시면 같이 드시지 않을래요……?"


 "혼자서 이렇게 많이 드시나 했어요."

 그녀가 바이크의 시동을 끄러 잠시 내려간 사이 음식을 식탁으로 옮겼다. 친구가 오기로 했던 터라 집 안 청소를 해둬 다행이었다. 다시 올라온 그녀는 헬멧을 벗고 현관 앞 구석에 놓아두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앳된 외모였다.

 "친구가 오기로 했는데, 갑자기 못 온다고 해서요. 덕분에 살았네요."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선 "잘 먹겠습니다." 하고 말하고는 젓가락을 들었다. 나도 똑같이 답하고선 식사를 시작했다. 한 입 먹고 나서야 생판 모르는 사람과 함께 집에서 밥을 먹고 있다는 이 상황의 기묘함을 깨달았다. 그래도 불안함이나 불편함을 느끼지는 않았다. 애초에 내가 먼저 권한 것이기도 하고, 상대도 전혀 개의치 않은 듯했다. 식사 동안 서로 한 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그 점이 되려 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덕분에 잘 먹었습니다."

 "제가 먹자고 한 건데 뒷정리까지 도와주시고…."

 식사를 마치자 그녀는 용기를 헹구고 고맙게도 설거지까지 해주었다. 커피라도 드시겠는지 묻자 그녀는 괜찮다고 고개를 저으며 현관으로 향해 헬멧을 집어 들었다.  배웅하기 위해 나도 현관으로 향했다. 신발을 신기 위해 상체를 숙인 탓에 그녀가 더 작아 보였다.

 "나중에 또 식사하러 오실래요?"

 그녀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아직 헬멧을 쓰지 않아 이번에는 눈이 직접 마주쳤다. 나는 시선을 돌리며 황급히 설명을 덧붙였다.

 "아, 그게, 저도 항상 혼자 먹기도 하고. 누구 같이 먹는 사람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요. 음식은 제가 살 테니……."

 "번호"

 신발을 마저 신고 고개를 든 그녀가 휴대전화를 내게 건네며 말했다.

 "네?"

 "번호 알려주세요. 휴대전화 번호. 다시 연락드릴게요."

 그녀가 건네 준 휴대전화에 내 번호를 찍어 다시 돌려주자 받아들고선 문을 열고 나갔다. 나가기 전 말은 없어도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던 모습이 내게 깊숙이 남았다.


 그날 밤에 연락이 왔다. 그렇게 같이 밥을 먹는 친구가 생겼다. 처음에는 일주일에 한두 번이던 만남이 점차 늘어 이제는 주말에도 가끔 만나는 사이가 되었다. 내가 특별히 먹고 싶은 게 없을 땐 기본적으로 그녀가 메뉴를 골랐다. 가끔 여기가 주문이 되게 많다며 맛집인지 확인해 보자고 사 올 때도 있었다. 후에 영수증을 받아 금액을 정산했다.

 같이 만나 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누는 동안 서로에 대해 여러 가지 알게 되었다.

 "학생이었어요?"

 "네. 저쪽에 있는 대학교요. 디자인학과."

 "그러니 말 편하게 하세요."라며 그녀는 웃었다. 어쩐지 어려 보이더라. 나는 사양하지 않고 '그럼 그렇게 할게."라고 받아들였다.

 "배달은 어쩌다 시작하게 된 거야?"

 "그냥 뭐……. 등록금도 모아야 되고 월세도 내야 되고……. 다른 아르바이트보다 시간 조절도 편하고 페이도 높잖아요."

 "아, 자취해? 어디서?"

 "학교 앞에서요. 근데 학교 근처는 비싸서 좀 떨어진 데로 골랐더니 여기서도 별로 안 멀어요."

 "그래? 그럼 같이 살래? 월세도 아끼고 좋잖아."

 "지금도 엄청 폐 끼치고 있는데 그렇게까지 할 순 없죠." 그녀가 겸연쩍은 듯이 웃으며 손을 저었다. 그 뒤로는 여느 때처럼 아무래도 좋은 얘기들로 잡담을 하며 식사를 마쳤다.

 "그럼 가볼게요. 오늘도 잘 먹었습니다."

 인사하고 밖으로 나가려는 그녀를 불러 세웠다.

 "그러고 보니 영수증을 못 받았는데."

 "오늘 정도는 제가 살게요. 생일이시잖아요."

 그 말에 휴대전화를 들어 날짜를 보았다. 확실히 내 생일이었다. 친구들에게 알려준 적도 없고 가족끼리도 잘 챙기는 편이 아니어서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어떻게 알았어?"

 깜짝 놀라 묻자, 그녀는 "전화번호 뒷자리가 생일 같길래요."라고 싱긋 웃으며 답했다. 그러고서는 헬멧을 쓰고 "다녀오겠습니다."라고 인사하며 나가는 그녀에게 나는 잘 다녀오라는 말도 하지 못한 채, 닫힌 현관문만 멍하니 한참을 쳐다보았다.


 그날은 점심시간이 지나도록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평소라면 못 올 때에는 미리 문자라도 줬었는데. 무슨 일이 있나 신경 쓰여 밥은커녕 일도 손에 제대로 잡히질 않았다. 그렇게 노심초사하며 휴대전화만 수시로 확인하던 차에 연락이 왔다. 문자였다.

 '미리 연락 못 드려서 죄송해요. 사고가 나서 오늘은 못 갈 것 같아요.'

 바로 전화를 걸어 어딘지 물어 병원으로 향했다. 가까워질수록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병원 앞에 도착하자 그녀의 바이크가 눈에 띄었다. 서둘러 병원으로 들어갔다. 좀처럼 내려오지 않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지 못하고 계단으로 뛰어 올라갔다. 그녀는 병원 한 쪽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나를 보자 손을 흔들었다.

 "괜찮아? 어디 다친데 없어? 병원에서는 뭐래?"

 한숨에 달려가 어깨를 붙잡고 묻자 그녀는 '좀 진정하세요.'라며 내 손을 잡았다.

 "괜찮아요. 병원에서도 아무 이상 없대요. 그냥 작은 접촉사고인데 혹시 몰라서 와본 거예요."

 "부모님은?"

 "지방에 사셔서……. 크게 다친 것도 아니니까 연락은 안 드렸어요."

 그 말을 듣자마자 눈물이 났다. 그 자리에서 그녀를 껴안고 펑펑 울었다. 나중에 들었는데, 얼마나 서럽게 울었는지 주변 사람들이 죽을 병이라도 걸린 건가 하고 쳐다봐서 숨고 싶었다고 했다. 그렇게 한참을 울고 나서 좀 진정되자 그녀에게 말했다.

 "앞으로 바이크 타지 마……. 다른 아르바이트 하자. 돈 때문이면 우리 집에서 살아도 되니까……. 아냐, 같이 살자. 퇴원하면 바로 짐 챙기자. 나도 같이 갈게."

 "아, 아니에요.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틀린 대답이라는 듯이 있는 힘껏 그녀를 끌어안았다. "아, 알겠어요!"라며 신음과 함께 나를 떼어놓았다. 그녀를 풀어주는 대신 옆자리에 앉아 손을 잡았다. 그제서야 마음이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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