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이지







이 이야기는 언제까지나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한 허구적 이야기입니다. 실제 역사적 배경, 언어와 많이 다를 수 있다는 점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항심

1. 늘 지니고 있는 떳떳한 마음

2. 맞서려는 마음


















학수가 집을 나서는 게 보이자 담 뒤에 붙어있던 별이는 조용히 학수의 뒤를 밟았다. 승우의 집에 갔었을 때 못 봤던 인물이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안에 있던 사람들의 수를 파악한 별이는 저잣거리에서 들었던 학수의 존재를 아직 파악하지 못하고 있던 차였다. 승우의 모든 일들 안에는 항상 학수가 옆에 있다는 휘인의 말도 들어 더욱 경계해야 할 자였다.


망설임 없이 걸어가는 학수 뒤를 밟던 별이는 저 멀리 보이는 일본 순사에 발걸음을 옆 골목으로 돌렸다. 늦은 시간 순사의 눈에 띄어봤자 좋을 일이 하나도 없었다. 순사가 별이의 시아에서 없어지자 별이는 이쯤해서 그만하고 집이나 가야지 하며 돌아섰다.




"조금 희망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실패하지 않겠지?"


"없을 겁니다. 앞이 좀 보이니."




뭐지, 수상한 대화에 급히 골목길 뒤로 몸을 숨겼다. 아까 미행하는 것을 포기했던 학수가 누군가와 함께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까 바삐 가는 것 같은데 이것 때문인가. 분명히 아까 일본 간다고 했는데. 집중해서 들으려 했지만 거리가 너무 먼 탓에 자세히 들리지 않았다. 별이는 미간을 모아 학수 앞에 있는 남자의 얼굴을 바라봤다. 누구지. 어두워서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남자가 시선이 느껴졌는지 별이가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크, 들키겠다. 급히 고개를 빼 뒷걸음질을 쳤다.




"...?"


"왜 그러십니까?"


"시선이 느껴져서..."


"네?"


"だれだ!"

(누구냐!)




다가오는 발자국소리에 별이의 동공이 빠르게 움직였다. 어떡하지. 그냥 지나가는 척 갈까. 돌아갔던 길로 다시 가자니 숨을 곳이 없었다.




염병할-




남자는 골목길을 걸으며 주머니 안에서 총을 꺼내 들었다. 학수도 긴장을 하며 뒤를 따라왔다. 밤이라 어두운 골목길이 더욱 스산하게 느껴졌다. 총을 겨누며 천천히 걸어가다 재빠르게 아까 자신이 느꼈던 곳으로 총구를 돌렸다.




"...?"


"아무것도 없는데요...?"




텅 빈 골목에 남자는 총구를 내렸다. 아, 요새 피곤했나. 목을 매만지며 총구를 내렸다. 이만 가시죠. 학수의 말에 몸을 돌려 가려고 하는 순간 위에서 나뭇잎 하나가 천천히 떨어졌다.




탕-




"이, 이게 무슨..."




남자가 총을 쏜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커다란 나무가 자리 잡고 있었다. 나무를 빤히 바라보던 남자는 어깨를 으쓱하며 총을 집어넣고 학수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작게 말했다.




"미행이 붙었나?"


"절대 아닙니다."


"흐음... 알겠다. 자네가 간도에 다녀오고 나서 보지."



툭툭 학수의 어깨를 친 남자는 그대로 뒤를 돌아 유유히 사라졌다. 한참을 나무에 시선을 놓지 못하던 학수도 서둘러 발걸음을 돌려 사라졌다.




"... 하아-"




학수와 남자가 바라본 나무 위의 반대편에 있던 별이는 참았던 숨을 내쉬며 지혈하고 있던 총알이 스치고 지나간 팔 상태를 확인했다. 다행히 깊게 스치지 않았기에 망정이었다. 자기 맞은편도 뻥 뚫려있어 만약 사람이 자기 쪽으로 왔었으면 십중팔구 들켰을 게 뻔했다. 스치고 나서 바로 지혈을 하지 않았으면 바닥에 혈흔이 떨어졌을지도 몰랐다. 옷을 찢어 상처 난 팔을 묶은 별이는 묻은 피를 대충 옷에 닦은 뒤 나무에서 내려와 그 남자가 가던 길로 발걸음을 급히 옮겼다. 시간이 별로 지나진 않았을 터, 조금만 더 가면 그 자가 누군지 알아낼 수 있었다. 학수가 간도에 간다고 했으니 한동안 조선에 있진 않을태니 지금 말고는 기회가 없었다.


조금 더 가니 연회장이 나왔다. 밤 늦게까지 연회장이 열다니. 주변을 살펴 어디 들어갈 곳이 없나 살펴보니 뒷문 옆에 있는 창문이 열려있는 게 보였다. 재빨리 창문 안으로 들어가 복도를 거닐었다. 북적북적대는 소리에 슬쩍 고개를 내밀었다. 어디있지. 빠르게 눈동자를 돌려 사람들의 얼굴을 보던 도중 삐걱-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급히 돌아 손을 꺾은 뒤 제 뒤에 있던 사람을 벽으로 밀어 포박했다. 젠장, 들켰다.




"언니, 나야...!"


"...? 안혜진?"




뜻밖의 목소리에 바로 손을 풀었다. 혜진이 별이를 보며 꺾인 손이 아팠는지 엄살을 부리는 듯 만지작 거렸다.




"뭐야, 너가 왜 여기있어?"


"그야말로 언니는? 나 오늘 여기서 공연이야."


"정학수가 몰래 만나는 사람 뒤를 밟다가... 오늘 잡힌 공연이 여기였구나."


"응. 일단 여기는 안전해. 내 대기실이 여기... 언니 다쳤어?"


"나중에 설명해줄게. 몰래 만난 사람, 지금 연회장 안에 있는 것 같아. 나 들어가서 확인만 해도 될까?"


"음, 위험할 것 같은데... 내가 망 보고 있을 태니까 여기서 봐봐."


"그럴게."




뜻밖의 행운에 별이는 아까 소란스러웠던 곳을 다시 염탐했다. 혜진은 별이의 상처를 힐끔 쳐다보다 옆에서 직원들이 오는지 지켜봤다. 아까 학수와 나눈 대화의 목소리를 찾아 눈을 바삐 움직이던 중 호탕한 웃음소리가 귀에 박혔다. 눈에 이끌려 바라본 곳은 우리의 타겟 중 하나인 카츠마토 토마였다.




"여기, 카츠마토 토마가 있어."


"맞아. 오늘 명단에 있더라."




들려오는 목소리를 조금 더 주의깊게 살펴봤다. 똑같다. 아까 학수와 같이 있던 남자의 목소리의 주인공은 카츠마토 토마였다.



"사진보다 못생겼다."


"그러게."



정학수와 카츠마토 토마라니. 도데체 무슨 사이길래 밀담을 나눈거지. 계속 쳐다보는 별이의 시선이 느껴졌는지 토마는 대화를 나누다 고개를 돌렸다. 이크, 급히 몸을 안쪽으로 뺐다. 마주친건가.




"화사야! 준비 다 됐니?"


"네! 언니, 나 이제 가야 해."


"카츠마토 토마였어. 정학수가 몰래 만난 사람."


"있다가 설명해. 일단 나 나가야하니까 일 끝나고 주점에서 보자. 조심히 나가!"


"알겠어. 몸 조심해."




혜진이 대기실을 나가자 연회장에서 혜진의 소개가 들렸다. 박수소리와 함께 음악이 나오고 혜진의 노래가 시작됐다. 모두가 혜진의 목소리에 집중한 틈을 타 아까 들어온 곳으로 이 곳을 빠져나가 몸을 감췄다.


주점 근처에 다다르다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가 들려왔다. 최대한 눈에 띄지 않게 벽에 붙은 별이는 어떻게 가야 할까 잠시 생각했다. 때마침 주점에서 쓰레기를 들고 나온 휘인이 보이자 별이가 작게 손을 들었다.




"휘인아."


"어, 대ㅈ... 뭐야, 왜 그래요!"


"쉿, 나 들어가야 되는데 겉옷 없어?"


"우선 이거 입으세요."




쓰레기를 버린 휘인은 자기가 입고 있던 겉옷을 벗어주었다. 작긴 하지만 대충 두른 별이는 주점 뒤로 돌아 뒷문으로 들어가 2층 침실로 올라갔다. 주점 일을 대충 끝내고 올라온 휘인은 따뜻한 물과 수건, 붕대, 치료제들을 가지고 별이 앞에 앉았다.




"어떻게 된 거에요? 습격 받았어요?"


"정학수 뒤를 밟다가 이렇게 됐어. 습격은 아니고 들킬 뻔 했지."


"옷 벗어 봐요."




휘인이 준 겉옷을 벗고 묶은 천을 푼 뒤 안에 받쳐 입은 얇은 옷을 제외하고 제가 입고 있던 옷도 벗었다. 아까는 어두워서 잘 못 봐서 그랬는지 제가 생각했던 것 보다 상처가 조금 더 많이 큰 것 같았다. 상처를 유심히 본 휘인은 가져온 물로 상처를 씻어냈다.




"이거 총상 맞죠?"


"정학수가 읏, 카츠마토 토마랑 은밀히 이야기하는 걸 봤어."


"대장이 들켰을 정도면 엄청 예민한 사람인 가봐요."


응. 혜진이 오면 설명해줄게."


"크큭, 안혜진한테 1주일 치 놀림감인데요, 이 정도는? 됐다. 팔 쓰는 데 문제는 없죠?"


"응."


"내일 어떻게 나갈 거예요? 이러고 나갈 수는 없잖아요."


"내일이면 괜찮아져."


"전 다시 가야될 것 같아요. 쉬고 있어요, 대장."


"응, 무리하지 마."


"네에-"




휘인이 나가고 난 뒤 팔을 움직였다. 깊이 들어가지 않아서 심각하게 문제가 되진 않았다. 딱히 잠이 오지 않아 내일 해야 할 일을 곱씹으면서 점점 욱신거리는 상처를 지정시켰다. 늦은 밤, 주점이 문을 닫을 때 혜진도 같이 퇴근했다. 별이는 둘에게 붙잡혀 상황을 설명하고 온갖 걱정과 웃음을 받은 후에야 풀려날 수 있었다.






-






붕대를 얇은 걸로 새로 갈고 그 위에 겉옷을 입으니 별로 티가 나지 않아보였다. 1층으로 내려가니 어제와 같이 혜진과 휘인이 장난치면서 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어이, 대장! 팔은 괜찮수? 붕대 푼 것 같은데?"


"나름? 푼 건 아니고 얇은 거로 바꿨어."


"아침에 볼 때보단 나은 것 같아서 다행이네요. 오늘 점심도 건너뛰는 거예요?"


"응. 둘이 맛있게 먹고 있어."


"넵. 조심히 다녀와요!"


"또 총 맞아오면 내가 언니 머리통에 직접 쏴줄거야!"


"어우야, 무서운 소리 그만 해라. 갔다 올게!"




주점을 나가 승우의 집 앞으로 선 별이는 숨을 크게 내쉬었다. 적진의 한가운데에 선 것과 다름없는 상황과 비슷했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된다 했다. 정신 차리자.




똑똑-




오늘도 어린 하녀가 문을 열고 별이를 맞이했다. 승우에게 가지 않고 바로 용선의 방으로 향했다. 집 외관과 다르게 안에 서양식과 일본식으로 되어 있으니 이질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아가씨, 선생님께서 오셨습니다."




어린 하녀가 말을 하곤 사라졌다. 별이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의자에 앉아있던 용선이 보였다. 예쁘긴 예쁘다. 두 번째 보는 얼굴인데도 새로웠다. 다만 그녀의 곁에서 나는 익숙한 분위기는 지울 수 없었다.




"안녕하십니까."


"... 네."




실례하겠습니다. 방 안으로 들어간 별이는 용선의 맞은편에 의자를 꺼내 앉았다.




"어제는 실례가 많았습니다. 돌아가 생각해보니 제가 아가씨께 너무 무례했더군요."




하녀가 차를 가지고 와 용선과 별이 앞에 있는 찻잔에 따라주었다. 둘은 동시에 찻잔을 들어 차를 마셨다.




"어떻게 불러드릴까요?"


"네?"

 

"조선 이름과 일본 이름이 있지 않나요? 용선 아가씨 아니면 유우키 아가씨."




의도치 않은 배려에 용선은 잠시 당황했다. 확실히 별이는 이전에 왔던 일본어 선생들과 다른 점이 있었다. 이렇게 의도치 않은 배려부터 생각하는 가치관과 이 무언가 익숙한 분위기와 함께 모순되게 풍기는 위압감까지. 같은 여자여서 그런 건지 당최 알 수가 없었다.




"아가씨?"


"용선으로 해주세요."


"네, 용선 아가씨. 말도 놓으셔도 돼요."


"말을요?"


"말 놓으셔도 상관없어요. 저 용선 아가씨보다 어려요. 전 24살이에요. 아가씨는 25살 맞죠?"


"천천히 할게요. 너무 빨라요."


"편하신 대로 하세요. 제 이름은 기억하고 계시죠?"


"호시씨."


"네, 맞아요. 기억하고 계시네요. 어때요? 공부하실래요, 저랑 같이?"




용선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애초에 일본어에 대한 거부감보단 선생들이 애초에 마음에 안 들어서 수업에 참여를 안했으니. 괜찮을 것 같았다.




"별이던데요."


"네?"


"호시가 조선어로 별이라고 들었어요."


"어, 어떻게 알았어요?"


"그냥... 어쩌다 알았어요."


"맞아요. 별."


"그러면 조선 이름이 별이에요?"


"네. 별이에요."


"이름이 예쁘네요."


"그런가요?"




별이는 웃으며 차를 한 입 마셨다. 여기까지 생각하진 않을 꺼라 생각했었는데. 이름까지는 알려줘도 되겠지, 하며 별이는 이름이 예쁘다는 말에 그저 웃을 뿐이었다.




"성은 어떻게 되요?"


"비밀. 원래 제 조선 이름이 별이라는 것도 비밀로 하려 했는데 어쩔 수 없죠."


"그럼... 뭐라고 불러줄까요?"


"뭘요?"


"이름이 두 개잖아요. 조선 이름과 일본 이름. 별과 호시."


"푸흐, 지금 저 따라하시는거 맞죠?"


"음... 얼떨결에."


"아가씨는 뭐라고 부르고 싶어요?"


"으음... 별. 더 예뻐요."


"좋아요. 아, 그리고 제 이름은 '별'이 아니에요. '별이'."


"네, 별이씨."


"악수나 한 번 할까요?"




별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뻗었다. 갑작스런 악수에 용선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친해지자는 의미로."


"... 좋아요."




용선도 자리에서 일어나 별이의 손을 잡았다. 용선이 손을 잡자 별이가 웃었다. 용선도 별이를 따라 웃었다. 잘 주탁해요. 저도요.

마마무 팬픽러 이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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