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동안 그냥 가지고 있던 이제는 멀어진 친구의 편지를 찢어서 재활용 버리는 날에 종이통에 버려버렸다. 왜 그랬는지는 모른다. 그냥 보고 있기가 괴로웠다. 더 정확히는, 옛날 기억들은 휘발되었는데 조금 가까운 옛날은 잘 잊혀지지 않아서. 그 친구가 나에게 돌렸던 등과 답이 돌아오지 않는 내 질문들, 그리고 내가 그 친구한테 한 잘못들만 계속 머리에 맴돌아서 찢어버렸다. 미안했다. 미안한가?-누구한테? 편지? 친구? 나? 아니면 17년도의 친구? 18년도의 친구? 나무야 미안해 이런건 아니지? 

머릿속에 떠오르는 수많은 질문들에 답할 수 없었을 때부터, 많은 것을 미뤄온 뒤부터 생각도 고여 썩기 시작했다. 뇌주름 곳곳에 답하지 못한 질문들이 껴서 썩고 있는 것 같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렇게 멍청해질 리가 없다. 두통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대가리가 너무 아프다. 머리에 희뿌연 연기가 낀 것 같다. 세간에선 brain fog라고 한다지 그런데 말입니다, 저는 이 증상을 14살때부터 겪었는데 그럼 이미 대뇌온난화가 다 진행되고 있는 것 아닌가요? 저는 왜 이런 벌을 받습니까?

사람들의 발화를 지켜보고 있노라면 굉장히 재밌다. 그들의 의견은 그들 인생의 터닝포인트의 나열이 어드메로 수렴한 것이다. 이를테면, 아이를 좋아하지 않는데 어떤 계기로 어린이집에 취직하여 육아의 심연을 보고 온 트친은 노키즈존에 찬성한다. 돈이 많은 트친은 보수정당의 후보를 응원한다. 고등학생과 연애하는 트친은 입이 헤벌쭉해져가지고 담배랑 술을 할 수 있는 나이를 국가에서 좀 낮춰줄 때가 왔다고 주장한다.

뭐 그런 것들.

내 발화를 또다른 내가 보면 내가 어떤 인간인지 알 수 있겠다마는, 나는 요즘 염세에 잡아먹힌 지 오래라 말을 뱉고 나면 희뿌연 연기가 자아성찰을 가린다. 

이래도 내가 좋은가

좋은 인간인가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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