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다음 코너 하기 전에 잠깐 쉬어 갈게요. 작곡가 우지 씨가 불러서 화재가 됐던 노래죠? 어떤 미래 듣고 갈게요.”


 라디오 DJ가 멘트를 끝내자, 지훈은 편안한 마음으로 헤드셋을 벗었다. 아, 권순영처럼 스케줄 하려 하니 힘들어 죽겠네. 순영의 말마따나 몸이 돌아오기 전까지는 최대한 스케줄을 소화하고, 각자에게 맞는 연기를 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게 ‘드라마 연기’에만 해당되면 아주 좋았을 것을. 요즘 인기가 하늘로 치솟는 탓에 순영도, 지훈도 각자의 다른 스케줄을 하기 바빴다. 그러니까, 드라마 촬영 이외에는 서로 볼 시간이 없다 이거다.

 물론, 하루에 한 번씩 촬영이 있기에 매일 보긴 하지만… 서로가 없는 곳에서 스케줄을 하는 건 조금 힘들지. ……보고 싶기도 하고.


“순영아, 라디오 스케줄 끝나고 대사 수정 됐다고 하니까 곧바로 맞춰보자.”

“알겠어, 누나.”


 그렇게 몸이 바뀐 채로 지낸 지도 근 일주일은 되었던가. 하루하루가 힘들었는데, 이제는 익숙해져서 그런지 지훈 본인의 주변 사람보다 순영의 주변 사람들이 더 익숙하다. 어떻게 사람들을 대해야할 지도 알고, 평소 순영의 팬이었으니 팬에게도 어떻게 하는지 알고 있는 터였다. 그러니 지금 이 상황이 아주 낯설지만은 않다는 거지.

 노래가 나오는 동안 마음 편안하게 쉬었던가, 다시 라디오를 재개하기 위해 DJ가 멘트를 시작했고, 순영도 자연스럽게 헤드셋을 꼈다.


“자, 이제 다음 코너입니다. 와르르 쏟아지는 팬들의 문자를 감당해라! 호우주의보? 아니죠, 문자주의보 시간입니다.”

“와, 대박. 이걸 여기서 또 하네요.”

“아, 그러고 보니 순영 씨는 저번에 라디오에서 해봤죠? 그렇다면 설명이 쉽겠네요.”


 그리고 시작되는 ‘문자 주의보’ 시간. 순영이 과거 라디오 스케줄을 한창 할 때 참여했던 그 코너. 안티팬의 습격이라고 유명했던 그 사건에, 지훈이 직접 문자를 보내 순영을 감동시켰던 그 화제의 코너. 직접 보냈던 그 라디오를 지훈 본인이 순영의 모습으로 하니 새삼스럽게 낯설면서도 신기하다.

 오늘은 순영으로써 문자를 읽기만 하겠네, 싶은 느낌.


“자, 그럼 문자를 한 번 확인해볼까요? 0606님, 오늘은 왜 보이는 라디오 안 하나요? 순영아, 얼굴 보고 싶어, 라고 왔네요. 오늘은 스튜디오 사정 상 보이는 라디오가 어렵게 됐습니다. 이건 저희가 죄송해요.”

“아니에요, 괜찮아요.”

“대신, 라디오를 끝내고 저희 SNS 계정으로 순영 씨가 직접 찍은 셀프 캠 올려드릴게요. 그러니까 0606님, 염려 마세요.”


 라디오 DJ와 지훈이 하하호호 하며 호흡을 맞추는 내내, 문자는 계속해서 쏟아졌다. 아, 이런 느낌이구나. 이 많은 것들 중에 내 문자가 읽혀진 거구나. 지훈은 감회가 새로웠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순영을 좋아해준다고 하니, 지훈은 본인은 아니지만 굉장히 뿌듯했다. 그래, 내가 좋아하는 배우인데, 당연하지. 하며 어깨가 절로 올라가는 느낌을 받기도 했고.

 DJ와 지훈이 번갈아가며 도착한 문자들을 필터링 없이 읽는 와중, DJ는 무언가 발견했다는 듯 박수를 한 번 짝 치는 것이다.


“왜요? 획기적인 문자가 왔나요?”

“아, 이거 정말 유명한 분이 순영 씨한테 문자를 또 보냈네요.”

“네?”


 DJ는 모든 것을 알겠다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그렸다. 그리고는 순영을 한 번 보더니 다시 화면으로 돌아와 문자를 읽기 시작했다.


“순영 씨, 무슨 일 있어도 늘 그렇듯 웃음꽃 피워주세요. 제가 순영 씨의 봄이 되어 매일을 함께 할게요.”

“어…?”

“이야, 이 분이 또 오셨네요. 우리 순영 씨의 봄이 되어주겠다는, 멋진 분!”


 그리고 듣자마자 지훈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놀란 표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건, 순영이 실제로 라디오 스케줄을 할 때, 안티 팬의 습격 후에 지훈이 직접 보낸 문자의 내용. 익숙한 문구에 지훈은 뒤를 돌아 라디오 부스 밖을 바라보았다. 혹시나 매니저인 그녀가 보낸 게 아닐까, 했지만 그녀는 휴대폰을 보지 않고 순영이 스케줄을 하는 것에만 신경 쓰고 있었다.

 그렇다면, 석민의 행동일까? 아니다. 석민은 순영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까. 지훈 본인이 순영이 되었다지만, 이런 행동을 할 사람이 아니다.


 어… 그렇다면?


“순영 씨는 좋겠어요, 이렇게 든든한 팬들이 있어서!”

“맞아요. 덕분에 힘이… 엄청 많이 되죠.”


 지훈은 설마 설마 하는 마음이 드는 거다. 이 문구를 보낸 사람이 누군지 아는 이는 지훈과 석민 둘 뿐이었는데. 그러나 석민이 그런 행동을 한 게 아니라면… 어, 설마?

 그에 대해 생각하자 지훈의 심장이 미친 듯이 쿵쾅거렸다. 아니, 설마? 진짜야? 에이. 아니겠지… 아니, 맞나? 지훈은 머릿속이 복잡했다.

 하지만, 스케줄에 최대한 집중했고, 어찌 저찌 마무리를 잘 한 것 같기도 했다.


“오늘의 게스트 순영 씨와 함께 했습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그렇게 끝낸 스케줄에 지훈은 DJ와 다른 스태프들에게 친절히 인사를 하고, 다음 스케줄 이행을 위해 매니저인 그녀를 찾았다. 그녀는 당연하게도 순영을 데리고 스태프들과의 인사 끝에 라디오 부스를 나서는데.


“대사 수정된 부분 다 체크해뒀으니까 차 안에서 읽으면 될 것 같… 권순영, 듣고 있어?”

“어, 어? 아… 어어, 듣고 있지. 알겠어, 고마워.”

“자, 얼른 가자.”


 지훈은 방금 도착한 문자에 절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 라디오 그거 나다. 이석민이라고 오해하지 마, 기분 나빠. 아무튼 이따 촬영장에서 보자. -권순영 ]



 드라마 촬영장으로 향하는 지훈의 차 안은 굉장히 바빴다. 수정된 가사를 암기해야 하는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권순영, 너 왜 이렇게 바쁘냐? 연애 해?”

“어, 어? …아니거든.”

“그런데 뭐가 그렇게 바빠. 대사나 빨리 외우지.”

“다 외웠어, 괜찮아.”


 지훈이 휴대폰을 계속 보며 손이 바쁘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피곤하다며 바뀐 대사도 늘 매니저인 그녀가 촬영 직전에 알려줄 정도로 차 안에서는 자기 바빴는데. 뭔가 다르다고 느낀 그녀는 지훈을 바라보며 연애를 하는 게 아니냐고 의심했지만, 그 의심도 곧 흥미를 잃었다. 늘 자기관리는 철저했으니, 연애도 알아서 하겠지, 와 같은 순영에 대한 믿음이 그녀에게 깔려있었으니까.


[ 어디야. 언제 와. -권순영 ]

[ 가는 중. 다와 감. ]

[ 그러니까 얼마나 남았냐고. -권순영 ]


“누나, 우리 얼마나 남았어?”

“음… 한 5분? 아, 전화가 왜 자꾸 오는 거야, 운전 중인데…”

“아, 고마워.”


[ 5분 남았대. ]

[ 빨리 와, 보고 싶으니까. -권순영 ]


 미친…….

 지훈은 순간적으로 마지막 연락에 욕설이 저절로 튀어나올 뻔했다. 진짜, 미친 거 아닌가? 보고 싶대, 내가 보고 싶대! 이거… 진짜 연애 하는 건가? 지훈은 괜히 가슴이 미친 듯이 설레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안 되는데……. 하지만 지훈의 본능은 그렇게 해도 된다고 외치고 있었다.


 보고 싶다는 말에 대답 한 번 못하고 괜히 주먹을 쥐락펴락 하던 지훈은 진정하고 나서 답장을 하기 위해 인터넷을 열었다. 경건한 뉴스 같은 걸 보면 조금 나아지겠지. 지훈은 그 생각에 뉴스 채널로 가 인터넷 뉴스들을 바라보는데.


“…어?”


 낯익은 이름이다. 연예 관련 뉴스에 아주 낯익은 이름이 보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지훈은 눈을 손으로 비볐다. 그리고 다시 봤다. 하지만, 여전히 낯익은 이름이 보인다.


“…누나.”

“뭐, 왜. 바빠. 나 전화도 오고 지금 운전도 해야 하고…”

“아니, 누나. 잠깐 차 세우고 이거 좀 봐봐. 내가 지금 잘못 보고 있는 거 같아. 아니다, 꿈인가?”

“뭐래.”


 지훈은 손을 작게 떨며 휴대폰을 그녀에게 보였다. 옆에서 자꾸 말을 거는 지훈에 그녀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중간에 차를 세우고, 지훈이 보여준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았다.


“뭔데 이거… 한창 인기 있는 모 드라마에 주연으로 열연하고 있는 이지훈 씨가 마약 혐의에 휩싸였다… 어? 뭐라고?”


 그리고, 그곳에 적혀있는 내용은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마약이라니, 그것도 지훈이 마약이라니! 이게 무슨 일이야! 지훈은 놀란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고 다시 한 번 뉴스 기사를 보려고 했는데, 때마침 순영에게서 전화가 왔다.

 휴대폰 화면에 뜨는 ‘권순영’이라는 이름. 매니저인 그녀가 볼까봐 곧바로 휴대폰을 감췄지만, 진정이 되질 않는다. 이거… 무슨…


“안 그래도 지금 찍고 있는 드라마에서 그, 누구더라? 조연으로 자주 출연해서 유명한 배우 있는데, 그 분이 마약 혐의로 리스트에 엄청 올랐거든. 촬영장에서 그 난리를 치더니 두 사람이 마약을 같이 하냐, 아이고…”


 지훈은 정신이 혼미했다. 아니, 이지훈은 난데. 내가 무슨 마약을 해! 미친 거 아냐? 지훈은 머리가 복잡해져왔다. 본인이 순영의 몸을 하고 있다지만, 진짜 이지훈은 난데. 그렇다면, 지훈의 몸을 하고 있는 순영이 마약이라도 했다는 것인가?

 아니, 아니다. 진정하자. 이지훈, 진정하자. 지훈은 최대한 스스로를 다독이며 이 상황을 정확하게 직시하려 애썼다. 손은 떨리고, 식은땀은 흐르는 거 같고, 심장은 쿵쾅거리며 진정이 되질 않지만 어떻게든 애를 썼다. 그 사이, 그녀는 스케줄을 위해 차를 출발시켰지만.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겠냐. 결국 이지훈도 똑같은 사람인가보네.”


 지훈은 진정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도착한 촬영장에서는 난리도 아니었다. 스태프들끼리 순영을 향해 수군거리고 있는 모습. 그러니까, 정확하겐 지훈의 모습을 하고 있는 순영에게 모두의 시선이 쏠려있었다. 직접적으로 마약에 대해 물어보는 사람도 있었고, 그걸 유독 귀담아 듣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니까, 그런 촬영장의 모습이 지훈에게는 총체적 난국으로 밖에 안 보였다.


“무슨 제가 마약이에요. 아니에요. 이거, 찌라시가 이상하게 났나 봐요.”

“아니라고 생각은 하는데… 이게 진짜 찌라시면 지훈 씨, 조심해야 하는 거 아녜요?”

“진짜 아닌데…… 난감하네요.”


 순영이 직접적으로 물어보는 이들에게 최대한 방어를 하며 대꾸했지만, 질문을 했던 이들의 시선은 결코 바뀌지 않았다.

 아무래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루아침에 주목받는 신인에서, 마약 혐의를 받은 배우가 되어버렸으니. 이 얼마나 낭패일까.

 그런 순영을 바라보다, 잠시 혼자가 된 사이 지훈은 빠르게 그에게로 달려갔다. 지훈의 모습을 보이자마자 순영이 환하게 웃었지만, 지훈의 마음은 결코 그리하지 못했다.


“어, 왔어? 엄청 기다렸…”

“잠깐. 잠깐 얘기 좀 해.”

“어?”


 지훈은 최대한 낮은 목소리로 순영에게 얘기했고, 순영은 그러자는 듯 어깨를 그저 으쓱. 그리곤 일종의 둘만의 장소라 할 수 있는 촬영장 비상계단으로 향했다. 아직 촬영하기 전이고, 배우들이 도착하기 전이니 충분한 시간은 있었다.

 그러니까, 순영에게 직접 이야기를 들을 시간이.


“권순영. 진짜 괜찮으니까 얘기해봐.”

“뭐를?”

“지금 상황 파악이 안 돼?”


 지훈의 마음은 다급했으나, 순영은 오히려 태평하기까지 했다. 지금 남의 몸으로 무슨 짓을…. 지훈은 생각했지만 최대한 순영을 믿기로 했다. 그래, 아니겠지. 아닐 거야. 아니어야만 해.

 지훈은 생각 정리를 마치고서는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이후,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순영을 향해 천천히 입을 뗐다.


“솔직히 얘기해줘.”

“아까부터 대체 뭐를…”

“너, 내 몸으로 마약 했어?”

“뭐?”


 지훈은 순영이 아니라는 대답을 바로 해주기를 바랐다. 그렇게 한다면 이 상황에 대해 처음 몸이 바뀐 것처럼 함께 이 상황을 해결해나가면 되는 거니까. 그래, 그러니까 제발 아니라고 바로 대답해줘. 지훈은 그 생각에 순영을 빤히 바라보았으나, 원하는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허, 지금 나 의심하는 거야?”

“아니, 상황이 그렇잖아. 내가 활동할 때는 그런 지저분한 소문이 난 적이 없었다고… 배우 활동 잘 하고 있는데… 그랬는데 왜 갑자기 몸이 바뀌고 나서 이런 소문이 돌아? 그것도 나한테?”

“그러니까 네 말은, 내가 네 몸으로 마약 했으니까 그런 소문이 돈다는 뜻이잖아. 그렇게 믿고 싶은 거잖아. 안 그래?”

“아니, 내 말은……”

“하.”


 지훈의 의도는 그렇지 않았어도, 그의 태도에 순영은 순간적으로 화가 났다. 지금 누굴 의심해. 순영은 그 생각에 낮은 한숨을 내뱉음과 동시에 비소를 지으며 지훈을 바라보았다. 표정도 평소와 다르게 차가워졌다.


“네가 그 질문을 하는 의도는, 아예 확신을 하고서 묻는 거 같아서 지금 기분 엄청 나쁘거든?”

“아니, 나는 그러려고 그랬던 게 아니고…”

“그럼 뭔데? 그 말투, 그 행동, 뭐냐고. 그러려고 그랬던 게 아니면 뭐냐고.”

“아니, 권순영… 잠깐만.”

“하, 됐다. 지금 이렇게 대화해서 뭐하냐.”


 순영은 굳은 표정으로 마른세수를 두 어 번 했고.


“이지훈 네 이름이 먹칠하게 된 건 정말 미안한데, 이런 식으로 추궁하는 거 진짜 기분 나쁘거든.”

“아니, 권순영.”

“네 마음대로 생각해라, 이지훈.”

“…….”

“네 몸인데 이렇게 막 써서 미안하다.”


 결국 순영은 지훈을 지나쳐 비상계단을 나섰다. 문이 절로 쾅 소리를 내며 닫혔고, 그 곳에는 지훈 혼자 밖에 남지 않았다.


“아니…….”


 혼자 남은 지훈은 그대로 주르륵 주저앉았다. 화를 내려던 게 아니었는데. 추궁하듯이 말을 하려던 게 아니었는데. 본인도 모르게 앞으로의 배우 인생에 대한 화를 순영에게 풀었나보다. 그걸, 결코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이게 뭐야, 진짜…….”


 지훈은 두 손에 얼굴을 파묻은 채 깊은 한숨만 내쉬었다.


* *

의도한 건 아니지만... 체인징 러브가 10편 정도 쯤으로 끝낼 거 같습니다...()

처음 구상은 5편 내지 6편 정도로 생각했는데... 위기, 절정으로 닿을 때까지가 조금 길었네요..!ㅠㅠ

그래도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위기와 절정 그 중간 쯤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른과 호우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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