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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이 켜졌고 그들은 연주했다. 연주가 끝나면 사람들은 일어나 연신 박수를 쳤다. 그는 흐르는 땀방울을 내버려두고 눈을 맞췄다. 그가 그를 보고 웃었고 그도 그를 따라 미소를 지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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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토키는 오늘도 전공따위는 뒤로 하고 자취방에 들러붙어 잠을 자고 있었다. 명색이 피아노 수석인데 교수 눈에는 벗어날대로 벗어나고 학생들과 매일 놀고 붙어먹으며 생활한다. 천재적인 재능을 가졌지만 태도 때문인지 주변 친구들에겐 눈에 띄는 은발로 그저 태도 불량 대형견로 취급받을 뿐. 그런 그가 오케스트라에 가입한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동기인 젠조가 놀라며 무슨 심경의 변화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그는 뻔뻔하게

"이 긴상의 천재적인 재능을 그냥 묵힐 수는 없잖아?"라고 말했다. 

젠조는 질색하며 학교생활이나 열심히 하라고 그를 질책했다. 그가 딱히 단체생활을 해야하는 오케스트라에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정말 자신의 재능을 쓸만한 심심풀이 일뿐 분명 단체생활에 괜한 의미부여로 여자나 꼬실생각이었다. 


오케스트라 신청서를 내러 복도를 지나가려던 때였다. 멀리서 여자들의 눈길을 받으며 걸어오는 바이올린 수석이 보였다. 같은 수석 다른 느낌. 히지카타였다. 그는 교수의 추천을 받아 오케스트라 신청서를 내러 왔다. 

긴토키는 히지카타를 보며 

곱상하게 생겼네-라고 생각했다. 긴토키는 오티때 히지카타에 관한 소문을 익히 들어 그가 바이올린 수석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노력하나 안하고 음대에 들어온 것같은 히지카타는 성실한 노력파이다. 성실히 노력하는 만큼의 성과로 교수들의 눈에 들어 착실한 학교생활을 하고 있을 터였다. 완벽한 그에게 흠집이라곤 그가 남자를 좋아한다는 소문이었다. 긴토키가 입학하기 전의 히지카타는 졸업한 남자 선배와 연애를 했다는 그런 소문이 무성했다. 당사자의 입에서 증명되지 않은 이야기이지만 그를 따르는 많은 소문들은 나름대로의 신빙성으로 그의 치부가 된 듯했다.  그런 치부를 가졌지만 히지카타는 남들이 자신을 어떻게 보든 상관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 음악에만 집중할 뿐이였다. 그래서 그런지 그가 매일 연습실에서 하는 거라곤 미친듯이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것.  곡이 잘 풀릴때는 아침에 들어가 저녁에나오고 곡이 잘 풀리지 않을 때는 아침에 들어가 저녁에 잠깐나와 술병 하나를 들고 연습실에 들어가 다음날 까지 나오질 않는다. 아무리 음악을 잘 하는 사람이 모여있는 명문 음대였지만 그런 히지카타만큼이나 음악을 사랑하고 음악에 미쳐있는 사람은 없는 듯 했다. 또한 그가 그렇게 노력하는 만큼 그를 실력으로 누를 학생이 없기에 그는 재학중인 내내 수석을 놓치지 않았다. 학생들은 연습실에서 미친듯이 파가니니의 곡을 연주하는 그를 보며 미치광이라 했고, 교수들은 그를 보며 파가니니의 곡은 히지카타를 위해 만들어졌다고햐도 과언이아니다-라며 극찬했다. 어찌보면 그는 완벽에 미쳐있는 바이올리니스트였다 마치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던 파가니니처럼. 그가 파가니니와 다른 점이라곤 선척적 재능 뿐이려나.


강의가 끝나고 피아노나 뚱당 거려볼까-라고 생각하던 긴토키는 연습실로 향했다. 연습실복도를 지나가는 학생들이 '연습실 1'을 지나치며 수근 거렸다. 

"쟤야? 그 파가니니의 미치광이가? "

뭐야...파가니니의 미치광이라는게 뭐지..긴토키가 곱슬거리는 은발의 머리를 긁적이며 연습실 창 너머를 바라보았다. 

제법 곧은 눈에 v모양의 앞머리를 휘날리며 미친듯이 연주하는 바이올린 수석이 연주하고 있었다. 

아. 아까본 곱상한 바이올린 수석..

남들 눈에는 그저 미치광이같다고 하겠지만 히지카타가 제법 잘생겼다고 생각한 긴토키는 미친듯이 노력하며 연주하는 히지카타를 보며 호기심이 생겼다. 

실례를 무릅쓰고 긴토키는 연습실 문을 열었다.  아니. 제멋대로인 긴토키에게 그건 실례라고 생각되지 않을 터였다.  히지카타는 긴토키가 연습실 문을 열고 고개를 빼꼼 내밀자 미간을 좁히며 긴토키를 노려보았다. 

"너 뭐야"

히지카타가 몰아붙일 듯이 짜증내며 긴토키에게 말했다.남들이 보기에는 말했다기 보다 말을 던졌다. 

"아니 누가 이런 늦은 시간에 열심히 연주하나 해서요"

긴토키가 씨익 웃으며 답했다. 원래 다른 선후배라면 문너머의 사람이 히지카타라는 것을 알고 말없이 도망쳤을 것이다. 그러나 좀처럼 동기나 선후배간 대화가 없는 히지카타는 자신에게 말을 걸어온 학생이 있다는게 조금 놀랐는지 잠깐이지만 동공이 커졌다 줄어들었다. 주변에 수근대던 학생들은 불똥이라도 튀길까 도망간지 오래였다. 

"헛소리말고 나가라. 방해되니까."

"헛소리라뇨 선배-"

선배라는 단어를 끌며말하자 히지카타가 다시 한번 긴토키를 노려보았다. 주의를 끈 긴토키가 이어 말했다. 

"아니 제가 피아노인데 피아노있는 연습실이 다차서 여기 밖에 안남았거든요"

물론 거짓말이었다. 이 늦은 시각에 피아노를 연습실에서 치는 제정신인 사람이 어디있으리.  히지카타가 언짢은 듯이 혀를 차며 말했다. 

"그거랑 나랑 무슨 상관이지 내가 연습하는데"

히지카타가 연습실을 양보하는 일은 없었다. '연습실 1' 그야말로 히지카타가 전세낸 연습실이라고 할 수 있다. 누구보다 일찍 와서 누구보다 늦게가는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연습실이랄까. 딱 히지카타에게 안성맞춤인 연습실이다. 히지카타가 재학중일 때는 그 누구도 이 연습실을 히지카타를 대신해 쓰는 사람이 없었다. 히지카타가 괘씸해 연습실을 쓰려고 일찍 나오던 선배는 자신보다 일찍나오는 히지카타에 지쳐 도저히 연습실을 빼앗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뭣도 모르는 새내기 긴토키는 눈치없게 멍청한 짓을 저지른 것이다. 히지카타는 뭐 이딴놈이 있냐라는 듯이 쳐다보며 

"그러니까 다른 시간에 연습실을 찾아보던가" 라고 말하며 연습실 문고리를 잡아 닫으려 했다. 

순간 긴토키의 손이 앞질러 문고리를 잡으며 

"아 제발요-그럼 협주곡이라도 치게 해주세요-"라고 징징거렸다. 징징거리며 문고리를 잡고 매달리는 긴토키를 보며 히지카타는 순간 동작을 멈췃다. 뭐 이런 또라이가..

"히지카타 선배 바이올린 수석이라면서요-파가니니 괜찮죠?"

순식간에 피아노 의자에 앉아 긴토키는 기지개를 폈다.

"너 이새끼 나가라고.."

히지카타의 말이 끊나기도 전에 긴토키는 손을 풀겸 히지카타가 무반주로 연습해 오던 파가니니의 '라 캄파넬라'시작부분을 가볍게 쳤다.

히지카타는 조금 놀랐다. 솔직히 멍청해 보이는 긴토키가 피아노를 섬세하고 기가 막히게 칠 줄 몰랐기때문이다.

"명색이 바이올린 수석인데 반주자가 피아노 수석정도는 되야하지 않겠어요?"

긴토키가 씨익 웃으며 건반을 뛰놀던 손을 멈췄다.

피아노 수석이라..분명 들어본적이 있는데..은발의...그 불량한..아. 이녀석을 말하는 거였나. 이 뺀질한 놈이 피아노 수석이라고.

긴토키의 피아노는 치는 사람과는 달리 섬세하고 아름다운 선율을 가지고 있다. 

"올해 입학한 사카타 긴토키입니다. 피아노 전공이에요."

피아노 선율에 감탄하고있던 히지카타에게 여유있는 얼굴로 긴토키가 손을 내밀었다. 

이놈봐라 악수? 연습실 침범해서 뻔뻔하게 못하는게 없네.

히지카타가 정신차리고 긴토키가 내민 손을 보며 괘씸해 하고있었다. 히지카타를 짜증나게한 장본인은 정작 여유있다 못해 여유가 흘러넘쳤다. 

"어때요 협주 할 맛 나지않아요?"

긴토키가 빨리 악수를 해달라는 듯 손을 흔들며 말했다. 히지카타는 마지못해 악수를 받아들였다. 그리고는 짧게 악수한 후에 긴토키의 손을 내팽게쳤다. 

"어 악수만 해달라는거 아니였는데..."

귀찮다는 듯이 히지카타가 긴토키를 쳐다봤다.

"또 뭐"

"통성명은요? 안해줘요?" 긴토키가 약간 풀이 죽은 투로 말했다. 

이런 대책없는 또라이...히지카타는 미간을 좁히며

"히지카타 토시로다. 니가 말했다시피 바이올린을 전공하고 있어."

아까 풀이죽은 대형견은 어디갔는지 긴토키가 히지카타의 통성명을 듣고 얼굴을 활짝 폈다. 

표정으로 알기 쉬운 놈이라 히지카타는 생각했을 것이다.

마침 반주자가 필요했었고 피아노 쪽은 아는 사람이 없었기에 하는 수 없이 히지카타는 긴토키의 반주에 맞춰 연습을 하게 되었다. 


늦은 시각 연습실은 히지카타의 바이올린과 긴토키의 피아노 소리로 가득찼다. 히지카타가 다른 이와 연주하는 것을 못보는 학생들이 불쌍하다며 교수들은 웃으며 연습실을 지나쳤다. 둘은 아무 말없이 계속해서 연주할 뿐이었다. 아름다운 선율이 곡선을 그려가며 연습실 벽에 그림을 그리는 듯했다.

조금전까지만 해도 말이 많았던 긴토키도 피아노 칠 때만큼은 언제 떠들었냐는 듯이 집중해서 건반을 눌러갔다. 히지카타는 연습하면서 긴토키가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피아노 칠 때만큼은 눈빛이 변하는 녀석이었다. 피아노에 감정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섬세하게 피아노를 다루는 긴토키는 남달랐다. 여태 봐오던 음대 멍청이들과는 달랐다. 연주하는 긴토키는 진정 음악을 아는 사람같아서 조금 안심했을지도. 그런 긴토키가 반주를 해줘서 그런지 히지카타는 생각보다 곡이 잘 풀려 연습이 일찍 끝났다. 

"반주자가 있으니까 어때요 좀 더 편하지 않아요?"

솔직히 히지카타는 반주자는 완벽한 자신의 연주에 방해가 될 뿐이라고 생각해 오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긴토키의 피아노 연주가 그를 바꾼 듯했다. 완벽한 긴토키의 연주에 아니 어쩌면 히지카타보다 완벽했을지도 모를연주에 히지카타는 속으로 감탄하고 겉으로는 담담한 척을 하며

"어. 뭐 나쁘진 않네."하고 내뱉었다.

히지카타의 대답을 들은 긴토키가 생글생글 웃었다. 히지카타는 실없는 놈. 이라며 질색했다. 

히지카타는 연습이 끝났다 생각해고 몸을 일으켰다. 

"이제 나가자"

소문보다 일찍 연습실에 나가는 것 같아서 긴토키의 눈은 의외라는 듯이 동그래졌다. 

그렇게 눈이 동그래지며 놀랄건 뭐야.

히지카타가 바이올린을 케이스에 넣고 가방을 매자 긴토키가 피아노 의자에서 단번에 몸을 일으키고 히지카타를 따라 연습실을 나왔다.  쪼르르 쫓아오는 긴토키의 얼굴은 뭐가 그리 좋은지 생글거리며 웃고있었다. 기분 좋다는 얼굴을 하며 긴토키가 히지카타에게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히지카타 선배"

"어?"

"저 계속 히지카타 선배랑 연습실 같이 써도 되요?"

"뭐? 연습실 많은데 굳이.."

"같이 합주했던 사람중에서 히지카타 선배가 제일 잘한단 말이에요~"

히지카타가 칭찬에 약한건 또 어찌아는지 긴토키가 히지카타를 구슬렸다. 히지카타는 내심 기분좋아하다가 손해 볼 것 없다고 생각해 알겠다고 대답했다. 히지카타는 학교 계단을 내려오며 생각했다.

진짜 속을 알 수 없는 놈.

이것이 긴토키에대한 히지카타의 첫인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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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ITA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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