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에 먼지가 흩날렸다. 분진이 꾸역꾸역 시야를 채우고 오이카와는 그들이 사풍에 맞닥뜨렸던 날을 떠올린다.


전신을 천으로 에워쌌음에도 살갗이 따가웠다. 그는 동행의 목소리가 휘몰아치는 모래에 휩쓸릴까 온 신경을 집중했다.


빨리 피할 곳을 찾아야 돼.


그때 그들은 손을 잡고 있었다. 한 발자국만 떨어져도 서로를 잃을 수 있단 말에 소년이 먼저 그의 손을 붙잡아왔다.


저 쪽으로 가봐요.


둘은 소년이 가리킨 쪽으로 향했고, 천운처럼 손으로 파낸 듯한 모양의 암석을 발견했다. 밑으로 몸을 구겨넣으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토비오 쨩, 진짜 운 좋네.


그때 그가 뭐라고 말했더라……. 


순간 남자는 벼락처럼 절박해진다. 그는 목 졸린 비명을 흘리며 얼굴을 감싸쥔다. 머리를 쪼개어서라도 사멸해가는 기억을 소생시켜야만 했다. 


우매한 망각의 짐승. 자신의 태생을 저주하는 일엔 충분하고도 남을 만한 이유가 있다. 다시는 들을 수 없을 말조차 이제는 창에 스치는 바람 소리만큼이나 희미했다. 


서서히 가라앉는 흙먼지 속에서 돌무더기에 파묻힌 인영이 떠오른다. 사랑하는 이의 껍질을 뒤집어쓴 갈라테이아.


오이카와는 유려한 입매를 비틀었다.


“넌 실패작이야.”




소년은 성인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거꾸러졌다. 그가 탄 차량은 가파른 산길을 오르다 낭떠러지로 굴러떨어졌다고 했다.


내가 가지 말라고…… 떠나지 말라고 했잖아.


사막도 오지도 아닌 안락한 내 집 거실에 너를 두고 싶었다. 구실이 없으면 다가오지 않는 너를 두고 손 한 번 잡아보겠다고 하찮은 흉계를 꾸미며 어쩌다 너 같은 앨 좋아하게 됐을까 한탄하는 일도, 이제 더는.


지도 위에 남은 곧은 행적은 소년이 그렸던 미래를 상상하게 했다. 그 끝에 자신이 없단 사실보다 영원이 지나더라도 그가 그곳에 도달하지 못하리란 사실이 남자를 죽고 싶게 만들었다.


그래서 남자는 그를 다시 만들기로 했다. 


비밀스러운 계획, 연기, 음지에서만 통용되는 수단들. 오이카와 토오루는 동료의 연구를 빼돌려 마침내 소년의 형상을 품에 안는 데에 성공한다. 그러나 죽음에게 복수했다는 오만도 잠시, 스틱스 강을 건너지 않은 비겁자에게 합당한 응징이 찾아왔다. 


‘누구십니까.’


말투, 목소리, 행동거지 모두 그를 베껴두었건만 그에게는 기억이랄 것이 없었다. 오이카와가 조작한 요소 요소들만이 그의 행위를 복기시키듯 재생될 뿐이었다.




“……난 실패했어.”


오이카와는 망가진 인형처럼 널브러진 소년, 의 모습을 한 것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눈이 가늘게 구겨지고, 눈두덩엔 죄책감과 절망이 매달렸다. 손바닥으로 떨리는 눈을 가리며 그가 목멘 소리를 냈다.


“나는…… 네가 너무 그리워서…….”


소년은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 얼굴로 그를 올려다본다. 


이토록 괴로울 줄 알았다면 시작도 않았을 것을.

그래, 저것을 망가뜨리고 나도 떠나자. 차라리 그러자.


그러나 오이카와는 팔을 휘두르지도 걸음을 내딛지도 못한다. 악의 없이 그를 올려다보는 얼굴은, 그가 너무도 사랑했던 것이라.


갑자기 세상의 모든 것이 색을 잃고 바랜다. 그는 주체할 수 없는 공허감에 흐느끼며 주저앉는다. 꺽꺽 울음을 토하다, 마침내는 엎드려 무딘 손끝으로 바닥을 할퀴었다.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눈은 푸르겠지. 부끄러워도 달아날 수는 없을 것이다. 저만 바라보도록 만든 것이 바로 자신이었으니.


오이카와는 네 발 짐승처럼 그의 발치로 기어간다. 거의 망가진 사지, 소년의 두 손을 꽃다발을 만들듯 조심스레 모아쥐었다.


“토비오.”

“네.”

“나를 좋아한다고 말해.”

“오이카와 씨를 좋아합니다.”

“……거짓말.”


헛웃음은 깊은 슬픔에 젖었다. 그의 에우리디케는 여전히 명계의 가장 어두운 바닥에 묻혀있는 것이 분명했다. 카게야마를 닮은 것의 손등에 이마를 떨구며 그는 대상도 모르고 꺼질 듯한 목소리로 애원한다.


“나를 데려가…….”


그러나 그의 머리 위로 빛은 내리지 않고, 사풍보다도 혹독한 비감이 그를 뒤흔든다. 그의 실패작이 사랑도 분노도 모르는 눈으로 그의 비극을 살핀다.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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