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9일 브런치에 게재한 리뷰입니다. 


슈퍼주니어의 규현은 이문세, 윤종신, 성시경과 같은 근과거의 발라드에 기반을 두며 한국형 발라드의 계보를 계승했다. 그리고 소녀시대의 태연은 한국적인 발라드부터 트렌디한 팝까지 다양한 장르를 소화해내며 자신만의 독특한 영역과 디스코그래피를 만들었다. 이 두 아티스트의 경우가 대표하듯, SM 엔터테인먼트는 보컬리스트의 장점을 끌어낸 솔로 앨범들을 꾸준히 만들어왔다. 경험치가 쌓일 대로 쌓였기 때문이었을까. 좋은 OST 트랙들을 발표한 첸의 첫 번째 미니앨범 [사월, 그리고 꽃]은 첸 본연의 매력보다는 정형화된 발라드 공식과 편곡에 치중한 것이 아쉬운 점으로 남은 앨범이었다. 그 후 6개월이 지나 발표한 [사랑하는 그대에게]에는 첫 번째 앨범의 경직된 틀을 벗어나, 자연스러운 질감과 정서가 편안하게 담겨 있다.


'우리 어떻게 할까요'는 피아노 반주와 보컬만으로 채워졌지만, 정교한 기술이 치밀하게 짜여져 있고 한 가지의 구상에 집중한 편집으로 곡 전체에 긴장감을 불어넣던 '사월이 지나면 우리 헤어져요'와는 전혀 다른 방향을 향해 나아간다. 한국의 80년대와 90년대 발라드 곡들을 연상시키는 레트로 신스 사운드와 멜로디 라인을 적극적으로 따르며 전작의 긴장감을 벗겨내고 그 자리에 따뜻한 자연스러움을 가져다 놓았다. EXO의 메인 보컬로서 화려한 바이브레이션과 톤과 곡마다 질감을 달리하는 스킬로 정평이 난 만큼, 긴장감과 기교를 덜어낸 곡에서도 무게감을 잃지 않고 오히려 풍성한 정서를 전달한다. 사운드와 멜로디의 부드러운 질감을 따라, 부드럽게 믹싱 된 보컬 어레인지 역시 편안하다. 이문세의 곡들을 계승하고 변주한 레트로 풍의 발라드 '광화문에서(At Gwanghwamun)' 이미 호평을 받은 바 있는 작곡가 켄지의 역량이 새삼스럽게 인상적인 트랙이다.

그렇지만 [사랑하는 그대에게]는 레트로 트렌드에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앨범은 아니다. 서늘하면서도 따뜻한 모던 록 풍의 발라드 트랙 '그대에게', 어쿠스틱 기타의 내추럴한 사운드와 일렉트로닉 사운드 이펙트가 잔잔하게 조화를 이후는 '고운 그대는 시들지 않으리', 달콤하고 소프트한 메세지와 멜로디의 '널 안지 않을 수 있어야지' 등 수록된 트랙들은 한국에서 인기를 끌던 많은 발라드 스타일을 적절하게 변주하고 있다. [사랑하는 그대에게]는 변진섭과 이상우부터 2000년대의 이소라, 바이브, 스탠딩 에그까지 다양한 레퍼런스들로 채워진 앨범이다. 그렇지만 앨범 전체의 에디튜드에 긴장감을 덜고 담백하게 곡들을 해석해, [사랑하는 그대에게]는 레트로에 매몰되지 않고 첸이라는 보컬리스트의 음색과 가능성을 부각하고 강조한다. 힘을 빼고 융통성을 살렸으나, 오히려 하나의 구상과 스타일에 집중했던 전작보다 더 생생한 정서와 이미지를 가지게 되었다.

[사랑하는 그대에게]는 EXO 활동에서 보여줬던 날카롭고 에너지 넘치는 모습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겠다는 그의 의도를 암시한다. 예민할 정도로 일관된 스타일 안에서  -SM의 세련된 편곡과 스타일링으로 다듬어지기는 했지만- 가요계에 종종 있어왔던 스킬풀 발라더의 모습을 강조한 [사월, 그리고 꽃] 역시 기존의 첸의 정체성과는 다른 방향이었지만, 첸은 그 잘 짜여진 세계관에서 또다시 벗어나 한국 발라드의 계보를 쭉 훑어내려 간다. 솔로 앨범을 발매한 지 얼마 안 된 아이돌 아티스트들(특히 보이 그룹 출신)에게는 자신들이 하고 싶어 했던 구상에 과하게 집중하거나 장르의 클리셰를 리바이벌하는 것에 그쳐, 그들 스스로가 잘할 수 있는 많은 것들과 가능성을 잊는 일이 많다. 첸은 그러한 함정에 빠지지 않고 장르를 연구하면서도 유려하게 자신의 길을 개척해나간다. 그리고 그 시도들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흡수하는 속도도 빠르다. 이제 겨우 두 장의 미니앨범을 발표했지만, [사랑하는 그대에게]는 그의 행보를 앞으로도 지켜보고 싶도록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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