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나즈 계약연애(인데 딱히 사귀는 것 같지 않다...) 

*중세 비슷한 느낌이지만 마법이 존재하는 세계관 

*나즈나 여장요소 있음 주의! 

*캐릭터 해석이 까다로우신 분들은 주의!




거리에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를 들으며 마차의 좌석에 기대어 앉은 나즈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요즘 들어 거리가 떠들썩했다. 이유는 간단. 현 황제에게 밀려 그 세력이 약해졌다고는 해도 과거에 나라를 좌우했던 귀족가문의 후계자, 사쿠마 레이가 터트린 스캔들 때문이었다.


그 유래를 모르지만 건국 때부터 나라와 그 역사를 함께 해왔다는 사쿠마 가문. 후계자들은 성인이 될 때까지 바깥에 절대 얼굴을 보이지 않으며, 결혼을 하는 상대는 절대로 같은 귀족가문의 아가씨.


그런 가문의 후계자가 택한 사람이 출신모를 여자아이라니. 후계자는 자신의 지위가 위태로워지건 말건 전혀 신경쓰지 않고 이 나라에 있는지도 몰랐던 한 소녀의 손가락에 자신의 것과 같은 반지를 끼워주었다. 평민 아가씨가 순식간에 왕비 다음으로 높은 자리에 앉는 순간이었다.


당연하게도 거리에서는 연일 그 ‘운 좋은 여자아이’가 누구인지에 대해 추측을 했다. 사실은 귀족가문의 사생아다.부터 시작해서 사실 마법사라 그 후계자에게 마법을 걸었다, 얼굴로 꼬셨다, 사실 아이가 생겨서 코가 꿰인거다... 물론 맞는 것은 하나도 없었지만.


나즈나는 아무리 유명인사라곤 해도 그들의 연애에 하나하나 신경을 쓰는 사람들이 참으로 할 일도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길거리에 붙은 재투성이 아가씨에 대한 연극의 포스터를 보며 왠지 조금쯤은 그 심정을 알 것 같기도 했다.


그러니까, 결국 돈 때문이라는 소리다. 물 들어올 때 노 젓는 심정으로 현재 연극, 오페라 무대는 재투성이의 이야기나 안젤리나 아가씨의 이야기가 연일 오르고 있다. 물론 전석매진. 평소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소식지도 그 커플의 이야기가 실리기만 하면 찍어내는 속도가 팔리는 속도를 못따라 갈 정도라고 누군가 하는 소리까지 들었다. 정말, 레이가 만든 판에 그의 친구들이 한 술 얹어서 벌어진 장사판이었다.


“순수하게 즐길 수 있다면 좋았을텐데...”


아마 니토 나즈나는 이 거리에서 유일하게 사쿠마 레이의 소문을 말하지 않는 사람일거다. 당연했다. 그가 이 소문의 당사자였으니까.


세간에 알려진 사쿠마 레이의 스캔들은 사실 한 소녀의 성공담도 아니고, 신분을 뛰어넘은 애절한 사랑 이야기도 아니었다. 굳이 따지자면 사기극이다. 돈을 사이에 끼워 넣은 사기극. 배우는 사쿠마 레이와 그의 필요에 의해 금전적으로 매수된 니토 나즈나. 심지어 둘 다 남자다.


실제 이야기에 신분상승의 기회를 얻은 운 좋은 재투성이 아가씨는 없었다. 다만 허울 좋은 대역을 내세웠을 뿐. 어깨를 타고 흘러내리는 긴 가발을 손 끝으로 꼬며 나즈나는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가.


거리의 소년 나즈나는 돈이 필요했다. 동생들이 다들 어느 한 분야에서 두각을 보였던 탓이었다. 형이라서 그렇게 생각하는게 아니라 실제로 그대로 썩히기엔 아까운 재능이라서 좀 더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지인에게 상담을 했고 그는 나즈나의 앞에 사쿠마 레이를 데려왔다.


“합격이구만.”

“...뭐가 말입니까.”

“얼굴 말일세.”


첫만남에서 처음 보는 사람의 얼굴을 평가하는 그 작태에 어이없는 웃음이 새어나왔지만 그 뒤로 이어지는 말에 그 웃음도 자취를 감췄다.


“니토 군은 잠시 이 몸의 연인이 되어줘야겠네.”

“무, 무슨 소리를 하눈거얏!! 난 남자라구!!”


나즈나는 정말 어이가 없었다. 아무리 예쁘장한 얼굴이란 말을 듣고 살아도 이렇게 착각하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다리를 걷어 차야하나? 귀족인데 걷어 차도 괜찮을까? 하고 고민하며 어정쩡하게 다리를 들어올렸을 때, 레이는 웃었다. 착각하지 말게나. 차분한 목소리는 싸늘했다.


“이 몸은 동생을 후계로 내세우고 싶다네. 그러기 위해선 적당한 핑계가 필요하지. 그래서 필요했던 걸세. 여자처럼 꾸며두면 누가 봐도 인정할만큼 예쁘장한 얼굴이지만 여자는 아닌 사람이. 뒷탈이 있으면 안되거든. 그런데 마침 와타루 군이 그대를 데려오더군. 잘 된 일이지.”


나즈나는 눈 앞에 히비키 와타루가 있다면 한 대 후려갈기고 싶은 기분이었다. 이상한 사람이라도 토모야를 아끼기에 괜찮겠다 싶었더니 이렇게 뒷통수를 칠 줄이야. 하지만 결국 나즈나는 레이의 제안을 수락했다. 동생을 위해서 하는 일이라고 하니 마음이 약해진 것도 있었다. 그래서 그는 예쁜 드레스에 긴 가발을 뒤집어 쓰고 레이의 옆에 서서 스스로 공식 석상에 나섰다.


처음엔 거짓말을 한다는 생각에 약간 긴장했지만 다행히도 레이는 아주 능숙하게 독점욕을 가장해서 나즈나를 사람들의 눈이 닿지 않는 곳에 밀어 넣었고 나즈나가 실수하는 일 없이 그들의 사기극은 시작되었다.


처음이 어렵다고 두 번째부터는 나즈나도 자연스럽게 웃을 수 있게 되었다. 목소리를 내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공식석상에서 말을 하지 않는 그를 보며 사람들은 수줍음이 많은 여린 소녀를 만들어냈다. 정말로 만들어냈다.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레이는 나기라는 알 수 없는 여자아이스러운 이름까지 소문에 끼워 넣었다. 덕분에 나즈나는 나기로 불리는 것에 익숙해지기까지 꽤나 고생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적당히 공식석상에만 얼굴을 비치면 될 줄 알았는데, 레이는 나즈나가 그의 거처에 와서 지내는 것을 요구했다. 암살 위험이 있다는 이유였다. 동생들은 교육기관에 딸린 기숙사로 가버려서 거절할 이유도 없었다.


심지어 짐을 챙길 필요도 없었다. 레이가 말했다. 몸만 오게나. 정말 몸만 갔더니 나머지는 전부 현찰로 레이가 사버렸다. 물론 온통 하늘하늘한 드레스였지만. 쌓인 짐을 보며 나즈나는 조금 질린 얼굴을 했다.


“절약이 필요하지 않을까?”


물론 레이는 들은 척도 않았다.



마차가 덜컹이는 소리를 내며 저택 앞에 멈춰 섰다. 상념을 털어냈다. 잠시 지나니 닫혀있던 문이 열리고 검은 장갑을 낀 손이 뻗어왔다. 레이는 눈을 휘며 웃었다. 나즈나도 따라 웃으며 그 위에 제 손을 얹었다. 둘 다 연기가 능숙해졌다.


“오늘은 어땠는가.”

“여전하지. 소문만 무성해. 어디까지 소문을 퍼트린거야?”

“글세... 상상에 맡겨두도록 하지. ...어서오게나 니토.”


아니, 아무래도 아직 나즈나는 조금 부족한 듯 싶다. 끝까지 속삭이는 목소리에 팔에 소름이 돋는 것을 애써 무시하며 그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되도록 우아하게 레이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마차의 계단을 밟았다. 어서 빨리 저택에 들어가 좀 더 편히 있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를 지배했다.



-

뒷이야기를 쓰고싶습니다

지나가던 오딱구

유쟈챠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