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 재록본에 수록된 글입니다.


 분홍색 맨투맨에 검정색 바지를 입은 이와이즈미 하지메는 한쪽 손에는 전공 책을, 한쪽 손에는 휴대 전화를 들고 캠퍼스를 거닐고 있다. 고등학생일 때 삐죽이며 제멋대로 뻗친 머리는 이제 어깨까지 내려와 자못 차분하게 보이기까지 했다. 이와이즈미는 휴대 전화를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이와쨩 수업 끝날 때 쯤 비슷하게 나도 수업 하나 공강 생길 것 같아! 같이 점심 먹자, 이와쨩! 한 시간 전, 휴대 전화 너머로 들렸던 오이카와의 목소리가 아직 귓가에 생생하게 느껴졌다. 휴대 전화의 잠금을 해제한 이와이즈미의 눈에 들어온 건 손가락으로 브이를 만들어 환하게 웃고 있는 오이카와의 사진으로 된 배경 화면이었다. 처음 휴대 전화를 구매했을 때, 배경 화면이 그대로였던 이와이즈미의 휴대 전화를 본 오이카와는 입을 부루퉁 내밀었다. 난 이와쨩이랑 찍은 사진 배경 화면인데, 왜 이와쨩은 내 사진이 아니야? 그러더니 곧 이와이즈미의 휴대 전화를 들어 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본래 이와이즈미와 같이 찍으려고 했지만 사진 찍는 걸 싫어하는 이와이즈미는 요리조리 피하기에 바빴다. 결국 오이카와는 마음에 드는 사진 한 장을 건졌고, 바로 이와이즈미 휴대 전화의 배경 화면으로 설정했다. 앞으로 나 보고 싶을 땐 이거 보면 되겠다, 이와쨩. 환하게 웃으면서 이와이즈미에게 휴대 전화를 돌려주던 오이카와였다. 얼마나 걸었을까, 철학관 근처에서 만나자고 한 오이카와가 보이는 것 같았다. 이와이즈미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오이카와 토오루와 이와이즈미 하지메가 소꿉친구에서 연인으로 타이틀을 변경한 지 사 년, 네 번째 같이 맞이하는 봄이 시작되고 있었다.



밀어서 철벽 해제 그 후




 오이카와와 이와이즈미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도쿄에 있는 같은 대학으로 진학했다. 당시 오이카와에게 스카우트 제안을 한 대학은 많았지만, 오이카와는 배구를 그만 두고 체육학 쪽으로 진학하겠다는 마음을 굳히고 있었다. 이와이즈미 역시 고등학교 때까지 오이카와를 따라서 하던 배구를 그만 두고 평소 배우고 싶었던 심리학과로 재학했다. 오이카와는 그런 이와이즈미를 보며 이와쨩, 내가 지금 무슨 심리일 것 같아? 라는 질문을 여러 번 던졌고, 그때마다 이와이즈미는 내가 그런 거 배우는 과 아니라고 했잖아, 쿠소카와! 라며 오이카와의 등을 내려치기 일쑤였다.

 나란히 도쿄에 있는 같은 대학교로 진학하게 된 둘은 가까운 곳에서 자취를 시작했다. 그래서 둘은 수업 시간이 같은 날이면 같이 학교에 갔고, 수업 끝나는 시간이 비슷한 날이면 같이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다만 이와이즈미는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오이카와는 제 수업이 더 늦게 시작하는 날도 이와이즈미와 같이 학교에 갔고, 수업이 더 빨리 끝나는 날이면 이와이즈미를 기다렸다가 같이 집으로 돌아갔다. 분명 이와이즈미가 알면 왜 네 시간을 그렇게 낭비하냐면서 오이카와를 흘겨 볼 게 뻔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잖아. 과가 다르니까 이와쨩을 볼 시간이 별로 없는데. 오이카와는 제 스스로에게 합리화를 하는 양 고개를 끄덕거렸다.


“혼자서 뭘 끄덕거려?”

“어? 아. 아니, 아니. 그보다 이와쨩.”

“응.”

“그 옷 입었네?”


 이와이즈미는 그제야 고개를 숙여 분홍색 맨투맨과 검정색 바지로 시선을 돌렸다. 아, 이거. 오이카와와 사귀게 된 이후로 첫 데이트를 했던 날, 오이카와가 선물이라며 이와이즈미에게 안겼던 쇼핑백 속에 있던 옷이었다. 그때, 쇼윈도 너머 치마를 보던 이와이즈미의 생각을 눈치챈 오이카와는 평소에 입는 그대로가 제일 예쁘다며 이와이즈미에게 지금 입고 있는 옷을 선물했었다. 옛 생각에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짓던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입으라고 준 건데, 입어야지.”

“잘 어울려.”

“알아.”

“그게 다야?”

“네가 사 줬으니까 잘 어울리겠지, 뭐.”


 차도 쪽으로 걷던 이와이즈미와 자연스럽게 자리를 바꾼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의 손에 들려 있던 전공 책을 제 손으로 옮겨 들었다. 오늘 수업이 일찍 끝나는 탓에 가방을 가져오지 않은 이와이즈미는 휴대 전화와 전공 책만 덜렁 챙겨 수업에 들어갔었다. 오이카와는 자유로워진 이와이즈미의 손을 잡으며 깍지를 꼈다.


“네가 잘 어울리겠다고 생각하고 준 거니까. 뭐, 더 말 필요해?”

“아, 아니. 그건 아닌데.”

“아닌데?”

“이와쨩, 처음엔 내가 손만 잡아도 막 빼려고 그랬으면서.”

“지금 몇 년이 지났는데.”

“그래도! 그때 이와쨩 귀여웠는데, 지금은….”

“지금 뭐, 뭐!”


 이와이즈미가 손을 놓으려고 하자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의 손을 쥔 제 손에 힘을 주었다. 또, 또! 이와쨩, 나니까 이렇게 맞아주는 거라니까? 너만 때리는 거야, 쿠소카와! 투닥이는 모습이 고등학교 시절과 다를 바 없는 둘이었다. 하지만 그때와는 다르게 맞잡은 채 깍지를 끼고 있는 손은 그대로였다.



*



 오이카와가 이와이즈미의 손을 잡고 이끌고 온 곳은 마파두부를 전문으로 하는 가게였다. 이와이즈미는 두부를 좋아하긴 했어도 매운 음식은 잘 먹지 못하는 탓에 마파두부와 같은 매콤한 음식은 즐기지 않는 편이었다. 그런 이와이즈미를 누구보다 잘 아는 오이카와가 마파두부를 전문으로 하는 가게에 이와이즈미를 데리고 왔다.


“저번에 맛키랑 여기서 먹었는데, 꽤 맛있어서 이와쨩이랑 오고 싶었어.”

“하나마키? 하나마키랑 만났어?”

“응. 맛키도 이 근처로 학교 다니니까, 운 좋게 마주쳤지.”


 오이카와는 티슈를 한 장 뽑아 이와이즈미 앞에 두고 수저통에서 숟가락과 젓가락을 꺼내어 티슈 위로 가지런하게 올려놓았다. 그때 맛키가 여기 맛있다면서 데리고 왔었는데, 먹으니까 진짜 맛있어서. 이와쨩 두부 좋아하잖아. 주절주절 늘어놓던 오이카와는 그제야 제 앞에도 티슈 한 장을 놓고 숟가락과 젓가락을 놓고 점원을 불렀다.


“주문하시겠어요?”

“여기 마파두부 이 인분 주세요. 아, 기본에서 좀 덜 맵게 해 주세요. 죄송한데, 두부 한 번 튀겨서 조리해 주실 수 있나요?”

“네, 그렇게 해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이와이즈미는 주문을 마친 뒤 컵에 물을 따르고 그 컵을 제게 내미는 오이카와의 눈을 마주했다. 그냥 두부보다 살짝 튀긴 두부를 더 좋아하는 이와이즈미의 취향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오이카와였다. 평소와 같은 오이카와가 분명한데, 고등학생일 때, 첫 데이트를 했을 때와 비슷하게 두근거리는 심장을 느낀 이와이즈미는 마주하던 시선을 돌려 헛기침을 했다.


“이와쨩?”

“아니, 뭐. 그렇게 튀겨서 달라고 할 것 까지 있나 싶어서.”

“이와쨩은 그렇게 먹는 거 좋아하잖아.”

“네가 좋아하는 것도 아닌데?”

“이와쨩이 좋아하는 거니까 나도 좋아하는 거지. 왜, 싫어?”

“아, 아니. 그건 아닌데.”

“뭐야, 싱겁게. 여기 진짜 맛있으니까 이와쨩 많이 먹어.”


 오이카와는 한쪽 손으로 턱을 괸 채 이와이즈미를 향해 웃었다. 이와이즈미는 얼굴에 느껴지는 열감에 저도 모르게 컵에 있던 냉수를 단숨에 원샷을 한 것도 모자라 손부채질까지 했다. 이와쨩, 더워? 아직 음식도 안 나왔는데. 고개를 숙이고 한숨을 내뱉는 이와이즈미를 의아하게 보던 오이카와는 제 손으로 이와이즈미에게 부채질을 해 주었다. 아직 봄인데, 벌써 더워지는 건가? 난 괜찮은데. 중얼거리면서도 이와이즈미에게 하는 손부채질은 멈추지 않았다.



*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를 식사를 마친 이와이즈미는 제 손에 있던 전공 책이 어느새 오이카와의 손에 옮겨간 건지 고개를 갸웃했다. 가게를 나오자마자 이와이즈미의 손을 잡은 오이카와였다. 이와이즈미는 맞잡은 손에 시선을 옮겼다. 고등학생일 때와는 다른 느낌의 오이카와의 손이 듬직하게 느껴졌다. 커다란 손이 이와이즈미의 손을 덮고 있었다. 내 손도 작은 편이 아닌데, 그럼 오이카와 손은 얼마나 큰 거지. 이와이즈미가 생각에 빠지려던 때였다.


“아.”

“왜?”

“이와쨩, 선크림 거의 다 썼지.”

“어떻게 알았어?”

“저번에 이와쨩 집에 갔을 때 봤으니까.”


 맞다, 진짜. 이거 주려고 그랬는데. 오이카와는 중얼거리며 전공 책을 옆구리에 끼운 채 제 가방을 뒤적거렸다. 전에 사서 가방에 두고 안 꺼냈는데, 이와쨩 보면 바로 주려고. 아, 찾았다! 오이카와가 가방에서 꺼낸 건 이와이즈미가 쓰는 브랜드와 같은 선크림이었다. 선물할 거라며 포장을 해 달라고 했는지 선크림의 겉 포장에는 리본이 달려 있었다.


“백 엔 정도 가격 올랐더라.”

“응?”

“그거, 이와쨩 고등학생일 때부터 쓴 거잖아. 그때 한 번 사 주고 이번이 두 번째네.”

“아, 그랬나? 응, 난 이 브랜드가 잘 맞아서.”

“그때는 칠백 엔 정도로 샀던 것 같은데, 저번에 사니까 팔백 엔 받더라고.”

“그래? 난 가격 오른 것도 모르고 그냥 쓰고 있었는데.”

“사 년이면 가격도 오르고. 그렇지, 이와쨩?”


 그때는 이거 살 때 되게 고민하고 그랬는데. 이와쨩 이거 사 주면 난 부 활동 끝나고 간식 먹을 돈이 없었거든. 이와이즈미와 시선을 맞춘 오이카와는 쌩긋 웃어 보였다. 그래? 그땐 그게 꽤 비싼 축에 속했네. 오이카와의 말을 듣던 이와이즈미는 고개를 두어 번 주억였다. 새삼 시간 참 빠르게 흘렀지, 이와쨩. 우리가 사귄 지도 벌써 사 년이야. 아, 그렇구나. 아니, 잠깐만. 오이카와의 말을 그제야 이해한 이와이즈미는 다시 얼굴에 열감이 몰리는 걸 느꼈다. 얘 진짜 오늘따라 왜 이러지. 아니, 내가 이상한 건가? 이와이즈미는 별안간 고개를 푹 숙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이와이즈미는 평소와 다른 건 오이카와가 아니라 저 자신이라고 생각했다. 아, 왜 이러지.


“이와쨩? 어디 아파?”

“아니, 아니야. 가자.”


 이와이즈미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고개를 털었다. 오이카와는 눈치가 빠른 편이었다. 새삼 오이카와의 행동 하나하나에 설레는 저 자신을 눈치 빠른 과거 소꿉친구이자 현재의 남자 친구인 오이카와가 곧 눈치챌 것만 같았다. 죽어도 싫어. 창피해서 죽어 버릴 거야. 이와이즈미는 재차 고개를 세차게 털었다. 오늘따라 이상하네, 이와쨩. 그런 이와이즈미를 보고 고개를 갸웃한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와 맞잡은 손에 재차 힘을 주었다.



*



 이와이즈미는 오전 수업 뒤로는 수업이 없었고, 오이카와는 오후에 수업이 하나 더 남아 있었다. 오후 수업까지 제법 여유가 생긴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를 집 앞까지 데려다 주겠다며 발걸음을 옮겼다. 오이카와는 아직 어두워지지도 않았는데 뭘 데려다 주냐며 묻던 이와이즈미에게 그냥, 손잡고 좀 걷고 싶어서. 이와쨩은 싫어? 라고 되물었다. 덕분에 이와이즈미는 다시 얼굴이 빨개졌고, 오이카와는 그제야 눈치를 챈 듯 입꼬리를 씨익 올렸다.

 이와이즈미는 그 뒤로 얼마나 걸었는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빨개진 얼굴을 오이카와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 이리저리 돌리며 열을 식히기에 바빴다. 이상하게도 오이카와는 그런 이와이즈미를 보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왜 조용하지, 얘. 일순간 오이카와가 조용하니 더 불안하다고 느껴진 이와이즈미가 고개를 들었다. 


“다 왔네, 이와쨩. 집 앞이야.”

“아, 벌써? 넌 얼른 학교로 가 봐.”

“있잖아, 이와쨩.”

“응?”

“여기 기억나?”


 오이카와가 가리킨 곳은 가로등 아래 담벼락이었다. 이와이즈미가 자취하는 빌라의 입구에 위치한 곳이었다.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를 이끌고 가로등 밑에 섰다. 아직 낮이라 밝았지만 주변에 지나가는 사람들은 없었다. 번화가와 제법 거리가 있는 곳에 자리한 이 빌라가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나와서 이와이즈미는 바로 이 집을 계약했었다.


“뭐가?”

“우리, 스무 살 되고 자취할 곳 알아보고 다녔잖아.”

“응, 그랬지.”

“그때 이와쨩은 이 집으로 계약하고, 난 여기서 얼마 안 떨어진 곳으로 계약하고.”

“응.”

“정말 기억 안 나?”

“뭘? …아.”


 이와이즈미는 그제야 제 뇌리를 스치는 기억을 마주할 수 있었다. 늦은 저녁이었다. 이미 집을 구한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가 지낼 곳을 같이 알아보러 다녔다. 그날도 저녁 늦게까지 알아보러 다녔었다. 막 스무 살이 된 둘이 도쿄의 이곳저곳을 알아보며 다니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와쨩, 괜히 나 때문에 고생하고. 미안해. 오이카와는 그렇게 말하며 밝게 켜진 가로등 밑에서 이와이즈미를 껴안고 있었다. 이와이즈미는 그런 오이카와의 가슴팍에 제 얼굴을 부볐다. 괜찮아, 미안할 게 뭐가 있어. 내가 좋아서 갔던 건데. 이와이즈미의 대답에 한참이나 말이 없던 오이카와는 안고 있던 이와이즈미의 어깨를 잡았다. 자못 결의한 눈빛의 오이카와와 당황한 듯한 이와이즈미의 눈이 마주쳤다. 이와쨩, 키스해도 돼? 오이카와는 떨리는 눈빛으로 이와이즈미에게 물었다. 삽시간 얼굴이 빨갛게 물든 이와이즈미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주변에 지나가는 사람은 없었고, 가로등 아래 오이카와와 이와이즈미 둘만이 있었다. 이와이즈미는 고개를 끄덕였고, 오이카와는 천천히 이와이즈미의 입술에 제 입술을 포갰다. 그랬다. 그래, 여기서 키스를 했었다.


“우리, 여기서 첫 키스 했었잖아.”

“어?”

“스무 살 되고 나서 첫 키스.”

“…아.”

“있잖아, 이와쨩.”

“…응.”

“지금 키스해도 돼?”


 어차피 할 거면서 묻는다. 오이카와는 늘 그랬다. 고등학생일 때, 집 앞에서 한 첫 키스 이후로 오이카와는 줄곧 이와이즈미에게 키스해도 돼? 라고 물었었다. 결국 할 거면서도 꼭 이와이즈미에게 먼저 물었다. 내 얼굴이 빨개지는 걸 보고 싶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내가 얼굴을 붉히고 고개를 끄덕이는 게 보고 싶어서 그런 건지. 생각에 잠겼던 이와이즈미는 역시나 얼굴을 붉히고 고개를 끄덕였다. 오이카와는 그런 이와이즈미를 보며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었다. 천천히 고개를 숙여 이와이즈미의 입술에 제 입술을 포갰다. 얼마 안 지나 오이카와의 혀가 이와이즈미의 아랫입술을 쓸었다. 이제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가 제 입술을 쓸어도 딸꾹질을 하지 않았다. 닫혀 있던 이와이즈미의 입술이 자연스럽게 열렸다. 열리길 기다렸다는 듯 오이카와의 혀가 이와이즈미의 입안을 유영했다. 이와이즈미의 혀 아래를 툭 건드리기도 하고, 치열을 훑고 지나가기도 했다. 계속되는 입맞춤에 이와이즈미의 숨이 찰 무렵, 둘의 입술이 떨어졌다. 이와이즈미의 눈앞에 제 침으로 번들거리는 오이카와의 입술이 보였다. 삽시간 이와이즈미의 얼굴이 다시 붉어졌다. 이 뒤에 오이카와는, 아마.


“…이와쨩.”

“…응.”

“……지금 내가 무슨 생각 할 것 같아?”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지금 내 심리가 어떤지 이와쨩이 제일 잘 알 것 같은데.”

“……몰라.”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거잖아, 이와쨩.”

“…….”

“나 오늘 오후 수업 안 갈 거야.”


 오이카와는 그 말을 끝으로 어깨에 자리하고 있던 손을 내려 이와이즈미의 손을 맞잡았다. 이와이즈미의 자취방으로 올라가는 오이카와의 뒷모습이 어쩐지 다급하게 보이는 것 같았다. 이와쨩, 열쇠! 열쇠! 우리집 도어록이잖아, 쿠소카와! 아, 맞다! 아, 자꾸 비밀번호 틀리잖아! 천천히 해, 천천히! 결국 오이카와는 그날 비밀번호를 여섯 번이나 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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