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척






차하나가 봤으면 한심하다고 고개를 저었을 게 분명하다. 착한 일을 했는데, 불안할 게 뭐가 있을까. 나는 풉 웃음을 터뜨린 후 차두리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었다.


"걱정 마. 아무도 안 믿을 거니까."


여전히 불안이 가시지 않은 얼굴. 차두리는 일단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교실에 돌아온 권세모가 복도 쪽을 흘끗거린다. 소란스런 소리가 나서 보니 아니나 다를까 수학쌤이었다. 


"그 사탕···!"


아이고, 참···. 드문드문 들려오는 소리로 보아 사탕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모양이었다. 게다가 그 사람은 그새 차하나가 어떤 앤지 잊은 건지 차하나를 잡고 늘어지기 시작했다. 너 때문이다, 이게 다 너 때문이다. 그런 말들이 차하나의 위치를 더욱 공고히 해주는 건 꿈에도 모르고···. 차하나는 겁먹은 듯한 얼굴을 하고 서있었다. 


"너희 반도, 너도, 그 빌어먹을 사탕도! 다 미쳤어."


그 사람은 그렇게 말하면서 차하나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차하나는 눈물이 살짝 고인 눈을 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모르겠어요..."


그 모습에 다른 선생님들이 수학쌤을 말렸고, 아이들은 저마다 수군대며 착한 하나가 불쌍하다고 떠들었다. 난 그 사이에서 고개를 푹 숙인 채 손으로 얼굴을 가린 차하나를 본다. 아, 수학쌤 불쌍해. 그게 덫인 줄도 모르고. 나는 자꾸 새어나오는 웃음을 눌렀다. 마치, 지금 차하나가 하는 것처럼.






지켜보던 차두리가 서둘러 복도 쪽으로 나가려 발을 뗀 그 순간,


"얘들아 앉아."


차하나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교실에 돌아왔다. 그 부드러운 미소에 차두리는 입술을 꾹 깨물곤 자리에 앉는다. 반 아이들의 웅성거림이 잦아들지 않자 차하나가 교탁을 똑똑 두드린다.


"걱정 마 얘들아. 난 괜찮으니까."


살포시 웃는 차하나는 청초라는 단어가 잘 어울리는 인상이었다. 그 착한 얼굴에 아이들은 역시 반장이라며 차하나를 올려세웠다.


"그냥 좀, 오해가 있으셨나 봐."


나와 눈이 마주친 차하나는 아무렇지 않게 웃었다. 차하나를 응시하는 권세모의 표정은 굳어있었다. 이상하고 역겹겠지. 그런데 어쩐지 걱정하는 표정이 보여. 나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나와 권세모가 완전히 실패해버렸던 모든 걸 차하나가 하고 있다. 


'아, 재수없어.'


그래서 나는 일부러 온 힘을 다해서 시끄러운 생각을 했다. 그래봐야, 차하나는 나를 보며 웃을 뿐이었지만.






"이 시간에 보자고 하고... 내심 쫄렸나 봐, 반장."


그날 밤 11시. 차하나는 대뜸 나를 학교로 불러냈다. 캄캄한 복도를 걸어 교실에 도착하니 자리에 앉아있는 차하나가 보인다.


"반장이라고 불러주는 거 오랜만이네."


차하나는 앉아있던 의자를 드르륵 집어넣고 내게 다가온다. 


"이거, 다 내가 만들었어."


교실을 휘 둘러보는 차하나. 그래, 네가 만들었지. 교실의 분위기, 규칙, 인간 관계, 서열까지. 너는 모자란 게 없으니까. 부족한 건 있어도. 


"그 사람, 어떻게 다시 온 거지?"


미간을 살짝 찌푸린 차하나. 아, 그거···.


"내가 알려줬어."


나는 차하나를 보며 웃는다. 알려줬다고, 내가.






몇 달 전, 스승의 날. 차하나는 사탕이 가득 든 병을 품에 안은 채 행복한 듯 웃어 보였다. 이거, 드리면 좋아하시겠지? 아, 재밌겠다. 선생님의 진심···. 모두가 알았으면 좋겠어. 선생님은 조금 혼나야 해. 나쁜 사람이잖아···. 그리고는 교무실을 향해 가는 차하나. 나는 조용히 교실로 들어가 쪽지 한 장을 쓰곤 주머니에 찔러 넣는다.


교무실을 나서는 차하나의 표정이 밝았다. 전부터 말했던 사람이었으니까. 명예와 권력, 부를 얻은 그 사람이, 사실은 어떤 마음으로 어떤 짓까지 해가며 거기에 올라갔는지. 무슨 재밌는 예능 프로그램 얘기를 하듯, 늘. 그러니까 지금 차하나는 오랫동안 아껴둔 장난감 하나를 꺼낸 거다. 나는 그 애가 행복한 게, 싫었다. 나와 권세모가 그랬던 것처럼, 너 역시 부서졌으면 좋겠다. 우린 그래야 하니까. 


그냥, 그런 이유로. 나는 며칠 뒤 차하나가 나온 그 교무실에 들어가 사탕병 아래에 쪽지 한 장을 밀어 넣었다. 그 선생님은 이미 본모습을 드러내고 명예와 권력, 부까지 모두 뺏겨 있었고, 그날은 선생님으로서 마지막 출근 날이었다. 짐을 들고나가는 그 사람은, 교문을 나서기 전 분명히 우리 교실을 올려다봤다. 나는 그 사람이 꼭 다시 학교에 와서 차하나를 귀찮게 해주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고작 그런 이유로?"


차하나는 얼굴을 찌푸린 채 웃었다. 그 일그러진 표정이 나와 같다고 생각했다. 이정도면 성공이다. 차하나가 온전히 나만 불러서 나를 보고 나와 같은 표정을 지으며 내가 있는 것으로 떨어지는 것. 그래 나는, 나 역시 너를 벗어날 수 없다.


"말했잖아, 네가 행복한 게, 싫어졌다고."


"애처럼 굴었네."


"그럼 어떻게 굴어주길 원했어?"


뭘 기대했는데? 진짜 사랑에 빠지기라도 해줬으면 좋겠어? 나는 비웃듯 말을 내뱉고 가만히 차하나의 표정을 본다. 그저 무표정일 뿐인 차하나. 


"알고 있었어. 네가 알려줬다는 거."


"..."


"그리고 오늘 확실히 알았어. 저 사람들은, 내 포장지만 있으면 돼. 아, 너무 짜증나. 난 그냥 나쁜 사람들을 혼내준 거잖아."


차하나가 화난 듯 머리를 쓸어넘긴다. 그러다 스르르 표정이 풀린다. 그래, 걔가 있었네. 안 혼내고도, 이미 부서져있던 애.


"권세모는 달라. 게다가 날 안 믿었어. 세 번째야."


"걔는,"


"맘에 들어..."


차하나가 환하게 웃는다. 그러다 내 표정을 보곤 어깨를 으쓱한다.


"그래, 너도 그랬지."


"..."


"계속해봐. 네 어린 부분, 궁금해."


그리곤 제 책상을 발로 차 밀어버리는 차하나. 우당탕 큰 소리와 함께 책상 서랍에 있던 물건들이 떨어져 나온다. 책 몇 권과, 수두룩한 사탕. 피냐타를 터트린 듯 바닥에는 알록달록한 사탕이 가득하다. 차하나는 사탕을 주워 내게 휙 던진다.


"제정신에 말할 수 있겠어? 또 열심히 포장이나 해대겠지. 내가 싫었다고. 넌 내가 싫은 게 아니야. 네가 싫은 거지."


나는 차하나의 말에 조용히 사탕을 까서 입에 넣었다. 달고 쓴 그 특유의 역겨운 향. 첫맛은 달고 갈수록 이상한 쓴맛이 느껴지는. 누구라도 이 사탕 앞에선 거짓말도, 포장도, 사랑을 숨기는 것조차 못하게 된다는 것까지도. 정말 차하나 너 같은 사탕. 나는 손을 꽉 쥐었고 손바닥 안에서 사탕 껍데기가 비명소리를 내며 구겨졌다.


"네가 차두리를 생각하는 거처럼 난 권세모를 생각했어. 그래서 우린 같아."


"같다고..."


"틀려? 너나 나나, 뭐가 다른데?"


"..."


차하나는 잠시 아무 말이 없다. 그러다 풉, 웃음을 터트리더니 비틀비틀거리며 웃기 시작한다. 교실에 침입한 달빛이 속도 없이 밝았다. 교실을 바라보는 달이 속도 모르고 예뻤다.


"그렇게까지 안 해도, 난 부서져. 애초에 그러기 위해서 살았어."


"..."


"고마워, 오공아. 덕분에 찾았어."


차하나는 바닥에 널린 사탕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이제 네가 원하는 대로 해줄게."


"그럼 두리는,"


"맘대로 해. 넌 나보다 걔를 사랑한 거 같네."


차두리는 좋겠다. 다 가졌네. 차하나가 픽 웃었다. 


"차두리는 너를 그렇게 생각할 걸."


차하나가 미묘한 웃음을 지었다. 


"권세모도 너를 그렇게 생각할까?"


"..."


"네가 보기엔, 어때?"


"...알아서 생각해. 나 간다."


일부러 쾅 소리를 내며 닫은 문. 교실 안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진짜 이상해···.






'잠깐 보자.'


권세모의 문자. 나는 상단바 알림을 확인하자마자 공원 쪽으로 향했다. 사람 하나 없는 공원. 깜박깜박이는 가로등. 그 아래 권세모가 서있었다. 우리를 집어삼킬 듯하던 파도도, 눈물 대신 흘렀던 비도 없이 그저 건조한 밤이었다.


"안녕, 오랜만이네."


낮에도 본 사람치고는 어색한 인사. 권세모의 눈가는 이미 한 번 울었던 듯 빨개져있다.


"왜 울었어? 차하나가 걱정돼서는 아닐 거고. 니 애인이랑 싸우기라도 했어?"


"..."


"둘이 진짜 잘 어울려. 그렇게 도망쳐서 찾은 게, 겨우 서로라는 게, 꼭 누구들 같고."


"오공아, 너는 나 안 보고 싶었어?"


권세모가 눈물을 참기라도 하는 듯 입술을 꾹 깨문다.화난 표정을 하고 나를 봐도, 그 속에 담긴 건 분노가 아니라서, 결국 너는 나에게서 벗어날 수 없는 거야.


"보고 싶었어."


"근데 왜, 내가 아니야?"


"..."


"나는 널 버렸지만 날 부순 건 너잖아... 돌려주겠다면서. 근데 왜 너는 차하나랑 차두리만 봐?"


나도 봐줘, 권세모는 내 손을 꽉 잡았다. 차두리도, 차하나도 네가 아니지만, 난 너야. 넌 너를 사랑하잖아. 제발, 나 버리지 마···. 권세모의 손이 덜덜 떨렸다. 자기도 차하나를 사랑하고 차두리를 동정하면서. 나는 그 이기적인 모습에 다시 권세모를 사랑할 뻔했다.


"난 내가 싫어. 그런데도 넌 내가 되고 싶어?"


"좋아하니까."


"...넌 너야. 그런 말은 차하나한테나 해."


권세모가 잡고 있던 손을 스르륵 놓는다. 화났을까? 아니면, 무서울까? 나는 가만히 권세모를 응시한다.


"내가 차하나한테 가길 바라는 거야, 네가 차두리한테 가고 싶은 거야?"


"..."


"진짜 꼬였다. 우리."


엉킨 건 풀 수 있어도 꼬인 건 자국이 계속 남는다고 누가 그랬는데. 권세모는 헛웃음을 뱉었다.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든, 속에 뭐가 들었든 상관없으니까, 겉으로는 사랑한다고 해. 그럼 네가 찢어지고 터지기 전까지 난, 그냥 네가 날 사랑했다고 생각할 테니까."


나는 권세모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다, 서로 진짜 닮았네. 부서지기 위해 살잖아. 그러니까 네 말은, 


"사랑인 척하자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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