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석이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난거지? 촌스러운 오대오 가르마 머리에 이상한 안경. 맨날 재미없는 개그하고 혼자 웃질 않나. 아, 가끔씩 좀 웃길 때도 있기는 하지만. 아주 가끔. 어쨌든 우석은 창구가 정말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 형은 진짜 특이해. 이상한 형이야. 늘 입버릇처럼 우석이 하던 말이었다.


정말로 더위를 먹어서 어떻게 돌아버린 것이 분명했다. 진짜 정우석 너 미쳤어? 그 때 거기서 얼굴은 왜 빨개진건데? 말이 안되잖아. 내가 여창구 같은 사람을 좋아하게 되었다니. 그런 사람에게 사랑에 빠질 리가 없잖아.


 문이 벌컥 열리는 소리에 우석이 파묻고 있던 고개를 들어 뒤를 돌아봤다. 창구가 티비 어느 광고에서 많이 들어본 것 같은 CM송을 흥얼거리며 방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진짜 최악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런 모습마저 이제는 좀 잘생겨 보이는 것 같아 우석은 절망했다.





[원슥] 너드 보이!

w. 율무





우석은 창구와의 첫 만남을 잊지 못한다. 때는 우석이 고등학교 입학 후, 처음으로 기숙사에 갔던 날이었다. 하필 엘레베이터가 고장나서 5층까지 땀을 뻘뻘 흘리며 계단으로 짐을 옮겼다. 우석이 캐리어를 쿵 하고 바닥에 던지듯 내려놓았다. 더운 날도 아닌데 우석은 온통 땀 범벅이었다. 눈을 덮을 정도의 거슬리는 긴 머리카락을 대충 한 번 쓸어 뒤로 넘겼다. 비상구를 타고 여기저기 앓는 소리들이 들렸다. 학교도 참 생각없지. 기숙사 첫 입주날인데 엘레베이터를 진작 안 고쳐 놓다니. 우석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눈으로는 502호를 찾았다. 다행히 계단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우석의 방이 있었다.



502호실

여 창 구

정 우 석



우석은 문고리를 잡고 내리다가 문 옆에 있는 작은 문패를 발견하였다. 자신의 룸메이트가 될 사람의 이름이 제 이름 위에 나란히 적혀있었다. 여창구, 특이한 이름이다. 우석은 그렇게 생각하며 방으로 들어갔다. 방은 남자 둘이 살기에 나쁘지 않은 크기였다. 침대의 1층과 2층 중 어디에 짐을 풀까 잠시 고민하던 우석은 그냥 맨 바닥에 짐을 놓고 룸메이트가 오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사실 짐을 풀고자시고, 일단은 좀 씻고 싶었다. 땀에 젖은 옷이 맨 살에 달라붙어 찝찝했다.


보일러를 트는 것을 깜빡해서 그냥 찬 물로 대충 샤워를 하고 뽀송한 새 수건으로 몸을 닦았다. 옷을 갈아입고 머리까지 다 말리고 나니 온 몸에 진이 쭉 다 빠지는 느낌이었다. 우석이 시트도 깔려있지 않은 휑한 침대 위로 풀썩 누웠다. 전 날 고등학교 입학에 대한 기대감과 걱정으로 잠을 제대로 못자서 그런지 자꾸만 졸음이 밀려왔다. 우석의 눈꺼풀이 저도 모르게 스르륵 감겼다.


창구는 저녁이 되었을 때 즈음 기숙사에 도착했다. 오전에 학생들의 불만사항이 많았었는지 엘레베이터는 정상적으로 작동이 되고 있었다. 코 끝으로 내려간 안경을 손가락으로 올려 다시 고쳐 쓴 창구가 5층 버튼을 꾹 눌렀다.



"어디보자. 502호는 저쪽이였지."



창구는 익숙하게 방을 찾아갔다. 502호 방문 앞에 선 창구가 우석과 마찬가지로 문을 열기 전 문패에 써진 이름을 확인했다. 정우석, 멋진 이름이구나! 창구는 우석의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 아직 만나보지 않았지만 분명 친해질 수 있을거란 어떠한 확신같은 것이 생겼다. 창구가 벌컥, 문을 힘차게 열었다.



"엥? 아직 안왔나?"



창구는 캐리어만 덜렁 있고 휑하니 빈 방을 보고 잠시 어리둥절 하다가 침대 밖으로 삐져나온 사람의 다리를 발견했다. 조심스럽게 신발을 벗고 살금살금 다가간 창구가 침대에 누운 우석의 얼굴을 확인했다. 눈을 덮는 새카만 더벅머리에 작은 얼굴이 반 이상 가려져 있었다. 언제부터 자고 있던 거지. 창구는 이불도 덮지 않고 자고 있는 우석에게 조금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일단 내 이불이라도 덮어줄까. 창구는 쪼그려 앉아있던 몸을 일으키고 자신의 캐리어를 열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곧 우석이 잠에서 깼다. 그리고 눈을 뜨고 몸을 일으킨 우석은 이불을 들고 어정쩡하게 서 있는 창구와 눈이 마주쳤다.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창구가 먼저 환하게 웃으며 우석에게 인사를 건넸다. 우석의 기억 속 창구는 첫인상부터 남달랐다. 왁스로 정갈하게 빗어 가른 앞머리 가르마와 거기에 찐따미를 한층 업그레이드 시켜주는 동그란 뿔테 안경은 정말 충격 그 자체였다.


창구는 제게 어색하게 인사를 건네는 우석을 보고는 별안간 빵 웃음을 터뜨렸다. 아하하. 너 머리가 눈을 다 덮었네. 앞에 보이긴 해? 우석은 멋쩍어하며 덥수룩한 긴 머리를 손으로 눌러 정리했다. 저런 사람한테 머리 스타일 지적을 당했다는 것이 사실 조금 수치스러웠다. 창구는 헛기침을 하며 목을 가다듬고 다시 정식으로 우석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 난 여창구라고 해. 이름이 특이하지? 하하. 그냥 짱구 형이라고 불러."

"아, 네... 형."

"너는 신입생이지? 난 3학년이야. 학교생활 하다가 모르는 거 있으면 언제든지 물어봐도 돼."



우석은 창구가 내민 손을 맞잡고 악수했다. 짱구라고 부르라니... 자기소개도 뭔가 촌스럽네. 우석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지만 겉으로 티내지는 않았다.



"아, 침대는 어디 쓰실래요?"

"너는 어디 쓰고 싶은데?"

"저는 어디든 상관 없어요. 그냥 아무데나."

"그럼 내가 1층 써도 될까? 이걸 붙여야 해서."



창구는 캐리어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우석은 순간 제 눈을 의심했다. 창구가 손에 든 것은 야광별 스티커였다. 우석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리는 것을 본 창구가 다급하게 손사레를 쳤다. 아니, 이상하게 보지는 말고. 내가 별을 엄청 좋아해서... 아, 내가 천문학 동아리 회장이거든.



"천문학 동아리요?"

"응. 어렸을 때부터 밤하늘 보는 걸 좋아해서... 항상 별을 세다가 잠에 들었는데 그게 좀 버릇이 됐어. 이건 그냥 진짜 별을 못보니까 그 대신인 셈이지!"

"뭐, 그러면 형이 1층 쓰세요. 근데 2층 써도 스티커는 붙일 수 있지 않아요? 천장에다가."

"천장에 붙이면 안 돼. 스티커 뗄 때 벽지가 찢어져서. 예전에 한 번 혼났어."



창구는 조심스레 스티커를 떼어 침대의 나무 판자 위로 차례대로 붙였다. 그런 창구의 뒷모습을 보던 우석은 생각했다. 정말 특이하고 이상한 사람이다. 앞으로 친해질 수 있을 지도 좀 의문이었다.


스티커를 전부 붙인 창구가 침대에 누워 전체적인 그림을 확인했다. 너무 예쁘다. 정말 낭만적이지 않니? 우석은 네, 라고 대답했지만 사실 창구의 말에 별로 동의하고 싶지는 않았다.




*                      *                      *




걱정과는 달리 우석은 창구와 금세 친해졌다. 거기에는 창구의 큰 노력이 있었다. 사실 우석은 낯을 심하게 가리는 편이어서, 창구가 이런저런 질문을 해와도 한 달간은 거의 단답으로 일관했다. 대부분 우석이 그렇게 답을 하면 지쳐서 스스로 떨어져나가는 경우가 많았으나 창구는 달랐다. 그런 모습을 보니 우석의 마음도 자연스레 열렸다.


원래 사람이 다정하고 누구에게나 잘 해주는 타입 같았지만, 창구는 우석을 특히 더 챙기는 경향이 있었다. 우석도 그걸 알고 있었다. 몇 번씩이나 친구들과의 약속을 미루고서 저와 함께 있다는 것을. 우석은 그런 창구가 잘 이해 되지 않았다. 난 혼자 있어도 괜찮은데. 굳이 나 때문에 기숙사 일찍 들어올 필요 없는데. 하지만 혼자 있는 것 보다 창구랑 있는 것이 확실히 더 좋긴 했다. 그래서 그 말들을 굳이 입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창구는 기숙사에 들어오면 우석을 앉혀놓고 새로 개발한 개인기 같은 걸 보여주었다. 이상하게도 그는 개그에 대한 집착이 심해서 어떻게든 우석을 웃겨보겠다는 마음으로 매일같이 새로운 개그를 연구해왔다. 그러다가 우석의 웃음이 터지면 세상에서 제일 뿌듯한 얼굴로 재밌어? 하고 물어왔다. 사실 재미 없을 때가 대부분이었지만 우석은 왜인지 그 얼굴이 좋아서 몇 번은 재밌는 척 웃어준 적도 있었다.




어쩌다가 우석이 창구를 좋아하게 되었는가.


그것에 대해 말하려면 우석의 시점으로 그 때의 일을 회상할 필요가 있었다. 그 날은 기숙사 청결 점검일이었다. 남자 둘이 사는 방 치고는 나름 깔끔하게 하고는 살았으나, 청결 점검의 기준이 생각보다 훨씬 빡세서 창구는 대청소를 해야한다고 했다.



"사감 선생님이 결벽증이 있으셔서 먼지 하나 용납 못하시는 성격이거든. 평소보다 훨씬 더 깨끗하게 해야 돼."



두 사람은 역할을 나누어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책상 위의 너저분하게 어지른 물건들을 치우고, 옷가지들을 가지런하게 정리하여 옷장 안에 넣었다. 우석은 땀을 뻘뻘 흘리며 방바닥을 닦고 있는 창구를 보았다. 많이 더운가. 날리는 먼지 때문에 창문을 활짝 열어둔 상태였지만 우석은 에어컨 리모콘을 찾아 냉방을 켜두었다.



"형. 옷 정리 다했어요."

"그래? 그러면 욕실 청소 좀 해주라. 바닥이랑 거울만 닦아줘. 나머지는 내가 할게."



우석은 창구가 시킨 대로 바닥에 거품칠을 했다. 곧 창구도 화장실에 들어와 벽을 닦아내기 시작했다. 뜨거운 물로 벽에 있는 거품을 닦아내자 금세 화장실 안이 더운 수증기로 가득 찼다. 창구는 김이 서린 안경을 벗어 세면대 위에 올려두었다. 우석이 창구의 얼굴을 힐끗 바라보았다. 안경을 벗은 모습을 이렇게 밝은 데서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우석은 좀 놀랐다. 원래 저렇게 생긴 사람이었나? 찐따같던 앞머리는 물에 젖어 자연스레 흐트러져 있었고, 안경을 벗으니 또렷한 이목구비가 훤히 보였다. 뭐야... 잘생겼잖아... 우석이 당황해서 황급히 고개를 돌리고 침을 꼴깍 삼켰다. 왜 그동안 몰랐지? 지난 날을 회상해봐도 오늘 같은 얼굴은 없었다. 완벽한 초면이었다.


우석이 헛기침을 하며 다시 한 번 거울에 비친 창구의 얼굴을 확인했다. 우뚝 솟은 콧날 위로 작은 세제거품이 올라와있었다. 형, 코에 거품 묻었어요. 그러자 창구가 손등으로 스윽 거품을 닦아내고 우석을 쳐다봤다. 이제 없어? 우석은 시선을 회피하며 네, 없어요 하고 대충 대답했다. 저 형은 왜 멀쩡한 거울 냅두고 나한테 그걸 물어보는지. 우석이 행주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우석아. 이제 거울만 닦고 나가도 돼."

"거울 닦고 또 뭐 할거 있어요?"

"아니, 그게 마지막. 수고했어."



창구가 그렇게 말하며 싱긋 웃었다. 우석은 괜히 또 마른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큰일났다. 형을 못쳐다보겠어. 우석이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정신을 차리라고 명령했다. 그래, 사람이 너무 달라보이니까 어색해서. 잠시 어색해서 못보는 걸거야. 조금만 있으면 괜찮아지겠지. 익숙해지면, 그럼 괜찮아질거야. 그렇게 생각하자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우석아. 세면대 좀 쓰게 잠깐 옆으로 비켜주라."



창구가 우석의 옆에 바싹 붙으며 말했다. 이제 창구의 얼굴을 봐도 좀 괜찮은 것 같았다. 우석이 한층 밝아진 목소리로 네, 하고 대답을 했다. 그리고 당차게 옆으로 걸음을 옮기던 우석은 바닥에 떨어져있던 비누를 밟았다. 아, 넘어지겠다. 순식간에 미끄러지면서 몸이 휘청였고 천장이 보였다. 정말 너무 놀라서 어떤 비명을 지르지도 못했다.


그 때 우석의 허리를 감싸는 손이 있었다. 창구가 반사적으로 넘어지려는 우석을 잡아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질끈 감았던 눈을 뜬 우석은 바로 코앞까지 다가온 창구의 얼굴을 그대로 마주했다.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그 상황이 느리게 흘러가는 기분이었다. 괜찮아? 안다쳤어? 우석은 저도 모르게 숨을 멈추고 침을 꼴깍 삼켰다. 심장은 미친듯이 쿵쾅거리고 있었다.



"괜찮아요. 저 멀쩡해요."

"진짜?"

"네. 잡아주신 덕분에."



창구는 그제서야 우석을 놓아주었다. 우석은 몸을 바로해 거울 속 자신과 마주했다.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저, 저 그럼 먼저 나가볼게요. 마무리 하고 나오세요. 우석은 황급히 화장실 밖으로 나갔다. 창구는 쏜살같이 나가버린 우석을 보며 고개를 잠깐 갸웃하고는 다시 청소를 시작했다.


밖으로 도망쳐나온 우석은 정말 딱 죽을 맛이었다. 이제 저 형 얼굴을 어떻게 봐. 나 얼굴 빨개진거 봤겠지? 아, 무조건 봤을거야. 쪽팔림이 반. 그리고 혼란스러움이 반이었다. 자꾸만 둥둥 떠다니는 창구의 진지한 얼굴과 낮게 깔린 목소리.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계속 귓가에 맴도는 그의 목소리에 우석이 괴로워하며 그대로 침대 위로 다이빙을 했다.


아니, 말이 돼? 내가 창구 형을 좋아하게 될 리가 없잖아. 진짜 말이 안되잖아.


우석은 정말이지 울고 싶었다.




*                      *                      *




어느 날 창구는 기숙사에서 혼자 불닭볶음면을 해먹던 우석이 같이 먹어줄 사람이 없어서 그냥 혼자 먹었다라는 이야기를 하자, 어쩐지 찡한 표정을 하더니 그 뒤로는 어떤 일이 있어도 꼭 우석과 저녁을 먹으려고 했다. 뭔가 조금 오해를 한 것 같았지만 그걸 변명하고 있는 것도 구차해보여서 그냥 멋대로 생각하게끔 내버려두기로 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직까지 그 오해를 하고 있을 줄은 몰랐지. 우석은 오랜만에 형구와 밥을 먹으러 나왔다가 창구와 딱 마주쳤다. 두 사람을 본 창구는 조금 충격받은 표정이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우석이 창구에게 형구를 소개했다.



"여기는 제 친구예요. 강형구."

"안녕하세요."

"....너도 친구가 있었어?"

"그게 무슨 말이에요. 당연히 있죠."



우석이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나는 너가 항상 나랑만 있길래... 친구 없는 줄 알았지. 형구는 창구의 말에 꺄르륵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틀린 말은 아니네요. 얘 저 말고는 친구 없거든요. 창구는 두 사람에게 밥을 사주겠다고 했다. 식당으로 가는 동안에도 창구는 우석과 형구가 친구라는 것에 작은 의구심을 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창구가 보기에, 형구는 누가 봐도 인싸라는 말에 해당하는 사람이었다. 처음 보는 저에게도 스스럼없이 말을 걸었고, 지나가는 사람마다 형구와 아는 체를 했다. 겉모습만 봐도 귀에 피어싱을 여섯 개나 뚫은 멋쟁이 형구는 더벅머리의 우석과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둘은 어쩌다 친해지게 된거야? 창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소꿉친구예요. 어렸을때부터 같은 동네 살았어요."

"아, 고등학교 와서 친해진게 아니구나."

"형은 우석이랑 같은 방 쓰시죠. 우석이가 형 얘기 엄청 많이 해줬는데."

"아니, 내가 언제 저 형 얘기를 했어."



우석의 귀 끝이 붉게 물들었다. 이런 식으로 셋이 만날 줄 알았으면 형구한테 연애 상담은 안하는건데. 우석은 후회가 막심했다. 우석이가 무슨 얘기했어? 반면 창구는 처음 듣는 이야기에 귀가 솔깃했다. 우석이 형구에게 황급히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눈빛을 쏘아 보냈다. 형구는 이 상황이 마냥 웃긴지 계속해서 웃음을 참지 못했다.



"아, 그냥~ 잘 챙겨주신다고요."

"진짜?"

"네. 얘가 낯 엄청 가리잖아요. 근데 진짜 잘해주셨나봐요. 우석이랑 친해지기 힘든데."

"하하. 아니, 뭐... 우석이가 워낙 착하잖아. 나는 별로 안 힘들었어."



밥을 먹는 동안에도 우석을 제외한 두 사람은 뭐가 그리 재밌는지 하하호호 웃음꽃을 피웠다. 형구는 창구가 묻지도 않았는데도 우석의 어릴 적 이야기들을 혼자 줄줄 늘어놓았다. 아니, 좋은 얘기를 하면 몰라. 남의 흑역사를 왜 떠벌리냐고. 그것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우석은 당장 집으로 가서 숨어버리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래도 잘생기지 않았어요?"

"응? 우석이?"

"네. 머리가 이래서 그렇지 얼굴만 보면 괜찮은데."

"아, 맞아. 머리 짧은 것도 잘 어울릴 거 같은데."

"완전 잘어울려요. 사진 보여드릴까요?"

"어! 보여주라!"

"아니, 내 사진을 왜 니가 멋대로..."



우석의 외침은 그대로 허공에 흩어졌다. 형구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핸드폰 사진첩을 뒤져 우석의 중학생 때 사진을 찾아내었다. 와, 너무 귀엽다. 이거 언제야? 창구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우석은 부끄러워져서 고개를 푹 숙이고 괜히 젓가락으로 반찬을 뒤적거렸다. 귀엽긴 뭐가 귀엽다는거야. 완전 쪽팔려죽겠구만. 그러면서도 창구의 귀엽다는 말이 계속 떠올라 우석은 입꼬리를 실룩댔다.



"이거 아마 중학교 입학했을 때 즈음 일거예요."

"이 사진 나 보내주면 안 돼? 진짜 너무 귀여운데."

"안 될게 뭐 있어요. 형 번호 뭐예요?"



두 사람은 단 몇시간만에 짱친이 되었다. 우석은 내심 속으로 감탄했다. 인싸들의 친화력이란 대체 무엇일까. 아마 난 죽어도 모를거야. 밥을 먹은 후, 창구는 다른 할 일이 있어서 먼저 돌아갔고 우석은 형구와 같이 산책을 하다 가기로 했다. 학교 주변의 산책로를 같이 걷던 형구가 넌지시 말했다. 창구 형. 좋은 사람 같더라. 우석은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 사람도 너한테 관심 있는거 아니야? 형구의 말에 우석이 놀라 제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아냐! 절대 그럴리 없잖아... 그냥, 친한 동생이지. 형한테 나는. 우석의 목소리가 점차 작아졌다. 자신감이 없어서 그런건지 우울해져서 그런건지 알 수는 없었으나 형구는 그런 우석이 딱해보였다. 우석아, 그냥 하는 말 아니야. 내 생각에는 그 형도 너한테 좀 관심 있는 거 같아. 처음에 나 엄청 경계하던 것도 그렇고. 너 이야기 할때만 표정 밝아지는 것도 그렇고.



"진짜 아닌데... 나 같은 사람을 왜 좋아하겠어."

"어쭈? 언제는 형같은 사람을 내가 왜 좋아하냐며."

"아, 그 때는... 그냥 좀 안믿겨서 그런거지."

"너는 참 허우대에 비해 자신감이 없단 말이지."



일단 그 머리카락부터 좀 잘라봐. 볼 만한 얼굴 다 가리잖아. 형구가 우석에게 핀잔을 놓았다. 또 그 소리냐? 이미 그가 백 번 천 번은 들은 말이었다. 형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맨날 머리 자르라고 그러더라. 나는 긴 머리 좋은데. 우석은 진심으로 하는 말이었다. 머리를 이렇게 길러보는 것이 로망이었고, 최근 그는 자신의 헤어스타일에 대해 백퍼센트 만족을 하고 있었다.



"내가 오죽했으면 그러겠냐."

"자르기 싫단 말이야."

"아까 창구 형이 너 머리 짧은 거 귀엽다고 좋아했잖아."



분명... 만족도 백퍼센트였는데... 창구의 이야기가 나오니 급격히 우석의 마음이 흔들렸다. 야, 그럼 잘라. 뭘 고민해. 원래 짝사랑할때는 무조건 을의 입장인거야. 일단 그 형이 원하는 모습에 맞춰야 승산이 있지 않겠냐? 그냥 머리카락일 뿐이잖아. 어려운 것도 아니고. 형구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아, 그런가... 우석이 눈을 찌르는 앞머리를 조심스레 쥐었다. 내가 이걸 어떻게 길렀는데... 한숨을 푹 내쉬며 한참을 고민하던 우석이 마침내 결심이 섰는지 걸음을 멈추고 형구를 향해 돌아봤다.



"그래. 까짓거 자르지 뭐."



진짜? 그럼 지금 자르러 가자. 형구는 우석의 결심이 바뀔세라 그 말을 들은 즉시 그를 끌고 근처 미용실로 향했다. 우석이 바로 후회하며 결정을 번복했지만 통할리가 없었다. 야, 아니 형구야... 내가 지금 당장 자른다는게 아니라...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도 필요하고... 정우석. 응? 닥치고 그냥 따라와. 응...


그렇게 우석의 머리카락이 싹둑 잘려나갔다.




*                      *                      *




우석은 기숙사 문을 열까 말까 한참을 고민했다. 기숙사를 처음 왔을 때도 이렇게 떨지는 않았던 것 같았다. 형구 말대로 그냥 머리카락 좀 자른것 뿐인데. 하지만 생각과는 달리 문고리를 잡은 손에 쉽사리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내 머리를 보면 형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무슨 말을 할까. 우석은 제 중학교 때의 사진을 보며 활짝 웃던 창구의 얼굴을 떠올렸다. 좋아... 하겠지? 침을 꿀꺽 삼킨 우석이 힘을 주어 문을 열었다.



"어, 우석아 왔..."



헐. 머리 뭐야? 창구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입을 떡 벌린채 놀라 우석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우석은 어색하게 웃으며 훌쩍 짧아진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한참동안 정적이 흘렀다. 우석은 입 안의 침이 바짝바짝 마르는 것 같았다. 상황파악을 끝낸 창구가 눈을 꿈뻑이더니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머리 자를 때 왜 나 안불렀어!"

"...네?"

"와, 진짜 서운하다. 너 머리 자르는 날 기념사진도 찍고 축하파티도 해주려고 했는데."

"....같이 안 가길 잘한거 같은데요."

"뭐라고?"

"아니에요. 저도 아쉽다구요."



창구는 우석의 기념적인 날을 함께 하지 못한 것이 많이 아쉬운 것 같았다. 내가 같이 갔어야 했는데... 끊임없이 그렇게 중얼거리며 허망한 눈으로 우석의 머리카락을 바라보았다. 근데 갑자기 머리는 왜 잘랐어? 내가 자르라고 할 때는 죽어도 안자르더니. 문득 우석의 심경변화가 궁금해졌는지 창구가 물었다. 그걸... 말 할 수 있을리가. 형이 귀엽다고 해서 잘랐다고 어떻게 말해.



"응? 왜 잘랐냐니까?"

"그냥..."

"그냥?"

"그냥, 형구가 자르라고 해서요."



우석은 결국 친구의 이름을 팔았다. 뭐, 형구도 자르라고 하긴 했으니까... 아예 틀린 말도 아니잖아. 창구는 그런 우석의 대답에 잠시 멈칫했다가 살짝 미소지으며 아, 그렇구나. 하고는 다시 침대로 가서 엎드렸다. 뭐지? 왜 아무 말도 안하지? 우석은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느꼈다.



"...뭐 저한테 할 말 없어요?"

"무슨 할 말? 없는데?"

"아..."



머리를 자르면 좋아할 줄 알았는데. 하루에도 몇 번씩 우석에게 안 덥니? 눈 안 찔러? 안 불편해? 머리 좀 잘라, 하고 말해오던 창구였기에 적어도 보기엔 깔끔해졌다든지 뭔가 말해올 줄 알았다. 이 형 나한테 관심이 없나. 미적지근한 창구의 반응에 우석은 힘이 쭉 빠지는 느낌이었다.


우석은 옷도 갈아입지 않고 그대로 침대로 올라가 이불을 뒤집어썼다. 얼마나 큰 결심을 하고 머리를 잘랐는데. 진짜 무심한 사람. 나쁜 사람. 너무 속상하고 서운해서 눈물이 찔끔 났다. 이제 저 형 안 좋아할거야. 오늘부터 싫어할거야. 우석이 긴 다리를 접어 잔뜩 몸을 웅크렸다.


사진 보고는 귀엽다고 잘만 했으면서... 우석은 곱씹을수록 더욱 더 창구에게 서운해졌다. 이럴거면 그 때 귀엽다고 왜 한건데? 그 말만 안했어도 머리 안 잘랐는데. 내가 이 머리를 어떻게 길러왔는데. 우석이 큰 눈을 억지로 감고 잠을 청했다. 감아내린 눈꺼풀 사이로 눈물이 자꾸 흘러서 우석은 이불에 얼굴을 묻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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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창구가 보고 있던 핸드폰을 끄고서 슬며시 2층에 있는 우석을 살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웅크린채 자고 있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영 좋질 못했다. 창구가 한숨을 푹 내쉬며 침대에 걸터앉았다. 왜 그랬어, 창구야. 형 답지 못하게. 스스로를 자책해봤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축 처진 목소리로 자신에게 할 말이 없냐 물어오던 우석이 떠오르고 창구는 그에게 너무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창구는 우석이 좋았다. 처음 봤을 때부터 그냥 좋았던 것 같았다. 긴 머리를 손질하는 법을 몰라서 그냥 덥수룩한 채로 냅두는 것도 귀여웠고, 티를 안내려고 하는 것은 같은데 얼굴 표정으로 다 드러나는 것도 귀여웠다. 우석이 머리를 자르고 나타났을 때 처음 느낀 감정은 놀람이었다. 그 다음은 귀여움. 그리고 또..., 서운함.


왜 갑자기 서운한 감정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우석에게는 같이 미용실을 안가서 그랬다고 했지만 사실 그 이유는 아니었다. 갑자기 우석이 너무 멀어진 느낌이 들어서. 우석이가 너무 멋있어져서 새로운 친구들이 많이 생기면 어떡하지? 그건 분명 우석이한테 좋은 일인데. 더 이상 나랑 안놀려고 하면? 자꾸 이런 유치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가득 메워서 창구도 당황스러웠다.


그냥, 형구가 자르라고 해서요. 그 대답을 들었을 땐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이 아이는 아무것도 모를텐데. 내가 너한테 무슨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창구는 목구멍까지 차오른 질투의 감정에 결국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그 상황을 피할 수 밖에 없었다.


우석은 한 눈에 봐도 기분이 많이 상한 것 같아 보였다. 다 제 잘못이었다. 예쁘다고 한 마디 해주는게 뭐 그리 어렵다고. 실은 열 번이고 백 번이고 말해주고 싶었는데. 창구는 잠시 고민하다가 시계를 봤다. 기숙사 통금 시간이 어느새 훌쩍 넘은 시각이었다. 일 층에 몰래 나갈 수 있던 통로가 어디였더라. 창구가 기억을 떠올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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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아, 일어나봐."

"아, 왜요..."

"빨리. 케이크에 촛농 떨어지겠다."



우석은 비몽사몽 잠에서 깨어 창구를 보았다. 케이크를 든 창구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뭐하는 거예요? 창구의 예상대로 우석의 반응은 냉랭했다. 당연히 좋아할 거라고 생각은 안했지. 이건 그저 대화하기 위한 구실을 만드는 눈속임 이벤트일 뿐이었다. 창구는 대놓고 철판을 깔고 모르는 척 웃었다. 너 머리 자른 기념으로 축하파티 하려고.



"싫어요... 파티 안해요."

"그러지말고, 응? 내가 잘못했어. 우석아."

"형이 뭘 잘못했는데요. 아, 싫다구요. 저리 가라니까요."



우석이 다시 누워 이불을 뒤집어 썼다. 야, 그러지 말고... 창구는 곧바로 이불을 끌어내리며 다시 우석을 일으켰다. 한 손에 들린 케이크가 위태롭게 흔들렸다. 귀찮게 하지 말고 가세요. 제발. 그때부터는 흡사 창과 방패의 대결이었다. 창구는 끊임없이 우석을 설득하며 일어나보라고 했고, 우석은 들은체도 하지 않았다. 아, 진짜! 신경 끄시라구요! 우석이 눈을 꼭 감은 채 허공에 팔을 훅훅 휘저었다. 그러자 헉, 하는 소리와 함께 창구의 음성이 끊겼다.


보지 않았지만 느낄 수 있었다. 우석은 팔에 무언가가 채였고, 그것이 침대 위로 떨어졌고, 떨어진 그것이 창구가 들고 있던 케이크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챘다.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 우석이 서둘러 제 이불을 살폈다. 촛불이 닿았던 자리는 까맣게 변해있었고 주변은 온통 크림으로 범벅되어 엉망이었다. 미안. 우석아... 짧은 정적 후에 창구가 고개를 푹 숙이며 사과했다. 우석은 큰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절망했다. 오, 주여...




*                      *                      *




창구와 우석은 1층 침대에 나란히 누웠다. 침대 위의 케이크를 치우면서 창구는 계속해서 우석에게 사과를 했다. 우석아, 진짜 미안해. 내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 창구의 물음에 우석은 피곤한 얼굴로 답했다. 그냥 잠이나 자게 해주세요. 제발. 그래서 창구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우석의 베개를 1층으로 가지고 내려가 새 이부자리를 만들어주었다.


침대는 둘이 눕기에 너무 좁았다. 두 사람은 어깨를 한껏 접어서 누웠다가 결국엔 옆으로 돌아눕는 걸 택했다. 우석은 자신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 창구의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눈을 감았다. 긴장감에 눈꺼풀이 파르르하고 떨렸다. 눈을 감아도 잠은 오지 않았다. 이대로 뜬 눈으로 밤을 새우게 될 지도 몰랐다.


좋아하는 사람이랑 어떻게 같이 잘 수가 있겠어. 그것도 한 침대에서 나란히 누워서. 이미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더군다나 무슨 생각인지 창구가 계속 자신의 얼굴을 보고 있어서 정말 이러다 심장이 입 밖으로 뛰어나오지 않을까 생각했다.



"....우석아."

"왜요."

"너 머리 자른거 예뻐. 잘 어울려."

"...뭐예요. 갑자기."

"아까 내가 말을 못한 것 같아서. 미안해."

"뭘 그런 거 가지고 미안하대요."



툴툴대면서도 그와는 반대로 우석의 입꼬리가 실룩댔다. 뭐 하나만 물어봐도 돼? 네, 물어보세요. 진짜로... 형구가 그냥 잘라보라해서 자른거야? 우석은 뜻밖의 물음에 당황해서 감았던 눈을 떴다. 이거는 왜 또 물어보는걸까. 그리고 나는 여기에 뭐라고 대답을 해야하는걸까. 그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눈알만 도르륵 굴렸다.



"....그거는 왜 물어보시는데요."

"...그냥 궁금해서."

"진짜 그냥, 이에요?"



단도직입적인 우석의 물음에 창구가 허를 찔렸다. 예상치 못한 반격에 창구가 웃음을 터뜨렸다. 아니. 사실 그냥 물어보는건 아닌데. 말해주면 대답해줄거야? 우석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두운 방 안, 창구의 검은 눈동자가 작게 빛났다.



"질투나서."

"...네?"

"질투나서 물어보는 거라구."



무슨 의미일까. 질투가 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우석은 혼란스러움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이제 네 차례야, 우석아. 정말 형구가 자르라고 해서 자른거야? 창구가 나지막히 말했다. 낮지만 나긋나긋한 목소리였다. 아니요... 우석은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의 개미만한 소리를 냈다. 하지만 그게 본인 뜻대로 될 리가 없었다. 조용한 방 안에 우석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창구가 소리내어 웃었다.



"뭐라고 우석아?"

"아, 다 들었잖아요... 다시 말 안해줄거예요."



우석은 창구가 덮고 있는 이불마저 빼앗아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 쪽팔려서 죽을 것 같아. 할 수만 있다면 벽에 제 이마를 쾅쾅 내려찧고 싶을만큼 창피했다. 창구가 힘을 주어 우석에게서 이불을 뺏어갔다. 다시금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우석은 그나마 이 곳이 깜깜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안그랬다면 저번처럼 볼품없이 빨개진 얼굴을 또 들켰을지 몰랐다.



"하나만 더 물어볼게. 그럼 머리 왜 잘랐어?"

"......"

"진짜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



창구가 어느 새 우석의 앞까지 바싹 다가와 있었다. 반달처럼 휘어진 두 눈, 저가 어떤 대답을 할 지 이미 알고 있기라도 한 듯, 창구는 미소 짓고 있었다. 그래서였는지, 우석은 갑자기 어디선가 용기가 샘솟아 오르는 것 같았다. 지금이라면 숨기지 않고 뭐든 다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형이 귀엽다면서요."

"...너는 정말, 사람 미치게 하는 뭔가가 있다."



창구가 우석의 사랑스러움에 더는 참지 못하고 그의 입술에 작게 입을 맞췄다. 쪽, 소리와 함께 짧게 닿았다 떨어지는 입술. 어린아이들이 소꿉장난을 하듯 어딘가 장난스러우면서도 따뜻한 입맞춤이었다. 우석은 심장이 미친듯이 두근거렸다. 잠깐 닿았던 입술의 감촉이 은은하게 느껴지는 듯 했다. 그런데 사실은 창구 역시 우석이랑 별반 다르지 않았다. 두 사람의 심장이 같은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이제 그만 주무세요, 얼른."



쑥스러움에 우석은 괜히 퉁명스럽게 말하며 몸을 돌려 바로 누웠다. 창구도 그에 다른 말이나 행동을 더 붙이지 않고 우석을 따라 순순히 몸을 바로 했다.


우석은 침대에 붙은 야광 별을 보았다. 희미하지만 각각의 별들이 온 힘을 다해 제 빛을 내고 있었다. 방이 어두우니까 나무판자에 스티커가 붙어있다기 보다는 정말 밤 하늘에 큰 별이 둥둥 떠 있는 느낌도 들었다. 슬쩍 옆을 돌아보니 창구도 가만히 누워 별을 쳐다보고 있었다.



"예쁘네요."

"응. 예쁘다."



예전 창구를 처음 만났을 때, 침대에 누워 야광 별 스티커를 보며 낭만적이지 않냐 묻던 그의 심정을 우석은 이제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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