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라스팁 온라인 이벤트 DNE에서 판매되는 크라스팁 단편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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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줄거리 |

:세계를 구하고 죽어버린 크라우스를 구하기 위해 스티븐은 몇번이고 루프한다. 하지만 어떤 시간선에서도 크라우스는 자신이 아닌 세계를 택하고, 멈추지 않는 루프속에서 스티븐은 정신을 놓고야 마는데…….


| 읽기 전 유의사항 |

:본 책은 게임북 형태를 차용한 책으로, 읽는 분의 선택지에 따라 엔딩이 달라집니다.

모든 엔딩에는 사망요소가 다분하며 통상적인 해피엔딩 선택지는 없습니다.


| 사양 |

B6 | 소설본 | 100p 내외 | 제목 청박 |  전연령 | 게임북 형식 차용 

+표지에는 청박으로 제목만, 뒷표지에는 장미 일러스트만 있습니다. 이는 오류가 아니라 책 디자인이 그렇습니다~^0^)/


| SAMPLE |


(퇴고하지 않은 샘플로, 실제 본문 내용과 일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대체로 시시한 소설의 도입부가 그렇듯 스티븐 A 스타페이즈의 불행 역시 예고 없이 들이닥쳤다. 크라우스 V 라인헤르츠가 죽었다.


어떤 불길한 징조도 없이, 어쩌면 지금껏 크라우스라는 개인이 해낸 성취와 업적, 선의와 관계없이 크라우스 V 라인헤르츠는 죽었다. 거기에는 낭만적인 우연도 신화적인 필연도 존재하지 않았다. 구태여 결과의 이유를 찾아 단어를 나열하자면 이러했다.


크라우스 V 라인헤르츠는 평소와 다름없이 헬사렘즈 롯과 세계의 균형, 평화를 위해 움직였고 그 결과 죽었다.


어처구니없는 문장이었으나 지극히 사실에 가까운 문장이기도 했다.

그의 죽음은 21세기 뉴욕에서 일어난 참사였음에도 마치 신화시대의 영웅담처럼 위대하고 고결했다. 죽음으로 완성되는 영웅 서사와 개인의 죽음으로 구원받은 세계의 정경이 그러했다. 사람들은 유전자에 새겨진 향수를 그리워하듯 크라우스 V 라인헤르츠의 죽음을 소비하며 추모했다.


물론 세계의 구원과 상관없이 크라우스 V 라인헤르츠의 죽음은 많은 이들의 슬픔과 탄식을 자아냈다. 라이브라의 모든 이들이 그를 애도했고, 추모했다. 안팎으로 크라우스와 연이 닿아있던 이들의 조문이 이어졌다. 많은 이들이 그를 그리워하며 눈물 흘렸고 많은 이들이 크라우스가 존재하지 않는 미래를 가늠하며 탄식했다.


장례는 비밀스럽고도 웅장하게 진행되었다. 생전에 혈계의 권속과 고군분투했던 고인의 생애를 고려하여 바로 즉시 화장하여 뼛가루조차 남겨선 안 된다는 의견이 일었으나, 보스를 잃은 라이브라는 이를 즉시 시행할 수 없었다. 다만 크라우스 V 라인헤르츠는 라이브라의 수장이지만 한편으로는 라인헤르츠의 삼남이기도 했으므로, 일족과 조직의 동의하에 이틀은 뉴욕에서, 사흘은 독일에서 그가 사랑했던 꽃들로 채워진 관에 안치되어 장례를 치른 뒤에 화장되기로 했다. 그 과정은 꽃이 피고 지듯이 자연스럽게, 어떠한 잡음도 없이 매끄럽게 진행되었다.


 

크라우스의 시신이 협의와 절차에 따라 이동하는 동안, 스티븐의 세계는 터무니없이 허무하게 몰락했다. 아니, 그의 세계는 크라우스가 죽은 순간부터 무너진 지 오래였다.


크라우스 V 라인헤르츠는 세계를 구하고 죽었고, 대신 스티븐 A 스타페이즈의 세계를 살해했다.


이유 없이 탄생했던 세계가 이유 없이 무너지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본래 생과 사에 아름다운 당위따윈 존재하지 않듯 세계가 무너진 이유는 낭만적인 서사의 결과가 아닌 우연에 불과했다. 아니, 이를 과연 우연이라 칭해도 되는가? 스티븐 A 스타페이스가 크라우스 V 라인헤르츠를 사랑한 것은 그저 단순히 우연에 지나지 않는가? 그렇다면 지금 스티븐의 세계가 무너진 것 또한 단순한 우연에 지나지 않는가? 아니, 그렇지 않다. 크라우스는 누구나 사랑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고, 스티븐의 유일한 존재였다. 그를 사랑하는 것은 신화적인 필연에 가까웠다. 그저, 스티븐의 세계가 터무니없이 나약하고 빈약했을 뿐이다.


스티븐은 자신을 과신하지 않았다. 너무 비약하지도, 너무 축소하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를 직시할 줄 알았다. 그의 냉철한 이성은 라이브라의 두뇌였다. 그러나 지금, 스티븐은 자신이 자신을 너무 과신했음을 알았다. 스티븐은 나약했다. 크라우스의 죽음 앞에 누구보다 나약했다. 스티븐은 크라우스가 없는 세계를 견뎌낼 자신이 없었다.


무너진 초소에 들이닥친 파도처럼 몰려오는 자괴감과 우울은 스티븐을 흔들어댔다. 스티븐은 하릴없이 감정에 휘말렸다. 그는 라이브라의 이인자자 크라우스의 부관으로서, 그의 친우로서 장례를 치르고 뒷일을 도모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태연하고 합리적으로 보였으나 라이브라의 모두가 그를 걱정했다. 크라우스를 잃은 지금, 라이브라는 스티븐마저 잃을 수 없었다. 그러나 모두의 걱정이 무용하다는 듯 그는 독일까지 크라우스의 시신을 담은 비행기를 능숙하게 호위했고, 크라우스의 장례가 끝난 이틀 뒤 새벽 비행기를 타고 헬사렘즈 롯으로 이동했다. 이 역시 어떠한 잡음도 없이 매끄럽게 진행되었다.


다시 헬사렘즈 롯으로 돌아온 스티븐은 가정부가 잘 정리해놓은 집에 들어왔다. 베데트가 퇴근한 집은 고요했다. 너무 싸늘하지도 덥지도 않은 온후한 공기가 스티븐을 감싸 안았고, 스티븐은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창밖을 바라보았다. 스티븐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잘 알고 있었고, 또 잘 해냈다. 모든 것을 마친 스티븐은 익숙한 정경을 미련 없이 보다가 서재에서 총을 꺼냈다. 탄창은 모두 꽉 차 있었고, 손에 닿는 감각은 익숙했다. 그는 자신이 지극히 합리적인 판단을 내렸음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이성과 감성이 뜻을 모아 스티븐의 손가락을 움직였다.

 

 


총구가 불을 뿜었다. ‣ E01

눈앞이 새하얘지며 시간이 멈췄다. ‣ S01



‣ S01


아니, 움직이려 한 순간.

 

계약을.


‘그것’을 직관적으로 설명하기란 어려웠다. ‘그것’은 세계의 균형과 평화를 위해 많은 것을 보고, 듣고, 죽였던 스티븐에게 조차 낯선 존재였다. 마치 레오나르도 워치가 마주했다던 상위 존재처럼 보이기도 한 ‘그것’은 자신을 시간과 기회를 관장하는 존재라 일컬었다.


 

그대의 영혼을 건 계약을.

 


너무도 태연자약하고 은근하게 스티븐에게 계약 의사를 묻는 모습은 일견 인간을 유혹하고 타락시키는 악마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스티븐 A 스타페이즈에게서 더 앗아갈 만한 것이 남아있던가? 물론 그는 라이브라의, 크라우스의 부관이었고 아직 그의 뇌와 몸뚱이에는 많은 조직이 노리는 지식과 정보가 들어있다. 하지만 ‘그것’이 진정 문헌에 기록될법한 상위존재라면, 진실로 시간과 기회를 관장하는 존재라면 스티븐이 가진 것들은 모두 쓸모없을 터였다.



혹은 그가 악마라 할지라도, 흔히들 악마들이 노린다는 고꾸라질 이상이나 타락할 영혼조차 스티븐에게는 남아있지 않았다. 애당초 그런 것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았거니와, 그는 이미 생에 가질 수 있는 모든 존귀함과 아름다움, 이상과 가치를 세계의 구원을 위해 빼앗겼기 때문이다. 앞으로 살아갈 스티븐의 인생 어디에도 희망이나 빛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미 스티븐은 모든 것을 박탈당한 지 오래다. 그러므로 스티븐에겐 계약을 위해 내어줄 것이 없었다.


스티븐의 의지를 읽은 ‘그것’은 인간의 생태에 빗대어 표현하자면, 조소하며 스티븐의 심장을 가리켰다.

 

인간의 기준으로 우리를 판단하려는 우를 범하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그대에게 온 기회를 만끽하게나.

 


스티븐은 제 손에 쥐어진 총을, ‘그것’의 손가락을, 마지막으로 아무것도 없이 그저 새하얗기만 한 공간을 둘러보았다. 스티븐은 지극히 이성적인 상태였다. 적어도 스스로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누군가 단 한 명이라도 그의 어긋남을 눈치채고 그를 잡아챘더라면.


 

자네는 ‘크라우스 V 라인헤르츠’가 죽기 24시간 전으로 돌아갈 걸세.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우리의 계약이 완료될 때까지. ‘크라우스 V 라인헤르츠’의 죽음으로 구원받은 세계는 몇 번이고 자네를 막으려 하겠지. 그럼에도 부디 원하는 것을 성취하길 기도해주지.

그러니 자네도 부디 계약 조건을 잊지 말게나.

 


계약이 완료됨과 동시에 천천히 그를 감싸고 있던 공간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스티븐은 총을 들기 전 눈에 담았던 익숙한 정경을, 그러나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정경을 둘러보았다. 모든 것이 이내 까맣게 물들었다.



 

 

스티븐은 눈 앞에 펼쳐진 익숙한 정경을 바라보았다. 익숙한 헬사렘즈 롯의 밤하늘은 매캐하고 탁했다. 그래, 크라우스가 죽기 24시간 전. 그날 헬사렘즈 롯엔 첫눈이 내렸었다. 추위에 움츠러든 사람들은 말없이 거리를 떠다녔고, 눈에 익숙한 이계인은 덤덤하게 돌아다녔고, 눈이 신기한 이계인과 어린아이들만이 신이 나서 거리를 쏘다녔다.


익숙한 찬 공기를 양껏 들이킨 뒤에야 스티븐은 자신이 저지른 짓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크라우스를 구해내리란 자신감과 소명감을 가지고 계약을 맺은 건 아니었다. 어처구니없게도 스티븐은 일을 저지른 뒤에야 자신이 어딘가 망가져 있었다는 걸, 합리적이긴커녕 말도 안 되는 일을 저질렀다는 걸 깨달았다. 저지르고 나서야 깨닫다니. 머리가 차가워진 덕분일까? 스티븐은 다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스티븐에겐 약 일주일 전의 정경이지만, 스티븐은 어렵지 않게 그날 했던 일과 해야 했던 일, 그리고 지금 해야 할 일을 기억해냈다. 여기에 크라우스가 있다. 크라우스가…… 내가 지켜야 할, 아직 살아 있는 크라우스가.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지만 스티븐은 눈을 처음 만난 어린아이처럼 들뜬 웃음이 비져나오는 걸 막지 못하고 어깨를 들썩였다. 하,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당장 이게 꿈이라고 해도 믿을 법한 말도 안 되는 이야기. 하지만 모두 진실이었다. 하하. 하하하. 답지 않게 소리 내 웃은 스티븐은 한참을 웃고 나서야 제 손에 들린 꽃다발을 발견했다. 낯익은 흰 장미꽃다발. 크라우스가 스티븐에게 들려준 꽃다발이었다.



내지 샘플은 아래와 같습니다... 물론 실제 인쇄는 저도 모릅니다.. ㅇ)-(...

만든 김에 여기에 추가해봐요 흡흑 물론 종이책은..여분 1권뿐으로 더 출력예정없습니다 (ㅋㅋㅋㅋ큐ㅠ

(심찌마감) 심마감입니다. 심마감 찌마 그외 기타등등. 체력과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내키면 글을 쓰고 무언가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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