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훈은 조심스레 거울 앞으로 다가갔다. 낯설기만 한 몸, 낯설기만 한 이 눈높이. 낯설기만 한 이 방. 아니야. 아닐 거야. 이럴 리가 없잖아? 지훈은 제발 이 상황 모두가 꿈이길 바랐다.

 그래, 말도 안 되지. 무슨 영화나 드라마도 아니고 진짜 이럴 리가 없을 거야. 제발. 제발 이럴 리가 없어야지. 안 그래?

 그러나, 거울에 비춰지는 모습에 지훈은 결국 절규할 수밖에 없었다.


 거울 속에 비춰진 모습은 지훈이 아닌, 인기 가수 ‘권순영’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Changing Love




 지훈은 숨을 크게 가다듬었다. 자자, 이지훈. 생각해보자. 어제 내가 무슨 일을 했었지? 평소와 다른 무언가 있잖아. 잘 생각해봐, 이지훈.

 그래, 라디오 스케줄. 라디오 스케줄이 있었다. 그리고는 늘 하던 드라마를 촬영하고 있었는데… 단지 그것뿐이었나? 아니면, 밥을 잘못 먹었던 것일까? 아닌데. 평소와 다를 바 없이 한 끼에 밥 세 공기 정도 먹었던 거 같은데……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어? 순영아, 벌써 일어났어? 대단하네, 오늘은 해가 서쪽에서 뜨려나.”


 아직까지 혼돈에서 헤어 나오지도 못 했을 무렵에 갑자기 등장한 매니저인 거 같은 그녀. 스케줄이 일찍 있나… 왜 이렇게 빨리 오는 거야! 지훈은 몸을 작게 떨며 흠칫 하더니 빠른 걸음으로 방으로 들어갔다. 최대한 그녀에게 들켜서는 안 된다. 왜냐니, 나는 권순영이 아니라고!

 지훈은 곧바로 침대에 있는 이불속으로 들어가 고개를 파묻었다.


 다시 생각해보자, 이지훈. 아침 일찍 있었던 라디오 스케줄을 마치고, 점심을 먹고…. 점심. 그래, 점심은 뭘 먹었지? 샌드위치? 햄버거? 먹었다면 어느 브랜드를 먹은 거지? 매니저 형이 사오는 걸 그냥 먹기만 해서 기억이 안나… 하, 진짜… 이지훈! 생각 좀 해보란 말이다!  지훈은 엄청난 절규와 함께 머리를 박박 긁어댔다.


 자, 여기서 잠깐. ‘권순영’과 ‘이지훈’에 대해 고찰을 해보도록 하자.

 우선 권순영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이 시대의 대 인기스타, 일명 권스타로 불리는 인기가수. 인기도 좋고 연기도 잘한다는 말에 곧바로 한국계에서 유명한 드라마 PD가 새로 기획하는 드라마 주연으로 단숨에 캐스팅 완료. 나이도 어린데 성격도 싹싹한데도 노래 잘해, 연기 잘해, 춤 잘 춰, 돈 잘 벌어, 매력 있어, 잘 생겼어… 등등 모자란 게 없는 일명 ‘엄친아’라고도 불리는 대한민국 연예계의 꽃이다.

 그리고, 이지훈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이 시대의 인기 있는 배우. 신인인데도 불구하고 엄청난 연기력과 표현력이 순영이 주연으로 캐스팅된 유명한 드라마 PD의 드라마에 더블캐스팅. 신임임에도 불구하고 ‘주연’으로 말이다. 게다가 간간히 나오는 라디오나 예능프로그램에서 노래실력을 뽐내며, 작고 아담한 키에 딱 맞는 애교를 가졌으며, 하는 행동 하나하나 ‘귀엽다’라고 표현되는 지훈은 대한민국 연예계를 대표할 초특급 강력 신인이다.


 그렇다면, 이 둘은 왜 갑자기 몸이 바뀌게 되었을까? 대체 무슨 이유로?


“순영아! 너 빨리 안 나오고 뭐해, 오늘 아침 스케줄 있다고 그랬잖아!”


 다시 본문으로 돌아와서, 지훈이 혼란을 겪고 있을 사이, 집안 불은 켜져 있는데 반응이 전혀 없는 순영을 이상하게 여긴 매니저 그녀가 방문을 쾅쾅 두드리며 의아한 듯 묻는다. 이정도면 깰 때도 되지 않았냐고 소리치는 그녀에 지훈은 여전히 어찌할 바를 몰랐다.


 아무리 같은 드라마를 찍었다 할지라도, 제대로 친분 한 번 가진 적 없는 순영의 스케줄을 내가 어떻게 소화해! 말도 안 되잖아!


 지훈은 아까보다 머리가 복잡해져 오며 이 상황을 어찌 타개할지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자칭 타칭 존잘 이지훈, 너의 머리를 얼른 굴려봐. 너 완전 똑똑하잖아. 지훈은 머리를 마구잡이로 헝클이며 계속해서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순영의 모습을 하고 있는 지훈의 머리를. 머리는 굴러가고, 눈도 도로록 굴러가는데, 생각은 더더욱 안 나고.

 아, 미치겠네, 정말!


“오, 오늘 스케줄이 뭐라고 했지요? 아니, 했지? …했습니까?”

“뭐야, 갑자기, 적응 안 되게. 기억상실증이라도 걸렸냐?”


 도저히 안 되겠다는 듯 지훈은 자리에서 일어나 방문을 벌컥 열고야 말았다. 그리고는 당당하게 말을 뱉었지만… 이 권순영이라는 사람이 본인 매니저와 어떻게 지내는지 내가 어떻게 알겠어. 지훈은 결국 이상한 말을 뱉고야 말았는데. 그에 따른 매니저의 응답에 지훈은 잠깐 솔깃했다.


 기억 상실증? 기억을 상실한다는 그거? 기억을 잃어서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는… 그거?


 지훈의 자칭 타칭 똑똑한 머리는 그제야 굴러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저…”

“응? 왜 순영아?”

“그쪽이 누군지… 물어봐도 괜찮을까요?”


 당당하게 기억 상실증인 척 말을 내뱉은 그 뒤로 아주 잠깐 동안의 침묵. 그 침묵의 시간은 고작 몇 초 밖에 되지 않았지만 지금의 지훈에게는 장장 몇 시간 같이 길게 느껴졌다. 저기요… 사람이 말을 했으면 제발 대답 좀 해주세요. 지훈이 간절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보자 그녀는 무언가 수상쩍다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본다. 이내 눈빛이 다양한 감정이 담긴 쪽으로 변하더니, 결국은.


“권순영, 너 요즘 많이 심심한가 보다?”

“예?”

“되도 않는 장난 치거면 당장 스케줄 장소로 꺼져.”


 …그렇다. 여기는 말도 안 되게 거칠었다!



 순영은 눈을 떴다. 피곤한 눈을 겨우 떠 보니 보여야할 천장 위 제 사진은 온데 간데 없고 새하얀 천장만 보였다.


 뭐야… 또 매니저 누나가 멋대로 사진을 뜯었나보네. 이번 사진은 엄청나게 잘 나온 사진이란 말이다!


 순영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몸을 긁적거렸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내 몸이 이렇게 작고 하얗고 부드러웠나? 요즘 운동을 많이 못 해서 그런가. 드라마에 집중하느라 그런가 보다. 앞으로 더 열심히 해야겠는데?

 순영은 변화에 대한 아무런 생각 없이 눈을 반쯤 든 채로 하품을 하며 방을 나서려던 순간이었다.


 ……잠깐.


 순영은 지나가는 길에 서있는 전신거울을 들여다보았다. 분명 멋진 흑발이 돼야할 머리는 금빛이 감도는 머리가 되어있었고, 웃통을 벗고 있던 어제의 모습이 깔끔한 흰티를 입은 채로 낯선 사람의 모습이 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은.


“이… 지훈?”


 이건 이지훈이잖아! 뭐, 뭐야!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건데?!

 순영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아무리 봐도 내 방이 아니다. 이렇게 센스 없고 하얗기만 한 방이 내 방일 리가 없다고! 순영은 머리를 마구잡이로 헝클이며 절규했다.

 아! 진짜 이게 무슨 일이야!


“지훈 형, 일어났어요?”


 악! 또 뭐야!

 밖에서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낯선 목소리에 순영은 놀라 주변을 빠르게 수색했다. 젠장, 어디 숨을 곳 없나? 대체 저 남자는 누구 길래 이른 아침부터 이지훈을 찾고 난리야!

 순영은 간신히 옷장 속으로 숨었고, 어떻게든 몸을 숨기려고 옷장 안으로 몸을 꾸겨 넣은 뒤, 옷장 문을 닫자마자 방문이 열렸다.


“어? 없네. 화장실 갔나.”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지훈이 방에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선 곧바로 방문을 닫고 나갔다. 낯선 이가 사라지자 순영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이 갑갑한 옷장에서 몸을 숨기고, 그 낯선 이에게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안도한 뒤 문득 드는 생각.


 왜 내가 여길 숨었지? 나는 지금 이지훈이잖아. 아니… 그것보다, 내가 왜 이지훈의 몸 안에 들어가 있는 건데? 왜 내 눈에 이지훈이 보이는 건데. 대체 왜?


 순영은 낯선 생각들에 옷장에 그대로 주저앉아 한참을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하, 권순영. 이 천재 권순영아. 잘 생각해보자.”


 이지훈이랑 내가 몸이 바뀔 정도로 친한 사이였던가? 보통 영화에서 보면 큰 충격을 받은 무언가가 있어야 몸이 바뀐다고 했는데. 사고라던가, 머리를 부딪친다거나.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는 이지훈이랑 충격 받을 무언가를 한 적이 없다. 도대체… 뭐지?


 순영이 몸이 바뀐 것에 대해 열심히 고찰하고 있을 즈음, 조금은 방심했던 것일까.


“에이, 지훈형. 왜 여기 숨어 있는 거예요? 없어진 줄 알고 한참 찾았잖아요.”

“악!”


 순영이 옷장 안에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을 때, 갑작스레 문을 열어버리는 석민 덕에 순영은 놀라 소리를 치며 그의 품에 폭삭 안기고야 말았다. 지훈은 석민보다는 키가 많이 작은 편이었는지, 마치 연인사이인 것 마냥 그대로 안겨 로맨틱한 장면을 연출했다.


 이거… 안겨 있는데 뭔가 이 몸에 딱 맞아서 고민해야하는 건가.


 순영은 그리 생각하다가도 자신이 안겨있다는 사실에 곧바로 석민을 밀어냈다.


“악! 미, 미안!”

“아니, 뭐 미안할 거 까진 없고… 그나저나 준비 안 해요? 오늘 아침 스케줄 있는 걸로 아는데.”


 석민은 본인의 품에서 순영(지훈이라고 생각 되겠지만)이 떨어지자마자 못내 아쉽다는 표정으로 순영에게 말했고, 그의 말에 순영은 그제야 뭔가 떠올랐다.


 아, 맞다! 스케줄! 항상 매니저 누나가 말해주는 대로 따라가기만 해서 안 외우고 다녔는데! 그렇지만 스케줄이고 뭐고 지금 이 상황에서는 당사자랑 만나서 얘기를 해야 하는데…


 순영이 곰곰이 생각하며 고민하니, 마침 앞에 있는 석민이 눈에 띄었다. 이 녀석은, 어쩜 알지 않을까? 같은 드라마에 출연하고 있긴 하지만 단 한 번도 얘기 나눈 적도 없지. 그렇지만… 지금은 지훈의 몸이기에 가능한 게 많을 거 같단 말이지.

 이게 뭐라고 순영은 괜스레 긴장되는 마음과 함께 침을 꿀꺽 삼키며 석민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저기…”

“왜요, 형?”

“그, 미안한데, 혹시… 오늘 권순영 스케줄 알아? 모르면 혹시 휴대폰으로 검색 가능 한 가…”


 순영은 결국 용기를 내 석민에게 말했다. 본인이 지훈이 되었다는 것은 각인이 되지 않았던 건지 뭔지, 아주 조심스럽게. 그런 순영을 한참이나 바라보던 석민은 대답대신 깊게 고민하는 표정을 보여주기만 했다.

 아니, 사람이 말을 했으면 대답을 해주던가! 된다, 안 된다만 얘기 해주면 되는 거 아니냐고.

 대답 없는 석민에 답답함을 느낄 즈음, 석민은 아, 하는 작은 탄식과 함께 그제야 웃음꽃 그리며 대답했다.


“아, 맞다. 형 요즘 스케줄 많아서 바쁘다고 그랬죠. 볼 시간 없었던 거 같아.”

“…어?”

“늘 직접 찾아서 알려주던 사람이 왜 나한테 묻는 가 했네. 기다려 봐요, 찾아줄게요.”


 …어, 네? 뭐라고요? 늘 내 스케줄을 직접 찾는다고요? 대체 왜?

 순영은 석민의 발언에 잠시 혼동이 왔다. ‘왜 몸이 바뀌었는가’가 아닌 ‘왜 이지훈은 권순영의 스케줄을 매일 찾고 있는 것인가’에 대한 고민. 혹시, 내 팬인가? 그런 생각도 들고.


“그나저나 오늘은 뭐 할 거예요? 저번에 얘기했던 라디오 문자 테러 방지?”

“어?”

“아, 라디오 문자 테러 방지는 라디오 스케줄이 있어야지, 참.”


 석민은 본인의 머리를 살짝 콩 하니 쥐어박더니 이내 휴대폰을 다시 만지기 시작했다. 순영의 스케줄을 찾는 듯한 손놀림에 순영은 무언가 알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라디오 문자 테러 방지라니.

 그러고 보니 며칠 전에 있었던 라디오 문자 테러 사건이 생각난다. 이건 팬들 사이에도 유명해서 안티 팬의 습격이라며 장담했던 사건이었는데 말이지. 며칠 전 라디오스케줄에서, 문자로 팬들과 소통하는 코너가 있었더랬다. 거르지 않고 도착하는 대로 문자 내용을 읽는 탓에 좋지 못한 내용도 그대로 나가 좋고 나쁜 의견 모두를 받을 수 있어 발전의 계기를 주기 때문에 좋다는 평을 꽤나 받는 코너였다. 거기서 어떤 안티 팬과 소통하게 된 건지 뭔지, 문자로 직격탄을 계속 날리기 시작했던 거다. 순영이 가장 싫어하는 말이라던가, 내용이라던가.


「 권순영. 너 솔직히 키 작은 거 알지? 」

「 너 솔직히 못생겼음. 얼굴만 봐도 노력해야 하게 생겼어. 」

「 배우는 연기만 하자. 」


 그 쓰리폭탄 테러에 순영은 라디오에서 한마디로 못한 채 침묵을 유지했더랬다. 보이는 라디오도 아닌데… 말이지. 겨우 DJ가 수습을 해주긴 했지만, 그건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수습하면서 들었던 다음 문자 내용들. 안티 팬의 습격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을 만큼 달콤한 말들이었다.


「 앞에 말들은 신경 쓰지 마세요. 지금처럼 늘 웃음꽃 피워주면 제가 순영씨의 봄이 되어 줄게요. 」


 DJ도 읽으면서 감탄에 감탄을 더하던 문자였다. 이 사건은 팬들 사이에서 안티 팬과 천사 팬의 대립, 안티 팬의 습격 그리고 천사 팬의 반격 등으로 유명한 사건이라 할 수 있지.


 그런데 그 사건의 주인공이 이지훈, 너다 이거지?


 왜 하필 본인인지는 모르겠지만, 갑자기 이지훈이 다르게 보인다. 음… 좀 민망한 거 같기도 하다.


 이제 이지훈 얼굴을 어떻게 보냐.


* *

중편 정도로 구성 된 호시X우지X도겸 삼파전 글입니다^.^

도겨미의 특유의 다정함이 잘 맞을 거 같아서 도겸이가 서브 남주...

부족한 글이지만 늘 감사합니다 ^.^ 이번 글도 잘 부탁드려요~♥

함께 우른합시다...!

읽어주ㅕ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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