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른 남망기와 시한부 소년 위무선의 이야기

- 커플링 표기를 했지만 실제로는 망기무선 보다는 망기+무선에 가깝습니다.

- 한 번쯤 써보고 싶었던 이야기라, 쓰고 싶은 장면만 썼습니다.

- 되도록 배경음악과 함께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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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밤을 닮았네요.

 

아래로 내린 시선의 끝에는 외롭게 마른 아이가 걸렸다. 소년의 시간에 어울리지 않는 미소가 그림자처럼 번진 얼굴. 코트 끝을 붙잡은 손길은 힘을 싣지 않고도 야무져서, 남망기는 저도 모르게 허리를 반쯤 굽혀 아이와 눈높이를 맞췄다. 그 사소하고도 당연한 어른의 배려에 아이는 한층 기쁘게 웃었다. 하루낮을 꼬박 옹송그려 밤을 기다리는 달맞이꽃마냥.

 

 

“당신은 내게 별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인가요?”

“……네가 원한다면.”

 

 

그다지 오래 고민하지 않고 나온 대답에 아이는 고개를 모로 비틀어 묘한 표정을 지었다. 원하면 이룰 수 있다니. 그건 참 이상한 말이네요.

 

 

“마치 내가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있다는 것 같잖아요.”

 

 

듣는 사람을 퍽 객쩍게 만드는 과대해석을 남겨두고, 아이는 언제 남망기의 옷자락을 잡았냔 듯 팔랑팔랑 가볍게도 떨어져 나갔다. 남망기는 무심코 아이가 발을 들인 병실 앞의 문패를 읽었다.

 


위무선

 


그게 우리의 첫만남이었고, 스치듯 흘러간 찰나의 한때였으나, 결코 마지막이 되지는 않았다.

 

 

 



*

 



 

 

남망기는 그날 집에 돌아가며 제 옷깃에 매달렸던 아이의 무게를 생각했고, 혀끝 위를 구르는 아이의 이름을 생각했으며, 차에서 내려 밤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곤 스스로의 불성실하고 안일한 태도를 반성했다.

 

대도시의 문명이 자아내는 빛은 이미 하나의 공해로 자리 잡아 심야에 가까운 시간에도 온전한 밤을 맞이할 수 없었다. 칠흑처럼 검푸르긴커녕 구름의 운행마저 가늠할 수 있을 정도로 환한 밤의 너울 속에서는 단 한 점의 별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까, 제게 별을 보여달라 매달려 온 아이는 명백히 이룰 수 없는 소원을 갈망해온 지 오래일 터다.

 

성급했고, 또한 무성의했다. 자력으로 불가능한 일을 현실로 이끌어내기 위해 그나마 믿음직한 어른을 골라 의탁해온 바람을 고작 한 마디의 말로 기대를 접게 만들었다. 모르긴 몰라도 그간 숱하게 쌓아왔을 체념에 저도 일조했다는 사실이 뜻밖에도 괴로워 남망기는 드물게 다음 날에도 병원을 찾았다. 본래 한 달에 한 번 정도 후원하는 아이들을 만나는 일정에 비하자면 나름의 파격이었다.

 

사과를 목적으로 한 방문이기에 빈손으로 갈 수는 없었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서 정오가 지나도록 상점가를 돌며 고민을 거듭하던 남망기는 마침내 안에 작은 별이 여럿 박혀있는 주먹만 한 유리구슬과 별모양 무드등을 사서 아이의 병실문을 두드렸다. 낯설다면 낯선 이의 등장에도 아이의 붙임성은 타고난 것인지 태연하고도 자연스럽게 남망기를 맞이한 위무선은 남망기가 내밀어주는 선물을 받아 열어보곤 소리내어 웃었다.

 

 

“어린 왕자 좋아해요?”

“…….”

 

 

맥락을 알 수 없는 질문에 가볍게 대답했다 낭패를 본 게 바로 어제였다. 남망기가 말을 아끼자 위무선은 직접 침대 옆 탁자에 올려져 있는 책더미 속에서 한 권을 꺼내 펼쳤다.

 


 이건 양이 들어있는 상자야. 

이 안에 네가 원하는 양이 있어.


남망기는 침묵으로 시선을 피했다.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든 구멍 뚫린 상자 안에 있을 거라며 요령을 피운 비행기 조종사와, 밤하늘의 별을 보여줄 수 없으니 대신 별을 본 딴 장난감을 사다준 제 행동은 확실히 어딘가 닮은 부분이 있었다. 그게 그 순간의 최선이었다는 점까지도.

 

다행히 위무선은 남망기를 비난하고자 어린 왕자의 이야기를 꺼낸 것은 아니었는지 한참 유리구슬 안을 들여다보다 다음으론 무드등을 손에 쥐고 살폈다. 코드는 어디 있어요? 남망기는 겨우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을 들어 안도감마저 느꼈다. …건전지로 켜는 거야. 위무선은 남망기의 도움 없이도 무드등에 건전지를 끼워 넣더니 대뜸 두터운 솜이불 속으로 꾸물꾸물 파고들었다.

 

위무선이 다시 나오기를 기다리던 남망기는 고개만 빼꼼 내민 아이가 안 들어오고 뭐 하냐고 재촉하는 말에 여전한 당황을 안고서도 주춤거리며 바닥에 무릎을 꿇고 이불 속으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문득 지금 제 꼴이 아주 우스울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풀숲에 머리만 감추는 타조도 아니고, 이게 뭐 하는 짓인지.

 

 

“……예쁘네요.”

 

 

좁아진 간격을 의식한 것인지 아이의 목소리가 작았다. 부드러운 노란빛을 내는 별 모양 무드등을 바라보며 남망기는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정말로?’ 시간은 정오를 넘겼어도 여전한 한낮이었고, 커튼을 치지도, 불을 끄지도 않은 병실 안은 지나치게 밝아 아무리 이불을 덮어써도 어둠과는 거리가 멀었다. 조잡한 가로등 앞에서도 빛을 잃는 게 별인데 하물며 태양의 아래에서야.

 

 

“이게 당신이 내게 보여주고 싶었던 별인가요?”

 

 

인공의 별빛을 덧입은 아이의 얼굴이 따스한 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한동안 말없이 그 얼굴을 바라보던 남망기는 흡사 꿈에서 깨어나듯 다분히 충동적으로 답했다.

 

 

“……아니.”

 

 

이번에야말로 나는 정답을 말했을까.

낮에 뜨는 별을 마른 손아귀에 움켜쥔 아이가 웃었다.

 

 

 



*

 

 


 

별이라는 게 이렇게나 보기 어려운 거였나. 평소에도 그다지 경치 구경에 취미를 두지 않았던 남망기는 제법 이름난 장난감 가게의 영수증이 지갑에 꽂힌 이후로 하늘을 바라보는 일이 늘었다. 희끗한 낮달은 어른거릴지언정 샛별 하나 떠오르지 않는 도심의 밤은 야속하기까지 했다. 무능한 어른이 갈피를 잡지 못하는 동안 위무선의 병실에는 밤하늘을 흉내 낸 무드등이 두 개 더 늘었고, 여기저기에 덕지덕지 야광 스티커가 붙은 것도 모자라 각종 잡동사니가 넘쳐나는 바람에 얼마 전에 남망기는 위무선이 장난감들을 담아둘 수 있는 상자까지 가져다준 참이었다.

 

위무선은 남망기가 후원하는 아이가 아니었다. 기존에 인연이 있던 대상도 아니었으며, 심지어 남망기는 위무선이 어째서 병원에 입원해 있는지도 몰랐다. 알고 있는 것은 오로지 이름. 그리고 별에 얽힌 작은 소원뿐.

 

사소한 죄책감을 덜어내기 위한 선행이었다면 이미 충분히 갚아주었다. 그러고도 아직 무언가가 모자라고 부족하다고 생각된다면, 그 갈증은 분명 아이가 아닌 저의 욕심이리라. 이젠 아주 습관처럼 일기예보를 확인하던 남망기는 합리화의 근거를 대는 일을 위무선의 몫으로 돌렸다.

 


너는 나를 밤이라 불렀지.

세상에 별 하나 품지 못하는 밤이 어디 있으랴.


 

남망기는 그저 자신의 부족함이 아이의 실망이 되지 않기만을 바랐다.

 

그날도 천기는 맑았으나 인간의 이기가 지나쳐 별은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을 뿐이지 막연히 저 어딘가에서 빛나고 있으리란 말로 달래기에는 남망기 역시 마음이 단단히 상한 이후였다. 시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가로등이 20층 아파트의 창문까지 세차게 두드리는 게 영 밉살맞아 남망기는 지극히 어른스러운 방법으로, 그리고 몹시도 어른스럽지 못한 사적인 이유로 시청에 민원을 남기고 잠들었다. 


그러고 보니 병실의 커튼은 가로등 빛을 가리기에 충분할 만큼 두꺼웠던가.

 

 



 

*

 



 

 

천체에 대한 책 여러 권을 사 들고 방문한 병실은 텅 비어 있었다. 간병인용의 작은 의자에 걸터앉아 아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남망기는 세 시간의 기다림 끝에 안내 데스크를 찾았고, 제 성실한 인내가 오늘 내엔 도저히 보상받지 못할 것을 알았다.

 

중환자실로 가는 길목에 우두커니 서 있는 스스로의 모습이 놀랄만치 초라하게 느껴졌다. 해서, 남망기는 실은 바닥에 길게 깔린 그림자가 저의 본신인가 했다. 가라앉은 마음은 아무리 낮게 기어도 더욱 깊은 지저를 갈망해 차라리 이불 속에 머리만 집어넣는 게 더욱 숨쉬기에 편할 것 같았다.

 

위무선은, 남망기가 후원하는 아이가 아니었고.

그 손 안에 쥐여주었던 몇 개의 장난감을 제외하자면 얄팍한 서류상의 관계로도 엮이지 않은 상대였다.

 

보고 싶을 때 볼 수 없다는 것이 못내 괴롭다는 걸 이때에 처음 알았다. 깊이 갈망하여 그리워할 이가 없는 삶을 살아온 그의 평생엔 놀랍게도 이것이 첫 결핍이라.

 

손꼽아 만날 날을 헤아리는 게 언제 나의 몫이 되었나. 그러고 보면, 애초에 너는 네 몫으로 주어진 자리에서, 작은 1인실의 병실에서 변함이 없었건만. 처음부터 곁을 맴돈 것은 나였구나. 상자 속의 양을 그려주었기에 내가 동심 잃은 어른인 줄 알았더니, 내 맡은 배역은 실은 여우였던 게지. 오후 3시부터 속절없이 행복해지기 시작해서, 4시가 넘어가는 시점에는 아주 약간 불안해지는.

 

나는 행복의 대가를 알게 되었고,

또한 소유의 기쁨 역시 알게 되었기에 상실의 설움도 함께 깨우쳤다.

 

두 발을 딛고 선 자리는 여전히 회백으로 굳게 칠해진 공허한 복도의 외딴 귀퉁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명분이 없어, 너를 만나러 갈 수 있는 당위가 없어, 다만 이 자리에서 네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보고 있음에도 그것이 소중한 줄을 몰랐기에 훗날로 유예되었던 공허에 사무칠 뿐.

 

한미했던 죄책은 이로써 장대한 책임이 되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길들여졌으니, 이제 일생토록 잊을 수 없었다.

 

 


 

 

*

 

 


 

 

그믐의 새벽녘, 전조 없는 호흡곤란으로 쓰러져 중환자실에서 신세를 졌다던 아이는 상태가 호전되어 다시 일반병실로 옮겨진 후에도 특별히 달라진 점이 없었다. 마치 아주 오래전에 그리하기로 약속했던 사람처럼. 우리 둘 사이엔 단조롭고 변함없는 시간만이 흘러가리라 새끼손가락이라도 엮어둔 것처럼.

 

남망기는 묵묵히 챙겨두었던 책을 건네주며 평소보다 조금 더 오래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사람은 누구나, 그리고 언제나 죽는다지만 너는 하필이면 그 삶마저 별을 닮아 혜성처럼 시간을 가로지르나. 기왕 닮을 것이면 북방 칠성의 불변을 닮지 않고.

 

책을 펼치자마자 불쑥 솟아오른 별자리 모양의 팝 아트를 만지작거리던 위무선은 남망기와 시선을 맞추지 않고 대뜸 엉뚱한 소리를 했다. 저는 후원자가 있어요.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에 답하는 일엔 여전히 서툴러, 남망기는 조금 늦은 대답을 그 뒤에 붙였다. …그런가. 이래서야 평소처럼 부족한 성의를 탓하는 작은 투닥거림이 가슴 위를 두드려도 할 말이 없을 텐데, 위무선은 남망기의 고민을 그다지 깊이 헤아리지 않고 제 할 말만 했다. 그분들이 없었더라면 진작에 이런 비싼 병실에선 내쫓겼겠죠.

 

 

“아저씨는 무뚝뚝하지만 상냥하시고 아주머니는 무섭지만 든든해요. 그 집은 남매들도 친절해서, 염리 누나는 저를 거의 친동생처럼 살갑게 대해주세요.”

“그렇구나.”

“친동생‘처럼’이라는 건 정말로 동생이 될 수는 없다는 거지만요.”

 

 

냉정하다 못해 푸릇한 날까지 바짝 선 현실을 토해낸 입은 여전히 연분홍의 말랑함으로 녹아 있었다. 책을 끌어안은 채로 옆으로 몸을 비킨 위무선이 침대 위를 손바닥으로 팡팡 두드리자 남망기는 어쩐지 죄를 짓는 심정으로 조심스레 아이가 내준 자리에 몸을 내렸다. 기다렸다는 듯이 오른팔에 폭싹 기대오는 무게가 가벼웠다. 하지만 상관없어요. 애초에 거기까지는 바라지도 않았고요. 사람이 염치가 있어야지.

 

 

“제 후원자 가족은 정말 좋은 분들이에요.”

“……음.”

“남잠, 제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알겠어요?”

 

 

도통 종잡을 수 없는 대화의 방향에 남망기는 솔직하게 고개를 저었다. 위무선은 오히려 그런 반응을 기대했다는 듯이 배시시 웃었다. 한철 소낙비에도 지지 않을 화사함이 그 얼굴에 만연한데, 바탕이 되는 것이 핏기 잃은 색조라 수묵 같은 애틋함만 물씬 풍겼다.

 

 

“그렇게 좋은 분들인데……”

 

 

요즘은,

남잠이 좀 더 좋아져서 큰일이에요.

 

 

반짝반짝. 그치지 않을 순수로 빛나는 눈동자가 어여뻤다. 할 수만 있다면 입이라도 맞춰주고픈 사랑스러움으로. 콩콩, 단단한 어깨에 뒤통수를 찧어대던 위무선이 은근히 힘을 주어 남망기의 옆구리를 꾹, 찔렀다. 제가 은혜도 모르는 철없는 짐승 같나요? 남망기는, 손가락에 꿰인 것이 옆구리가 아니라 엇박으로 뛰는 심장이라도 되는 양 힘겹게 답했다. …그렇지 않아. 그 투박하고 초라한 부정이 다정에 서투른 어른의 진심인 것을 아는 위무선은 자못 너그럽게 남망기의 고난을 넘겨주었다.

 

 

“남잠은 참 이상한 사람이네요. 녹지 않는 얼음처럼 늘 차가운 얼굴인데……”

 

 

잠시 말끝을 흐린 위무선은 제 한 몸 누이기엔 충분한 남망기의 다리 위로 쓰러져 누웠다. 나란히 앉아서 보아도 눈높이가 한참 아래던 아이의 얼굴은 거리가 멀어지자 외려 선명하게 보였다. 얌전히 무릎께에 얹혀있던 손에 곰살맞게 얽혀드는 가느다란 손가락이 차게 식어 있었다. 맞닿아 빼앗긴 체온은 고스란히 상대의 온기가 될 것이라. 남망기는 어색함을 감수하고서도 위무선에게서 제 손을 돌려받지 않았다. 끊어진 문장은 둘의 체온이 비슷해졌을 무렵에야 다시 이어졌다.

 

……이렇게, 손을 대어보면 따뜻한 것처럼.

언제나 딱딱한 어투에 의심 못 할 온기를 숨기고 있으니.

 

 

“하지만 남잠도 잘 알다시피 저는 몸이 약하고, 매번 이렇게 손을 뻗어 확인하다가는 금방 지쳐버릴 거예요.”

 

 

그러니,

표면의 냉정은 그만둬주세요.

 

 

열 살도 못 산 어린아이에게 저조차 몰랐던 천성을 낱낱이 읽혔다고 하소연하면 누가 믿어줄까. 생긴 것만 보아도 북풍한설이라 부르기에 모자람 없는 사람을 두고 과감하게 표면의 냉정을 운운하는 목소리가 낭랑하기 그지없어 남망기는 감춘 속내가 헤집어진 것을 부끄러워하지도 못했다. 그러니, 마음을 전하는 일엔 비단 말뿐만 있는 것이 아닌 게 무한한 다행이라.

 

남망기는 굳어버린 혀를 대신해 말없이 소년의 손을 잡아 올려 조심스럽게 제 뺨을 기댔다. 둥글게 커진 눈동자로 물끄러미 그 모습을 바라보던 위무선은 한층 꺾인 기세로 작게 웃었다. 이건 또, 나름 괜찮네요.

 

 

“맞아요. 내가 손을 뻗는 게 힘들다면, 남잠이 먼저 잡아주면 될 일이죠.”

 

 

아마 남잠은 평생 내 손을 잡아줄 수 있을 거예요.

나의 평생은, 당신의 일생에 비해 아주 짧을 테니.

 

 



 

*

 



 

 

성실하고도 값비싼 후원자의 이름값에 기대어 기껏 옥상에 오르는 것을 허락받았는데도 이렇다 할 소득이 없어 굳건한 사내의 고개는 내내 바닥으로만 향해 있었다. 위무선은 그 마음을 아는지, 아니면 알면서도 무시하는지 남망기의 품에 안긴 채로 연신 발만 동당거렸다. 남잠, 좀 더 가까이 가봐요. 안 떨어져요. 안 떨어진다니까? 계단을 오를 때부터 안고 왔던 몸을 옥상에 도착하고도 놓아주지 않아 공연히 아이의 마음이 달았다.

 

높은 곳으로 가면 좀 더 밤하늘이 잘 보이지 않을까 싶어 생전 않던 무리한 억지까지 부려가며 감행한 일인데 정작 옥상에도 환한 조명이 켜져 있어 눈이 부실 지경이어서야 정말로 보람도 없고 희망도 없었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옥상에 오르기 전에 미리 간호사에게 하늘이 잘 보이는지라도 물어볼 것을.

 

망연과 부끄러움이 지나쳐 옥상의 문을 열어둔 채 멍하게 굳어 있던 남망기는 급기야 위무선이 ‘난 별을 본 적도 없지만 야경을 본 적도 없다고요!’ 하고 외치며 제 머리칼을 온통 쥐어뜯기 시작한 후에야 어영부영 난간 근처로 발을 옮겼다. 내려다본 아래가 아찔해 반사적으로 몸을 물렸더니 잔뜩 뿔이 난 아이에게 머리카락을 조금 더 뜯겼다.

 

서 있었던 것은 고작해야 몇 분뿐이었는데, 그 짧은 시간을 참지 못해 품 안의 몸이 와들와들 떨렸다. 겉옷을 끌어 위무선을 감싸던 남망기는 엣취, 하고 작은 재채기가 터진 순간 지체없이 몸을 돌려 옥상을 빠져나갔다. 이번에는 위무선이 아무리 떼를 쓰고 머리카락이며 옷깃을 잡아당겨도 소용없었다.

 

병실로 돌아온 아이는 한동안 이불을 덮어쓰고 남망기를 보지 않다 엉뚱하게도 토라진 마음이 다 풀리고 스스로 이불을 걷어낸 후에야 왈칵 눈물을 떨궜다. 흰 뺨 위를 데구르르 구른 눈물이 이불 위로 뚝뚝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대역죄인이 된 남망기는 그러고도 제가 지은 죄목을 알지 못해 당혹스러웠다. 어쩌면 찔리는 구석이 너무 많아 그랬을지도 몰랐다.

 

놀란 것은 남망기뿐만이 아니라, 냅다 그 품에 끌려 들어가 한참을 병실 안을 잰걸음으로 오가며 무작정 달래지던 위무선은 눈물이 반쯤 멎을 때가 되어서야 기운 빠진 손으로 남망기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제 억울함을 토로했다.

 

 

“내가, 처음이라고…, 했잖아요……”

 

 

나는, 옥상에 올라가 본 것도, 야경을 본 것도, 밤에 밖에 나간 것도, 난간 아래를 내려다본 것도, 다 처음이었는데. 조금만 더 기다려주지. 조금만… 아주 조금만…… 나는 그게 처음이었는데……

 

아이가 엉엉 우는 것보다 애써 울음을 억누르는 소리를 듣는 게 더 고역이었다. 갑갑해진 속을 이기지 못해 차오르는 한숨을 간신히 삼켜낸 남망기는 그대로 눈물에 흐물텅 녹아내리지나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얇은 몸뚱이를 제 품에 꼭꼭 끌어넣어 감췄다. 불어오는 바람 없이도 세상은 아이에게 지독하게 추웠다. 온 마음을 다하여도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은 한마디밖에 없었다.

 

 

“……마지막이 아니야.”

 

 

이게 처음이었어도

마지막조차 되지는 않을 거라고.

 

아이는 거짓말처럼 눈물을 그쳤으나 남망기는 삼킨 한숨을 뱉어둘 곳이 없어 내내 괴로웠다.

 

 


 

 

*

 


 

 

옥상에는 세 번을 더 올라갔고, 병실의 커튼을 사비를 들여 두꺼운 암막 커튼으로 바꾼 후에는 둘만의 밤하늘을 열 번쯤 보았다. 세상이 참 많이 좋아졌나 보다. 작은 침대에 누워 어지러운 은하수가 흘러가는 천장을 올려다보던 남망기는 팔십 노인 같은 허허로운 감탄을 했다. 감상에 빠지지 않으려 해도 어두운 방 안에 일렁이는 빛무리는 아름다웠고 같은 침대에 눕기 위해 제 가슴팍에 거의 올라타다시피 한 소년의 숨소리는 퍽 부드러워 절로 물렁한 마음이 되었다.

 

남망기는 제가 어릴 적엔 관심도 없었고, 심지어는 세상에 있지도 않았던 수많은 장난감의 향연에 이따금 머리가 어지러웠으나 위무선은 남망기의 반토막도 안 되는 나이로도 용케 남망기가 제 손에 쥐여준 장난감들을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잘 가지고 놀았다. 돈을 쓸 줄만 알지 누릴 줄은 모르던 부잣집 청년은 덕분에 팔자에도 없는 신선놀음을 하는 중이었다. 남의 병실 침상에 낑겨 누워 인공의 별빛이 어른거리는 천장을 쳐다보며 아이가 잠들 때까지 양이나 세는 것도 신선놀음이라고 할 수 있다면.

 

오늘의 창밖에는 비가 내렸다. 설령 첩첩산중의 시골이라 해도 비구름 자욱한 하늘 때문에 볼 수 없을 별을, 스위치 하나를 누르는 것으로 구경할 수 있다니 이게 바로 문명의 이기인가 했다. 그러나, 이것으로는 위무선은 물론이고 남망기 역시도 만족할 수 없었다. 별이 총총한 묵천을 생각하니 절로 가슴이 답답해져 남망기는 아이의 귀를 막고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살면서 이토록이나 답 없는 문제에 매달려 본 적이 있었던가. 아무리 남망기라 해도 도시의 모든 불을 끌 수는 없었고 혹시나 하는 희망에 오른 병원의 옥상도 한없이 휘황하기만 했다. 그렇다고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아이를 데리고 병원을 나갈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그나마 현실적인 방법을 찾기 위해 누운 채로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던 남망기는 제 눈꺼풀이 어렴풋이 감기는 것을 느끼곤 조심스럽게 제 가슴 위에서 잠든 아이를 옆에 내려두고 몸을 반쯤 일으켰다. 그만 무드등을 끄고 저도 잠들 생각이었다.

 

협탁을 향해 손을 뻗던 남망기는, 그 순간, 누군가 제 뒤통수를 잡아당기기라도 한 듯 우뚝 멈춰섰다.

 

 

“……위영?”

 

 

야심한 시각의 병원. 아이 혼자 쓰는 병실. 창밖에는 빗방울이 유리를 두드리는 소리. 침대 옆에선 작게 웅웅거리며 돌아가는 가습기의 진동.

 

그 어디에도, 바로 조금 전까지만 해도 얕게 이어지던 아이의 숨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

 



 

 

“별을 보러 가요.”

 

 

보름 만에 만난 아이는 늘 하던 이야기를 했다. 열다섯의 밤이 제게는 지옥이었는데, 아이에겐 여전한 하루였던 것처럼.

 

오늘, 남망기는 두 손에 아무것도 들지 않고 위무선의 병실을 찾았다. 도저히 평소처럼 가게에 들러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며 장난감을 살 정신이 없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아프지 말라고 빌었던 기도를 신께서 선뜻 이루어주셨나 보다. 그러니 내 눈길 닿는 곳, 내 손길 닿는 곳, 내 품 안에서 네 숨을 멎게 하셨나 보다.

 

그러나.

여러 날 거듭하여 내린 비에 때 이른 봄꽃은 모조리 져버렸는데도 눈앞의 웃음은 여태 시들지 않아서.

 

 

“……그래.”

 

 

하여, 그렇게 답할 수밖에 없었다.

 

비어 있던 두 손을 앞으로 뻗어 아이를 안았다. 말은 오해의 씨앗이라 뱉지 않고 삼켰고, 날마다 조금씩 더 가까워지던 거리는 이제 심장을 맞대고 서로를 끌어안아도 불편하지 않았다.

 

무엇이 너를 이렇게 소중하게 만들었나.

우리의 시간은 이토록이나 짧았는데.

 

아직은 너를 사랑하지 않는다 거짓을 말하면, 다시 한번 더 기회가 주어질까.

 

 

 


 

*

 

 



 

밤의 정적을 몰아내는 인공의 빛이 닿지 않는 곳을 찾아 떠나는 길은 생각보다 조용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유달리 소란스럽지도 않았다. 그저 조곤조곤한 말소리들이 좁아진 여백을 넘나들었을 뿐.

 

두꺼운 옷과 담요로 단단히 감싼 소년을 옆자리에 앉혀 운전을 하는 동안 둘 사이엔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고, 정말로 별보다 많은 말을 나누었을 무렵 마침내 도착한 곳에서는 머리 위로 은빛 유성의 성하가 나렸다.

 

종점이 지척이었으니 서두르지 않아도 되었다. 차 문을 열어 익숙하게 제게로 팔을 뻗는 아이를 안아 든 남망기는 낮은 풀숲을 헤치고 느리게 걸었다. 은은한 그림자를 드리울 나무 한 그루조차 없는 너른 벌판에 선 남망기는 바닥을 기던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렀다. 멀고도, 가까웠다. 긴 시간 애태운 것이 허무할 정도로. 머리를 맞대어 고심했던 일이 바보 같아 외려 가엾고 사랑스러울 정도로.

 

차 안에서 이미 많은 이야기를 해서 그런가. 혹은 익숙지 않은 밤여행에 지쳤나. 품에 안긴 소년은 드물게 말이 없었다. 다만 오롯한 집중으로 남망기와 같은 하늘 아래에 존재하고 있었다. 언제나 둥글게 휘어 그치지 않을 명랑으로 반짝이던 눈에는 진실로 쏟아져 내리는 별빛이 한 움큼 깃들었고, 얇게 벌어진 입술은 침묵으로 수만의 찬사를 대신했다.

 

소박한 환희조차 없는 고요한 시간이었다.

그 자리에 얼어붙어 영원을 기다릴 수 없는 것이 원망스러울 만큼.

 

희게 언 뺨에 스치는 바람이 시려 그만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할 무렵에는 찰나의 인연으로 평생의 유일을 손에 넣은 청년도 문득 깨달을 테다.

 

 

너는 별이 되기 위해 그토록이나 별을 보고 싶어했나.

 

 

물기 서린 시야 너머로 번진 밤하늘이 어쩐지 눈부셔서, 지금이라면 무력하게 울어도 좋을 것만 같았다. 품에 안긴 소년의 무게는 변함이 없는데 마치 온 세상이 제게서 떠난 것 같아. 목덜미를 스치는 부드러운 숨결이 어느 순간 사라졌다는 것을 알면서도, 바람이 차다, 그런 소릴 중얼거리며 작은 뒤통수를 손으로 받쳐 조금 더 깊이 끌어안았다. 일출까지는 아직 먼 시간이었으니 적어도 이 밤이 가기 전까지는 지평 너머로 기우는 별을 이 품에 잡아둘 수 있었다.

 


그러나, 끝끝내 시간이 흘러 동편에서 태양이 떠오르고 밤의 장막이 거두어지는 때가 도래하거든,

 

나는 어찌해야 하나.

미명에 찬란한 새벽별을 등지고 누구와 더불어 돌아가야 할까.

 

 

 



위영.

영아.

나의 소년아.


너는 나를 밤이라 불렀지.

그러니 내게로 오렴.

 

손도 목소리도 닿지 않는 저 너머의 암천에서 홀로 반짝이지 말고, 내게로 오너라.

 

이제는 내가 별이 보고 싶어 견딜 수 없을 것만 같으니.

 

 

 

 

 

 










엠제님(@MJOT_1141)께서 그려주신 별빛 무드등의 요정 무선이.



심령님께서 그려주신 무선이와 망기. 

잔불의 기사 / 마도조사 (프로필 사진 - 배추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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