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커피야. 정말이지 더럽게 맛없는 커피였다. 콜린스는 속으로 투덜거리면서 다시 커피를 한 모금 물었다. 이 끔찍한 맛의 커피를 홀짝이는 것 말고는 당장 달리 할 일이 없었다. 파트너인 알렉스와 경찰차 안에서 실없는 우스갯소리를 주고받으면서 커피를 마시는 일은 이제 일상이 되었다. 두 사람이 경찰 학교를 졸업하고 베이비시터가 필요 없는 ‘진짜’ 경찰관이 된 지도 이제 꽤 되었으니까. 비록 아직 신입 딱지를 뗄 정도는 못 되었지만, 어쨌든 자신들에 대해 평가서를 써대며 이래라저래라 잔소리해 대는 선배들을 떼어낸 지 몇 달이나 되었으므로 두 사람은 이 상황에 아주 기쁘게 잘 적응하고 있었다. 비록 두 사람이 꿈꿨던 경찰 업무에 대한 기대에는 못 미쳤지만. 경찰 일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지루했다. 망할 서류와 보고서 작성은 또 어떻고. 경찰 드라마나 영화에서 주인공이 써야 하는 보고서나 서류 더미들이 나왔다면 아무도 경찰 같은 건 하고 싶어 하지 않을 거였다. 적어도 콜린스와 알렉스는 그렇게 생각했다.

한참 동안 두 사람이 바라보고 있는 도로는 텅 비어 한가하기 짝이 없었고, 어쩌다 한 번씩 나타난 차도 곧 경찰차를 보고는 슬금슬금 눈치 보듯 속도를 줄였다. 아 지루해. 도로 교통단속은 콜린스가 경찰이 되고 나서 싫어하는 일 중의 하나였다. 그것도 이렇게 인적이 뜸한 교외의 도로라면 더. 사실 콜린스는 가만히 앉아 있는 일 대부분을 싫어했다. 몸이 조금 힘들고 고돼도 빠릿빠릿하게 움직이는 쪽을 더 선호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게 오늘 할당 받은 일이었다. 몸이 근질거리는 루키들에게 일부러 보란 듯이 선배들이 몰아준 제일 재미없고 지나치게 평화로운 일. 알렉스도 지루한지 운전대를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이상한 리듬을 만드는데 열심 있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한 모금. 크림과 설탕을 충분히 넣었는데도 본 커피의 끔찍한 맛은 가려지지 않았다. 지루함과 커피는 그리 좋은 조합은 아니다. 안 그래도 근질근질한 몸을 억지로 경찰차 좌석에 붙이고 있는 동안 몸에 계속해서 들어가는 카페인은 기다리고 인내하는 것에 전혀 도움이 안 됐다. 다음엔 소다를 마실까 보다. 물론 카페인 프리로. 벌써 근무를 시작하고서 3잔 째였다. 지루함에 소리 없는 몸부림을 치다가 다리나 좀 펴자고 핑계 겸 편의점에서 사 온 커피였다. 특히나 오늘은 유난히 별다른 일이 없어 지루할 지경이었다. 빙글빙글 정해진 순찰 구역을 정해진 수순을 밟으며 정해진 코스로 돌고 돌아도 별일 없이 시시한 날. 거기다 하필이면 구역 중에 제일 한가한 도로에 배정받았으니 알렉스도 콜린스도 종일 입이 반쯤 튀어나와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경찰 학교를 졸업하고 이 관할에 발령받은 지 꽤 지나서, 처음엔 어색하고 입을 때마다 은근히 들뜨던 경찰 제복도 이제는 익숙하고 고루한 유니폼이 되었지만, 이제껏 새로 만나는 사람에게 경찰이라고 직업을 밝히면 그들이 흔히 듣기를 기대하는 총알이 난무하는 대단한 차 추격전이나, 차마 방송이나 신문에서 밝힐 수 없는 끔찍하고 기괴한 살인 사건 현장 같은 건 경험해 본 적 없었다.

이제까지의 콜린스의 경찰 업무들은 고작해야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리는 취객들을 상대하고, 상습적으로 자살하겠다고 소동을 부리는 사람을 말리고, 가벼운 교통사고 현장을 정리하거나 별것 아닌 소음 신고, 장난 전화, 혹은 10대 좀도둑을 잡기 위해 뒷골목을 뛰어다니고, 언제나 순찰하며 지나가는 곳에 자리 잡고 있는 노숙자 할아버지와 강아지에게 안부를 묻고서 그가 하는 이상한 헛소리와 투덜거림을 들어주는 정도 였다. 그동안 콜린스와 알렉스가 경험한 가장 큰 사건은 다운 타운의 클럽에서 술과 약에 취해 패싸움을 한 대학생 무리를 진압해서 체포한 일 정도 였는데, 파트너인 알렉스는 그때 깨진 술병에 이마를 긁히고서 사석에서 그 일을 말 할 때는 그 상처에 대해 살짝 부풀려 말하고는 했다. 술에 취한 대학생이 아니라 무시무시한 인상의 덩치가 산만 한 갱들이었다며 꽤 그럴듯한 양념을 쳐서 말이다. 자잘한 위험들-냄새 나는 쓰레기 더미에 밀려 넘어지거나, 갑자기 뛰다가 발목을 삐는 것 같은-골치 아프고 성가신 일들을 뺀다면 이 관할은, 특히나 콜린스가 주로 근무하는 구역은 지나치게 평화롭고 별일이 없었다.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었다. 치안이 좋다는 뜻이니까. 물론 콜린스가 일 하는 분서의 관할 구역 에도 위험하고 질 나쁜 곳이 있었지만 기껏해야 매춘이나 마약을 소지해서 잡혀들어오는 허접하고 별 볼 일 없는 빈민들이 모여 사는 곳 이었고, 그나마도 그곳에서 신고가 들어오고 출동해야 하는 일이 생길 때마다 이제껏 콜린스와는 인연이 없었다. 평화는 누구나 원하는 것이지만 그래도 아직 혈기 왕성하고 아직 애 처럼 은근히 영화에서 나오는 근사하고 흥분되는 멋진 사건을 기대하는 두 루키들에게는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그러나 방금 들어온 무전으로 오늘은 다른 날과 확 달라졌다. 라디오에서 들리는 주소는 바로 그 요주의 구역인 데다 마침 알렉스와 콜린스의 위치가 가장 가까웠으므로 알렉스는 다짜고짜 신이 난 목소리를 숨기지 못하고 출동 하겠다고 응답했다. 알렉스와 콜린스는 손에 들고 있던 다 식고 끔찍한 맛이 나는 편의점의 싸구려 커피를 창밖으로 쏟아 부어 버리고는 찌릿하게 올라오는 약간의 아드레날린 속에서 급하게 안전벨트를 맸다. 하지만 얼마 안 돼 뒤따른 무전에 두사람은 김이 빠졌다. 이제서야 막 애송이 티를 벗어난 콜린스와 알렉스가 걱정되었던 건지 까마득한 선배인 케네스와 다이시가 도착하면 섣불리 나서지 말고 자신들을 기다리라며 단단히 못을 박았다. 어쨌든 그들은 당장은 정지화면이나 다름이 없던 이곳에서 빠져나갈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면서 차에 시동을 걸고 신고지를 향해 출발했다.




너저분한 길거리, 무너진 담벼락, 고장 난 가로등은 보수되지 않고 버려져 있었고 그다지 예술적이지 못한 그라피티로 훼손된 건물 외벽들. 신고지인 빈민가 동네로 들어가자 확연히 분위기가 달라졌다. 황폐하고 음침한 배경으로 어쩌다 길에서 마주치는 흉흉하고 적대적인 사람들의 눈길에 콜린스는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알렉스도 마찬가지였었는지 말 없이 운전하며 주변을 찬찬히 훑어보고 있었다. 콜린스는 손을 뻗어 경찰차 내에 설치된 노트북에 주소지의 거주인 신원을 검색했다. 신고 내용은 별거 아니었지만, 이 지역이라면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파리어?…파리어라…어쩐지 입에 착 달라붙는데. 언제 체포한 적 있었나?

알렉스가 힐끗 화면에 뜬 머그샷을 보며 중얼거렸다. 콜린스는 화면 안의 뚱한 표정의, 마약에 찌들어서 제 나이보다 훨씬 일찍 얼굴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 초췌하고 지저분한, 누렇게 뜬 중년 남자의 일그러진 얼굴을 천천히 뜯어 보며 대답했다.

-아니, 하지만 서에서 난동 부리는 건 몇 번 봤어. 유치장을 여관처럼 들락날락 하잖아.

-...아, 기억났다. 목소리 걸걸한 그 아저씨로군. 저번에 엄청난 힘으로 우리 서 기물 부셔 먹은.

알렉스는 차를 세우고 차창 너머로 음침한 목조주택을 올려다보며 혀를 찼다.

-으…집도 딱 그치 꼴이네. 어떻게 이러고 살 수 있는 거지? 내가 이랬으면 당장 옆집 앳킨스 부인이 뛰쳐나와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을 거야. 잔디가 1센치만 자라도 득달같이 찾아와서 잔소리해대니까.

-뭐, 이 동네 사람들은 이웃집이 동네 미관을 해친다고 투덜대는 타입은 아닌 것 같은데. 관심도 없을걸.

콜린스가 차 문을 열고 내리며 알렉스의 말에 대꾸했다. 지금 보고 있는 집의 외관과 크게 다르지 않은 주변 주택들을 둘러보자, 다들 창밖으로 자신들을 힐끔대다가, 콜린스의 시선이 돌아가면 황급히 커튼을 치거나 창 옆의 벽으로 몸을 숨겼다. 눈에 띄게 자신들을 경계하는 그 모습에 콜린스는 괜시리 머리에 쓴 모자를 더 꽉 조이도록 눌러 쓰며 이제껏 한 번도 쏴보지 못한 권총과 테이저건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는 천천히 차를 돌아 보도블록 위로 올라서서 신고가 들어온 주소지인 낡은 목조 주택을 올려다보았다. 오래된 데다가 관리마저 신경 쓰지 않았는지 여기저기 주저앉고 페인트가 벗겨진 집에서는 음침한 기운이 돌았다. 앞의 뜰의 상황은 더 형편이 없었다. 부서지고 녹슨 싸구려 선베드가 방치되어 있었고, 그 옆에 놓인 하얀 뚜껑이 누렇게 변색한 아이스박스에서는 시커먼 갈색의 정체불명의 액체가 흘러나와 말라붙어 썩은 내를 풍겼다. 아무렇게나 자란 풀 사이에 술병들과 깨진 유리 조각들, 쓰레기들이 이리저리 널려 있어서 지저분했고 위험하게 여기저기 야생 동물이 파낸 듯이 움푹움푹 패인 구덩이엔 빗물이 고여 낙엽들이 썩어들어 가고 있었다.

라디오에서 곧 도착하니 콜린스와 알렉스에게 나서지 말고 얌전히 자신들을 기다리라고 다시 한번 잔소리해대는 다이시의 목소리가 들리자 알렉스가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그때 콜린스는 어떤 소리를 듣고는 목조주택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알렉스가 콜린스가 내저은 손가락 신호를 보고는 투덜거림을 멈추고 무전기마저 끄자 두 사람 다 뭔가를 두드리는 둔탁한 타격음 속에서 희미하게 섞인 작은 비명을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알렉스가 차 문을 열어둔 채 반쯤 걸쳐 앉아 있던 운전석에서 긴장한 얼굴로 일어섰고, 콜린스는 먼저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신을 따라오는 알렉스의 발소리에도 긴장이 되었다. 그들이 현관문에 다다랐을 때는 집안에서 흘러나오던 소리는 이미 잦아들어 주변은 다시 고요해져 있었다. 현관문을 사이에 두고 콜린스와 마주 보고 선 알렉스가 눈을 날카롭게 만들고서 고개를 작게 끄덕이자 알렉스의 소리 없는 동의를 얻은 콜린스는 현관문 옆의 창문을 통해 집 안쪽을 들여다보며 현관문을 두드렸다.

-경찰입니다. 아무도 안 계십니까.

분명히 방금까지 안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졌으나 자신들이 문을 두드리고 신분을 밝히자마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좋은 징조가 아니었다. 더군다나 신고내용이 소음과 고성이었으니 더 그랬다. 끼익- 나무가 뒤틀리는 소리를 내며 콜린스가 두드렸던 현관문이 슬며시 열렸다. 여전히 집안에서 느껴지는 기척은 없었다. 열린 문을 내려다보자, 아예 잠금쇠 자체가 들떠 있었고, 주변의 썩고 물러진 나무조각들이 우수수 바닥으로 떨어졌다. 고장 난 문을 고치지 않고 오랫동안 방치해 둔 것이 분명했다. 이상했다. 이런 흉흉한 동네에서? 콜린스가 그가 두드린 충격으로 열린 문을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들고 의심과 의문을 가득 담은 시선을 제 파트너에게 옮기자 알렉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눈썹을 들어 올렸다.

가슴이 불안하게 뛰기 시작했고, 선배들의 말대로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알렉스도 똑같은 생각을 했는지, 혹은 오래 알고 지내온 콜린스의 기분을 눈치챈 건지 완전한 침묵 속에 있는 집안을 눈짓하며 속삭이듯 말했다.

-내 생각엔 안에서 방금 비명이 들린 것 같아. 분명히 도와 달라고 외쳤어. 그렇지 않아? 너도 들었지?

물론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하지만 콜린스는 알렉스의 말에 동의하며 대답했다.

-... 그래, 나도 들었어.

둘은 서로의 말에 힘을 실어 주듯이 마주 보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콜린스가 살짝 열린 현관문을 조심히 당겨 열었다. 그리고 덧문을 밀면서 다시 한번 기척 없는 집안을 향해 외쳤다.

-경찰입니다! 아무도 안 계십니까?!

콜린스는 다시 한번 집안 곳곳에 다 들릴 수 있도록 목소리를 높여서 자신들의 신분을 밝히며 어둡고 눅눅한 집안으로 발을 들였다. 환한 대낮인 밖과 달리 집안은 다른 세계인 것처럼 지나치게 어두워서 알렉스와 콜린스는 손전등을 꺼내 들어야 했다. 콜린스가 현관 입구에서 손전등으로 집안을 이리저리 비춰보는 동안, 뒤에서 따라 들어온 알렉스가 총을 빼 드는 것이 느껴졌다.

콜린스도 손을 허리춤에 찬 지급받은 총위에 올렸다. 긴장해서 손 안쪽이 땀에 젖어 미끈거리고 있었다. 두 사람을 이렇게 긴장하게 만든 이유는 분명했다. 며칠은 청소도, 환기도 제대로 되지 않은 것 같은 퀴퀴하고 더러운 공기 속에 익숙한 비린내가 났기 때문이었다. 피 냄새였다.

두 경찰관은 어두컴컴한 저택의 현관 앞에서 말없이 신호를 주고받았다. 곧 콜린스가 곧장 어두운 복도를 따라 일 층의 안쪽으로 들어갔고 알렉스는 이층 층계를 오르기 시작했다.

원래의 색과 무늬를 가늠할 수 없도록 낡고 빛바랜 벽지는 여기저기 뜯기고 울며 곰팡이가 슬어서 괴이한 냄새를 풍겼다. 창가에 쳐진 커튼은 먼지가 뽀얗게 쌓여서 움직인 적이 없어 보였다. 집안의 모든 창문이 이런 식이었다. 그러니 한낮에도 집안이 어두울 수밖에. 깜깜한 거실에 티브이만 켜진 채 아무도 없는 공간을 색색의 화면 색으로 비추고 있었고, 한쪽이 움푹 들어간 더럽고 낡은 소파 위엔 먹다 만 샌드위치가 시큼한 피클과 겨자의 냄새를 풍기면서 급하게 내동댕이친 듯 널브러져 있었다. 그 옆에 아직 물방울이 병 표면에 맺혀있는 맥주는 반이 넘게 남아 있었다. 누군가 방금까지 티브이를 보며 여기 앉아있다가 급히 자리를 뜬 게 분명했다. 콜린스는 미간을 찌푸리며 거실을 지나쳐 복도를 따라 걸었다. 점점 피 냄새가 짙어졌다.

-…맙소사.

콜린스는 제 발밑에 찰그랑거리면서 날카로운 마찰음을 내는 유리 조각을 조심스럽게 밀어내며 걸음을 서둘렀다. 헤지고 들뜬, 점점이 좀이 먹어 들어가는 얇은 카펫이 젖어서 짙은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부엌 입구의 벽장 문 바로 아래에 남자가 기대듯이 쓰러져 있었는데, 정신을 잃은 듯 했다. 더 가까이 다가가자 원래 밝은 회색이었을 것이 분명한 후줄근한 후드티가 온통 피에 물들어 얼룩져 있는 게 보였다.

-선생님?! 괜찮으십니까?! 이봐요!

콜린스가 재빨리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늘어진 고개를 받쳐 들자 남자의 목이 힘없이 꺾였다. 목에 손을 대자 다행히 희미한 맥이 짚였고, 새파랗게 질려 있긴 했지만, 몸에는 아직 온기가 있었다. 그러나 카펫을 물들이고 있는 짙은 색의 원이 계속해서 크기를 불려가고 있었다. 정신이 없는 남자의 몸을 끌어다가 똑바로 눕히고 찢기고 피에 젖어 끈적이는 티셔츠를 끌어 올리자, 가슴과 배에 겹겹이 난 상처에서 피가 울컥 이며 계속 흘러나오고 있었다. 두리번거리던 콜린스의 눈에 부엌 싱크대 위에 올려진 페이퍼 타올이 보였다. 콜린스는 곧장 움직였다. 타올을 거의 심에서 통째로 분리 하듯이 뜯고는 남자의 머리를 자기 무릎에 올려두고 앉아 상처에 대고 압박하기 시작했다. 일단 피를 멈추게 해야 했다. 남자의 안색은 이미 피를 많이 흘린 것 같았고, 주변의 카펫을 흠뻑 적신 양을 보면 굳이 의사가 아니라도 위험한 상황이라는 것을 누구라도 짐작 할 수 있었다.

상처를 누르자 남자의 입에서 신음과 함께 뭔가가 끓듯이 긁히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피와 땀에 젖어 얼굴에 달라붙은 남자의 머리카락을 대충 정리해주며 뺨을 두드리는데, 이제 보니 콜린스의 무릎에 시체 꼴로 누워있는 이는 아직 앳된 얼굴의 소년이었다. 10대 후반 정도로, 그 나이 때 남자아이 같지 않게 창백하도록 하얗고 매끈한 피부에 말라붙은 핏물이 얼룩져 있었다. 파리한 안색의 소년이 피투성이가 되어서 제 품에 누워있다는 것을 깨닫자 콜린스의 심장은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머릿속이 하얗게 비는 중에 제 품에서 천천히 식어가는 소년을 살리려면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밖에 나지 않았다. 하지만 뭘 어떻게…? 아, 피가 멈추지 않았다. 피가. 사방이 온통 피투성이였다.

꽤 많은 양의 두툼한 키친타월을 빠르게 적신 피가 곧 제 손까지 닿았다. 타올 위로 상처를 압박하고 있던 콜린스의 손은 곧 소년의 뜨겁고 신선한 피로 미끈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코를 찌르는 피의 냄새. 콜린스는 그것들을 떨쳐버리려고 머리를 짧게 흔들며 심호흡했다. 진정해. 콜린스는 경찰학교에서 훈련받은 매뉴얼들을 머릿속으로 읊으며 되짚었다. 맥박과 호흡을 체크하고, 안정된 자세로 만든다. 출혈이 있다면 지혈하고, 환자가 정신이 있다면 말을 걸면서 진정시키며… 정신이 없다면... 콜린스는 적당한 강도로 소년의 창백한 뺨을 두드리며 그를 깨우려고 노력해 봤다. 그러나 소년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콜린스는 몇 번을 더 시도해 보다가 포기하고 다음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그래 맞아, 구급차를 불러야지. 본부에 무전을 쳐야 해. 조심스럽게 주변을 경계하면서 콜린스는 무전기로 손을 가져갔다. 주변은 조용했다. 등 뒤에서 식은땀이 흘렸다. 소년을 이렇게 만든 위험이 아직도 이 집안에 도사리고 있을지도 몰랐다. 잔뜩 긴장한 채 무전기를 잡는 그 순간, 자기 손목을 잡아 오는 억센 손길에 콜린스는 손 소스라치게 놀랐다.

콜린스의 무릎을 베고 있던 소년이 어느새 눈을 부릅뜨고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어찌나 세게 쥐었는지 손목이 단번에 시큰해지고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소년의 목에서 그르렁거리는 거친 소리가 났다. 콜린스는 꼼짝도 못 하고 혼란스러운 기분으로 소년을 내려다보았다. 얼굴은 창백하고, 고통으로 풀린 청록색 눈이 어둠 속에서 비정상적으로 반짝이며 초점을 잡으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콜린스는 일단 재빨리 소년의 시선을 자신에게 고정하려고 노력했다.

-안돼, 안돼…이봐! 이쪽을 봐. 괜찮을 거야.

하지만 콜린스의 노력에도 소년의 초점이 잘 잡히지 않는 번뜩이는 눈은 자꾸만 다른 쪽으로 돌아가며 불안하게 흔들렸고, 겁에 질리고 혼란스러운 듯이 숨이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콜린스는 돌아가는 그의 턱을 감싸 자신을 보게 만들며 그를 달래기 시작했다. 소년이 아직 잡고 있는 한쪽 손목이 피가 통하지 않아 버리고 아릿해 왔지만, 지금은 제 손목의 고통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다.

-걱정하지 마, 내가 도와줄게. 정신을 놓지 마. 계속 깨어 있어야 해. 알았니?

그의 관심을 끌고 계속 깨어 있도록 말을 거는 콜린스를 무시하고 소년의 눈은 자꾸만 옆으로 돌아가면서 턱을 잡은 콜린스의 손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미약하게 계속 콜린스에게 반항하던 소년의 목에서 나던 이상하고 거친 소리가 점점 또렷한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마치 짐승이 으르렁거리는 소리처럼 들렸는데, 콜린스는 곧 그것이 정말로 ‘으르렁’ 거리는 소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소년의 목에서 완전한 소리가 흘러나오자 콜린스의 몸이 즉시 얼어붙을 정도로 무시무시하게 위협적이었다. 그리고 다른 어떤 곳을 헤매던 소년의 번뜩이던 눈동자가 콜린스를 똑바로 올려다보자, 등골이 오싹해지면서 순식간에 온몸의 털이 쭈뼛 섰다. 소년의 눈동자는 흰자위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을 가득 채우며 어느새 샛노랗게 변해 있었고, 동공은 소름 끼치도록 작고 날카롭게 조여졌다.

-…!

콜린스를 들여다보고 있는 그것은 인간의 눈이 아니었다. 창백한 노란 두 눈이 어둠 속에서 금속성의 빛을 반사했고 콜린스는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는 것 같았다. 꼼짝없이 얼어붙은 채 홀린 듯이 그 눈을 바라보았다. 감출 수 없는 야생성과 인간이 오래전에 포기해버린 자연의 흉포함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포식자의 그 눈을.

-…너…!

콜린스가 겨우 숨을 내뱉으며 쥐어짜 낸 소리로 입을 열었을 때 이쪽으로 빠르게 걸어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콜린스! 집안엔 아무도 없어...!

고개를 돌리자 알렉스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피에 젖은 소년과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맙소사! 세상에...

콜린스는 알렉스가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덕분에 붙잡혀 있던 뭔가에서 겨우 빠져나온 기분이었다.

-알렉스, 빨리 구급차 좀!

콜린스가 꼼짝없이 소년에게 잡힌 손을 보이며 그를 올려다보자 알렉스가 급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어깨에 걸려 있는 무전기의 버튼을 눌렀다.

알렉스의 라디오로부터 구급차가 가고 있다는 대답 소리가 났을 때, 소년과 콜린스가 앉아 있는 바로 옆의 벽장 문이 쾅쾅하고 울리기 시작했다. 알렉스와 콜린스는 아까 밖에 차를 대고 대기할 때 들었던 둔탁한 소리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알렉스가 반사적으로 총을 꺼내 들어 그쪽을 겨누었고, 콜린스는 소년을 제 쪽으로 더 가까이 안으며 뒤로 물러섰다. 제 품에서 소년이 고통으로 신음하면서도 더 크게 으르렁거리기 시작했지만, 콜린스는 무시했다. 여전히 한 손으로는 상처를 압박하며 그를 조심히 제 쪽으로 끌어당겼고, 아직 그에게 잡힌 채로 둔 손은 만일의 사태에 재빨리 뿌리치고 상황에 응대할 수 있도록 온몸을 긴장시켰다.

곧 쾅쾅 울리던 벽장이 곧 조용해지더니 작게 흐느끼는 소리가 났다. 콜린스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신호로 알렉스가 조심히 벽장 문을 잡자 소년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격렬하게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다. 그를 누르는 것이 힘겨울 지경이었다.

-안돼! 가만히 있어!! 상처가 벌어진…!!윽!

어깨에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졌다. 소년이 이를 세워 자신을 물었다. 콜린스는 반사적으로 소년의 머리를 밀어내려다가 멈칫하며 몸에 힘을 풀었다. 알렉스가 연 벽장 문 안에는 아주 작고 마른 여자아이가 웅크려 앉아 훌쩍이고 있었다. 그녀의 낡고, 계절과 어울리지 않는 얇은 원피스 아래로 드러난 무릎과 종아리에도 소년의 피가 엉겨 붙어 있었다. 소녀가 벽장 안에서 문 아래로 천천히 배어들어 오는 핏물을 보며 갇혀 있었을 거라는 생각을 하자 콜린스의 위장이 다 뒤틀렸다. 알렉스가 소녀에게 허리를 숙여 다정하고 부드럽게 그녀를 달래며 안심시켰다. 돌아서는 알렉스의 팔에 작은 팔다리가 달랑였고, 그의 품에 안긴 아이가 소년을 보면서 애처롭게 훌쩍였다.

-안돼…토미…톰…죽으면 안 돼…죽지 마...

여자애의 가느다랗고 힘없는 목소리에 콜린스의 어깨를 한껏 물고 있던 소년의 턱에 힘이 살짝 풀리는 듯했다. 그의 샛노란 눈이 돌아가며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콜린스는 곧 그가 무엇 때문에 흥분한 것인지, 왜 두려워하는지 이해했다. 알렉스가 작은 소녀를 토닥이며 계속해서 부드럽게 달래자 아이는 알렉스의 품에 완전히 기대서 색색 대기 시작했다. 벽장 안에 갇혀서 오랫동안 울고 있었던 것 같았고, 완전히 탈진하기 직전처럼 창백한 얼굴이었다. 알렉스의 품에서 조금 진정이 된 것 같은 소녀를 올려다보던 콜린스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가능한 침착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소년에게 말했다.

-톰, 톰 맞지? 난 잭이야. 잭 콜린스.

거친 숨을 내쉬면서 콜린스의 어깨를 물고 있는 소년의 눈동자가 콜린스를 올려다보았다. 눈에는 아직도 경계심이 가득했다. 콜린스는 그에게 잡힌 손목과 물린 어깨의 통증 때문에 식은땀이 날 정도로 고통스러웠지만 애써 표정을 부드럽게 풀고 미소를 지으며 소년을 안심시키기 위해 시선을 맞추었다.

-이제 괜찮아. 우리가 너희를 도와줄 거야. 걱정하지 않아도 돼.

소년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지금 여기엔 우리밖에 없어. 아무도, 아무도 너희를 해치지 못해. 우리가 그렇게 두지 않을 거야. 알겠니? 약속할게.

콜린스는 조심스럽게, 자유로운 손으로 소년의 머리와 등을 쓰다듬기 시작했고 그 일을 계속했다. 소년이 진정 하기를, 안전하다고 생각하기를 바랐다.

-내 파트너가 바로 구급차를 불렀으니까, 구급대원들이 오면 널 보살펴 줄 거야.

이제 모든 게 괜찮아질 거라고, 적절한 도움이 오고 있으며 그동안은 알렉스와 자신이 그들이 안전하도록, 떠나지 않고 옆에 있을 거라는 말을 하며 콜린스는 최선을 다해 자신이 얼마나 당황하고 겁을 먹었는지 숨기려고 노력했다. 당장은 더 침착하고 단단해져야 했다. 그래야만 소년 역시 자신을 믿고 진정할 수 있을 테니까. 콜린스와 소년은 얼마 동안 그렇게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며 상대방을 탐색했다. 그리고 공들인 노력이 통했는지 드디어 소년이 몸에서 긴장을 풀고, 콜린스를 완전히 놔 주었다. 소년이 입을 뗀 어깨가 뜨겁고 욱신거렸고, 몸은 식은땀 투 성이었으며 짙은 피 냄새와 퀘퀘한 집안의 공기 때문에 현기증이 날 지경이었지만 콜린스는 남몰래 긴 한숨을 내쉬면서 소년을 더 꽉 붙잡았다. 아직도 상황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으나 그래도, 품에 있는 소년이 더 이상 반항하지 않고 얌전하다는 것이 꽤 위로되었다.

얼마 안 가 현관문 쪽에서 시끄러운 발소리가 들렸다. 콜린스는 그 소리에 바짝 다시 날을 세우면서 긴장하는 소년을 바짝 끌어안으며 안심시켰다. 콜린스와 알렉스는 그 발소리와 인기척의 주인들이 누구인지 알았다. 곧 부엌 복도에 굳은 얼굴의 케네스와 다이시 선배가 들어섰고, 눈을 치켜뜬 선배들의 입에서 왜 지시한 대로 자기들을 기다리지 않았는지 질책의 말이 나오기 전에 알렉스가 소녀를 안고서 그들을 맞으며 간단한 상황을 나직이 설명했다. 멀리서 점점 가까워지는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렸지만, 콜린스는 고개를 들거나 눈을 돌리지 않고 계속해서 소년을 내려다보았고, 소년도 콜린스를 똑바로 올려다보았다. 피에 젖은 소년의 하얀 이빨의 송곳니가 반짝였고, 인간의 눈 같지 않게 번뜩이던 안광의 샛노란 눈이 점점 가라앉으며 모양을 천천히 바꾸는 신기한 장면을 콜린스는 지켜보았다. 소년의 눈은 짐승의 차가운 색에서 따뜻하고 부드러운 녹안으로 바뀌며 여 다른 인간의 눈처럼 동공도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제 품에서 안심한 것 같이 보이는 소년을 내려다보며 콜린스는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 넌 괜찮을 거야.

자신을 시야에서 놓치지 않으려고 끈질기게 올려다보던 소년의 눈이 점점 흐려지기 시작했다. 콜린스는 불안하게 그의 뺨을 만지작거리라면서 눈을 감지 말라고, 정신을 잃지 말라고 속삭였다. 소년도 콜린스의 말을 따라 노력하는 것 같았으나 곧 힘없이 눈이 감기고 몸은 완전히 축 처졌다. 제 품에서 소년이 정신을 잃고 고개가 꺾이자 콜린스의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구급대원들이 들것을 들고 우르르 집 안으로 들어와 피투성이의 소년을 콜린스의 품에서 데려갔다. 들것에 실려 집 밖으로 나가는 소년을 보며 콜린스는 잠시 망설이다가 한 구급 대원을 붙잡았다.

-…네?

-미리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환자에 대해서요.

콜린스는 자신을 의아한 얼굴로 올려다보는 구급대원의 어깨 너머를 보며 잠시 망설이 다가 입을 열었다.

-…그 애는 수인이에요. 

구급대원은 잠깐 놀란 눈으로 소년이 실려 나간 곳을 돌아보다가 알아들었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콜린스의 어깨 상처를 보고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치료받아야 한다며 함께 갈 것을 재촉했다. 콜린스는 잠시 고개를 돌려 거실 쪽을 바라봤다. 케네스 선배가 소파 쪽에 서서 먹다 만 샌드위치와 맥주병을 보며 무섭게 인상을 찡그리고 있다가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이 의미심장하게 빛이 났고, 어떻게 보면 슬프고 고통스러워 보이기도 했다.

-너도 처치를 받아야지, 콜린스. 이쪽은 나한테 맡기고 가.

알렉스가 완전히 지쳐 눈만 끔벅거리며 눈물 자국을 만들고 있는 여자아이를 안은 채 등을 끊임없이 토닥이며 말했다. 그리고 콜린스 어깨의 상처를 들여다보더니 얼굴을 찌푸렸다. 콜린스가 말없이 멍하니 서 있자, 가까이 서 있던 다이시 선배가 그의 팔을 가볍게 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콜린스는 구급대원을 따라 집을 나왔다.

출동한 구급차가 하나뿐이었으므로 콜린스는 소년을 실은 구급차에 함께 탔다. 콜린스는 구급차 안쪽에 붙어 있는 의자에 앉아 구급차 침대에 누워 구급대원들의 손에 응급처치받는 소년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상의가 완전히 찢겨나가 훤히 드러난 소년의 몸은 밝은 구급차의 조명 아래서 보자 더 끔찍했다. 아이가 집에서 이토록 심각한 상처를 입고서, 그것도 주변의 카펫을 온통 피로 물들일 만큼 오래 방치되었다가 발견되었다는 사실이 슬프고 화가 났다. 게다가 그동안 벽장 안에 갇혀 있던 그 소녀는 또 어떤가. 왜 이런 일들이 이 아이들에게 일어난 거지? 콜린스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에 속으로 이를 갈면서, 옆에 앉은 구급대원이 제 어깨의 제복을 찢어내고 소독약을 붓는 것을 견뎌냈다. 그가 상처를 들여다보며 꽤 심하게 찢기고 벌어져서 꿰매야 할 것 같다고 하는 소리가 먹먹하게 들렸다. 콜린스는 그저 기계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시체처럼 창백한 소년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후!…와우. 대단하네요.

-많이 안 좋은가요?

콜린스는 응급 구조사가 해준 패치를 조심스럽게 들어내고 자신의 상처를 들여다보고 있는 젊은 여의사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긴장한 상태였다.

-오, 미안해요. 경관님. 제가 헷갈리게 했다면요. 제 말은… 물린 상처가 지나치게 깨끗해서 놀란 거였어요. 봐요. 정말 멋지게 송곳니 자국이 뚫려 있네요. 다른 골치 아픈 조직 하나 안 건들이고요. 피가 지독하게 났고, 통증도 악마 같을 테지만 잘만 관리하면 별일 없이 아물 거예요. 훈장이 좀 남을 수도 있고요.

여의사의 말에 콜린스의 긴장은 풀어졌다. 하지만 곧이어 그녀가 상처 부위에 댄 식염수 때문에 몸은 다시 움츠러들었다.

-말했죠? 악마 같은 통증일 거라고.

커다란 식염수 통을 거의 통째로 들이붓는 과정이 끝나자마자 콜린스는 여의사 어깨 너머의 열린 병실 문을 바라보았다. 바늘이 제 살을 뚫고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는 광경을 구경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여의사가 메탈 트레이에 담긴 바늘과 실을 내려다보았을 때부터 콜린스는 시선을 병실 문에 고정한 상태였다.

-수인인 것 같다고 응급 구조사에게 말씀하셨다고요?

-아, 네. 잘은 모르지만, 그…눈이랑 이빨이…그리고 막 으르렁대는 소리에다가…

콜린스는 자유로운 손으로 휘적거리며 얼굴을 가리켰다.

-흠, 부분 변화한걸 봤군요. 어땠어요?

-…신기하더라고요.

콜린스는 피부에 실이 지나가는 느낌에 몸을 살짝 부르르 떨며 대답했다.

-드문 광경을 보셨네요. 저는 실습 할 때 딱 한 번 본적이 있어요. 정말 이상하고 신기하지 않나요? 어떻게 그렇게 진화 했을까요? 의사인 제가 하면 더 우습게 들릴테지만, 달에 사람을 실어 보내는 요즘같은 때도 수인에 대한건 과학적으로 밝혀진것 보다 불가사의한 부분이 더 많아요. 정말 마법과 같죠. 그걸 가까이서 보다니, 운이 좋았다고 말하고 싶지만…수인에게 물린 사람에게 이런 말을 하면 부적절하겠죠?

콜린스는 습관적으로 어깨를 으쓱하려다가 움직임을 멈췄다. 그러자 여의사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말해야 하겠네요. 경관님. 운이 좋으셨어요. 제 말은 보기 힘든 광경을 본 거 말고요. 상처 말이에요. 보통 늑대들은 한번 물면 돌이킬 수 없도록 확실히 헤집어 놓거든요. 근육과 뼈에 손상이 갈 정도로 강하게 물거나 마구 흔들어서 깊고 넓게 상처를 찢어 놓죠. 그래야 사냥감이 빠져나가도 피를 많이 흘리게 되고 흔적을 남기며 멀리 도망가지 못하니까요. 경관님의 경우라면 어깨를 물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거리였을 텐데…흠, 나 같으면 목을 물었을 거예요. 아, 그러니까 제 말은 진짜로 그러고 싶다는 게 아니라.... 그게 더 유리했을 거라는 거죠. 제가 뭐 사람 목을 물어뜯을 기회를 항상 기다리고 있다는 게 아니고요.

곧이어 여의사는 자신이 얼마나 모범 시민이며 선량하고 제대로 된 정의관과 양심을 가졌는지 횡설수설했지만, 콜린스는 이미 그녀의 말을 한참 전부터 놓치고 있었다.

늑대? 늑대라고?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듣고서 넘겨짚어 개과 수인인 것 같다고 넘겨짚고 있었지만 ‘늑대’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맙소사. 늑대라니… 진짜 늑대도 보기 힘든 세상에 늑대 수인이라니!

-…늑대라고요?

중얼 거리듯이 되물은 콜린스의 물음에 여의사는 콜린스의 얼굴을 힐끔 올려다보았다.

-그래요. 늑대요. 아마 경관님을 물고서 상처를 헤집지 않으려고 꽤 인내심을 짜내야 했을 거예요. 수인들은 본능이 강한 편이거든요. 특히나 포식자들은 사냥할 때의 본능을 누르기가 어렵고요. 작고 온순한 강아지들도 장난감을 일단 입에 물면 마구 흔들어 대잖아요? 고양이 수인 앞에서 레이저 포인터를 사용할 때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와 같죠. 이제 제가 왜 운이 좋다고 말했는지 좀 이해가 되겠죠?

-어떻게 아셨어요?

-아, 저 어릴 때 친구 중에 고양이 수인이 있었거든요. 한번은 선생님이 수업하실 때 레이저 포인터를 사용하셨는데…후- 그 애가 의자에서 자꾸만 들썩이는 이유를 미리 알았다면…

-아뇨, 제 말은 늑대 이야기 말이에요. 늑대 수인이라고요?

-오…오! 그거 말이죠! 오면서 들었어요. 그 애가 늑대 수인이란걸 알게 되자 아무도 수술실에 들어가고 싶어 하지 않아서 지원자를 찾았거든요. 저도 지원했지만 보시다시피 쫓겨 났어요. 아니…제 말은 쫓겨나서 경관님 상처를 치료하는 게 싫다는 건 아니고요. 아마도 저의 어머니 때문일 거예요. 이 병원에 거액의 기부금을 내셨는데 그 딸이 수인을 치료하다가 잘 못 되면…그렇다고 제가 순전히 제 어머니 덕으로 의사가 된 건 아니니까 걱정 마세요. 정 의심스러우시면 제 의대 성적표도 보내드릴 수 있어요. 제 입으로 말하기는 부끄럽지만, 저 꽤 괜찮은 학생이었…

여의사는 꿰매 던 상처에서 고개를 들고는 콜린스의 얼굴을 보고 아차 하는 표정이 되었다. 콜린스는 한쪽 눈썹을 들어 올렸다.

-어…음…그러니까. 걱정 마세요. 그래도 무사히 수술실에 들어갔으니까요. 그 늑대 소년은 제대로 필요한 치료를 받을 거예요.

-파리어에요.

-…?

-그 늑대 소년 말이에요.

여의사는 민망했는지 입술을 말아 물고서는 한동안 조용했다. 콜린스는 잠시간 망설이다가 물었다.

-…늑대 수인이 흔하지 않은가요?

-음…그런 편이죠. 아시다시피 막 수인들의 존재가 드러났을 때 인간에게 위협이 될 거라고 분류된 대부분의 포식자 클래스의 수인들은 대대적인 사냥을 당했고, 자기들에게 총구를 들이대는 사냥꾼들에게 맞서 싸우던 모습과 그때의 어두운 과거가 지금의 맹수 수인들의 공포스러운 인식을 만들었잖아요? 먼저 성급하게 나쁜 결정을 내린 건 인간인데, 그런 인간들을 상대로 살아남기 위해 싸운 게 아이러니 하게도 지금 그들의 족쇄가 되었으니까요. 사람들은 자기 편한 대로 보고 믿는 법이고…자신들의 잘못을 상대의 탓으로 만드는 거야 어렵지 않았겠죠. 특히나 그 상대가 이해할 수 없고 자신들과 무척이나 다른 존재라면요. 때문에 살아남은 몇 안 되는 맹수 개체들은 되도록 몸을 사리며 살고 있고, 그러다 보니 서식지와 형태 또한 지켜지지 못해서 파괴되거나 변형되어 악순환은 계속되죠… 다른 인간 친화적인 수인들이 사회에 그나마 잘 적응하고 받아들여진 것과는 다르게요. 오랜 옛날처럼 자연에서 서식하며 살 수도 없고, 그렇다고 사회에서 온전한 대우나 혜택도 받을 수 없는데 어떻게 번성하겠어요? 오늘만 해도 봐요.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한 사람들이 그 애가 늑대 수인이라는 것을 알자마자 그 애 수술실에 들어가기를 거부했잖아요?






콜린스는 응급실의 침대 가에 불편하고 딱딱한 좁은 의자에 앉아서 피곤한 몸을 어떻게든 편하게 기대 앉으려고 몇번이나 조심스럽게 뒤척였다. 오늘 유난히 과하게 마신 커피 때문인지 침침한 눈과 달리 잠은 좀 처럼 쉽게 오지 않았다. 그 늑대 소년의 수술을 집도한 의사는 소년의 온 몸에 난 상처들이 질기고 유연한 물건으로 얻어 맞은 상처인 것 같다고 의심했다. 콜린스와 의사가 마주 보고 서서 강력하게 일 순위로 떠올린 도구는 가죽 벨트였다. 그들의 추측은 그럴듯했다. 실제로 몇몇 상처의 시작에는 벨트의 버클 부분인 것이 분명한, 선명한 모양의 피멍이 들어 있었고, 잘 들여다보면 완전한 모양으로 찍힌 것도 있었다. 불행하게도, 그게 끝이 아니었다. 소년의 몸에는 오늘 새로 난 상처 말고도 수 많은 오래된 흉터 들이 많았다. 의심되는 도구는 다양했고, 오늘 벨트로 사정없이 얻어 맞은 자국도 자국 이었지만 깨진 유리 조각에 긁히고 박힌 상처들은 꽤 처치하기 까다로웠다고 했다. 상처에서 유리를 꺼내는 것도 손이 많이 갔지만 자잘하고 깊이 박히거나 베인 상처를 일일이 꿰매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동안 잃은 피도 상당했다. 아슬아슬 했지만 다행히 수혈까지는 받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그리고 그건 거의 기적적인 일이라고 했다.

늙은 파리어의 아들인 토마스 파리어는 이제 겨우 17살이었다. 그것도 간신히 며칠 전에 생일이 지난 참이었다. 그러니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16살이었다는 말이다. 그의 몸에 있는 흉터들의 추정 시간대는 다양했고, 적어도 몇 년 전 부터 시작되었다. 그렇다면 얼마나 작고 어릴 때부터 이런 일이 반복되어 왔다는 것인가. 잔뜩 화가 난 콜린스가 들은 말은, 그 동네에서 이런 일로 신고가 들어온 것만 해도 신기한 일이라는 것이었다. 그곳은 길거리에서 사람이 총을 맞아 죽어가도 모른 척 하는 그런 동네 였다. 그나마 들어온 신고도 시끄럽다며 불평하는 소리 였으니… 콜린스는 다시 한번 몸을 반대쪽으로 기대면서 불편하게 구부린 긴 다리를 어떻게든 편하게 만들어 보려고 꼼지락 거렸다. 흰 병원 침대에 소년의 핏물에 떡 진 검은 머리가 흐트러져 있었다. 콜린스가 어떻게든 닦아내 보려고 공을 들였지만 별 효과가 없어 보였다. 콜린스는 괜히 계속 말라붙은 피 부스러기를 사방으로 흩트려 놓기를 포기하고 소년의 머리카락들을 깔끔하게 뒤로 넘겨 놓았다. 소년은 어머니를 닮은 게 분명했다. 섬세한 얼굴선에 높고 반듯한 코, 두툼한 입술은 기가 막히게 조화로워서 10대 후반의 질풍노도의 소년의 얼굴이라기엔 지나치게 예쁘장한 구석이 있었다. 늑대 수인이라니. 콜린스는 언뜻 어릴 적에 본 늑대인간 영화를 떠올렸다. 인간과 늑대가 합쳐진 기괴한 괴물의 모습은 이 소년과는 전혀 매치가 되지 않았다. 실제로 수인의 변화한 모습을 본 적이 없던 콜린스의 상상력은 그 영화에서 봤던 조악한 분장과 CG가 합쳐진 모습에서 더 나아가질 못했다. 언젠가 뉴스에서 본 완전히 변화한 여우 수인의 모습은 너무 흐릿해서 그저 커다란 그림자 속에서 번뜩이는 두 눈동자 정도 밖에 분간이 안되었다. 어쩌면 진짜 늑대의 모습에 더 가까울 지도 몰라. 콜린스는 두툼한 드레싱 위로 어깨의 상처를 쓰다듬으면서 토마스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늙은 파리어와 닮은 점은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말끔한 얼굴이었다. 아무리 그쪽이 마약과 술로 일찍이 망가진 얼굴이라는 것을 감안해도. 얼굴 곳곳에 있는 자잘한 상처와 생채기들 사이에, 소년의 오른쪽 눈썹 쪽에 두툼하게 드레싱이 붙어 있었다. 조금만 빗 맞았으면 실명이 됐을 수도 있었을 거라는 의사의 말을 떠올리자 콜린스의 속이 다시 한번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그는 찾지 못했어. 아무래도 그 애가 깨어나면 물어봐야 할 것 같아.

전화기 너머에서 알렉스가 그리 좋지 않은 소식을 전했다. 콜린스는 엉망인 자신의 제복을 빤히 쳐다보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복도 벽 쪽으로 몸을 돌렸다.

-내가 여기 있다가 깨어나면 물어볼게.

 …괜찮겠어? 너도 다쳤잖아. 쉬어야 할 것 아니야. 근무도 끝났는데. 

-걱정 마, 별거 아니야. 그리고 의사 말이 난 기적적으로 살아 남을 수 있을 거래.

콜린스의 장난 섞인 말에 알렉스가 나직이 웃음을 터뜨렸지만 곧 잦아들더니 정적이 흘렀다.

-…여자애는 아직 네 옆에 있어?

 응. 어쩌겠냐, 나이를 불문하고 여성들이 나에게 빠지는 것을. 내가 죄인이지... 나한테서 떨어지려고 하질 않아.

이번엔 알렉스가 우스갯소리를 했다. 그리고는 나직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이 녀석도 입을 열지 않아. 그냥 제 오빠한테 데려다 달라고 만 하더라고. 배가 고팠는지 경찰서의 스낵 자판기를 다 털어줘야 했다니까. 보니까 한동안 뭘 제대로 먹은 것 같지 않더라. 내 지갑의 현금을 다 쓰고도 피터한테 20달러나 빌렸어. 크리스 선배가 냉장고에 꽁쳐둔 커다란 샌드위치도 순식간에 애 배속으로 사라졌다니까. 불안해 하는 것 같아 서에 있는 담요랑 쿠션 들을 잔뜩 깔아서 요새처럼 만들어 줬더니 잠들었어. 이쪽에서 더 자게 뒀다가 깨어나면 데리고 갈게.

그 말은 알렉스도 이미 근무 시간이 끝났음에도 경찰서에 눌러붙어 있을 예정이라는 거였다. 콜린스는 알렉스의 그런 태도에 소리 없이 빙긋이 웃었다. 그러면서 콜린스 보고는 들어가 쉬라고 하다니. 콜린스는 잠시 망설였다. 알렉스가 데리고 있는 그 작은 여자애가 늑대 수인이라는 것을 알려줘야 할까?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나 하는 생각이 콜린스를 괴롭혔다.

-알렉스… 너에게 말해야 할게 있어.

…뭔데? 무슨 일 있어?

-그런 건 아니야. 그냥…네가 알아둬야 하는 일이야.

알렉스는 자신이 어떤 이를 보호하고 있는지 알아야 했다. 그리고 어떤 위험을 감수하고 있는지도. 그다지 옳은 일 같이 느껴지진 않았지만 그래도 오늘 내내 콜린스 역시 비슷한 경고를 들었다.

-소피아 라고 했던가? 그 아이 말이야…

 뭐, 늑대 수인인 거 말이야?

-…알고 있었어?

당연하지, 밴더빌트 선배가 소피아를 무슨 에어리언 알 처럼 힐끔 거리면서 귀띔 해 주더라.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건지. 참나. 소피아가 위험하게 만든 건 우리 서 스낵 자판기 재고 뿐이라고. 그리고 내 지갑이랑.

그 말에 콜린스는 웃음을 터뜨렸다. 특히나 마지막에 붙인 말에 진심 어린 통탄이 섞여 있었기 때문에.

알렉스는 수화기 너머에서, 콜린스는 병원 복도에 기대서서 잠시 아무 말도 없이 서 있었다. 콜린스는 자신의 손톱을 내려다 보았다. 병원에 도착해 어깨 처치가 끝나자 마자 화장실에 들려 피에 젖은 손을 몇번이나 씻어냈지만 소년의 피들은 용케 짤뚱한 손톱 속에 들어가 끈질기게 남아있었다. 거기다 아직 갈아입지 못한 제복에서 움직일 때마다 피 냄새가 났다. 알렉스와 콜린스는 둘 다 소리 내서 말하지 않았지만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동학대. 아직 아무도 섣불리 말로 꺼내지 않았지만 분명해 보였다. 몇 번 경찰서에서 얼굴을 봤던 늙은 파리어는 제 생각보다 더 끔찍한 인간이었다. 콜린스와 알렉스가 처음으로 경험한, 피가 낭자한 엄청난 사건이었지만, 다른 낯선 사람들에게 자신을 경찰이라고 소개했을 때 그들이 바라는 굉장한 경험담으로 입에 올릴 만한 일은 결코 아니었다.




콜린스는 불편하게 꺾인 목에서 느껴지는 뻐근한 통증보다, 자신의 피부를 따끔 꺼리게 만드는 시선에 반응해 눈을 떴다. 소년이 침대에 누어서 자신을 빤히 보고 있었다. 순간 샛노랗고 시린 안광이 빛나던 짐승의 눈동자가 환영처럼 일렁 였지만 뻑뻑하고 피곤한 눈을 꿈뻑 이면서 다시 초점을 맞추자 따뜻한 헤이즐넛 색이 살짝 섞인 녹색 눈이 콜린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콜린스는 좁은 의자에서 괴상한 포즈로 졸았던 게 분명한 자신이 민망해 재빨리 자세를 바로 하고 손으로 얼굴을 쓰는 척 일단 소년의 시선에서 도망쳤다. 그러다 지금의 자신의 민망한 기분 보다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떠올리고는 헛기침을 몇 번 하고 입을 열었다.

-큼…일어났구나. 날 깨우지 그랬어.

-...

-괜찮니? 몸은 좀 어때.

-...

소년은 말이 없었고, 눈 한번 깜박이지 않고 콜린스를 올려다보고만 있었다. 콜린스는 어색한 기분으로 흘러내려 이마를 간지리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 넘기면서 소년에게 시선을 맞췄다.

-난 잭 콜린스야. 기억하니? 나와 파트너 알렉스가 신고를 받고 너희 집에 출동 했었어.

콜린스는 저녁 내내 응급실 한켠의 간의 침대 옆에서 구겨져서 졸다가 일어난 제 몰골이 생각하는 것 만큼 끔찍하지 않기를 바랬다. 그리고 소년이 그 이유로 이렇게 자신을 빤히 보고 있는 게 아니기를.

-...소피는 어디에 있나요? 제 여동생이요.

소년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비록 완전히 잠겨있고, 쉬어서 쇳소리가 섞여 났지만 발음은 또박또박 하고 단정했다. 그가 목을 가다듬고 다시 말을 잇자 좀 더 명확하고 정리된 목소리는 한층 부드럽고 매력적으로 들렸다. 창피한 이야기지만 이제껏 겪어왔던 그쪽 동네에서 경찰서를 방문한 이들의 배움의 수준이나, 특히 가깝게는 술주정뱅이 늙은 파리어의 말투와 태도를 떠올리며 당연히 가지고 있던 편견들이 산산이 부서졌다. 콜린스는 살짝 놀라고 인상 깊었다. 그리고 부끄러웠다.

-소피아는, 내 파트너와 함께 경찰서에 있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안전하니까. 지쳤는지 널 찾다가 잠들었대. 깨어나면 병원으로 데려오기로 했어. 그리고 필요하거나 궁금한 게 있으면 나에게 말하면 돼.

-…감사하다는 말을 기대하신 거라면, 경관님.

소년이 콜린스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죄송하지만 쓸데없는 일을 하신 거에요. 별일도 아닌데 소란을 피우신 거라고요.

단정한 말투였지만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별일도 아니라니, 쓸데없는 일이라니. 지금 자신의 몸 상태가 어떤지 알고나 하는 말 일까? 몸에 꽂혀 있는 링거 주삿바늘 들의 의미는? 그전에 온 몸이 부서질 것 처럼 아플 텐데, 상처 마다 욱신거리며 열이 오르고, 꿰맨 자국에선 뜨겁고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질 텐데. 아직 의식이 없는 토마스의 링거 카테터에 주사기로 진통제를 넣던 간호사가 콜린스를 향해 경고하듯 말했던 것이 떠올랐다. 수인들은 체온도 높고 약물 분해도 지나치게 빨라서 진통 효과가 미미할 수도 있으니 아파한다고 병원을 탓하지 마세요. 투여 할 수 있는 진통제 양은 한정되어 있으니까요 - 물론 그 정해진 양은 인간 기준일 것이다. 그리고 병원은 이 레드넥 맹수 수인에게 관대해 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 간호사 말대로라면 아마도 분명히 고통스러울 터였다. 콜린스는 토마스의 몸이 어떤지 봤다. 몇 시간 전에 제 손으로 수습한 그 피들을 쏟아낸 상처 들이나, 오랜 시간에 걸쳐 생긴 흉터들을. 그것들의 의미와 무슨 상황들을 겪어왔는지도 짐작이 갔다. 분명 어둡고 끔찍한 것들임이 분명 했다. 그리고 소년이 이런 말을 태연하게 내뱉게 되기까지 그동안 어떤 일들을 겪어 왔을지 생각하자 콜린스의 안색은 더 어두워졌다.

-토마스... 이렇게 불러도 되겠지?

콜린스는 파리어라는 그의 성을 떠올리기도 싫었다. 늙은 파리어가 떠오르니까. 다행히 소년, 어린 파리어는 고개를 끄덕여서 콜린스가 그를 이름으로 부르는 것을 허락했다.

-그래, 토마스. 너에게 물어봐야 할게 있어…혹시…

-…넘어졌어요.

토마스는 미처 콜린스가 말을 다 끝 마치기도 전에 단호하게 말했다.

-계단에서요. 그리고 치료하려고 걸어가다가 화병도 깨뜨려 버렸고요. 유리 조각에 찔려서 피가 났고, 정신을 잃었나 봐요. 가벼운 뇌진탕이나 뭐 그런 거겠죠. 그나저나 그 화병은 어머니가 남기고 간 얼마 안 되는 물건인데 아깝게 되었네요.

콜린스는 그 말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노골적으로 내비쳤다. 하지만 어린 파리어는, 토마스는, 아랑곳 하지 않고 별로 그럴싸하게 꾸미는 노력 따위도 하지 않은 거짓말을 태연하게 내뱉고는 입을 다물었다. 그가 한 이야기 중에 유일하게 진실 처럼 들린 거라고는 어머니가 남기고 간 화병이 깨진 것이 아깝다는 것 정도 였다.

-토마스…난 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고 싶어. 나에게는 솔직하게 말해도 돼. 날 믿어. 내가 널 도와줄 수 있어.

콜린스의 말에 토마스가 피식 하고 웃었다. 하지만 즐겁고 유쾌한 종류의 미소는 아니었다. 콜린스는 그 비틀린 입가가 제 가슴을 푹 하고 찌르는 것 같은 통증을 느꼈다.

-…말한 대로에요, 경관님. 그냥 넘어진 거에요. 저는 멍청하게 덤벙대는 편이거든요.

-그럼 소피아는 왜 벽장 안에 있었던 거니?

-...그 애와 저는…숨바꼭질 놀이 중이었어요. 제가 바보 같이 상처 입은 채로 벽장 앞에서 쓰러진 바람에 갇혀 있게 됐나봐요.

거짓말. 콜린스는 눈을 가늘게 뜨고 소년을 내려다 보았다. 정말로, 진짜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토마스의 말은 완전히 거짓말 이었다. 콜린스는 알 수 있었다. 토마스가 길고 긴 상처 처치를 받는 동안 현장을 둘러본 이들의 추측은 이랬다. 일단은, 집안은 콜린스와 알렉스가 들어간 흔적 말고는 딱히 외부 침입을 의심할 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집안의 창문들은 오랫동안 열린 적이 없어 보였고, 화병이 깨진 것 말고는 집안의 어떤 것도 의도를 가지고 건들인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런데 누군가 알렉스와 콜린스가 집 안으로 들어가기 몇 분 전까지 거실의 소파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카펫을 물들이고 있는 피의 양을 보면 토마스는 적어도 한 시간은 넘게 피를 흘리며 벽장 앞에 쓰러져 있었을 것이었다. 벽장 안에는 소피아가 있었고. 그리고 그녀는 겁에 질리고 너무 울어서 지친 것을 빼면, 멀쩡해 보였다. 토마스는 그를 공격한 게 무엇이든, 누구였든 소피아를 지키려고 한 게 분명했다. 상황이 나빠지자 소피아를 벽장 안에 숨기고 그 앞에서 버티고 있었을 것이다. 아마도, 그의 몸에 나 있는 수 많은 상처를 보면, 이런 일은 오래전 부터 계속되어 온 게 틀림 없었다. 하지만 소피아의 몸에는 아무런 상처도, 의심되는 흔적 하나 없었다. 토마스는 이런 일을 오랫동안 해 왔다. 기계적으로 내뱉는 저 거짓말 같은 변명은 결코 그럴 듯 해 보이진 않지만 그렇게 믿고자 한다면 문제는 없어 보였다. 굳이 복잡하고 불편한 일에 휘말리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이 허접한 거짓말을 자기 편할대로 믿는 척 했을 것이다. 콜린스는 어렵지 않게 토마스가 그의 상처들을 발견한 사람들에게 방금 처럼 별거 아니라며 저 말들을 내뱉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었다. 지금 처럼 무표정하고, 아무 감정 없는 말투로.

토마스 몸의 상처들을 만든 이는 분명, 늙은 파리어 일 것이다. 누군가 정기적으로 무려 늑대 수인인 토마스를 공격하기 위해 집에 들리는 것이 아니라면. 하지만 소피아는 멀쩡했다. 늙은 파리어가 분별 있게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은 아닐 텐데. 애초에 그런 분별력이 있다면 이런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어야 하니까.

상황이 일그러지자 분명 토마스가 소피아를 벽장 안으로 밀어 넣었을 것이다. 그리고 늙은 파리어가 소피아를 건드리지 못하도록 그 앞에서 버티고 모든 걸 견뎠겠지.

알렉스와 콜린스가 추측한 이 간단한 이야기는 다이시와 케네스 선배도 힘을 실어주었다. 늙은 파리어와 행방이 묘연해진 그의 아내, 토마스와 소피아의 어머니는 어린 시절 부터 시작된 온갖 작고 큰 범죄 목록이 끝이 없었다. 체포 기록은 말할 것 없었고, 과거에 꽤 오랜 형을 살고 나온 적도 있었다. 소년원에서 진짜 감옥에 이르기 까지. 하지만 토마스의 기록은 완전히 깨끗했다. 노련한 케네스 선배는 혀를 차며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런 집안에서 용케 이 나이 때까지 깨끗 했지만 어차피 미래는 뻔할 거라고, 곧 무슨 짓이든 저질러서 제 아버지나 어머니의 전철을 밟을게 분명하다며 씁쓸하게 중얼거린 그의 말에 콜린스는 얼굴을 딱딱하게 굳혔다.

빈민층의 수인들을 생각하면 케네스 선배의 말을 완전히 부정하기는 힘들었다. 짐승의 야만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고, 보통의 인간 보다는 더 빠르며 몇 배는 강한데다가 필요에 의해 모습을 자유자재로 변할 수 있는 수인들이 제대로 된 교육은 커녕 온갖 범죄와 차별, 마약과 폭력에 노출 된 빈민가에서 자라면,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미래는 비슷비슷했다.

그들은 쉽게 다른 이들을 상처 입힐 수 있었고, 말 그대로 사회로 부터 보호받지 못하고 외면 받는 척박한 세계에서는 그런 수인들의 능력이 나름 유용하게 쓰였다. 약육강식과 무법자들의 불문율이 있는 곳은 언제나 사회의 어두운 곳에 존재한다. 수인들은 갱단에 들어가 난폭한 일을 앞장서서 하는 행동 대장이 되거나, 범죄를 저지르는데 방패막이가 되기 일 수 였고 그러다가 총에 맞아 객사하거나 체포 당해 감옥살이를 하게 된다. 그런 식으로 잡혀들어온 수인들은 더욱더 혐오의 대상으로 감형을 받기도 어려웠고, 대놓고 차별 받으며 심하면 완전한 짐승 취급을 받았다. 그리고 그들의 분노는 점점 걷잡을 수 없어지고 그렇게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파리어의 집 현관문이 완전히 고장 난 상태로 방치 되어 있는 이유도 어렵지 않게 넘겨짚을 수 있다. 파리어는 늑대 수인이었고, 그의 아들도, 딸도 그랬다. 맹수 수인의 집에 함부로 침입하는 멍청한 인간은 없겠지. 그나마 점점 심각해지는 차별과 빈부격차를 줄여보자고 정부에서 내놓은 정책 때문에 특수범죄나 강력범죄자, 혹은 특별히 경고해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체포기록이나 다른 신원 서류에는 수인인지 아닌지 표기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콜린스와 알렉스는 파리어 가족들이 수인인지 몰랐으나 케네스 선배는 오랫동안 늙은 파리어를 상대해 왔으니 파리어들이 맹수 수인임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유난히 잔소리를 해대며 굳이 콜린스 네를 백업하러 달려온 이유도 그 때문일게 분명했다.

케네스 선배가 콜린스의 찢겨나간 어깨를 들여다보며 지나가듯 한 수인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와 이야기는 콜린스를 울컥하게 만들었다. 그 애는 괜히 저를 공격한 게 아니에요. 여동생을 지키려고 한 거 라고요. 아직 작고 힘없는 여동생을요. 콜린스의 말에 케네스 선배는 그저 눈썹을 이마 위로 들어 올렸을 뿐이었다.

아무리 피투성이라고 해도 어린 파리어가 완전히 모습을 바꾸고 콜린스를 물었다면 어깨 채로 팔이 뜯겨 나갔을 지도 몰랐을 일이었다. 혹은 앞발로 할퀴기만 했어도 내장이 너덜거릴 정도로 극심한 상처를 입힐 수 있었겠지만 어린 파리어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의 태도는 경고 정도에 그쳤고, 보통 인간 조차도 악의를 가지면 이것 보다 훨씬 더 심각한 상처를 만들 수 있었다. 특별히 그가 수인이라서 콜린스를 일부러 상처 입게 만든 건 아니었다. 공무수행 중인 경찰을 공격했다는 이유로 뭔가 행동을 취할 거냐는 선배의 말에 콜린스는 고개를 저으며 입을 다물었다. 지금껏 수인에 대해 특별한 문제의식도, 혹은 그들의 인권을 위해 애쓰고 고민해 본적은 없었지만 이건 확실했다. 어린 파리어, 토마스가 당장 다른 이들에 질책 받거나 어린 나이에 수갑을 차는 일은 없을 것이다. 적어도 콜린스의 어깨를 물었기 때문에는 아니다. 그 애를 내버려 두세요. 콜린스가 선배에게 말했다. 저는 괜찮아요. 그 애는 그냥 내버려 두세요. 그 말에 선배는 다행히 말꼬리를 잡지 않았고 어깨에 두툼한 패치를 붙이고 피투성이 제복을 입은 채 병원 대기실 의자에 앉아 있는 콜린스를 잠시 내려다 보다 그저 어깨를 으쓱이고는 돌아섰다.

좋아, 그건 좋은 신호였다. 선배는 이 일을 대충 사고로 처리하고 보고서에 -피에 굶주린 짐승처럼 달려들어 공격했다- 따위의 말이 들어가지 않으면서 콜린스가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능숙하게 얼버무려 줄 것이다. 이게 최선이야. 토마스는 단지 다치고 겁에 질린 채 여동생을 지키려고 노력 했을 뿐이었다. 제 손으로 이렇게 만든 아들이 피를 흘리면서 정신을 잃고 있는 상황에서 그의 아버지는 샌드위치를 씹으며 소파에 앉아 있었다. 차가운 맥주를 곁들이면서. 콜린스네가 도착 했을 때서야 귀찮은 일을 피하듯이 집을 나간 게 분명했다.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어야 그럴 수 있지? 개자식.

-...경관님.

콜린스는 한참 생각에 빠져 있다가 자신을 부르는 토마스의 목소리에 현실로 끌려 나왔다. 자신도 모르게 턱뼈가 아릿할 만큼 이를 악물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딱딱하게 굳어 있던 얼굴을 풀면서 최대한 부드러운 말투로 대답했다. 콜린스는 그에게 화가 나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응?

그러자 어린 파리어는 내내 치켜 뜨고 있던 눈을 살짝 내리깔더니 조용한 목소리로, 그리고 날카롭고 단호하게 벽을 치고 있던 목소리를 슬며시 누그러뜨리며 물었다.

-…소피가 뭘 좀 먹었나요?

-내 파트너 말로는 경찰서에 있는 스낵 자판기를 다 털렸다고 하던데. 잠에서 깨어나면 제대로 된 음식을 먹여야 하겠지만.

그 말을 내뱉으며 콜린스가 피식 하고 웃자, 토마스의 입가도 살짝 호선을 그렸다. 아까와는 다른 느낌의 미소였다. 한층 부드럽고, 따뜻하고 다정했다. 그래서 콜린스는 더 속이 불편해졌다. 토마스가 잠시 눈을 내리 깐 채로 망설이더니, 슬쩍 자신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눈에 걱정과 죄책감이 언뜻 비쳤다.

-...어깨는 괜찮으신가요? 경관님.

-걱정 마, 내 상처를 꿰매 준 의사 말로는 난 살아 남을 거래.

콜린스의 농담 섞인 가벼운 말투에도 토마스의 얼굴엔 죄책감과 걱정이 그대로 그늘져 있었다.

-진짜야. 꿰매 긴 했지만 몇 바늘 되지도 않았어. 내 파트너가 깨진 병으로 이마를 긁힌 적 있었는데 그거보다 형편없이 적게 꿰매서 별 얘깃거리도 못 될 것 같으니 아쉽게 됐어. 그 녀석이 자랑 처럼 상처 이야기를 떠들어대는걸 드디어 이겨 먹을 수 있을 까 했는데. 그 애긴 이젠 정말 지겹단 말이야.

물론 완전히 반대였다. 그때야 말로 알렉스는 5바늘도 꿰매지 않았고, 이제는 흉터도 흔적 없이 사라져서 그 이야기를 꺼낼 때 그럴듯하게 보일 흔적이 없어졌다며 알렉스가 아쉬워 할 지경이었지만, 콜린스의 어깨는 그것보다 확실히 몇 배는 더 심각한 상처 였다. 하지만 콜린스는 일부러 가볍게 말했다. 어쨌든 아까 말 그대로 생명에 지장도 없을 뿐더러 뭔가 크게 잘못 된 것도 없으니 별거 아니란 말은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 않는가? 콜린스는 자신의 상처에 크게 신경 쓰고 있지 않았으므로 토마스도 그랬으면 했다. 죄책감은 지금 토마스에게는 필요 없어 보였다. 토마스는 여전히 의심을 지우지 않은 채 걱정되고 불안한 눈치였다. 콜린스는 토마스가 자신에게 마음을 쓰고 있다고 확신 할 수 있었다. 흔히들 수인에 대해 말하는 것 처럼, 토마스는 단순하고 흉포한 짐승처럼 굴지 않았다. 콜린스의 생각을 증명하듯 토마스가 어색한 듯이 고개를 살짝 돌리면서 작게 중얼 거렸다.

-죄송합니다. 경관님.

-그냥 잭이라고 불러도 돼. 나도 널 토마스라고 부르니까.

-...

-…아니면 콜린스라고 하던가.

-죄송합니다. 콜린스.

그가 이번엔 시선을 똑바로 맞추면서 사과해 오자 콜린스는 웃어 보였다.

-그리고 그 옷도요.

콜린스의 제복은 여전히 토마스의 피로 물들어 있었고, 어깨 쪽은 상처를 치료 하느라 아무렇게나 뜯겨 나가 있었다. 덕분에 지금 콜린스는 실제 그의 몸 상태보다 훨씬 나빠 보였다.

-걱정하지 마, 옷은 또 새로 지급받으면 되니까. 예비 복도 여러 개 있어.

토마스는 입을 다물고 다시 조용해 졌지만 계속해서 콜린스를 신경 쓰고 있는 것 같았다. 토마스는 쉬어야 했다. 그를 더 닦달 해 봤자 아까 그가 말한 말에서 더 다른 이야기를 들을 수는 없을 것으로 보였으므로 콜린스는 마음을 굳혔다. 물어야 하는 것도, 말해야 하는 것도 아직 남아 있었으나 토마스의 얼굴은 아직도 파리하기 짝이 없어서 콜린스는 남은 모든 것을 내일 아침으로 미루기로 했다. 토마스는 이런저런 진통제와 약물의 힘으로 언뜻 보면 멀쩡해 보였지만 분명히 괜찮은 것과는 거리가 먼 상태였다. 지나치게 피를 많이 흘렸고, 상처 투성이에 아직 열이 다 내리지도 않았다.

-넌 얼른 다시 자는 게 좋겠어. 그동안 덜 흉측하도록 나도 옷을 좀 갈아입고 올게. 그러면 네 마음도 편해지겠지.

-…다시 오실 필요 없어요. 저는 보호자가 붙어 있어야 할 만큼 어리지 않아요.

-아니야, 내 생각엔 네가 다시 눈을 떴을 때 네 곁에 누군가가 있는 게 좋을 것 같아.

토마스는 눈을 살짝 크게 뜨고 콜린스를 올려다보았다.

-네 아버지가 어디 있을지 아니?

-…아마도요. 한 5-6개쯤 되는 술집을 돌아다니고 계실 거예요. 아직 아버지에게 술을 내 주는 곳을 찾아서요.

-좋아, 그곳의 리스트를 만들어 줄 수 있겠어?

-별로 아버지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데요. 말했다 시피, 별일 아니었어요.

콜린스는 토마스를 비난하는 눈으로 보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비록 그에게서 나오는 말이 신빙성 이라고는 하나도 없게 들려도.

-제가 병원비를 걱정해야 하는 게 아니라면 그냥 제 발로 걸어서 돌아가 제가 왜 병원 신세를 졌는지, 집안이 그런 꼴인지 아버지에게 설명해도 될까요?

토마스의 고집은 꺾을 수가 없었고, 그를 쉬게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콜린스도 끈질기게 굴 수는 없었다.

-그래, 알았어. 알았어. 일단은 이쯤 하자. 넌 어서 다시 자는 게 좋겠어. 벌써 눈이 풀려가고 있으니까. 병원 침대가 불편하겠지만…그래도 편하게 쉬도록 노력해봐.

충분히 보통 사람이라면 제대로 된 병실에 들어갔을 테지만, 병원에서는 어린 파리어가 빈민층에, 맹수 수인이라는 이유로 시끄러운 응급실의 간이침대만 배정해 주었다. 심지어 입구에 가까워서 응급실의 문이 열리고 닫힐 때마다 찬바람이 밀려 들어왔고, 무장한 병원 경비들이 유난히 이쪽 근처를 주시하며 어슬렁어슬렁 거리고 있었다. 콜린스가 항의 했으나 병원 쪽의 입장은 변함이 없었다. 그가 만일 흥분이라도 해서 수인화 한 채로 난동을 부리면 어떡 하냐며 되려 당장에라도 쫓아내기라도 할 것 처럼 당당히 굴었다. 그곳에서 더 이상 콜린스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형편없이 좁고 딱딱한 매트리스에 온 몸에 상처를 두르고 누워 있는 토마스가 편하게 있을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콜린스는 이 모든 것이 괜히 제 책임인 양 마음이 무거웠다.

-걱정 마세요, 제집에 있는 침대 보다는 훨씬 편하니까요.

끔찍한 병원 응급실의 침대가 편하다는 소리를 듣게 될 줄은 몰랐다. 콜린스는 그런 생각을 내색하지 않고 토마스의 어깨까지 이불을 덮어주었다. 토마스는 그런 손길을 받는 것이 무척이나 어색해 보였다. 하지만 곧 아무 말 없이 눈을 감았다. 콜린스는 그가 완전히 잠들기를 기다리면서 다시 좁고 딱딱한 의자에 앉았다. 온 몸이 찌뿌둥하고 저렸지만 이젠 불평할 생각도 들지 않았다. 파리어의 집 위층에 올라가 보지도 못했지만, 어떨지 충분히 짐작이 갔고 콜린스는 더 깊이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다. 대신 어떻게든 좁은 공간에서 편하게 다리를 펴 보려고 조심히 꼼지락 대는 것에 열중했다.




좋은 냄새가 났다. 나직하고 조곤조곤한 목소리와 명랑하게 웃는 익숙한 웃음소리가 귓가를 간지리다가 멀어졌다. 토마스는 반쯤 깬 상태에서 아직 꿈속을 헤맸다. 더럽고 냄새나는, 특히나 제 피 냄새가 진하게 나는 카펫에 고개를 처박고 누워 있는데 멀리 보이는 부엌의 식탁 밑에서 바퀴벌레가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소피아가 울면서 벽장 문을 두드릴 때마다 쿵쿵 거리며 제 등이 울렸지만 그녀를 달랠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목 안은 꽉 막힌 것 같았고 입술을 움찔 할 힘도,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도 없었다. 온 몸이 타들어 가는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얼어 붙은 것 처럼 감각이 없었다. 자꾸만 감기는 눈과 점점 춥고 차가워지는 몸에 그냥 이대로 죽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다가 억지로 신음을 내뱉으며 감기는 눈을 부릅떴다. 안돼, 포기하면 안돼. 소피아를 남겨두고 그럴 수는 없었다. 제 작은 여동생은 아직 토마스가 필요했다.

가까운 곳에 차가 멈추는 소리가 났고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 졌다. 누군가 현관문 앞에 서 있었다. 그리고 곧 아버지가 나직이 투덜거리는 소리와 발소리가 가까워 졌다. 그가 토마스를 향해 쓸모없고, 약해 빠진 새끼라면서 욕지거리와 함께 침을 뱉었다. 토마스는 몸을 긴장 시켰다. 그가 소피가 들어가 있는 벽장 문을 열려고 할지도 몰랐다. 움직이지 못하는 자신과는 이미 용건이 끝났으니까. 그는 반항하지 못하고, 움직임이 없는 사냥감에는 흥미가 없었다. 하지만 가까워지던 묵직한 발소리는 곧 자신을 지나쳐 부엌을 통해 뒷문을 열고 닫는 것으로 멀어졌다.

그가 갔다. 이제 다행히도 집안엔 자신과 소피아만 남았다. 그러자 묘한 안도감과 함께 제 의지와는 상관없이 다시 몸은 축축 처지고 눈은 감겨 들었다. 모든 감각이 희미해지고 발끝과 손 끝 부터 차갑고 딱딱하게 식는 것이 소름 끼치게 느껴졌다. 아... 안돼…소피아가... 소피.소피. 

까무룩 정신을 잃었던 것 같았으나 자신을 매만지는 낯선 손길이 느껴졌다. 차갑게 식은 몸에 닿는 다른 이의 체온이 델 것 처럼 뜨겁고,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낯선 냄새. 낯선 이가 제 구역을 침범하고 심지어 제 상처를 헤집고 있었다. 벽장 안에는 아직 소피아가 있었다. 본능이 선수를 쳤다. 토마스는 거의 무의식중에 움직이는 것을 움켜잡고는 으스러뜨릴 듯이 힘을 주며 경고했다. 그리고 올려다보자 시야는 온통 황금색과 바다 색깔로 어지러웠다. 초점이 맞지 않아 여럿으로 흩어지고 나눠지던 형상이 또렷해 지자, 흰 얼굴에 커다랗고 쳐진 눈의 남자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바다색의 그의 눈동자에 경악과 걱정이 파도처럼 잔뜩 울렁이고 있었는데, 무엇을 위한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남자가 뭔가 자신에게 말했다. 뒤늦게 깨닫고 보니 자신이 움켜쥔 것은 남자의 손목이었다. 하지만 당장은 아무것도 상관 없었다. 소피... 소피. 벽 장안에서 그녀가 꼼지락 거리는 기척이 느껴졌다. 그녀에게서 지치고 슬픈 냄새가 흘러나왔다. 아... 소피, 울지마. 자신을 붙들고 있는 남자 말고 집안을 돌아다니는 다른 침입자의 기척이 느껴졌다. 위협하듯 으르렁 거리는 소리는 고통과 신음에 막혀 처음엔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수인화를 해서 목줄을 물어 뜯으면 간단히 해결 되겠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자신은 짐승이 아니었다. 본능이 자신을 지배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본능을 지배한다. 그렇다고 경계를 내릴 수는 없었다. 또 다른 남자가 금발의 남자의 등 뒤로 불쑥 튀어나왔다. 토마스의 몸은 저절로 긴장되기 시작했다. 낯선 사람, 낯선 사람들!

벽장문 쪽이 소란스러웠다. 안돼 소피! 벽장문 너머로 그녀의 혼란스럽고 겁에 질린 감정이 느껴졌다. 침입자들 사이에서도 날 선 긴장과 위협적인 분위기가 선명해졌고, 누구 것인지 모를 두려움의 냄새는 점점 더 짙어졌다.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자신을 제대로 움직일 수 없도록 꽉 끌어안은 남자를 떨쳐내기 위해 온 힘을 다해 그를 물었으나 그는 꼼짝도 하지 않고 그냥 어깨를 내주었다. 소피아가 제 이름을 부르며 흐느끼는 소리가 명확하게 들렸다. 그녀가 침입자의 손에 얌전히 안겨있었다. 소피아는 지쳐있는 것을 빼면 괜찮아 보였다. 침입자들 에게 서는 약간의 공포와 긴장감, 고통의 냄새를 빼면 다른 위험한 낌새는 느껴지지 않았다. 움직임을 따라 황금빛 머리카락이 하늘거렸다. 깜박임도 잊고, 홀린 듯이 새 하얗고, 반짝이고, 좋은 냄새가 나는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그제야 자신을 부드럽게 쓰다듬고 있는 손길이 느껴졌다. 나직하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속삭였다. 입안에서 달콤하고 깨끗한 피 맛이 났다.

걱정하지 마, 내가 여기에 있어. 정신을 잃지 마 나를 봐.

노력했다. 토마스는 남자의 말대로 하려고 최선을 다했지만 눈앞이 흐려지고 깜깜해졌다. 아…제기랄. 안돼… 아버지의 말이 맞았다. 난 쓸모 없고 약해 빠졌다.







눈을 뜨자, 낯설고 지나치게 밝은 조명과 공간 속에서 익숙한 냄새가 났다. 소피아의 냄새. 그녀는 웃고 있었다. 겁에 질리지도, 주눅이 들어 있지도 않고 기분 좋은 냄새들만 났다. 그리고 시야에 또렷한 금발 머리가 형광등 아래서 반짝이며 빛이 났다.

-콜린스! 톰이 깨어났어.

불쑥 시야를 가득 가리며 튀어나온 소피아 얼굴은 엉망이었다. 입에 잔뜩 끈적이는 초콜렛 크림이 묻어 있었고, 똑같이 엉망이 된 그녀의 손에는 커다란 도넛이 들려 있었다. 그녀가 움직일 때 마다 슈가 파우더가 이리저리 떨어져 내렸다. 너 임마, 꼴이 그게 뭐냐. 초콜렛 이라니...! 그거 우리 몸엔 엄청 안 좋단 말이야.

-나는 분명히 안 된다고 했어. 토마스. 하지만 소피아가 너무 먹고 싶어 하는 통에, 하나쯤은 괜찮지 않을까 해서. 의사 선생님에게 물어봤더니 그 정도는 괜찮다고 하시더라고 .

마치 제 머릿속을 들여다본 듯이 누군가 답을 해줬다. 흔치 않게 볼을 장밋빛으로 물들인 소피아 뒤로 그 경찰관이 서 있었다. 끝까지 토마스를 끌어안고 괜찮을 거라고 계속해서 속삭였던 사람. 콜린스. 말끔하게 씻고 옷을 갈아입어서 지난 밤 보다 훨씬 보기 좋았다. 그가 커다란 손을 들어 올리자 자신도 모르게 흠칫 하고 몸을 움츠리며 긴장했다. 그러자 콜린스 역시 멈칫하더니 입매가 살짝 딱딱해 졌다. 실수였다. 약한 모습을 보이는 건 자랑스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콜린스는 곧 그런 토마스를 모른 척 하며 더 천천히, 뜸을 들여 손을 뻗어왔다. 그 어떤 위협이 실려 있지 않았음에도 저절로 몸이 긴장해서 뻣뻣해져 왔지만 토마스는 그 중압감을, 정체 모를 공포감을 소리 없이 견뎠다. 그의 부드럽고 긴 하얀 손가락이 성가시게 이마를 간질이던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쓸어 넘겼다. 그 작은 손길이, 자신의 두피를 스치듯이 지나가는 그 찰나의 감촉에 몸의 긴장이 급격하게 풀리고 흐물흐물 해지며 기묘한 기분이 들었다. 어릴 적 어머니가 늑대화 한 제 머리와 등 거죽을 부드럽게 쓸고 긁어주던 때나 느껴봤던 기분이었다. 딱딱하게 몸을 굳히고 긴장했던 것이 무색하게 그 손길이 더 자신을 만져주기를 바랬으나, 콜린스는 손을 들었던 때와 같이 천천히 공을 들여 다시 손을 거둬갔다. 우스운 기대였다. 부끄러움과 실망감 사이에서 어쩔 줄 모르고 있으려니 콜린스가 불현듯 몸을 돌리고 종이백을 들어 보였다.

-혹시 몰라서 갈아입을 옷을 좀 가져왔어. 너희 아버지는 아직 집에 안 들어오셨더라. 소피아는 경찰서의 당직실의 침대에서 늘어지게 자고 아침도 거창하게 먹였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

-알렉스가 생크림이 이-따만큼 올라간 와플을 사줬어. 그리고 딸기 셰이크도 먹었어.

-아, 내 그릇에 있는 베이컨이랑 햄도 몽땅 소피아의 입으로 들어갔어. 이 쬐그만 몸으로 어떻게 그게 다 들어가는 거야? 초콜렛 도넛도 하나만 먹는다고 해 놓고! 어?! 지금 손에 또 들고 있는 건 뭐야?

불쑥 응급실 커튼이 걷히며 어제 제집에 들어와 있던 다른 경관이 고개를 내밀었다. 소피아를 이제까지 데리고 있었다던 콜린스의 파트너인 것 같았다.

-…어? 소피아 말로는 이게 첫 도넛이라고 했는데?

-아니야, 아까 나랑 있을 때도 먹었단 말이야. 저거저거 뺏어야 하는 거 아니야? 개과 수인들은 초콜렛 너무 많이 먹으면 안된다면서?

그는 콜린스 보다 조심성 없이 수인에 대해 입에 올렸지만, 그의 태도는 태연하고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아서 기분을 상하게 만들진 않았다. 소피아도 그의 말에 아무렇지 않아 보였고, 도리어 다리를 베베 꼬면서 콜린스의 뒤에 살짝 몸을 숨기고 수줍은 태도로 종알거렸다.

-…이건 카라멜도 들어간 거란 말이야. 아까 거랑은 달라.

-소피, 안돼. 더 먹으면 아플지도 모르니까 그만 먹어.

토마스의 말에 소피가 천천히 아쉬운 듯이 반쯤 먹다 만 도넛을 알렉스가 들고 있는 도넛 상자에 순순히 내려 놓았다. 그리고는 말 없이 옆에 와 섰다. 콜린스나 알렉스와 있을 때와는 다른 태도였다. 그녀의 눈은 다시 우울해 보였고, 주눅이 들어 있었다. 이런 반응을 바란 것은 아니었다.

-어…하지만 슈크림이랑 젤리가 들어있는 도넛은 어때? 그건 괜찮잖아.

알렉스가 토마스의 눈치를 보며 핑크색 도넛 상자를 흔들었지만 소피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작은 손이 더듬더듬 토마스의 오래된 흉터 투성이인 손을 잡아 왔다. 그녀도 수인이었다. 예민하게 자신에게서 나는 불편함과 고통의 냄새를 맡는 듯이 코를 찡긋 거리고 있었다.

콜린스가 그런 그녀와 자신을 말없이 내려다 보고 있었다. 그가 자신에게 아직 할 말이 있다는 것은 굳이 수인이 가진 예민한 감각 때문이 아니라도 알 수 있었다. 토마스는 제 손을 잡아 오는 소피의 손을 밀어내며 고개를 까닥였다.

-소피, 초콜렛만 아니면 괜찮아. 먹고 싶으면 먹어. 아직 배고픈 거지?

자그만 그녀의 얼굴에 기대의 홍조와 미소가 번졌고, 알렉스는 기다렸다는 듯이 커텐을 더 넓게 벌리며 밖을 가리켰다.

-허락이 떨어졌으니 본격적으로 도넛 시식회를 열어볼까! 소피, 나가자. 우유 사줄 테니까 병원 카페테리아에서 앉아서 먹는 게 좋겠어. 여긴 좁고 넌 잘 흘리니까. 콜린스랑 토미는 둘이 할 이야기가 있대.

소피아와 알렉스가 자리를 뜨자, 토마스는 몸을 일으켰다. 어제 보다 오늘이 훨씬 더 고통스러웠다. 원래 상처들은 그렇다, 새로 생겼을 때보다 시간이 조금 흐른 후가 더 괴로웠다. 하지만 용케 신음을 토해 내지 않고 살짝 비틀 거리긴 했지만 똑바로 허리를 펴고 앉을 수 있었다. 자신이 여기서 징징 대며 엄살을 부리면 제 팩의 명예는 바닥으로 곤두박질칠 테고, 토마스는 그렇게 되도록 두고 볼 수 없었다. 비록 미친 늙은이와 어린 소피아, 그리고 이제는 나이 들어 쓸모없어진 시시한 범죄자들 밖에 남지 않은 팩 이었지만.

-진단서에 보니 영양실조가 있더라.

콜린스가 처음 꺼낸 말은 기대했던 질문은 아니었다.

-…다이어트 중이었거든요, 몸 관리가 지나쳤나 봐요.

콜린스가 그 말에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토마스는 스스로 생각해도 우습기 짝이 없는 말을 하면서 태연한 척, 그리고 끊임없이 자신을 두드리는 신체의 고통을 느끼지 못 하는 척 하기 위해서 애썼다.

-…소피아도? 설마 소피아도 다이어트 중이라고 할 건 아니겠지? 아직 6살이잖아.

-…

-그렇게 무서운 표정 하지 마, 혹시 몰라서 간단한 피 검사 정도만 한 거니까.

노력했지만 천천히 일그러지는 제 얼굴을 힐끗대던 콜린스가 도리어 부끄럽고 불편한 듯이 재빨리 고개를 숙이고는 혀를 내밀어 입술을 핥더니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기 시작했다.

-물론, 너보다 덜 하긴 했지만. 그녀의 영양 상태도 그리 좋은 편 이라고는 할 수 없었어. 수인들은 일반 사람들 보다 먹는 양이 몇 배는 많다던데, 끼니는 제대로 먹고 있는 거야?

아, 젠장. 토마스는 그 말에 처참한 기분이 되었다. 끼니도 제대로 먹지 못할 정도로 궁핍하고 비참한 상황이라는 것이 순식간에 까발려지고 나니 물리적으로 몸에 난 상처들 보다 콜린스기 뱉어내는 걱정 섞인 말들이 더 토마스를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콜린스도 스스로 묻는 말에 긍정적인 대답을 기대하고 물은 건 아닐 것이다. 바보가 아니니까. 물론 음식은 언제나 충분하지 않았다. 정부에서 주는 지원금은 고스란히 아버지의 주머니로 들어갔고, 곧장 그의 도박과 술값으로 소비되었다. 심지어 수도와 전기세도 제대로 내지 않아서 끊기기 일수 였고, 한겨울에도 차가운 물을 받아다 씻어야 할 때도 많았으며 그가 투덜 거리며 못 이긴 척 사 온 식료품들은 너무나 양이 적고 형편없는 것들이었다. 그나마도 그가 집안에 엉덩이를 붙이고 있을 때는 먹을 수 없었다. 뭔가를 꺼내 먹는 것이 보이기 라도 하면 온갖 욕설과 매질이 뒤따라왔다. 그렇지 않은 날은 드물었다. 아버지는 토마스와 소피아에게 툭하면 재산을 축 내기만 하는 기생충 들이라고 소리를 질러댔다. 식사라는 것은 자격이 있는 늑대만 할 수 있는 것이다. 스스로 얻어 내는 것, 사냥감을 쫓고, 성공 해야지만 배를 채울 수 있다. 그게 언제나 아버지가 부엌에서 토마스를 발견하면 뺨을 갈기며 하는 소리였다. 그의 기준에 따르면 집안에서 그 자신 말고는 식사를 할 자격이 있는 늑대는 아무도 없었다. 결국 토마스가 일자리를 찾아 돈을 벌면, 귀신같이 찾아와 난동을 부리거나 겨우 받아온 월급을 빼앗아 가서 형편은 언제나 나아지지 않았다. 조금씩 틈틈이 빼돌려 놓은 돈으로 소피에게는 종종 먹을 것을 사주긴 했지만 언제나 이렇게 버틸 수 없는 노릇이다. 토마스는 하루하루 굶지 않기 위해서 발버둥을 치고, 자신의 쓸모를 증명해야 하는 것에 번번이 실패하는 모습을 콜린스에게 들킨 것 같아 비참 해졌다. 그래서 그냥 입을 다물어 버렸다. 순식간에 좁디좁은 커튼 안은 어색한 침묵으로 뒤덮였다. 콜린스는 허리에 두 손을 얹고 쉼 없이 손가락을 꼼지락 거렸다. 토마스는 자신도 모르게 어느새 그 손가락의 움직임을 따라 귀를 쫑긋 거렸다. 콜린스는 잠시도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사람 같았다. 입술을 잘근 대고, 혀로 핥고, 손가락을 꼼지락 대며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토마스는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그의 입에서 나올 말은 사실 뻔했다.

-...있잖아, 내가 알고 있는 복지사가 있어. 도슨씨라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야. 그라면 너와 소피를 도와 줄 수 있을 거야.

-경관님.

콜린스의 고개가 들렸고, 아직 입을 가만두지 못하고 입술을 말아 물고선 속으로 잘근대며 자신을 빤히 바라보았다. 토마스는 그의 시선에서 뭔가를 읽어내고 말을 정정했다.

-...콜린스. 진심으로 말하는데 필요 없어요. 다시는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예요. 맹세해요. 그냥 소피아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세요.

토마스는 굳이 쓸데없는 자존심을 세우지 않고 얌전히, 최대한 부드럽고 순순해 보이도록 했다. 눈을 똑바로 뜨고 저를 빤히 보는 콜린스로 부터 시선을 피하지 않는 것은 이상하게 어렵게 느껴졌다. 하지만 자신의 의견을 관철해야 했다. 소피와 자신은 집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콜린스는 몇 번 더 시도했다. 그의 말투는 점점 더 부드럽고 달래듯이, 종내에는 거의 애원에 가까워 졌지만 결국 토마스에게 억지로 뭘 강요하지 않았다. 의사가 커튼을 걷고 침대 곁에 섰을 때 콜린스는 자신을 부드럽게 달래던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게 차갑고 의무적인 공무원의 표정으로 돌아가 있었다.

-좋아, 토마스 에드워드 파리어... 톰, 몸 상태는 어떠니?

-괜찮습니다.

의사는 들고 있던 차트와 안경 너머로 자신을 끊임없이 힐끗댔다. 그는 바로 옆에 깔끔하게 다려 입은 제복을 갖춰 입고, 공공장소에서 합법적으로 들어내 놓고 총기를 차고 있을 수 있는 경찰을 옆에 두고도, 수인인 자신을 마주 보고 있다는 것에 겁에 질려 있는 것 같았다. 이런 종류의 사람들은 흔했다. 토마스의 학교에도 이런 아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저 보다 더 많은 혜택과 권리를 누리고 휘두르면서, 태연하게 자신들을 별거 아닌 일로 매도 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 언제나 피해자인 것 처럼 자신을 보면 겁부터 집어 먹고는 수인들을 통제할 수 없는, 말이 통하지 않는 미친개나 길들이지 않은 야생의 짐승을 보듯 했다.

-움직일 때는 어떠니. 어지럽진 않아?

-…괜찮은 것 같습니다. 딱히 불편한 곳도 없어요.

제 말에 콜린스도, 의사도 약간 눈을 의아하게 떴지만 의사는 두려움과 쓸데없는 걱정으로 무시했고, 콜린스는 의사 앞에서 자신을 닦달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래, 그거 다행이구나. 꿰맨 곳이 다시 터지지도 않았고, 유리 조각들도 모두 잘 꺼낸 것 같으니까... 돌아가도 좋아. 3일 뒤 쯤 꿰맨 곳을 다시 보러 오면 좋겠구나, 운이 좋으면 그때 실밥을 제거 할 수도 있을 거야.

-꽤 심하게 다쳤는데 벌써 돌아가라고요? 피도 엄청나게 흘렸는데, 더 상태를 지켜봐야 하는 거 아닙니까?

콜린스가 잔뜩 인상을 쓰면서 나섰다. 그는 일부러 제게 얼굴을 보이지 않으려는 듯이, 약간 위압적인 포즈로 의사 쪽으로 완전히 몸을 돌리고 있었다. 그의 훤칠하고 커다란 뒷모습에서 화가 나고 짜증이 난, 그리고 걱정 섞인 오묘한 냄새와 기운이 느껴졌다. 놀랍게도 그 모든 감정들이 토마스를 위한 거였다. 누군가 이렇게 자신 대신 나서는 건 너무 오랜만이고 까마득한 일이라 낯설고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의사가 뒷걸음질을 치며 콜린스를 올려다보았다. 그의 얼굴에서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어... 꽤 심각해 보였겠지만 그렇게 나쁜 편은 아닙니다. 원래 수인들은 회복이 더 빠르기도 하고요, 이미 충분한 처치를 다 했고, 처방된 링거와 주사도 다 맞았으니 병원에 계속 있어 봤자 저희가 더 해드릴 수 있는 게 없어요. 아마 더 머물러도... 어... 여러모로... 불편해질 뿐일 겁니다. 소염제와 진통제는 충분하게 처방 되었으니 집에 돌아가서 상처를 깨끗하게 관리하면서 약만 제때 챙겨 드시면 돼요.

-…불편해 진다고요? 도대체 누가 말이죠?

콜린스의 말에 의사는 진땀을 빼며 괜시리 안경을 만지작 댔다.

-그러니까…다른 환자분들이 말입니다. 다들 불안해 하고 있습니다. 간호사들이나 직원들도…

토마스는 차갑고 서늘한 분노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뭐라고요? …다시 말 해보세요. 제 눈을 똑바로 보시고요. 의사 선생님. 뭐가 어떻다고요? 그게 환자에게 할 소리입니까? 피를 그렇게 많이 흘렸는데 벌써 일어나서 나가란 소리예요? 당신네가 지레 겁먹고 불편함을 느낀다는 이유 때문에요?!

이제 자신이 나서야 할 때였다. 콜린스가 더 오버하기 전에.

-콜린스. 전 괜찮아요.

토마스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며 그를 말렸다. 사실 움직이기 시작하자 생각보다 몸은 둔하게 느껴졌고, 통증은 더 심해졌으며 어지러웠지만 사실 의사의 말이 맞았다. 자신이 이곳에 더 머물러 봤자 모두가 불편해질 뿐이었다. 모두가.

콜린스가 토마스를 뒤돌아보자 그 틈을 타 의사가 재빨리 달아나듯 자리를 떴다. 콜린스는 그런 의사의 뒷모습을 불만을 가득 담아 흘겨보고는 자신을 향해 눈을 치켜 떴다. 이제 그에게선 걱정보다 짜증과 화가 난 것 같은 냄새가 더 짙게 났다. 또 하나 이 금발의 경찰관에 대해 알게 되었다. 보기보다 다혈질이구나. 토마스는 속으로 혀를 차며 몸을 일으키고는 능숙하게 제 몸에 꽂혀 있던 링겔 바늘을 한 번에 뽑아냈다. 마침 제 침대로 다가오던 간호사의 얼굴이 그걸 보고 희게 질렸지만 자신이 내민 손의 의도를 알아 차리고 알콜에 적신 솜을 건넸다. 바늘을 잡아뺀 팔목에서 배어 나온 피가 침대나 병원복을 적시지 않도록 혀를 내 핥고는 알콜솜으로 꽉 누르자 간호사는 바닥이 끌리는 링겔 줄들을 정리해 나가면서 딱딱하고 기계적인 말투로 말했다.

-문지르지 말고 그냥 꽉 누르고 계세요. 오늘 하루는 물에 닿지 않도록 하고요. 나가시면서 처방된 약과 새 밴드들을 받으실 텐데 설명대로 매일 매일 갈아주시고 3일 뒤에 다시 내원하시면 됩니다.

토마스는 그녀가 나가자 알콜솜 마저 옆에 배치된 쓰레기통에 툭 하고 던져 넣었다. 콜린스가 살풋 인상을 썼지만 완전히 사라진 주사 자국을 보며 다시 입을 다물었다. 수인인 토마스의 신체는 작은 바늘구멍 정도는 순식간에 아물었다.

하지만 몸에 남은 깊은 상처들과 타박상은 다른 이야기 였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온 몸이 아리고 쓰라렸고, 절로 나오는 신음을 참기 위해 이를 악물어야 했다. 토마스는 콜린스가 아까 들어 보인 종이봉투에 손을 집어 넣고 새 옷을 꺼냈다. 아마도 제가 병원에 실려 올 때 입고 왔던 옷들은 폐기 처분 됐을 것이었다. 온통 피에 젖고 찢겨 있었을 테니까.

-…지켜보고 있을 거예요?

-아. 미안.

콜린스는 이번엔 한손을 가슴에 받치고 다른 손은 입으로 가져다 대고 잘근 잘근대며 손톱을 물어 뜯고 있었다. 그가 퍼뜩 제 물음에 민망하게 웃으면서 입에서 손을 떼어내자 부드러운 침 냄새가 났다. 살짝 붉게 달아오르고 젖어 있는 그의 긴 손가락을 보자 왜인지 모르게 뱃속이 간지러웠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천천히 갈아입고 나와.

콜린스는 나갔지만 옅은 하늘색의 커텐 너머로 아른거리는 그의 그림자를 볼 수 있었다. 토마스는 끙끙 대면서 얇은 병원 가운을 벗고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단순히 허리를 숙이고 다리 한쪽을 헐렁하고 낡은 청바지에 밀어 넣는 것에만 한참이 걸렸다. 콜린스가 천천히 갈아입으라고 말 하긴 했으나 그때만 해도 그도 자신도 후드티와 청바지 따위를 주워 입는데 이렇게 오래 걸릴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 했을 것이다. 통증은 점점 선명해지고 식은땀이 났다. 거기다 옷을 끼어 입는 중에도 얇은 천 사이로 서성이는 콜린스의 인영에 심장이 덜컥 걸리며 심박수가 올라갔다. 쓸데없이 밝은 자신의 귀는 오늘따라 유독 더 작고 사소한 소리 까지 놓치지 않고 들었다. 커텐 너머에서 콜린스가 혀로 입술을 끊임없이 핥고 잘근잘근 씹는 소리가 들렸고, 그의 움직임을 따라 공기 중에 그의 냄새가 퍼졌다. 그것들에 집중하고 있으려니 괜히 이상하고 기묘한 기분이 들었다.








  소피는 한껏 들떠 있었다. 그녀의 원피스는 온통 젤리와 슈크림을 흘린 자국으로 얼룩져 있었고, 알렉스는 그가 잘못하기라도 한 것 처럼 민망해 하면서 왜 최선을 다했는데도 소피아의 옷이 이렇게 엉망이 되었는지에 대해 실 없는 변명을 중얼 거렸다. 하지만 옷이 조금 지저분해 져도 상관 없었다. 소피아는 흔치 않게 잔뜩 어리광을 부리고도 귀여움을 받아서 흥분한 상태 였다. 수인의 모습이었다면 꼬리가 사정 없이 기쁨과 즐거움으로 마구 휙휙 대며 돌아가고 있었을 것이다. 

  알렉스와 콜린스는 은근한 눈짓을 교환했다. 일반인이라면 그 찰나의 순간을 놓쳤을 지도 몰랐지만 토마스는 똑똑히 다 보았다. 콜린스가 난감한 표정으로 미세하게 고개를 흔들자, 알렉스의 눈썹이 살짝 치켜 올라가나 싶더니 곧 축 처졌다. 그리고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고개를 돌려서 제 눈치를 보았다. 토마스는 그 모든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제발 좀 이제 자신과 소피아를 내버려 두었으면 싶었다. 그들은 자신들을 이해하지 못 한다. 절대로.

-토마스, 처방 약이랑 드레싱 받으러 갈까? 설명을 들어야 하니까 같이 가는 게 좋겠어. 그리고 식사하러 가자. 어제저녁 이후로 아무것도 먹지 못했잖아. 뭔가를 먹어야 해. 더럽게 싱거운 병원 시리얼 따위 말고 말이야.

사실 토마스는 저녁이 아니라 점심 이후로 아무것도 먹지 못했고, 병원에서 준 시리얼도 나쁘지 않았다. 무엇보다 같이 나온 우유가 유통기한이 한참이나 남아있는 것이었다.

-괜찮아요. 그냥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토마스의 말에 콜린스가 별안간 돌아서서 자신을 내려다 보았다. 아까 의사를 대했을 때 처럼 위압적인 분위기를 풍겼으나 자신에게는 통하지 않을 그런 것이었다. 토마스는 그에게서 나는 부드럽고, 연민과 걱정이 가득 담긴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그가 아무리 어른스럽게 얼굴을 굳히고, 입고 입는 제복의 힘을 빌려도 입안을 초조하게 잘근잘근 씹는 소리 까지는 토마스에게 감출 수 없었다. 깨끗한 입안의 여리고 젖은 살들이 이빨에 살짝 짓물리는 그 소리는, 자꾸만 토마스에게 이상한 기분이 들게 만들었다.

-토마스, 이건 양보해 줄 수 없어. 넌 뭔가 먹어야 해. 내 눈앞에서. 안 그러면 난 네가 네 입에 제대로 된 음식을 집어 넣을 때까지 널 놔주지 않을 거야. 알았어? 내 뒤 주머니에 은색으로 반짝이지만 차게 되면 그리 유쾌하지 않을 팔찌가 있다는 걸 잊지 마. 내가 이용할 수 있는 모든 공권력을 다 들여서, 필요하다면 너를 유치장에 앉혀 놓고 음식을 밀어 넣을 수도 있어. 그렇게 되면 결코 즐거운 경험이나 광경은 못 되겠지. 하지만 난 그렇게 해야 한다면 기꺼이 그렇게 할 거야. 믿어봐, 난 한다면 하는 사람이니까.

완전히 빈 협박 이었고, 설득력도 없었지만 토마스는 괜시리 얼굴을 굳히면서 가만히 서 있었다. 콜린스도 물러서지 않을 것 처럼 팔짱을 끼더니 보란 듯이 토마스를 똑바로 내려다 보았다. 그 덕에 병원을 오가는 사람들이 그들을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언제까지 이러고 서 있을 수는 없었다. 토마스는 꽤 긴 시간 동안 공복 상태 였던데다 피까지 흘렸고,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있지만 온 몸이 당장이라도 산산이 부서질 것 처럼 아프고 기운이 없었다. 거기다 제 앞을 막아선 경찰관은 절대로 먼저 움직이려고 할 것 같지 않았다. 토마스는 이 상황과 자신의 자존심-혹은 팩의 명예를 저울질 해 보았다. 콜린스는 씻고 새 옷으로 갈아입었으나 그에게서는 아직도 피 냄새가 났다. 아무렇지 않은 듯이 굴고 있었고 자신이 문 상처가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 했었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다는 것도 잘 알았다. 당연한 거였다. 그냥 평범한 인간에게 물려도 만만치 않은 상처일 텐데, 자신은… 토마스는 슬쩍 혀로 제 송곳니를 쓸어 봤다. 인간 형태 였기 때문에 길게 자라 나와 있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끝은 날카롭기 그지없었다. 어디까지나 인간 형태의 턱 힘에는 한계가 있으나 수인들은 인간 형태일 때도 보통 인간보다 몇 배나 더 강한 힘을 줄 수 있었다. 콜린스는 언뜻언뜻 제가 문 어깨 쪽을 움직이면서 불편한 듯이 멈칫 거리는 것 까지 감추지는 못했다. 간혹 통증 때문에 슬쩍 미간이 좁혀들기도 했다. 아마도 며칠간은 꽤 고생을 할 것이다. 아, 젠장... 그 때문에 토마스는 그에게 큰 빚을 진 기분이었다. 끝까지 고집을 부려서 그의 기분을 상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토마스는 자신이 물었던 콜린스의 어깨 쪽을 힐끗 바라보고서 소피아를 돌아 보았다. 깡마른 몸에 계절과 어울리지 않는 얇은 원피스 차림의 제 작은 여동생을. 어쩌면 그녀를 제대로 먹일 수 있는 기회일지도 몰랐다.

병원 로비에서 제복 경찰관이 버티고 서서 초췌하고 상처투성이의 소년을 고집스럽게 내려다 보고 있는 광경은 다른 이들에게는 꽤 흥미를 끄는 듯했다. 사람들이 자신들을 힐끔 거리고 작게 속삭이는 소리를 들으면서 토마스는 망설이고 망설이다가, 자존심이 살짝 상했지만 결국엔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러자 콜린스의 차갑게 보였던 새 하얀 얼굴에 미소가 번지며 양 볼에 보조개가 진하게 들어갔다. 그건 완전히 새로운 광경이었다. 그러니까, 이제껏 콜린스가 짓고 있던 단호한 표정이 가짜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도 그랬다. 토마스는 자신도 모르게 멍하니 저보다 살짝 큰 남자를 홀린 듯이 바라보았다. 그의 양 볼이 해냈다는 즐거움에 적당히 상기 되며 눈꼬리까지 보기 좋게 휘어지자 그걸 보고 있는 자신의 눈에서 불똥이 튀는 것 같았고, 입 안에 침이 고였다. 다시 심박수가 미친 듯이 올라가며 손끝이 차가워졌다. 충격적이고 이상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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