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먼 옛날, 세이렌이 모티브가 된 바다의 괴물이자 최상 포식자, 인어가 푸른 바다를 뒤덮을 것이라는 해묵은 예언이 하나 있었다. 바다를 인어가 메우기 전까지, 예언은 허언으로만 여겨졌다. 사람들은 바다를 통해 많은 곳을 오가고 자원을 쟁취하며 마치 바다가 자신의 것이란 듯이 다퉜지만 바다의 분노에는 여전히 당해내지 못했다. 파도가 몰아치면 배가 흔들리고 거꾸로 뒤집혀 인간들이 모아오던 자원들은 오롯이 바다의 안으로 들어갔다. 인간이 아무리 쟁취해보았자 바라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없다는 듯이, 바다는 종종 자연재해를 일으켰고 사람들은 모든 것에 대비할 수 있어도 자연에 대한 대처에는 미비했다. 몇몇은 성호를 그으며 파도를 견뎠고 신에게 버림받기도 하였다. 항해를 돕는 신이 뱃머리에 조각된 휘황찬란한 배 또한 바다의 먹이가 되어 순식간에 사라졌다. 무역선을 노략질하는 해적선도 예외는 아니었다.

어느 날부턴가, 유난히 익사자만 물에 불은 시체처럼 늘어갔다. 예언은 새까만 그림자처럼 사람들의 두려움을 먹고 발밑에 드리웠다. 아무 고민 없이 잘살고 있던 부유한 갑부가 갑자기 암벽 위에서 홀린 듯 떨어지는가 하면 바다에 피서를 하러 갔던 어린 갓난쟁이조차 바닷속으로 먹혀들었다. 유일하게 살아 돌아온 여자는 인어를 보았다며 흐느꼈지만, 그는 자신의 주장을 피력하지도 못한 채 정신병자로 취급해 갇혔다. 하지만 그의 외침은 소수의 언론을 타고 흘렀고 사람들의 심리 내면에 작은 불안감이 조성되었다. 인어. 신비롭고 아름다운 안데르센의 동화는 점점 아이들의 세계에 멈췄고 사람들은 바다를 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바다의 아름다움을 경험해본 자라면 바다를 잊을 수가 없었다. 딱 한 번, 바람을 쐰다면 괜찮지 않을까. 경망한 행동은 목숨과 직결되었다. 바다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목은 바닷물을 마신 듯 바짝 타들어 갔다. 삶의 터전을 지키고자 떠난 어부의 고기잡이배는 어디로 흘러간 것일까, 다신 볼 수 없었다.

살아 돌아온 유일한 여자는 인어가 바다에 빠져 죽은 자기 어머니와 똑같은 모습을 하고 기묘한 노래를 부르며 자신을 바다로 이끌었다고 했다. 마치 홀린 듯 어머니의 뒷모습을 따라가다 바닷속에 전신이 들어가고 나서야 정신을 차린 여자는 가까스로 발버둥 쳐 나왔다. 자신을 노려보는 새까맣게 변해버린 엄마의 눈동자를 여자는 여전히 기억하며 몸을 떨었다. 의사는 여자에게 히스테릭한 장애라며 망상의 일종이라고 그 증세를 규정했다. 누군가가 사람들에게 환각을 보이고 바다로 끌고 간다. 조금 더 현실적인 결론이지만 두려움을 잠재우진 못했다. 공포는 오히려 현실이 되어 사람들을 옭아맸다.

왕국에서도 이를 가만두고 볼 순 없었다. 징병령을 내린 왕은 군사들과 함께 바다로 떠났다. 시민이 없으면 세금이 줄어든다. 돈이라는 세속적인 가치하에 두려움은 금세 잊혔다. 수면을 뒤덮은 파도가 잔잔하게 모래사장을 휩쓸 듯 지나갔다. 바다는 오는 이를 막지 않았다. 푸른 미지 영역의 껍데기를 무기력하게 내놓은 채 나약하고 작은 인간들을 낮은 곳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잔잔한 파도를 타고 꿈처럼, 사람들이 걸어 나왔다. 태어났던 그대로의 모습처럼 헐벗은 사람들이 물에 가라앉은 짧은 머리카락을 해초처럼 늘어뜨리며 색색의 눈동자로 인간들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이 축축한 머리를 털자 수분이 마르며 부드러운 결로 돌아왔다. 사람들의 피부는 비늘이 떨어진 물고기처럼 기묘할 만큼 미끄러워 보였다. 입을 뻐끔거리던 헐벗은 사람들은 일제히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왕은 그 뒤를 기억하지 못했다. 정신을 차렸을 때, 왕과 그를 구한 병사 한 명을 제외한 모든 군사가 무거운 갑옷의 무기를 견디지 못하고 바닷속에서 허우적거리다 사라졌다.

왕은 다음 계책을 떠올렸다. 병사는 난청 질환을 가진 사람이었고 정신을 잃기 전, 노래가 들렸다는 것을 고려해 용병을 모으고 인어 사냥꾼이라는 새로운 용병 직을 발표하며 귀를 막고 인어에게 대항하는 자에게 큰 포상금을 약속했다.

인어들이 바다를 점령하기 시작했을 때의 이야기. 인어 사냥꾼이 되면 가장 먼저 듣는 이야기였다.

물속으로 달아난 인어를 잡기 위해 쓰는 작살이 재희의 바지춤에서 찰랑거리며 햇살에 반짝거렸다. 바다를 찾는 것은 사냥꾼뿐이지만, 바다를 두 번 보는 사냥꾼은 적다. 대부분 인어에게 붙잡혀 바다에 빠지거나 인어를 한 마리 잡아 인어의 사체를 바쳐 챙긴 돈으로 인생을 허비하기 때문이었다. 재희는 돈을 노리고 온 것이 아니었다.

재희는 광활한 바다를 기억했다. 세상의 모든 것이 바다로 채워져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넓고 끝이 없는 푸른 빛의 야수. 길들일 수 없는 아름다운 야생의 것을. 인어가 마지막으로 집어삼킨 고향의 바다를. 인어를 없애기 위해선 명목이 필요했다. 재희는 그 명목으로 용병 직을 택했다.

그를 말리지 않은 사람이 없는 건 아니었다. 여자가 용병 직을 맡는다는 전례가 없기 때문이었다. 인어 사냥꾼은 죽음을 목전 앞에 두고 싸우며, 인어를 잡다 바다에 끌려가도 나라에선 어떤 보상도 주지 않는다. 잡느냐, 죽느냐. 둘 중 하나의 기로만 있을 뿐, 허탕을 친 채 돌아오는 사람은 이야기에 나오는 왕과 난청의 병사 말고는 없었다.

시대적 편견도 재희의 발목을 붙잡았다. 다른 이들은 재희가 바다를 포기하고 평범한 여자아이들처럼 자라길 바랐지만 그 어떤 위로와 충고도 바다를 향한 재희의 마음을 억누르진 못했다.

그것은 갈망을 넘어선 분노였다. 바다를 앗아간, 인어들을 향한 분노.

성인이 되자마자 작살과 칼을 들고 마주한 바다는 그의 몸을 무장한 날붙이들마저 부드럽게 휩쓸고 가버릴 듯 광활하고 아름다웠다. 재희는 말없이 산과 이어진 해안 절벽 위에 앉아 너른 바다를 바라보았다. 산 밑에 펼쳐진 모래사장엔 흰 갈매기 떼들이 모여앉아 모래를 쪼고 있었다. 갈매기들을 덮칠 듯 무서운 기세로 몰아닥치던 파도는 그들의 발치에 부서져 우유색 거품을 부글거렸다. 평화로워 보이는 바다는 재희가 산을 마저 내려와 훌륭한 조각가라 불리는 파도의 손에 세심히 깎인 모래를 맨발로 밟으며 걸으면 다정한 인사를 건넬 것만 같았다. 발목께를 간질거리며 왜 이제야 자길 보러왔느냐고 투정을 부리고, 단순노동처럼 반복되는 퇴적의 과정에 나오는 가슴 속을 진정시키는 일괄된 소리로 자장가를 불러주는 것이다.

그러나 재희에게 허락된 접근은 딱 거기까지였다. 인어는 물 밖에 오래 놔두면 몸이 마른다. 이전, 사냥꾼을 꾀다 덫에 걸려 말라죽은 인어를 본 적이 있었다. 피부가 다 갈라져 푸석푸석해 보였고, 입에 게거품을 문 채 경련을 일으키는 인어는 두 눈은 동공의 구분이 어려울 만큼 홍채와 흰자까지 새까맣게 변한 채 죽은 생선의 눈깔처럼 뒤집어져 있었다. 희미한 빛을 내던 비늘도 볼품없이 색이 더러워져 인어의 비늘로 만든 장식품을 값비싸게 팔던 도매상들은 혀를 찼다.

사냥꾼들이 인어를 말라 죽게 하지 않는 것도 그런 속물적인 이유에서다. 말라 죽어가는 인어의 괴로움을 동조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재희도 마찬가지였다. 이유가 바다를 빼앗긴 분노라는 것을 제외하면 사냥꾼들과 다를 바가 없고, 그도 이를 능히 알고 있었다. 사냥꾼이라는 용병 직을 택한 이유도 자신의 처지를 현실적으로 이해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돈을 무시하는 것도 아니다. 그는 어릴 적부터 돈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깨닫고 있었다.

구차한 이유가 여럿 달라붙지만, 이런 인어의 특성 때문에 인어들도 산지로 나오는 것을 꺼렸다. 산과 이어진 해안 절벽이라 하여도 마찬가지였고 도박을 내걸고 모래사장으로 내려간 사냥꾼은 돌아오지 않거나, 돌아왔다.

재희는 부러 위험한 수단에 뛰어들고 싶지 않았다. 해안절벽이라 할지라도 바다를 가까이서 볼 수 있으니까. 해안가까지 지배된다면 멀리서 보는 풍경마저도 사라져버리겠지만.

재희는 절벽 밑으로 낚싯대를 드리웠다. 인어들이 인간을 홀려 물속으로 데려가는 것엔 여러 방법이 있다. 인어는 표기 문자가 다르지만 언어는 이상하게도 바다가 감싼 나라의 언어와 똑같았다. 인어들은 그 이점을 사용해 말이나 노래, 얼굴 등으로 사람을 꾀었다. 그중 가끔은 스스로 몸에 상해를 입혀 꼬시는 경우가 있다.

낚싯대가 묵직해지자 재희는 단번에 낚싯대를 들어 올렸다. 발가벗은 짧은 머리의 여자가 낚싯바늘에 입천장이 찍힌 채 낚싯대에 매달려 올라왔다.

"월척이네."

버둥거리며 울먹이는 여자가 듣지 못하게, 재희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렇게 질러놓으면 누군가가 써주겠지.

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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