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사원 씨의 문제는 미리 예견된 일이었다.


우사원 씨가 서로를 데려가던 날, 유기동물 보호소의 직원은 근심 어린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여기서 애들 돌봐 주는 거랑 직접 입양해서 키우는 건 많이 다를 거예요. 더군다나 얘는 보더콜리 믹스라서...”

“어차피 제가 데려가면 인간이 되니까 상관없지 않나요?”

“반동물은 인간이 되어도 동물이었을 때의 성향을 따라가는 경우가 많거든요.”


보더콜리처럼 활동량이 어마어마한 개들이 얼마나 많이 버려지는지는 보호소 봉사활동을 꾸준히 해 온 우사원 씨도 익히 알고 있었다. 외모만 보고 데려가는 게 아니라고, 무슨 일이 있어도 파양하지 않을 거라고 약속하자 직원도 비로소 마음을 놓았다. 둘의 행복을 빌면서 직원은 마지막으로 신신당부했다. 


“좋은 신발을 사세요. 돈 아낀다고 저렴한 신발을 신으면 1년 뒤에는 그 열 배를 쓰게 될 겁니다.”


직원의 충고를 농담이라 여긴 것이 실수였다. 서로와 동거한 지 석 달 만에 우사원 씨는 병원을 찾아야만 했다. 그의 발, 정확히 짚자면 족저근막이 비명을 지르며 파업을 선언했기 때문이었다.


'보더콜리 믹스 키우기'의 난이도는 우사원 씨의 상상을 초월했다. 서로는 매일 3시간씩, 그것도 대부분 뛰는 산책을 하지 않으면 좀이 쑤셔서 못 견뎌 했다. 궂은 날씨도 외출에 대한 열정을 막지 못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서로는 산책을 원했다. 개일 때는 장판이나 벽지를 뜯으면서 나가자고 항의했고, 사람일 때는 우사원 씨를 끌어안고 부비적거리면서 목덜미를 깨물었다.


보더콜리의 피가 흐르는 몸을 지닌 짝처럼 우사원 씨도 아웃도어파 인간이었다면 좋았겠지만, 현실은 그렇게 아름답지 않았다. 우사원 씨는 귀엽게 말하자면 나이 든 고양이, 과장하자면 나무늘보나 팬더 같은 사람이었다. 자신과는 정반대인 짝을 보면서 그는 종종 생각하곤 했다. '우서로가 영혼의 반을 가져가면서 내 활동성도 전부 가져가버렸나 보다'고. 그렇다고 이제 와서 뱉어내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 무엇보다도 서로의 요구를 외면하면 돌아오는 후폭풍을 무시할 수 없었다. 낮에 서로를 지치게 만들지 않으면 밤에 우사원 씨가 쓰러져야만 했다.


“너 이제 사람인데 사람으로 쭉 지내면 안 돼? 산책도 줄이고?”


질문을 가장한 부탁을 건네자 서로는 난처해했다.


“그게 말이지. 사람으로 있을 때는 세상이 좁게 느껴지거든. 개일 때보다 시야각도 좁고, 냄새도 잘 못 맡아서.”

“아, 그러냐.”

“지금은 이래도 금방 사람 몸으로 사는 데 익숙해질 테니까 그때까지만 봐줘. 하루에 딱 세 시간이잖아. 응?”


눈웃음을 치면서 애교를 부리는 연인을 외면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특히 30년간 인간으로만 살았고 앞으로도 그럴 예정인 우사원 씨는 두 몸을 지닌 서로의 불편함을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결국 손이 많이 가는 연인을 돌보기 위해 우사원 씨는 집돌이 생활을 강제로 마감했다. 연약한 직장인의 체력과 시간으로는 익스트림 반려견 산책을 수행하기 어려웠기에 사표도 제출해야만 했다.


 그렇게 매일 서로를 데리고 온 동네를 뛰어다닌 지 석 달. 점차 근육이 붙으면서 체력이 더욱 좋아진 서로와 달리 우사원 씨는 피곤에 찌들어 갔다. 쑤시던 다리가 고장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언제부턴가 우사원 씨는 아침마다 짜릿하게 아픈 발 때문에 막 태어난 사슴처럼 비틀거리며 침대 아래로 내려서야만 했다. 마사지와 찜질을 해도 나아지기는커녕 발바닥 통증만 더 심해질 뿐이었다.


“전형적인 족저근막염입니다.”


검사 결과 우사원 씨의 병명은 예상대로 족저근막염이었다. 초음파 사진에 찍힌 염증을 가리키며 의사는 혀를 쯧쯧 찼다. 더 심해지면 수술을 해야 한다는 말에 우사원 씨는 유기견 보호소 직원의 근심 어린 표정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우선은 체외충격파 치료, 스트레칭, 약물 복용 등을 권하면서 의사는 강조했다.


“최대한 걷지 마세요. 족저근막염은 완치도 어렵고 재발도 잘 됩니다. 이대로 오래 방치하면 아예 낫지 않게 되고요. 뛰거나 빠르게 걷는 것도 금물입니다.”


반려인이 되기 전이었다면 누구보다 자신 있게 치료법을 받아들였겠지만, 우사원 씨는 이미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몸이었다. 고민하던 그는 의사에게 물었다.


“강아지 데리고 산책은 해도 됩니까?”


의사는 뭔 맹꽁이 같은 소리를 하냐는 표정으로 그를 돌아보았다.


“걷지 마시라고요.”

“저도 안 걷고 싶은데 보더콜리를 키워서 산책을 해야 합니다. 하루 3시간씩.”

“다른 사람한테 강아지 산책을 맡기세요.”

“그게 안 되는데요.”

“그럼 평생 아픈 발로 사셔야죠.”


단호하게 답한 의사가 우사원 씨를 내보냈다.

 


***

 


 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이들 알고 있는 사실. 보더콜리는 똑똑하다. 똑똑하다는 건 보호자 말을 무조건 따른다는 뜻이 절대 아니다. 반대로,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보호자가 못 하게 막아도 머리를 써서 방법을 찾아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럼 넌 자전거를 타고 와.”


앞으로는 산책을 혼자 다니라는 말에 눈만 깜빡거리던 서로가 입을 열었을 때, 우사원 씨는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양가감정에 혼란을 느꼈다. '우리 멍멍이 똑똑하다! 최고 천재다!' 같은 감탄이 절반, '그냥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들어주면 안 되냐?' 같은 답답함이 절반. 어떤 감정도 밖으로 꺼내지 않은 채 우사원 씨는 발로 테니스공을 굴리는 데 집중했다.


“자전거도 발 쓰잖아. 그냥 혼자 가라고.”

“혼자는 심심하잖아. 나는 혼자 노는 거 싫어.”

“그럼 자전거를 네가 몰아. 나는 뒤에 탈게.”

“싫어. 걷고 뛰는 게 좋아.”

“너는 걷고 싶겠지만 나는 앉아 있고 싶어. 걸을 때마다 발이 아프니까.”


말을 마친 우사원 씨는 짧게 한숨을 쉬었다. 흠. 고개를 갸웃거리던 서로가 이내 눈을 빛냈다.


“그럼 내가 인력거를 끌 테니까 그거 탈래?”


대답 없이 우사원 씨는 발을 멈추었다. 그러고는 테니스공을 집어 들어서 멀리 던졌다.


“발바닥 마사지하던 거 던지지 마!”


항의하면서도 본능적으로 벌떡 일어난 서로가 공을 향해 달려갔다. 그렇게 방해물을 치워 놓은 뒤 우사원 씨는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서로의 주장에도 일리는 있었다. 서로 혼자 하는 산책을 상상해 보면 그 역시 걱정이 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서로에게 남아 있는 양몰이 개로서의 본능 때문이었다. 서로는 산책길에서 만난 작은 강아지들의 진로를 방해하며 몰이를 시도한 전적이 몇 번 있었다. 그러다 분노한 치와와에게 정강이를 세게 물린 뒤로는 얌전해졌지만.


무심코 소파에 기대려다가, 우사원 씨는 허리를 꼿꼿하게 세웠다. 그리고 테니스 공을 정신없이 바닥에 튕기며 노는 서로에게 물었다.


“조기 축구회는 어때?”


실망스럽게도 서로의 대답은 단호했다.


“축구는 재미없더라.”

“왜? 네가 좋아하는 공도 실컷 가지고 놀고, 마음껏 뛸 수 있는데.”

“그렇다고 내가 계속 몰고 뛸 수 있는 거 아니잖아. 패스하거나 골대 안에 차 넣어야 하는데.”

“음.”

 

개인적인 감상과는 별개로, 아예 이해가 안 가는 소리도 아니었다. 고개를 끄덕인 우사원 씨는 소파 밑에서 실내용 슬리퍼를 꺼냈다.


“그럼 방법이 없네. 부디 네 다음 연인은 마라토너이기를 빌게.”

“파양 경험이 있는 개한테 이별을 말하다니. 악마다.”

“불리할 때만 선택적으로 강아지 행세냐.”

“종 차별이 아니라 공감 능력의 문제지, 이건.”

“선생님, 그 공감 능력을 제 발 문제에도 발휘해 주시면 안 될까요.”

“저는 개라서 못 알아듣겠는데요. 멍멍.”

“응, 저녁 메뉴 사료다.”

“인간 학대 반대!”


평온한 어조로 이어지던 농담 따먹기는 거기서 끝났다. 서로를 마주 보고 씩 웃은 우사원 씨와 서로는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어떻게 할까?”



***


 

……라는 사연을, 미국에서 활동 중인 위탁소 관리자 U에게 전해 들은 D는 머리를 감쌌다. 원칙상 우사원 씨는 서로가 있던 유기동물 보호소(를 가장한 반혼체 위탁소)에 등록된 상태라 그쪽에서 사후 관리 및 상담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최근 폭발적으로 증가한 반려동물 유기로 인해 그쪽 관리자가 너무 바쁘다는 것이 U의 설명이었다. D의 펫숍이 한가한 것도 결코 아니었지만, 60대 중반인 선배 관리자, 게다가 우사원 씨의 큰고모인 U의 부탁을 거절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했다.


고민 끝에 D는 결론을 내렸다.


“이희건 씨. 내일 법원 출장 말인데요.”

“네! 준비 다 했어요!”

“미안한데, 제가 대신 갈 테니까 이희건 씨는 펫숍으로 출근해서 상담 업무를 맡아 주세요.”

“예? 이렇게 갑자기요?”

“그럴 사정이 있어서요. 미시 씨 데려와서 같이 있어도 되니까 그렇게 해 주세요.”


골치 아픈 문제는 신입에게 떠넘기자고.


전화를 끊은 D는 희건의 담당 서류를 찾아 펼쳐 보았다. 이쪽도 골치가 아프기는 마찬가지였다. 이제 막 50대에 접어든 황구 믹스견 김베르체시아빌더만삼세 씨의 개명 신고를 돕기 위한 출장.


“그러니까 왜 굳이 이 이름으로 주민등록증을 발급해서…….”


중얼거리며 D는 이마를 짚었다. 사랑하는 짝이 지어 준 이름이니 꼭 그대로 쓰겠다고 우기다가 뒤늦게 후회하며 찾아왔던 김베르체시아 이하 생략 씨를 또 만나야 하다니. 그가 내일은 또 어떤 고집을 부릴지 알 수 없었다. 차라리 우사원 씨 커플의 상담이 더 쉽지 않을까. 흔들리던 마음을 다잡고 D는 서류를 덮었다.


보더콜리 반려인의 족저근막염 치료 상담이나, 고집 센 똥강아지 어르신의 괴상한 이름 바꾸기 출장이나. 어차피 그게 그거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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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체시아 빌더만 3세의 이름을 1분 만에 지어준 K님 고맙습니다.

 

소설의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게 심각한 이야기라 뺐는데, 우사원 씨의 큰고모는 오래전에 짝을 잃었습니다. 주인 없이 마을을 떠돌던 커다란 황구가 짝이었죠. 첫 만남 때 인간으로 변했던 짝은 큰고모에게 반혼체의 개념을 설명했고, 고등학생이었던 큰고모가 성인이 될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우씨 집안 사람들은 '나는 반혼체고 이 개가 내 운명의 짝이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큰고모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그 시절 농가의 장녀에게 강요되었던 취업이나 농사일 대신 끝끝내 학업을 고집했던 큰고모가 또 이상한 소리를 한다면서 아니꼽게 여겼죠.

 

그러던 어느 여름날, 큰고모가 잠시 집을 비운 사이 동네 주민들이 짝을 끌고 갔습니다. 가족들은 그 사실을 알고도 방치했습니다. 아직 어렸던 막둥이, 즉 우사원 씨의 아버지만이 큰누나 강아지를 살려 달라고 울면서 어른들을 말렸을 뿐이었습니다.

 

짝이 죽어서 동네 잔칫상에 올랐으며, 가족들까지 그 사건에 일조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큰고모는 분노와 절망과 공포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리고 성인이 되자마자 치를 떨며 고국을 떠나 버렸죠. 우사원 씨의 돌잔치 때를 제외하면 단 한 번도 귀국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



살다 보면 언젠가는 완결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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