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진은 가끔 멍하니 있는 시간이 잦다. 당황하거나 놀랐을 때 특히 더 그렇다. 그럼 그때 무슨 생각을 하느냐. 주로 머릿속에서 인터뷰가 열리곤 한다.

 

Q. 인생 살면서 가장 황당했던 때가 언제인가요?


평소라면 간만에 고향 내려갔더니 부모님이 갑자기 맞선이나 보라며 아진보다 10살이나 많은 동네 남자를 데려왔던 때라고 답했을 거다. 하지만 인생은 황당함의 연속이고 계속 갱신되기 마련이기에. 아진은 앞으로 저 질문이 들어온다면 ‘과외 시작 하루 차에 학생 친언니에게 전여친을 들킨 일이요.’라고 답하기로 마음먹었다.


“야! 송아진! 너 그새 다른 여자 만났냐?”


다시 현실. 아진의 전여친이자 1살 더 많은 고윤서는 대뜸 새경에게 삿대질했다. 그 행동을 보고 나서야 아진은 정신이 돌아왔다.


“나한테는 그렇게 찬밥처럼 굴더니. 뭐야? 환승연애, 뭐 그런거야?”

“언니. 제발 좀 닥쳐...”


얼굴을 손바닥에 파묻은 채 작게 절규했다. 그제야 윤서는 움찔하며 말을 멈췄다. 살얼음판 같은 분위기. 이걸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도저히 모르겠어서 한참이나 아무 말도 하지 못하니 새경이 살며시 아진의 옆으로 다가왔다. 그는 따뜻하고 큰 손으로 아진의 어깨를 감싸기까지 했다.


“아진씨. 누구에요?”

“네, 네?”

“아... 전여자친구?”


‘전’이라는 소리에 윤서는 울컥해 새경의 멱살이라도 잡을 것 마냥 성큼성큼 걸어왔다.


“전? 저어언? ‘아직’ 전 아니거든요? 그쪽이야말로 얘랑 무슨 사이야?”


보다못한 아진이 나서려 했다. 윤서를 진정시키고, 새경은 돌려보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가만히 듣고 있던 새경은 어째서인지 키득대며 입을 열었다.


“나? 나는...”


그가 윤서에게 한 걸음씩 다가갔다. 그럴 때마다 윤서는 뒤로 조금씩 물러났다.


“이미 송아진씨랑 할 거 다 하고.”


새경의 손가락 끝이 윤서의 어깨를 찔렀다.


“볼 거 다 보고.”


새경은 기어코 윤서를 담벼락까지 몰아세우더니 낮게 으르렁댔다. 새경의 그런 행동을 보면서 아진은 입을 딱 벌린 채 뭐라 말도 못했다.


“나눌 거 다 나눈 사이인데.”


제가요? 제가 새경씨랑요? 따지고 싶은데 일단 그냥 내버려 뒀다. 이미 갈데까지 간 거, 중간에 아진이 나선다 해서 달라질 건 없어 보였다.


“어쩌려고?”

“이... 이 여자가 미쳤나...”


당황한 윤서가 손을 올렸다. 처음 보는 윤서의 행동에 아진도 놀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윤서의 그 행동이 기가 찬 건 새경도 마찬가지였나보다. 그는 윤서가 뭘 하기도 전에 윤서의 손목을 잡고 더 성을 냈다. 마치 아진이 진짜 제 연인이라도 된다는 듯이.


“미친 건 그쪽이고. 어디서 손을 올려? 손을 올리긴. 평소 아진씨한테도 이런 식으로 굴었나?”

“뭐, 뭐?”

“한 번 쳐 봐. 돈이며 평판이며 하나하나 다 뜯기고 싶으면.”

“새경씨!”


결국 아진이 새경의 팔을 붙잡고 늘어졌다. 저러다간 진짜 싸움이 날 것 같았다. 뭣보다 시간이 늦었는데 갑작스러운 소란에 동네 사람들이 구경이라도 나온다면 큰일이다. ‘S대 다니면서 과외하는 미래 빌라 학생. 참 얌전하고 선한 줄 알았는데 여자들 사이에 껴서 싸움박질이나 하더라.’라는 소문이 도는 꼴은 죽어도 못 본다.


“그만 해요.”

“아... 죄송...”


새경도 그제야 진정하고 사과를 건넸다. 하지만 아진은 그 사과를 다 듣지도 않고 윤서부터 살폈다. 윤서는 조금 놀란 것 말고는 괜찮아 보였다.


“언니. 여긴 왜 온 거야? 짐도 다 가져갔잖아.”

“아니. 나는 그냥...”


다 따지고 들 것처럼 굴더니. 막상 아진이 가까이 오자 울먹이며 횡설수설한다. 아진은 급히 윤서의 목덜미에 코를 가져다 댔다. 향수로 가렸지만 희미한 술 냄새를 감출 수는 없었다. 어디까지 추해질 생각인 건지. 아진은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술 마셨어?”

“...많이 안 마셨어...”


그냥 아진만의 잘못으로 끝낼 인연이었다면 차라리 나았을 거다. 하지만 윤서가 이런 식으로 나오면 아진은 어떻게 해야 할지 더 모르겠다. 그 복잡한 속내를 눈치챘다는 듯, 윤서가 아진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 차갑고 축축한 손에 아진은 머리까지 어지러웠다.


“아진아. 일단 나랑 얘기 좀 하자. 응? 그땐 내가 너무 화가 나서... 우리 다시 잘 해 보면 안 될까? ”


또. 또 다시 마음이 흔들린다. 잘못해서 차인 쪽은 아진. 차 놓고 먼저 와서 미안하다 하는 쪽은 윤서.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고맙다며. 쌍수 들고 환영하고. 미안하다 빌고. 그래야 하는 건가? 하지만 아진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하는 게 맞는 것 같긴 한데...

윤서에게 만큼은 그러고 싶지가 않았다.


나도 자존심이 있지.


“...대화 하기도 전에 떠난 건 언니 쪽이잖아.”

“뭐? 아. 그래. 아진아. 그러니까 나도 그게 미안해서...”

“우리 이미 서로한테 너무 최악으로 남았는데. 뭘 더 어떻게 해?”


아진의 손을 붙잡고 있던 윤서의 손이 살짝 떨리더니 이내 힘이 빠진 듯 툭 떨어졌다. 그간의 정이고 뭐고, 아진은 윤서와의 관계를 하루빨리 끊어내고 싶었다.


“이만 돌아가.”


윤서는 아랫입술을 잘근 깨물며 고개를 숙였다. 아진은 그게 윤서가 무언가를 포기할 때 짓는 표정이라는 걸 아주 잘 알았다. 그렇게 그는 아진에게 마지막 인사도 제대로 건네지 않은 채 발걸음을 돌렸다. 아진과는 눈도 못 마주치면서, 정작 새경은 3초 이상 노려보고 떠났다더라. 그 모습에 새경도 놀랐는지, 어깨를 으쓱하곤 아진에게 다가왔다.


“아진씨. 괜찮아요?”

“그... 어음... 음... 그게...”


좆됐다. 라는 생각밖에 들질 않았다. 아진은 괜히 새경의 눈치를 보며 그를 힐끗 바라봤다. 옷차림이며, 머리 스타일이며, 이쪽 같긴 한데... 안돼! 어쩌면 이것도 다 편견이다. 올블랙에 숏컷하고 피어싱 주렁주렁 달았다고 다 레즈비언이겠어? 일단 아진이 그동안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높은 확률로 그렇긴 했지만 이건 굉장히 무례한 생각이다. 아진은 우물쭈물하며 어색하게 웃기 바빴다.


“괜찮긴... 한데...”

“음. 일단 잠깐 들어가서 얘기할 수 있을까요?”


역시. 새경의 표정이 사뭇 진지한 거로 봐선 이번 일로 대화가 필요하긴 한가보다. 혹시라도 과외 자른다는 얘기면 어떡하지? 어떻게 얻은 직장인데. 아진은 식은땀까지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근처 카페로 가는 게 어떻겠냐 제안했지만 새경은 거절했다. 어차피 이 시간이면 카페도 다 닫았을 거라고. 맞는 말이긴 한데 아진은 영 불편했다. 청소야 평상시에 맨날 해 놓긴 하지만 새경이 사는 집에 비하면 아진의 집은 창고나 다름없었다. 아진은 잠시 현관에 서서 아진의 집을 둘러보는 새경을 보고 다급히 덧붙였다.


“아... 집이 좀 좁아서... 슬리퍼도 없는데...”

“아뇨. 괜찮아요. 저 어릴 땐 반지하에서도 살았는걸요.”

“아. 그... 그래요?”


생각보다 털털한 사람인가? 새경은 서슴없이 구두를 벗더니 양말만 신은 채로 성큼성큼 들어왔다. 그는 자연스럽게 식탁에 앉아 미소지었다.


“아진씨도 얼른 앉으세요.”

“그 전에... 마실거라도 드릴까요?”

“그럼 감사하죠!”


아진은 찬장을 뒤져 인스턴트 원두커피 믹스를 찾았다. 2잔을 타서 하나는 새경에게 내밀었다. 몇 모금 마시고 관둘 줄 알았는데 새경은 오히려 맛있다며 들이켰다.


“아진씨 커피 잘 타시네요.”

“감사합니다...”


커피 칭찬까지 마치고 나서, 새경은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러니까 방금 그 여성분이 아진씨 전애인이고... 동거 중이었는데 이별 통보하고 집 나갔다는 거죠?”


눈치는 빠르다. 제대로 말 해 주지도 않았는데 벌써 다 꿰찼구나. 아진은 언젠가 윤서에게 집들이 선물로 받은 머그컵을 매만졌다. 하늘색 바탕에 흰 구름이 그려진 컵으로, 똑같은 게 하나 더 세트로 있었다. 윤서가 쓰던 그 컵을 지금은 새경이 쥐고 있다.


“네...”

“이 집은 아진씨 거고?”


새경이 커피를 홀짝이며 물었다.


“네... 월세긴 한데... 그래서 언니쪽이 나간 거예요.”


근데 이런 건 왜 물어보는 거지. 나는 왜 또 죄지은 사람마냥 고개 숙인 채 이걸 듣고 있는 거고? 대체 왜 그러는 거냐고 묻어보려던 찰나, 새경이 먼저 선수를 쳤다.


“아쉽네요.”

“네?”

“쫓겨난 쪽이 아진씨면 오피스텔이라도 하나 해 주려 했죠.”


턱이 땅에 닿았다. 이게 무슨 헛소리지. 아진은 놀라서 말도 제대로 안 나오는데 새경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눈치였다.

이 여자가 미쳤나. 오피스텔 해 준다는 말을 무슨 마트가서 아이스크림 하나 사 준다는 것처럼 하고 있어?


“네, 네? 왜... 왜요?”

“저 아진씨한테 관심있거든요.”


커피를 안 마시길 잘했다. 그랬다간 입에 있던 것들을 전부 뱉을 뻔했으니. 당황한 아진과 달리 새경은 마치 첫사랑을 고백하듯 수줍은 얼굴이었다.

저기요. 저희 오늘 처음 만났어요. 알아요? 


“그리고 방금 아진씨가 여자친구 있었다는 사실에 더 좋았고요.”

“네?”


그러니까. 내가 여자 좋아해서, 오히려 더 좋다, 이거야? 그렇다는 건 새경도 이성애자는 아니라는 소리였다. 아진이 황급히 머리 굴리는 소리를 들었는지 새경이 웃음을 터뜨렸다.


“왜요? 저는 이쪽 아닐 것 같았어요?”

“네? 예?”

“이상하다. 나름 티 많이 낸다고 생각했는데...”


새경이 눈웃음을 흘렸다. 이제보니 저 여우같은 눈웃음은 새라와 많이 닮았다. 아주 자매가 쌍으로... 아진은 그 잘생긴 미소에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 어... 그... 스... 스타일이... 약간 그러... 시긴 한데... 그... 그것도... 편견... 이니까...”

“아하하!”


바보같이 더듬대며 한 말에 새경은 배까지 잡고 웃었다.


“아진씨 정말 재밌는 사람이네요.”

“...제가요?”


웃기다는 소리는 처음 들어본다. 아진은 약간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했다. 새경이 뭘 원하고 한 소리인지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채로.


“그래서 그런데요.”

“네.”

“저 하루 자고 가도 돼요?”

“...네?”


귀를 의심했다. 회사 간다 하지 않았나? 여기서 이래도 돼? 하지만 생각을 깊게 할 시간조차 줄 수 없다는 듯, 새경은 더 노골적으로 들이댔다.


“우리 이미 볼 거 다 본 사이로 소문날지도 모르는데...”


새경이 한쪽 손으로는 턱을 괴고, 반대쪽 속으로는 아진의 손끝을 건드리며 물었다.


“하루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요?”


저 끈덕진 눈빛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아진도 아주 잘 알았다. 하지만 약간의 확신이 필요했기에 아진은 모르는 척, 순진한 척, 한 번 더 떠봤다.


“그... 그러면요...”

“네.”

“제가 거실에서 잘게요.”

“아뇨? 뭐하러요?”


역시. 아진의 예상이 맞았다. 새경은 아예 대놓고 아진의 손가락 사이로 제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별거 아닌 자극에도 온몸에 찌릿 전기가 돋친다.


“그래도... 손님이시니까... 제가...”


아진은 멍한 얼굴로 새경을 바라봤다. 새경은 그런 아진의 눈과 입술을 번갈아가며 쳐다보더니 이내 결심한 듯 식탁에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의 얇고 부드러운 입술이 아진의 입술에 닿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쌉쌀한 인스턴트 원두커피 향이 나는 키스였다. 아진은 게슴츠레하게 눈을 뜬 채 새경의 긴 속눈썹을 바라봤다. 그 역시 천천히 눈을 깜빡이며 아진과 시선을 맞췄다. 그는 적당히 축축하고 뜨거운 혀를 내밀어 아진의 입술을 살며시 핥았다. 이상한 기분. 젠장. 돈도 많으면서 키스도 잘 하네. 아진은 저도 모르게 손톱으로 식탁을 긁었다.


“같이 자요.”


입술을 뗀 새경이 말했다. 자연스럽게 껴진 깍지. 사람 손이 이렇게 크고 부드럽고 뜨거울 수도 있구나. 그건 그렇고 우리 둘 다 술 한방울 안 마셨는데. 고작 이렇게 눈 맞았다고. 키스까지 하고. 더 한 것도 하자고 신호를 보낼 수가 있지. 맨정신인데. 진짜 맨정신인데... 술이 아니라 다른 거에 취한 기분...


아진은 마른침을 삼켰다.


“저 먼저 씻고 나올게요.”


새경이 아진을 바라보며 웃었다. 마지막 쐐기를 박는 건 덤이었다.


“괜찮죠?”


이 여자가. 아주 사람을 뭘로 보는 걸까. 저 잘생긴 얼굴로 꼬시면 다 되는 줄 아나 보다. 보자 보자 하니까 사람을 아주 보자기로 아네.

하지만. 늘 말하지만.

아진은 보자기가 맞았다.


“...네.”


아진은 양말을 벗어 한쪽에 개어 놓곤 욕실로 들어가는 새경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욕실 문이 닫히기 직전, 그는 셔츠 단추를 풀며 문틈 사이로 보이는 아진에게 미소지었다. 아진 역시 미소로 답해주었다.

핑거돔 사 놓은 게 남아 있나 고민하면서.



*****



지훈은 오늘 기분이 좋다. 오랜만에 컨디션이 멀쩡한 것도 있지만 새로 입어본 옷이 마음에 들기 때문이었다.


“어머. 손님! 너무 잘 어울리세요.”

“그렇죠? 제가 봐도 그래요.”


역시. 옷걸이가 좋아야 한다고. 지훈은 생각했다. 그도 그럴게 거울에 비친 그의 모습은 완벽해 보였다. 길고 곱슬거리는 금발머리에 뚜렷한 이목구비. 마치 모델이라 해도 모자람 없는 몸매. 지훈은 보란 듯이 드레스 끝자락을 잡고 이리저리 흔들어 보았다. 마릴린 먼로가 환생한다면 분명 민지훈의 형상을 띄고 있을 거라는 자만은 덤이었다.


“이게 국내에 딱 한 점 남았거든요. 사이즈도 딱이신데요?”


그렇다면 가격표 확일할 여유도 없지. 지훈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이거로 주세요.”

“탁월한 선택이세요. 갈아입고 다른 옷도 보러가시겠어요? 따로 셀렉해 놓은 것들 있어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지훈은 간만에 미소지으며 피팅룸으로 돌아갔다. 흰 바탕에 검은색 자수가 새겨진 명품 드레스를 다시 한 번 훑어보곤 만족스러운 감탄사를 내뱉었다.

다시 옷을 갈아입고, 여유롭게 핸드폰을 꺼내 밀린 연락을 확인하던 참이었다. 별다른 이벤트는 없었다. 인스타그램 좋아요와 팔로우 알람이 다였다. 디엠도 여러개 쌓여있었다. 그 중에는 요새 꽤 잘 나간다는 남자 아이돌에 배우도 있었다. 연예인이 이래도 돼? 지훈은 코웃음 치며 밀린 디엠을 전부 다 지워버렸다.


“하여간. 내가 만만한 줄 알지. 단체로...”


그는 거울을 보며 립스틱을 좀 더 칠했다. 빨간 립스틱을 입술 전체에 진하게 바르는데 문득 쎄한 기운이 전신을 훑었다. 이 지구상에서 모르는 게 없는 나인데, 나 빼고 무슨 일이 일어난 것 같은 기분. 지훈은 그걸 촉이라 불렀고 그의 촉은 틀린 적이 없었다. 그는 다급히 가방에 넣었던 핸드폰을 꺼내 커플 위치추적 앱에 들어갔다. 평소 이 시간대라면 그는 분명 회사에 있을 터였다. 주말이면 술이라도 마시러 갔겠지만 오늘은 평일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핸드폰 액정에 뜬 그의 위치는 회사도, 집도, 하다못해 자주 가는 술집도 아닌 생전 처음 보는 동네의 주택가였다.


“뭐야? 여긴 또 어딘데?”


미래 빌라. 그가 있는 장소였다. 빌라? 어디 아파트도 아니고 빌라? 이번엔 또 어떤 년이길래 빌라야?


“이 미친년이... 또 어디로 튄 거야!”


지훈은 악에 받쳐 비명을 질렀다. 피팅룸 밖에서 잡담을 나누며 옷을 정리하던 직원들이 일제히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하지만 지훈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거울에 머리를 박곤 이를 갈았다.


“미친년. 이 미친새끼가... 이 개새끼가...”


내가 죽는 꼴을 보여줘야 말을 들을까?

언제까지 인내심을 시험할 건지. 지훈은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주소를 캡처해 제 운전기사에게 전송했다. 문자가 날아가기가 무섭게 전화가 걸려왔다.


“아가씨. 여기로 가면 될까요?”

“네. 기사님. 바로 차 빼 놓으세요.”

“네.”


전화를 끊고 지훈은 실성한 사람처럼 웃었다.


“천새경 이 개새끼야...”


이번에도 결코 네 뜻대로 되지 않을 거라며.

이를 갈고, 또 갈면서.

손톱이 손바닥 살을 파고드는 것조차 자각하지 못한 채 연신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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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송아진(주인공)

나이: 24

이상형: 연상.


그렇습니다....


아진이 힘 내라.


쓰고 싶은 걸 쓰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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