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원이면 두 켤레를 사 넌 내가 원하는 걸 알지
흰 티에 청 반바지 빨간 컨버스하이 that’s it


한 선배가수의 노래를 들으면서 지훈은 이 선배 뭐 좀 아네.. 하는 생각을 했었더랬다. 저의 이상형과 같아서. 아, 조금 다른 것이 있다면.. 지훈은 반바지보단 찢청이, 여자보단 남자라는 점이랄까.

데뷔 3년차, 잘나가는 2인조 아이돌 PST의 멤버인 박지훈의 이상형은 정말로 그랬다. 청바지에 흰티, 컨버스하이.. 한 프로에서 이상형을 물어서 말했더니 한동안 그 착장이 팬싸인회에 유니폼처럼 등장했었지... 그치만 저기요.. 컨버스하이라는게 웬만한 다리길이와 몸매로는 소화하기 힘든거거든요.. 게다가 우리 팬분들.. 일단 ‘여자’잖아요..라고 말할 수는 없어서.. 팬들에게 영업미소를 수없이 날렸던 기억뿐이다.

그런데 오늘, 이렇게 소속사 근처 카페에서 자신의 이상형을 볼 줄이야! 그리고 그 이상형의 정체를 알게되자 지금껏 그저 그를 지나치기만 했더 자신의 눈을 원망했다.


그는 (지금은) 같은 소속사인 황민현의 개인 영어과외를 해주던 강다니엘이었다. 지훈이 데뷔할때는 각자의 소속사가 달라, 해외 공연때 몇번 마주친 적이 있었다.

“아.. 햄~ 그 발음이 아이라니까. 내 따라해봐라.”

유창한 원어민 발음과는 달리 아주 투박한 부산 사투리로 민현을 타박하며, 발음을 교정해주던 남자. 그땐 두꺼운 뿔테안경을 쓰고 있었다. 물론 그때도 지나가며 ‘키랑 몸매는 괜찮은 거 같은데.. 얼굴 어쩔..’하며 아쉬워했었는데.
아무튼 작년 말에 민현이 전소속사와의 계약 만료 후, 지금 현재 소속사로 이적한 후로는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만나게 되다니. 심지어 안경을 벗은 그 얼굴까지 매력적이라 쳐다만보아도 귀끝이 달아올랐다.

다니엘도 지훈의 시선을 느낀 것인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곤 자신을 향해 미소와 함께 가벼운 목례를 하곤 시선을 거둬들였다. 아.. 도도해.. 그래.. 쉬운 남자 매력없어.. 어떻게.. 다가가지.. 하고 생각하는 순간 그의 얼굴이 밝아졌고, 한 여자가 맞은 편에 와서 앉았다. 젠장.. 게이가 아닐 수 있단 생각은 왜 못한거야! 등신.

“야! 박우진, 카페가 여기밖에 없냐?”

괜히 같이 커피를 마시러 온 우진에게 투닥거렸다.

“아~ 또 왜 지랄이세요.. 니가 여 커피가 마시고 싶다메? 그리고 여기가 젤 가깝잖아.”
“아.. 진짜..”
“.. 저거 의거이햄 아이가?”
“그게 누구야?”

괜히 모르는 척, 우진에게 되물었다.

“아.. 니 모르나? 예전에 민현햄 영어 과외해주던 햄인데, 지금은 다니엘이라고 하던가.. 암튼.. 둘이 사촌이던가 그랬던 거 같은데. 내랑 부산에 있을 때 같은 댄스학원 다녔다.”
“에? 저 사람이 춤 췄다고?”
“어! 부산에서 비보이 플렉이라고, 꽤 유명했다아이가. 근데 집이 캐나다로 이민갔지. 그러다 한국 다시 왔는지, 민현햄 옆에 있더니 요새 뭐하는 지 모르겠네. 본 김에 인사나 하고 올게.”
“어?? 어..”

짜식.. 같이 가자고 한 번 물어나봐주지. 우진은 거침없는 발걸음으로 다니엘에게 다가갔다. 다니엘과 함께 있던 여자는 깜짝 놀란 눈으로 우진을 바라보았고, 다니엘은 일어서서 우진을 한 번 안아주고는,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얼씨구~? 번호까지 교환? 엄청 쉽네. 우진은 손을 들어 인사를 한 번 하곤, 자리로 다시 돌아왔다.

“이제 한국 아예 들어왔는갑네. 훈아 안가나?”
“여자는 애인이야?”
“어? 안물어봤는데?”

아썅.. 눈치라곤.. 없는 새끼.

◈◈

그 후에도 강다니엘은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지훈이 뻔질나게 그 카페를 들락거렸다. 그러니 자주 마주칠 수 밖에. 그치만 그때마다 가벼운 인사가 전부였다. 그리고 다니엘은 그때와 같이 캐주얼한 옷이 아니라 깔끔한 슬랙스에 니트 혹은 셔츠를 입고 있었다. 쩝.. 그래도 역시 잘 어울린다. 그런데 매번 마주앉아있는 대상이 바뀌는 것이 신경쓰였다. 도대체 뭐하는 사람인거야? 여자들 등꼴이라도 빼먹고 사나? 에이. .신경 꺼야지.

신경꺼야지.. 하고 다짐한 것이 우습게, 그 다음날 지훈의 발걸음은 어김없이 그 카페로 향했고, 다니엘은 그때처럼 찢청에, 흰티에, 청남방을 걸치고, 여전히 이쁜 컨버스하이를 신고 있었다. 인사를 하는 지훈의 표정이 이상한지 다니엘은 평소보다 더 활짝, 그리고 낮은 웃음소리도 함께 인사를 건냈다.

“자주 보내요?”
“아..네..”
“제가 커피 한잔 살게요.”
“감사합니다.”

아.. 박지훈.. 뭐가 이렇게 내숭이야. 조신한 척 굴긴. 지금 당장 저 남방 벗기고, 셔츠를 찢어버리고 싶은데. 어찌어찌 주문을 하고나니 그는 다시 다른 테이블로 간다.

“저는 좀 만나야 하는 사람이 있어서.. 아.. 혹시 우진이 어디있는 줄 알아요?”

연락처도 주고받더니..

“아.. 우진이는 연습실에 있을거예요.”
“그럼, 우진이랑 저녁먹음 되겠네. 같이 먹어요.”
“누구 만나야한다면서요?”
“아.. 음.. 급한 일 없음 그거 다 마실 때까지.. 기다려 주면 안되나? 한.. 30분? ”

마음 같아선 바로 네네네!! 하고 백번쯤 답하고 싶었지만, 나는 PST의 박지훈이다. 나는 연예인이다.. 나는 탑스타다.. 를 속으로 수없이 외치며, 괜히 시계를 보며 잠시 뜸들이다 답했다.

“아.. 뭐.. 알겠어요.”
“꼬맹이, 귀엽네. 고맙다. 조금만 기다려~”

꼬..꼬맹이.. 헙.. 어디서 이런 인소 주인공같은 말투를.. 그리고 머리까지 쓰담쓰담.. 아휴.. 심장 튀어나오겠네.

근처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있으니, 잠시 후 한 여자가 왔다. 평범한 직장인 같은 옷인데.. 얼굴을 썩.. 나쁘지 않고.. 어느새 그 여자를 아래위로 훑어보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둘은 다정히 인사를 하고, 영어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부산사투리가 강하게 들리다 영어를 하기 시작하니까, 영락없는 미쿡오빠네. 아.. 단풍국오빠인가.. 카페문이 거칠게 열리고 다니엘과 그 여자의 테이블로 한 남자가 빠르게 다가오더니, 다짜고짜 다니엘의 뺨에 주먹을 날릴때까지 지훈은 그렇게 멍하니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다니엘, 여자, 지훈뿐만 아니라 그 카페에 있던 손님과 점원의 시선이 모두 한 곳에 집중되었다.

“야 이년아! 너 이딴 양아치 새끼 만나려고 나랑 헤어지자고했냐? 이 씨발. 내가 어디 너랑 쉽게 헤어질 줄 알아?”

여자는 겁에 질려 아무 말도 못했고, 다니엘은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 그 남자에게 차분히 말했다.

“뭔가 오해가 있으신 모양인데, 저는 수진씨랑 아무 관계도 아닙니다. 저는 수진씨 영어회화를 가르쳐주는 사람입니다.”
“뭐? 뭐 이새끼가 어디서 구라를 쳐?”
“아냐, 오빠. 내가 그렇게 말했는데, 오빠가 안믿었잖아! 이게 뭐야? 쪽팔리게! 그리고 헤어지자는 건 오빠 그 손버릇 때문이잖아!”
“뭐라고 이년이, 진짜 보자보자 하니까..”

여자를 때린 것이 처음이 아닌지 남자는 자연스럽게 손을 들었고, 그 손을 다니엘이 잡았다.

“내가 지금 때릴 줄 몰라가 가만히 있는 줄 아나? 어디 남자가 여자때릴라고 손올리노?”
“어! 꼴에 남자라고 그러냐? 어! 야!! 이거 안놔? 안놔???”

남자는 호기롭게 팔을 뿌리치려 했지만, 꼼짝하지 못하고 연신 몸을 비틀며 팔을 빼려고 했다.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자 테이블에 있던 커피를 들어 다니엘의 얼굴과 옷에 뿌렸다. 그래도 다니엘은 손을 놓지 않았다. 오히려 잠시 후 팔이 점점 비틀리기 시작한 남자는 점점 몸을 구겨가며 놓아달라고 애원하기 시작했다.

“수진씨, 수진씨 수강료는 제가 다시 환불해드릴게요. 저희 수업은 오늘로 마무리하고, 그리고 이딴 놈이랑 잘 헤어지셨어요. 어디 할 짓이 없어서 손부터 올라가는 놈을 만나요? 니는 내한테 명함하나 내놔라.”

남자는 잡힌 와중에 낑낑거리며 지갑안에 있던 명함을 다니엘에게 건냈고, 그 명함을 여자에게 내밀어 이름과 회사를 확인했다.

“니, 오늘 일 회사에 다 소문내기 전에 닥치고 있어라 알았제?? 내 눈에 한 번만 더 띄면 니 짤없다. 알긋나? 대답해라.”
“..네..”

그렇게 그 남자와 여자가 카페 안에서 사라지자, 다니엘의 옆으로 지훈이 다가왔다. 커피에 젖어 흰색티셔츠가 상체에 딱 붙어 있어 도대체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이대로.. 진짜 깔리고싶다. 아후..

“저기 형, 형이라 불러도 되죠? 저한테 말편하게 하시구..”
“아.. 그래”
“저.. 옷 다 젖었는데, 머리도 그렇고.. 저희 소속사에 샤워실 있는데.. 갈아입을 옷도 아마 있을텐데..”
“아.. 괜찮은데..”

아니.. 제가 안괜찮아요. 제가 오늘.. 진짜.. 형이랑 좀.. 뭘 해야겠어요...

“그럼 신세 좀 질게..”

소속사로 가는 발걸음이 이렇게 가벼운 적이 언제였던가.. 아마 저번 분기 정산때 이후 처음인 거 같은데. 으흠... 가장 사람 없는 샤워실에 어디더라.. 가면서 우진에게 메세지도 보내놨다. ‘친구의 사랑을 위해 하나만 부탁하자. 3층 샤워실.. 1시간만 아무도 못들어오게 막아줘. 내가 니가 가지고 싶어하던 피규어 쏜다.’ 잠시 후 깔끔하게 답이 왔다. ‘ㅇㅋ’
일단 3층 샤워실로 다니엘을 들여보내고, 그 결과가 어떻든.. 갈아입을 옷이 있어야 하는 건 사실이니까.. 스타일리스트에게 물어 민현형 사이즈의 티셔츠를 하나 구했다.
다시 돌아와 탈의실 벤치에서 다리를 달달 떨고 앉아 있으니, 앞에 누군가 와서 선다. 허리에 수건 하나만을 두른 모습으로. 아 그모습만으로도 이미 지훈의 아랫배에 힘이 들어갔다.

“어.. 형.. 다 씻었어요?”
“꼬맹아, 니.. 오늘 내 뚫어져라 쳐다보대. 니 이상형이라 그러나?”
“네?”
“흰티에 청바지, 컨버스하이”

꿀꺽, 저도 모르게 침을 삼키고, 그 침삼키는 소리가 조용한 탈의실을 가득 메웠다.

“내가 다리가 좀 길고 이쁘다 아이가. 컨버스하이 잘 어울리제? 근데 내 이상형은 벗겼을 때 허벅지가 튼실한 허벅지가 있어야 하는데.. 함 보면 안되나?”

헐... 그리고 어느새 자기 앞에 주저앉아 바지버클을 풀고 지퍼를 내리고, 바지를 내리고 있는 이 남자.. 도대체..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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