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도 1월, 디페스타에서 판매된 회지로, 일부분의 문장이 수정되었습니다. 스토리가 변경된 점은 없습니다.




룬의 아이들 보리스 진네만 가족 이입 드림

3000원

 

주의. 본 회지는 한국과 비슷한 현대의 가상 국가를 배경으로 하며, 트라바체스를 배경으로 하지 않습니다.






보리스가 어색한 얼굴로 초등학교 현판 옆에 섰다. 나는 카메라를 세로로 들고 사진을 찍었다. 음, 잘 나왔어.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보리스가 얼른 내 곁으로 왔다.

교문 주변에는 우리뿐만 아

예프넨은 어쩐지 감동받은 얼굴이었다. 이건 예비 소집일 뿐인데, 입학식에 못 올 것 같아서 그런가? 나는 가볍게 생각하며 핸드폰을 꺼냈다. 조금 전부터 진동이 끊이질 않더니, 메신저의 단체방이 쉼 없이 울렸다.

나는 강당 문을 확인하고 핸드폰 잠금을 풀었다. 단체방으로 들어가자 상단에 고정된 새로운 공지 사항이 보였다.

<※금년도 교육 실습 주의사항※>

특수 문자로 강조까지 한 파일을 다운로드하자 올해 선정된 실습 연계 학교가 보였다. 음…. 나는 메신저에 한마디도 얹지 않고 곧장 메일 앱을 켰다.

‘교수님 제 사촌 동생이 입학할 학교가 실습 예정 학교 중 하나입니다. 괜찮나요?’

라는 내용을 격식 있는 어조로 길게 늘여 적었다. 나는 전송에 성공했다는 안내를 확인하고 핸드폰을 넣었다.

“예프넨, 오늘 기숙사에 안 가도 괜찮아?”

“네, 괜찮아요.”

예프넨은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는 물끄러미 그 표정을 보다 고개만 끄덕였다. 본인이 괜찮다니까, 괜찮겠지. 기숙사에 짐은 이미 다 갖다 뒀으니까, 수업 빼고 온 것도 아니고.

나는 형편없던 내 출석 점수를 외면했다.

안내가 끝났는지 강당에서 아이들이 나왔다. 우르르 밀려 나오는 와중에도 보리스는 보이지 않았다. 키가 큰 편이니 그래도 보일 텐데. 내가 헤매는 사이 예프넨은 어렵지 않게 보리스를 찾아냈다.

“보리스!”

곧 다가온 보리스에게 나는 손부터 내밀었다.

“담당 교실은 어디래?”

“여기요.”

보리스가 들고 있던 책자를 펼쳤다. 그곳에는 교내 지도와 함께 별 스티커가 붙은 건물이 있었다. 2관? 정문이랑 제일 가깝네. 데리러 오면 곧장 찾을 수 있겠다.

란지에도 여기로 왔으면 로잘린 씨랑 번갈아 데리러 올 수 있었을 텐데.

“란지에도 같이 다녔으면 좋을 텐데.”

내 말에 보리스의 얼굴이 흐려졌다. 이사를 우리가 말릴 순 없으니까. 나는 보리스의 손을 쥐고 2관을 향해 걸었다. 예프넨이 곧장 보리스 옆에 붙어서 걸었다.

“그래도 엄청 멀리 간 건 아니니까, 나중에 형이랑 만나러 가자.”

“사범님은 보러 가지도 못해.”

보리스가 불만스레 투덜거렸다. 사범님. 나는 머리를 스치는 인물에 입을 다물었다.

호두 사범님. 동네에 갑자기 나타난 검도장 사범님은 잘 지내나 싶더니 돌연 사라졌다. 이름을 가르쳐주면 아이들이 함부로 부른다고, 호두(Walnut)이라고 자칭하던 사범님. 갑자기 사라진 사범님은 대체 어디로 간 건지.

나는 가라앉은 보리스를 보다 얼른 화제를 바꾸었다.

“기다리면서 보니까 방과 후 클럽 중에 검도도 있더라. 대회에서 상도 타고, 체육관 하나를 통째로 쓴대. 아, 도착했다.”

나는 화사한 색감으로 꾸며진 복도에서 둘을 돌아보았다.

“교실 앞에서 한 장 찍을까?”

“좋은 생각이에요.”

예프넨이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보리스는 조금 싫은 기색이었지만 순순히 5학년 담임 교실 앞에 섰다. 핸드폰에 새로운 사진이 한 장 추가되었다.






나는 한숨을 쉬고,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세요, 하고 반기는 소리가 안쪽에서 났다. 나는 옷자락을 당겨 매무새를 고치고 깊게 숨을 골랐다. 좋아, 나는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교실로 들어가자 앞쪽에 있는 선생님이 보였다. 책상에서 부산스레 일하던 선생님은 나를 보더니 방긋 웃었다. 나는 문을 닫으며 인사하고 천천히 다가갔다.

선생님이 내 쪽으로 완전히 몸을 돌렸다.

“일찍 오셨네요.”

“혹시 몰라서 조금 일찍 나왔어요.”

나는 머쓱하게 웃으며 선생님 앞에 섰다. 선생님은 보조 의자를 끌어당겼다. 앉으란 거겠지? 나는 보조 의자 끄트머리에 엉덩이를 걸쳤다. 선생님은 책꽂이를 뒤적이다가 서류철 하나를 내밀었다.

“필요한 자료들은 거기 모아뒀어요. 교실 시간표랑 출석부. 제가 매시간 테스트를 보는 편이라, 이전에 본 테스트 시험지도 끼워놨고, 저번 교생 선생님 실습 일지도 예시로 넣어뒀어요. 남한테 보여줘도 괜찮다고 하셔서.”

“아, 감사합니다.”

이전 실습 일지라니, 복권 당첨인데? 나는 얼떨떨한 기분으로 서류철을 펼쳤다. 왼쪽에는 아이들 얼굴과 이름이 있고, 오른쪽에는 교실 시간표가 끼워져 있었다. 그 뒤로 쪽지 시험 문제들과 실습 일지가 보였다. 진짜로 있네, 대박이다.

“수업 일정이 그리 바쁘진 않지만 테스트를 매번 보니까 채점 거리가 좀 있긴 해요. 대신에 과제는 거의 내주지 않는 편이니 그걸 관리할 일은 없을 거예요.”

“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출석부를 확인했다. 다들 보리스보다 몇 살은 많아 보였다. 8학년, 아니 9학년? 나는 가장 눈에 띄는, 금발 학생의 사진을 보며 학년을 가늠했다.

뒤늦게 확인한 출석부 앞장에 8학년 두 반, 9학년 두 반이라고 적혀 있었지만…. 쓸데없는 일을 한 것 같지만, 맞춘 데 의의를 두자.

“첫 주는 일단 지켜보면서 아이들을 외워보세요. 선생님이 학생 얼굴도 모르면 안 되잖아요?”

선생님이 방긋 웃으며 말했다. 나는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은 더 할 말이 없는지 나를 가만히 보기만 했다. 음, 지금이 적당한 때인가.

나는 이야기보다 먼저 목을 가다듬었다.

“저, 혹시 들으셨나요?”

내 말에 선생님이 의아한 얼굴을 했다.

“여기에 제 사촌 동생이 다니거든요. 걔네 학급을 맡은 건 아니고, 편애할 생각도 없지만 말씀은 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아, 전체 회의에서 전달받았어요. 그걸 고려해서 이쪽으로 배정했다던데요.”

농담인지 진담인지. 아무리 살펴도 모르겠다. 나는 그저 웃었다.

“수업 시작 전까지 여유가 좀 있는데, 교생실은 이전에 안내받으셨죠?”

“네, 거기 있다가 수업 시작할 때 오면 될까요?”

“그러면 돼요. 거기서 그거 읽어보시고, 아이들 얼굴도 다 확인하고 오세요.”

“그럼 가보겠습니다.”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며 꾸벅, 인사했다.


*****


나는 출석부로 만든 인물 카드를 노려보았다. 사진만 따로 잘라, 뒷면에 이름을 적은 카드는 아이들 얼굴을 외우는 데 도움이 되었다. 일주일 만에 80퍼센트를 외웠으니 효과도 좋고.

하지만 이 마지막 20퍼센트가 징글징글하게 안 외워진단 말이지. 나는 떠오를 듯 떠오르지 않는 이름을 고민하다 찍는 심정으로 뱉었다.

“니케?”

그리고 카드를 뒤집자, 맞췄다. 만세! 나는 허공으로 양팔을 치켜들며 기쁨을 표했다. 그러자 맞은편 책상에 있던 나탈리아 선생님이 부럽다는 듯 보았다.

“벌써 다 외우셨구나….”

“이래도 내일 되면 또 헷갈릴걸요.”

나는 작게 웃으며 카드를 정리했다. 나탈리아 선생님은 내 말에도 한숨만 쉬고, 자기 앞에 늘어놓은 아이들 출석부를 보았다. 나탈리아 선생님은 이제 막 입학한 5학년 담당이라, 사진부터 앳된 티가 났다.

“많이 어려워요?”

“솔직하게 말하면…, 나중에 수업 시연할 거 생각하면 벌써부터 무서워 죽겠어요. 애들 얼굴도 다 못 외우고 시연 들어가면 어쩌죠….”

나탈리아 선생님이 허엉, 하고 우는 시늉을 했다. 얼굴을 다 못 외운 채 시연? 상상만으로 무섭다. 나는 안타까운 얼굴로 나탈리아 선생님을 보았다. 나탈리아 선생님은 양손에 얼굴을 묻은 채 중얼거렸다.

“담당 선생님이 합창부 출석까지 맡겼어요. 어차피 정식 임용되면 합창이나 합주 맡을 가능성이 크니까 하라는데, 이제 막 입부한 학생도 있고.”

나탈리아 선생님은 한숨을 내쉬며 손을 뗴어냈다.

“이솔렛 학생 아니었으면 진짜 도망쳤을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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