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윤기를 돌봐준 젊은 유모가 있었다. 나이는 스물 중반 정도. 육아도 집안일도 곧 잘하고 엄마에게도 아버지에게도 흠 잡을데 없이 잘 하는 사람이었다. 유모는 오메가였다. 유모는 좋은 사람이었다. 몸이 약한 엄마가 윤기를 낳고나서 더 악화되어 윤기를 많이 안아줄수 없을때 유모가 대신 안아주고 종일 목마까지 태워주었으니까. 처음 말을 뗄땐 엄마라는 말을 유모에게 먼저 해서 엄마가 펑펑 울었다는 말도 있을만큼, 윤기와 그 젊은 유모는 각별했다. 그리고 엄마가 자주 아파서 검진을 받기 위해 일주일 정도 집을 비운 적이 있었다. 하루만 더 자면 엄마가 오는 날이었다. 


“내일이면 사모님이 오시겠네요. 좋으시죠?” 

“응 좋아!” 

“근데 도련님. 그거 아세요? 빨리 주무셔야 내일이 더 빨리 온다는거.”

“...지금 자기 싫은데.” 

“도련님은 사모님이 빨리 보고싶지 않으신가보다.” 

“아니야! 나 엄마 빨리 보고싶어.” 

“사모님은 도련님이 늦게 주무시는거 싫어하시는데...내일 오시면 다 말씀...”

“나, 나 지금 눈 감았어!”

“귀여우셔라...제가 주무실때까지 자장가 불러드릴게요.” 


유모는 한참동안 노래를 불러주며 윤기가 잠든것을 확인 한뒤에야 머리를 쓰다듬고는 이마에 입을 맞춘다. 좋은꿈 꾸세요 도련님. 곧 불을 끄고 나갔다.


그 동시에 윤기의 눈을 번쩍 떠졌다. 항상 9시면 강제로 자야 했다. 하지만 오늘은 이상하게 더 놀고 싶었다. 낮잠까지 자서 더 잠도 안 왔고...윤기는 아까 반 정도 보던 만화 영화를 마저 보았다. 그리곤 배가 출출해졌는지 과자랑 주스가 먹고 싶어졌다. 지금쯤이면 유모도 잠들었겠지? 


윤기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어 어두운 계단을 한칸씩 내려갔다. 마침내 아래 층으로 내려왔을땐, 온갖 괴기한 소리가 거실까지 울려퍼졌다. 이건 유모의 목소리?...윤기는 누군가가 유모를 괴롭히고 있다고 생각했다. 무섭지만 유모를 그냥 둘수 없었다. 꼬마라고 해도 우성알파는 우성알파, 나도 어느 정도 페로몬을 쓸수 있어...그래봤자 성인 남성을 이기기엔 턱 없지만...윤기는 소리가 나는 방 쪽으로 걸어갔다. 끼이익...문을 살짝 열었다. 한쪽 눈이 문 틈에 딱 맞게 고정되었다. 어두웠지만 어둠 속에 적응이 되어 그런건지 꽤 잘 보였다. 하지만 윤기가 본것은 실로 충격적이었다. 아빠랑 유모가 발가벗은 채로....어린 윤기가 절대 볼수없던 행위였다. 문 틈에서 새어나오는 역겨운 페로몬 냄새가 작은 코를 썩게 할 만큼 지독했다. 그 더러운 관경을 목격한건 고작 열살 때였다. 


다음날, 병원에서 엄마가 돌아왔다. 그래서 오늘은 엄마랑 같이 자기로 했다. 엄마가 윤기의 방에 오기 전, 언제나 그렇듯 유모가 깨끗하게 목욕을 시켜주고 잠옷으로 갈아입혔다. 


“유모.” 

“네 도련님?”

“귀 대봐.” 

“....?” 


윤기는 엄마가 방에 들어오는지 살피기 위해 고개를 두리번 거리다가 유모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나, 다 봤어.” 

“...네?” 

“어제 유모랑 아빠랑, 빨개벗고 이상한거 하는거.”

“....도련님...그때, 주무셨던거...아니었어요?”

“사실 유모 나갈때까지 자는척하다가 만화봤어. 근데 과자가 먹고싶어서 내려갔었어.”

“혹시 지금 그...말 사모님께도 하셨..어요?”

“아니, 아직 안 했어.”

“....하아.”


유모는 안도의 한숨을 쉬고는 곧바로 눈물을 흘렸다. 


“유모, 왜 울어?” 

“....죄송합니다. 정말...죄송합니다. 도련님.”


그 말을 끝으로 유모는 밖으로 뛰쳐 나가버렸다. 그리곤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관계의 묘미 




윤기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아이를 두고 무작정 아버지의 서재로 뛰다시피 걸어갔다. 해야할 말이 많은데 목구멍이 꽉 막혀버린듯한 느낌이었다. 평소라면 노크를 했겠지만 그딴게 지금 뭐가 중요해. 윤기는 문을 벌컥 열었다. 아버지는 오늘 있을 파티에 오는 손님들에게 전화를 돌리던 중이었다.


"할말 있어요." 


노크도 없이 무작정 걸어들어와 제 앞에 선 윤기를 보더니 귀찮다는듯 손짓으로 나가라는 신호를 보내며 계속해서 통화를 이어간다. 하지만 윤기는 그대로 서 있었다. 보다못한 남준이 윤기에게 다가가 말했다. 


“지금은 총리님이 오늘 파티에 초대하신 아주 중요한 분과 통화하고 계십니다. 하실 말씀이 계시면 통화가 다 끊나고 나서 얘기하세요.” 

“형은 빠져, 나랑 아버지 일이니까.”


남준은 짧게 한숨을 쉬더니 윤기에게만 들릴만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윤기야...급한 일 아니면 그냥 나중에 얘기 해. 너가 이렇게 나올수록 총리님한텐 더 마이너스만 될뿐이라는거 알잖아.”

“시발, 형도 내 말이 말같지 않은거지?”

“.......”

“신경 끄라고.”


뚝- 아버지가 하던 전화를 끊고 긴 한숨을 쉬었다. 


“나가있어.”

“예 총리님.” 

“여기있어.” 

“......” 

“왜 굳이 내 보내요. 어차피 이 집안에서 나 빼곤 다 알고있는 얘기 일텐데.”

“....뭐?” 

“나가보겠습니다. 편하게 말씀 나누십시요.”


탁- 남준이 서재에서 나가자 이제 단 둘 뿐이었다. 아버지는 혀를 차며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는 제 아들을 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곤 쯧쯧...하며 혀를 찬다. 


“싸가지 없는 놈, 외국에 좀 나갔다오니까 예의같은건 다 팔아먹고 왔구나. 살기 싫다고 도망온 놈이 아직도 거기서 하던 짓이랑 똑같이 행동하면 어쩌자는거야? 니가 감히 내 비서한테 그런 식으로 대해? 그건 나를 무시하는거랑 같은거다. 이런 기본적인 예의도 지키지 못하는 놈이 사회에 나가서 뭘 할수 있겠어?” 

“...겨우 이딴 걸로 아들을 사회 부적응자 만드시고...대단하시네요. 내 얘기는 들어볼 생각도 안하고 무작정 나가라고만 한건 아버지에요. 저한테 예의 운운하기 전에 아버지부터 지키시든가요.”

“보나마나 또 쓸데없는 헛소리나 하려고 협상하러 온거겠지. 들을 필요도 없는 얘기는 안 듣는게 나아.”

“쓸데없는 얘기인지는 들어보고 판단해요.”

“이 놈이! 뭐가 그렇게 당당하길래 그 따위로 행동을 해? 지금 너 손에 쥐여진게 대체 뭐길래 기어 오르는거냐고!”


화가 난 아버지는 힘을 실어 윤기에게 손을 뻗는다. 


“집에 어린아이가 있던데, 누구 애에요?”

“........”  

“오메가던데?” 


그리고 윤기의 말에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그 나이에 손주 뻘 되는 아들이 갖고 싶으셨어요?”

“.......” 

“그것도 아니면....” 

“.......” 

“자식이라곤 사고나 치고 다니는 한심한 놈 하나라서, 그래서 만들었나?”




관계의 묘미 



“.....도련님? 왜 여기까지.”

“...나, 들켜버렸어.” 

“.......” 

“사진으로만 본 형이 너무 궁금해서...형 방 앞에서 서 있다가 걸려버렸어.”

“.......” 

“형...나보고 많이 화났어...어떡하지?” 

“...일단 방으로 돌아갈까요? 그러고 보니 곧 간식드실 시간이네요! 준비해드리겠습니다.” 

“나 때문에 총리님이랑 우리...형이랑...싸우는거지?”

“...아뇨. 그건 도련님 때문이 아닙니다.” 

“그럼?” 

“그건...아직 어린 도련님께선 알 필요도 신경쓰실 필요도 없는 일입니다.” 

“거짓말. 역시 지윤이 때문이잖아...”


곧 아이의 커다란 눈망울에서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입술을 꾹 다물고 습관적으로 재빨리 눈물을 닦아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눈물이 떨어졌다. 그런 아이가 안쓰러운 남준이 아이를 측은하게 쳐다보다 곧 아이를 번쩍 들어올려 제 품에 안았다. 그리곤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아이의 방이 있는 지하실 계단 쪽으로 걸어간다. 


“다 어른들의 잘못입니다.”

“흐윽, 흑...” 

“도련님은 아무런 잘못이 없으세요.”


*


“차라리 우성알파를 낳으시지. 천하디 천한 오메가가 뭐에요? 어디가서 자식이라고 하기도 쪽팔리잖아. 우성알파 집안에서, 그것도 남자인 오메가라니...만약 이 사실이 공개되면 명예 하난 끔찍하게 챙기시는 총리님이 치욕스러워서 견딜수나 있겠어요?”

“...실수였다. 그 아이는.”

“그렇겠죠. 오메가를 태어나게 한게, 그게 어떻게 계획한 일이겠어요. 그 정도는 저도 알아요.”

“....나도 나중에서야 알게 됬다. 만약 저 얘가 태어나기 전에 알았다면 난 망설임 없이 없애버렸을거야. 하지만 이미 태어나 내 눈 앞에 와 있는...내 핏줄을 내 손으로 없앨수는 없었다. 게다가, 그 아이의 엄마 역시 사정이 좋지 않아서 혼자 둘수도 없었고.” 

“뭐 얼마나 대단한 오메가길래 철저한 아버지께서 그 오메가가 피임을 하는지도 제대로 확인안했을까...난 그게 궁금하네. 그 오메가가 그렇게 아버지 마음에 드셨어요?...아니다. 지금은 그딴게 중요한게 아니네.”

“......” 

“그 애가 지 나이가 6살이라는데, 내가 미국에 버려진게 5년이에요. 그럼 내가 가기 전에 이미 그 애가 태어났다는거잖아요? 그렇다면 그땐 엄마가 아직 살아있었을때라는건데....”


순간 윤기의 머릿속에서 불현듯 어릴적에 그 유모가 떠올랐다. 


“...잠깐, 혹시 그 애 생모인 오메가....제가 아는 사람은 아니죠?”

“.......”

 “...아니잖아요, 그렇죠?”


그래 맞아. 그때 그 유모일리가 없어. 이미 떠난지 너무 오래잖아. 


...아니지. 이 집에서 떠난것 뿐이지 아버지와는 계속 만났을수도 있다. 그 날 밤 일을 목격한 이상 그럴 가능성은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는 대답이 없었고. 불안했던 생각은 곧 확신이 되었다. 


“그럼 그 여자....계속 만났던거였어요?” 

“...미안하다”

“그럼...엄마가 아팠을때도 쭉, 만났던 거네요.”

“......” 

“엄마가,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알아요?...얼마나 아파했는지 생각해본적은 있었어요?”

“.......”

“하긴, 본 적이 있어야 힘든것도 알겠지 거짓 기사를 낼때만 사랑하는척 연기했던 사람이 뭘 알겠어요.”

“당시엔 너가 이 사실을 알게되면 더 방황하게 될까봐 일부로 숨겼다. 하지만 너한테도 어떠한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건 사실이야. 그래서 널 유학 보낸거다.” 

“...엄마는...심장이 멈추기 전까지도 아버지 생각 뿐이였어요. 미련하게.”

“......”


윤기야. 아버지를...너무 미워하지 마....


...왜 그래야 해. 난 아버지가 너무 싫어...엄마가 이렇게 아픈데도 아버지는 항상 자기 일만 생각하잖아. 한번도 찾아오지도 않잖아


그렇지...않아. 윤기야.


윤기의 눈에서 앞이 보이지 않을만큼 눈물이 가득 고였다. 죽이고 싶을만큼 원망스러워서 미칠것 같은데 엄마는 왜 죽기 직전까지 저딴 인간을 감싼걸까.


아버지도...다, 사정이 있는거야. 그럴수 밖에 없는...그러니까...너는...


그 인간한테 사정은 무슨 놈의 사정이야. 엄마 진짜...바보였네. 


아버지를...이해해 줘야 해. 알았...지?



“엄마는 천사같이 착해빠져서, 아버지를 이해하고 용서하라고 했지만 난...그딴거 안 해요.”

“.......”

“내가 방황할까봐. 변화가 필요해서, 날 보냈다고? 내가 이대로 집에 있으면, 당신이 만들어 낸 저걸 마주할까봐, 당신 치부를 들켜버릴까봐 두려웠던건 아니고?” 

 “...그래 너 말도 맞다. 너가 알게 될까 불안해 하고 있었지. 하지만 오메가라해도, 그 아이한테서 내 피가 흐르는건 사실이니 갓난 아기와 그 여자를 내칠수도 없었다.” 

“하, 그래서 거둬줬다? 아버지가 그렇게 인자하신 분이였는지 몰랐네요. 아니, 원래 이런 사람인데 나랑 엄마한테만 그렇게 냉정하셨던건가.” 

“하지만 너가 유학을 마치고 돌아오기 전엔 가차없이 내보낼 생각이었다. 너도 알다시피 그 얘는 우리 집안에서 살아갈수 없다. 하지만 지금은 앞가림 하기엔 너무 어려. 조금만...조금만 더 크면, 그땐 내가 그 얠 내보낼 생각이었어.” 

“그래서 그 여잔, 지금 어디있는데요. 이 집에서 몰래 살고있었을테니 부르면 오겠지, 당장 그 여자 부르세요. 그 뻔뻔한 낯짝좀 봐야겠으니까.”

“죽었다.”

“.......” 

“아이를 데려오고 얼마 되지 않아 죽었어. 날 찾아올때부터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지. 아픈 몸을 이끌고 그래도 지 자식은 살려보겠다고 마지막으로 날 찾아왔는데 어떻게 내칠수 있겠니...”

“...........”

“변하는건 없다. 그 아인 호적에도 존재하지 않는 아이야 그러니 앞으로도 너랑은 상관없어. 호적에도 공식석상에서도, 내 아들은 민윤기, 오직 너 하나 뿐이다.”

“...하, 그래서 좋아해야 되는거에요?” 


윤기는 어이가 없다는듯 헛웃음을 지었다. 


“상관이 없다고? 걔랑 내가 피가 섞였는데? 오메가가 내 동생인데, 여태껏 거기서 썪었던 이유가 걔 때문인데?!!”

“........” 

“진짜...좆같아.”


더 이상 남은 할말도, 그 역겨운 얼굴을 마주할 인내심도 윤기에겐 남아있지 않았다. 당장 이곳을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곧 쾅 소리가 나며 문이 부서질듯 세게 닫혔다.



 

관계의 묘미 



조퇴를 하고 방에서 쉬고있던 혜원은 누군가 자신의 방에 들어온것 같은 인기척이 느껴져 눈을 떴다. 


“이제 괜찮은가보네.”

“....뭐?” 


“아까 너, 거의 정신 나갔었잖아.”

“.......”


혜원은 누워있던 몸을 일으켰다. 아까?....얘가 그걸 어떻게 알아?....빠르게 뛰는 심장소리를 애써 숨기며 침착하게 물었다. 


“....너가 그걸, 어떻게 알아?” 

“설마 기억 안 난다고 잡아떼려는거야?”

“그게 아니라...정말 기억이 안나. 전학 온 그 얘랑 있었던 일은 뜨문 뜨문 나긴 하는데...완전히 기억은 못해...근데 넌 내가 히트싸이클이 왔던걸 어떻게 알고 있는거야?”

“어떻게 알았겠어.”

“.......”

“너가 미쳐서 그 우성알파 새끼한테 다리 벌리고 있는거, 내가 봤으니까.” 

“.....그래서.”

“그래서? 구경했어 천혜원 히트싸이클 구경하는거, 꽤 재밌던 기억으로 남아있어서.”

“....그럼, 나...걔랑...다, 했..어?”

“왜, 그러길 바래?”

“...그럴리가 없잖아.” 

“아무리 너랑 내가 신뢰가 없어도 그 말을 곧이 곧대로 믿고 구경만 했을거라고 생각하네.”

“....그럼 너가 날 도와준거야?” 

“그렇다면.” 

“고마워...그럼 내가 기억하는 것까지가 맞았구나....다행이다.”

“너가 기억하는것 까지가 뭔데.” 

“.......” 

“그 새끼랑 키스한거? 아님 그 새끼가 옷 벗겨서 만지고 빨아댄거?”

“......” 

“걔랑 있었던 일은 다 기억하면서 왜 나랑 있었던 일은 기억 못하는거지.” 

“...자, 잠깐만! 내가....”


너한테 까지...그랬어? 떨려오는 목소리로 간신히 물었다. 그러자 내 질문이 웃긴건지 불안한 표정이나 덜덜 떨리는 목소리가 웃긴건지 픽 웃었다. 


 “좋겠네. 다 잊어버려서.” 

“.......” 

“넌 다 잊어버리고, 난 다 기억하고...이거 왠지...기분 나쁘네.”

“너랑 내가...뭘 했는데?”

“내가 말하지 않으면 넌 계속 불안해할까. 그걸 보면 좀 통쾌할것 같기도 하고.”


사실 기억해봤자 혜원에게도 저에게도 좋을거 하나 없는 기억이라는 것쯤은, 태형도 알고있었다. 차라리 잊어버린게 잘된일이였다. 그럼 지금처럼. 아무일 없이 서로를 무시하며 살아갈것이다. 하지만 괜한 심술이였던거지. 


“말해줘. 너랑 내가...뭘 했는지.”

“보채지 마, 뭐가 더 재밌을지 생각하는 중이니까.”

“말해, 이대로 아무것도 모르는 체로 지내는것보다 차라리 알고나서 괴로워 할래. 그 편이 나아 그러니까...”

“그러냐.”

“.......” 

“후회할텐데. 그래도 괜찮아?”


혜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태형이 혜원의 팔을 잡고 침대에서 일으켜 세웠다. 


“........” 

“그럼 다시 재연해볼까.”


기억할수 있게, 태형은 왼쪽 손으로 혜원의 손을 자신의 오른쪽 손 위에 올려놓는다. 그리곤 그대로 혜원의 가슴을 주물렀다. 놀란 혜원은 태형의 손을 뿌리치며 소리를 질렀다. 


“뭐하는거야!!” 

“너가 이렇게 했었어.”

“뭐?....” 

“재연해준다고 했잖아. 알고 싶다며.” 

“.....그, 그치만 읍-“


말할틈도 없이 태형의 입술과 혜원의 입술이 겹쳐졌다. 그리곤 입술을 벌려 그 안으로 혀가 들어왔다. 그 혀를 받아들이지 않기 위해 있는 힘껏 태형을 밀어내지만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고개를 이리저리 피하며 저항하자 태형은 자신의 페로몬을 아주 살짝 풀었다. 그 순간 태형의 페로몬에 혜원이 힘이 풀리자 볼을 꾹 눌러 입을 벌리게 했다. 역시나 아주 쉽게 벌어졌고 지금까지 태형의 입술이 혼자 움직였다면 이젠 서로의 입술과 혀가 뒤섞이고 있다. 혜원이 태형의 목을 끌어안았고 태형은 혜원의 허리를 꽉 안았다. 


진득하게 겹쳤다가 떨어지는 소리가 야살스럽게 들려왔다. 뜨거운 숨만이 둘 사이의 거리가 체 일센티도 안될만큼 가까운지를 느끼게 했다. 입술과 입술이 겹쳐지고 혀와 혀가 뒤엉키고 순간마다 겹쳐있던 입술이 떨어지면서 타액이 길게 늘어졌다. 혜원은 히트싸이클이 온게 아니었다. 그저 자신도 모르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래 이 느낌...머리는 기억할수 없어도 몸은 기억하는것만 같아. 혜원의 입술은 태형을 기억한다.


키스만으로도 온 몸이 불타오르는것만 같은 이 느낌을, 혜원은 기억했다. 키스는 더 진득하게 이루어졌고 얼마나 지났을까 곧 숨이 차는지 혜원이 그를 밀어내면서 입술이 떨어졌다. 세게 밀어낸건 아니였다. 어쩌면 태형 스스로 떨어졌다고 해도 무방했다. 


혜원이 태형을 올려다본다. 입술이 뒤섞였던 타액으로 가득하다. 태형은 심각해진 얼굴을 하고 태형을 바라보는 혜원을 보고는 웃었다. 웃어?...우리가 지금 무슨 짓을 했는지, 심각성을 모르는거야?


“여기까지.”

“.....뭐?”

“재연하는거, 끝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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