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나이 든 주술사가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내내 유지해오던 긴장을 풀어버린 그 찰나의 순간에 일이 터져버리고 만 것이다.


"남의 물건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고 뭘 멀뚱히 쳐다보고만 있어?"


길게 늘어진 보랏빛 장막 뒤에서부터 뻗어나 있는 검은 형체.
언뜻 보아도 예사롭지 않은 그것이 그가 말한 '물건'인 듯 했는데, 잔뜩 말라 비틀어진 가느다란 모양새가 어쩐지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죄송합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주술사의 물건을 함부로 만지기는 좀 찝찝해서요."


그 때문일까.
특유의 차가운 인상은 당황스러움으로 잔뜩 굳어있었고 입 밖으로 나온 말 또한 어딘가 적절치 못했다.
주술사의 한 쪽 눈썹이 크게 들썩거렸다.
불행하게도, 사과의 의미는 전혀 전해지지 않은 듯 했다.
그저 어서 빨리 이 공포스러운 자리를 벗어나고 싶은 심정만이 가득한 소년의 내면을 알아줄 이는 아무도 없었다.
욕설을 퍼붓는 일그러진 얼굴, 토비오는 저절로 숙여지는 고개에 자신의 발끝을 내려다 볼 뿐이었다.


'뭘 어떻게 해야 하지?'


눈 앞이 아찔해질 즘,


"니가 이미 그 주술사의 물건을 건드렸는데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


귓가를 가르는 부드러운 음성.
무의식 중에 눈을 들어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바라본 토비오는 뒷걸음질을 치고 말았다.
깊은 주름을 따라 흙처럼 갈라지고 퇴색된 피부, 그마저도 마치 골격 위에 가죽을 걸쳐놓은 듯 이질적인 얼굴.
느껴지는 섬뜩한 위화감을 증명이라도 하듯 아래로 드러난 몸체는 군데군데 검붉은 얼룩이 묻고 흠집이 가득한 상반신의 뼈대가 전부였다.
꼭 장식물인 것 처럼 테이블 위에 세워진 그 모습은 그로테스크하기 이를 데 없었다.
건조한 눈 속에서 새까만 눈동자만이 번뜩거렸다.
손가락 하나가 부러지고 없는 손으로 장막을 들어올리며 자신을 내려다 보는 그것과 시선이 닿았을 때.
소년은 결국 다리의 떨림을 주체하지 못해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자신이 해를 입힌 것의 정체가 저런 것이었다니, 무섭지 않을리가.


"방금 니가 한 말. 참 알아듣기가 애매하구나, 꼬마야. 내 손을 이 꼴로 만들어 놓은 건 알고 있니?"


부러진 뼈마디는 땅에 떨어져 바스라진지 오래였다.


"있으나 마나 한 것이니 별로 상관은 없지만 말이야. 오랜만에 바깥을 내다볼 핑계가 생겼으니 오히려 싼 값일지도 모르겠구나."


한 순간 붉게 변한 동공이 토비오의 전신을 쭉 훑었다.


"게다가 네 앞날은 굉장히 흥미진진한 것이."


아래에서부터 휘감으며 기어오르는 뱀같은 느낌.
그것이 끔찍해 눈을 감으면, 기억 속의 외관과 뚜렷이 대비되는 아름다운 목소리만이 느리게 들려왔다.


"소중했던 모든 것을, 잃을 준비를 하는게 좋겠구나."


그제서야 확신할 수 있었다.
이죽거리며 웃어대는 이것의 존재 의의가 무엇인지를.


"두 갈래의 길. 네가 어느 쪽을 선택하게 될지."


고요하게 내리쬐는 저주, 혹은 예언.
주술사가 다룰 수 있는 '물건' 중 가장 희귀한 것.
정말로, 어지간히 현실감이 없는게 아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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