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가져본 일이 전생 같다. 그러나 지금도 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마음을 비울 수는 없다. 마음은 비워지지 않는다. 텅 빈 마음에는 텅 빈 마음이 있다. 

 

최근에 가진 마음에 대해 써본다. 얼마 전에는 친구들과 화상으로 만나 파티를 했다. 온라인으로 접속해 카메라를 켜 두고 각자가 준비한 술을 마시는 파티였다. 그때 나는 확실히 마음을 가졌다. 이대로 우리는 만지는 감각에 대해 잊게 될까? 어깨를 안았을 때의 미묘한 체온의 차이를 느끼지 못하게 될까? 따뜻하고 축축한 손을 잡으면 화들짝 놀라 빼게 될까? 나는 그런 것이 너무 슬퍼. 현생에서 슬픈 마음을 뚜렷이 느꼈다. 

 

마음을 가지기 위하여 싸우는 사람의 이야기를 읽은 일있다. 특히 사랑을 얻기 위하여. 눈을, 팔 한쪽을, 내장의 일부를 잃은 사람들이 있다. 마음을, 혹은 마음의 일부를 확실하게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면서. 어떻게 몸을 내어줄까? 목숨을 걸 수 있을까? 화폐처럼 그렇게 써버릴 수 있을까? 나는 그렇게 태어나지는 않은 것 같다.

  

영화나 책, 드라마에서 얻고자 하는 것은 주로 타인의 마음이다. 타인의 마음을 얻기 위해 자신의 마음을 죽이는 일도 빈번하다. 나는 나 자신의 마음을 얻고 싶다. 지금도 나는 나의 마음에 들기 위해 부단히 이 에세이를 쓰고 있다. 이렇게 마음을 원하면서,

 

마음을 제거해버리고 싶던 때도 있었다. 프롤로그에도 썼지만 나는 부끄러운 것이 정말 싫다. 창피나 비참을 느낄 때는 정말 마음이 땅으로 꺼져 죽어버렸으면 싶었다. 얼굴을 굳히고 마음을 딱딱하게 만들어 안으로 숨겼다. 그래도 숨겨진 마음이 있었다. 

 

그런가 하면 달아난다. 발 없이도 달아나는 것. 그중에 마음이 있다. 달아나는 마음은 지금도 나와 멀어지고 있다. 내가 나 자신의 마음을 얻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내가 나의 마음에 들려고 할수록 마음은 나와 거리를 둔다. 반드시 친해지고 싶었던 사람과는 절대로 친해질 수 없는 것처럼. 그러면 나는 달아나는 마음을 안달한다. 창피와 비참, 슬픔을 느낀다. 어쩌면 이 에세이를 쓰는 일이 창피를 재생산하는 일이 될 수도 있겠다. 아직 많이 슬프지는 않다. 슬픔은 간혹 느리고 둔하다.


슬픔보다 마음이 빠르다. 그래서 우리는 불안을 예감한다. 



에세이 프롤로그를 공개하고 나서 키티에게 메시지가 왔다.

쩡찌야, 에세이 많이 부담되니?

네 글 읽고 문자 하는 거야.

키티야, 미치겠다. 나는 네가 이 에세이에서 재미를 읽었으면 했는데. 내 다른 마음을 읽어버렸구나. 네 다정은 눈이 밝다. 


내가 대체 어떤 용기를 가지고 에세이를 쓰겠다고 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 나는 기억력이 나쁘다. 언젠가 기억력이 나쁜 것에 대해 쓰겠다. 기억할 수 있을까?



이 글은 여기까지 쓴다. 가진 마음을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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