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ppy Birthday Marco 




흰수염의 허락이 떨어지기는 했으나 그가 넘어야 할 산은 많았음. 대장들이 반대할 게 뻔했고, 1번대가 그 반대에 힘을 실어줄 테니까. 그래서 마르코는 흰수염의 침대 위에서 일어나 선장실 문으로 걸어가는 그 짧은 순간 동안 수없이 많은 변명을 생각해야만 했음.

내용은 달랐으나 온통 미안해로 시작되는 것들뿐이었음.

미안해. 많이 놀랐지? 이제 괜찮아. 미안하다. 정말 미안한데. 잠깐 섬에 내릴게. 아버지도 허락해주셨어. 해가 지기 전에는 돌아올게. 진짜야, 미안, 내가 미안해.

조금 더 나은 변명이 있을 텐데, 생각나는 것들은 죄다 형편없는 것뿐이었음.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마르코가 수 없는 한숨을 삼키며 간신히 문을 열었을 때 보인 건,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텅 빈 갑판이었음.

다행이라는 생각보단, 불안함이 먼저였음.

이럴 리가 없었음. 아무리 늦은 새벽이라지만, 갑판위에 불침번 한 사람도 없는 건 이상했음. 거기다 일반 선원들이라면 모를까 대장들이라면 선장실에 있었던 일 정도는 모두 읽어냈을테고. 그렇다면, 그의 심장이 멎은 것 정도는 이미 알고 있을터였음. 불안함에 잠시 움직임을 멈춘 사이, 다정한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음.

“가끔은 상처를 줄 때도 상처를 받는 법이지.”

마르코는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음. 흰수염은 피가 흥건하게 번진 침대를 바라보고 있었음. ‘마르코’ 이어 따뜻한 금안이 그를 향했음.

“더이상 아프지 말거라.”

마르코는 도망치듯 선장실을 박차고 나왔음. 숨이 턱 끝까지 찼고, 입안엔 비린 맛이 진동했음. 또 피를 토할 것만 같았음. 아니 차라리 피라도 토했으면 좋을텐데, 이 빌어먹은 몸은 원할 땐 나오지도 않았음. 

방으로 가는 내내 단 한 사람도 마주치지 않았음. 단 한 사람도.

기척을 느끼지 못하는게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만약 방안에서 형제들의 기척을 읽을 수 있었다면, 그는 더는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을게 분명했음. 

그냥, 정말로. 모든 게 엿같았음. 

곧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제 몸도. 오래간만에 들어온 제 방에, 본적 없는 테스트 라벨이 붙은 치료제들이 여러 개 올려져 있는 것도. 모비딕보다 먼저 섬에 도착하기 위해 몰래 내려간 도크에 유난히 손질이 잘 된 비상용 구명 선박 한 척이 내려와 있는 것도. 그리고, 그 배에 누가 만들었을지 뻔한 도시락이 있는 것도. 그냥 다 엿 같아서….

홀로 섬으로 가는 내내 마르코는 피를 토해내듯 울 수밖에 없었음. 문득 넌 살거라던 이조우의 말이 떠올랐음. 삿치의 목소리도 또 다른이들도.

'아.'

마르코가 울음섞인 숨을 내 뱉었음.

결국, 그런거였음.

사랑엔 우선 순위가 있었음. 그리고, 그리고 자신은 그 사랑에서 처참하게 졌음. 빌어먹게도.

 

 

[XXX-02331-TEST71]

※ 최소 8시간 간격을 둘 것.

※ 하루에 네 번 이상 투여하지 말 것. (임상실험 결과 (48-A) 확인요망)

섬이 보이자, 마르코는 테스트 라벨이 붙은 시험 약을 주사했음. 순식간에 달라붙은 것 같았던 기도가 편해지더니 숨통이 트였음. 그리곤 심장이 이상할정도로 빠르게 뛰기 시작했음. 두 눈을 감고 몇번 숫자를 센 마르코가 새끼손가락 하나에 푸른 불꽃을 피웠음. 불티도 나지 않던 것이 약의 탓인지 손톱 위로 작게 일렁였음. 물론 눈속임 정도였지만, 위협용으로는 충분해 보였음.

베리들과 약을 포켓에 넣은 그가 창 밖을 보았음. 밖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웠음. 모비딕이 아무리 기동성이 낮다지만, 그래도 오후까지는 도착할터였음. 그러니까 자신에게 남은 시간은 고작 채 열 몇 시간도 되지 않았음.

덜컹, 배가 한번 크게 흔들리더니 이내 선착장에 들어섰음. 배가 들어오자마자, 저 멀리서 낡은 옷을 입은 이들이 손을 흔들며 다가왔음.

“잠깐, 잠깐. 형씨.”

마르코가 경계하듯 문을 반쯤 열었음.

“무슨 일이지?”

“섬에 정박 할 거지? 그럼 먼저 정박세부터 좀 내줘야겠는데. 얼마나 있을거요? 반나절?”

관리인이라는 명찰을 단 그들은 커다란 나무 팻말을 들었음. 반나절에 몇베리 하루 정박하는데 몇 베리 따위가 적힌 안내판이었음. 금액을 계산한 마르코가 주머니에서 베리뭉치를 꺼냈음.

“아니, 하루 있을 거야.”

“아, 잘 생각했어. 우리 섬에 술맛이 끝내준다고. 술 한잔하려면 반나절은 아쉽지.”

킬킬 웃은 안내원들이 반쯤 열린 틈으로 손전등을 훅 들이밀었음. 반쯤 열린 문 사이로 슬쩍 보인 금발에 안내원들이 두 눈을 갸름하게 떴음.

“그나저나 해적인 것 같은데. 소속이나 이름이?”

“흰수염 해적단의 마르코.”

보통 마르코가 이름과 소속을 말했을 때 보이는 반응은 비슷했음.

두려워하거나 무서워 하거나.

하지만, 만약 죽음의 외과의의 말대로 소문이 났다면…. 

마르코가 안내원들을 훑었음. 마르코의 소개가 끝나자 안내원들은 입꼬리가 찢어질정도로 환하게 미소 짓고 있었음. 마치 먹잇감을 찾았다는 듯.


그 뒤 안내원들은 언제 그런 표정을 지었냐는 듯 곧장 머리를 굽신거렸음. 사황 흰수염 해적단의 대장님이 이런 보잘것없는 섬에 오실 줄은 몰랐다는 격양된 말소리를 들으며, 마르코는 잠수정에 달린 거울을 보았음. 약을 투여했음에도 마른 얼굴엔 병색이 짙었음. 누가 봐도 죽어가는 환자의 모습. 과연 이 모습을 보고 저 치들이 어떻게 나올까. 선박의 문고리를 잡은 마르코가 이내 힘을 주어 열었음. 그리고, 관리인들을 향해 평소처럼 느긋한 미소를 지었음.

“잠시 정찰차 들렸어요이. 괜찮은 숙박 장소가 있다면 적당히 추천받고 싶은데.”

“아휴. 저희에게 맡겨주십시오. 아주 좋은 곳을 알고 있으니까요. 그치?”

“아, 아. 그, 그럼요. 멋진 곳을 알고 있고 말구요.”

가끔 제가 이길 가능 성이 단 1%라도 생기면 앞뒤 가리지 않고 마르코에게 달려드는 놈들도 있었으나 다행스럽게도 관리인들은 그렇게 생각이 짧진 않았음. (물론, 달려든다해도 상관은 없었음. 아무리 죽어가는 몸이라고는 하나, 이런 잡스러운 녀석들 몇명 죽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다만 ‘소문’이 진짜였다는 환희는 숨기지 못했음. 눈을 번뜩이던 이들이 마르코에게 추천한 여관은 정박한 선박 정 반대편에 위치 한 곳이었음. 뻔히 보이는 얕은수에 마르코는 헛웃음을 삼키며 그들을 따라 걸어갔음. 걷는 내내 사방에선 찌르는 듯한 시선이 느껴졌음. 그 눈빛엔 정말 흰수염 해적단을 적으로 돌린다는 불안이 섞여 있지만, 동시에 격양되고 며칠은 굶은 듯한 끈적이는 것이 담겨있었음. 그리고 채 삼키지 못한 수군거림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토막을 내면 나도 한 조각은 가질수 있겠지?’ 

‘눈, 눈이야. 눈이 제일 비싸게 팔릴거라고.’ 

‘못배워먹은 새끼, 불사조면 당연히 심장이지.’ 

‘흰수염 해적단 입김이 안들어간 경매장부터 찾아. 제일 비싸게 쳐주는 곳으로.’

제일 큰 조각을 가지겠다 싸우는 치들의 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마르코는 지금부터 해야 할 일들을 빠르게 정리하기 시작했음. 

모든 일이 모비딕이 이 섬에 도착하기 전에 끝이 나야 했음. 가족들이 자신을 섬에 내려 찾을 땐 자신은 이곳에 없어야 하니까. 잠시 숨을 돌릴 시간도 없이 바쁜 일정이었음. 

일단 첫번째 전보벌레로 죽음의 외과의에게 연락. 물론 연락은 하겠지만, 마르코는 이미 ‘살아서 죽음의 외과의와 만난다’ 는 건 포기한 상태였음. 시간 내에 죽음의 외과의가 도착할 확률도, 그때까지 자신이 살아 있을 확률도 희박했음. 실험 약이 그의 힘을 미약하게나마 돌려줬다고는 하나 그건 병을 낫게했다기보단 회광반조에 가까웠으니까.

힘이 없음에도 지켜야 할 게 있는 이에게 낙관적인 희망이란 독이나 다름없었음. 가족들의 심장 위를 밟고 선 주제에 끝맺음까지 어설픈 건 제 자존심이 용납하지 못했음.

그래서 마르코는 이 섬에 발을 내딛는 순간 차악과 최악을 순서대로 준비했음. 그나마 그가 쥘 수있는 최선의 끝맺음은 제 시신이 산산이 조각나 팔려나가기 전, 죽음의 외과의가 제 시신을 발견하는 거였음. 그럼 제 시신은 깔끔하게 처리되고 제가 쥐고 있던 장신구 정도는 유품으로 모비딕에 전달 될 테니까. 덧붙여 흰수염 해적단 1번대 대장의 시신이 토막나 팔렸다는 추문도 돌지 않을 것이며. 그저 ‘병사’로 처리되겠지. 

물론 이 꿈도 과한 희망 사항이라는 걸 알았음.

낡은 여관 앞에 선 마르코가 안내해준 이들에게 동전 하나를 건내었음.

“안내해줘서 고맙군.”



[코핀 여관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바람에 여관 팻말이 흔들렸음. 한 발 그리고 한 발, 여관으로 향할수록 탐욕에 사로잡힌 시선들이 그를 쫓았음. 마르코가 파란 눈을 둥글게 휘었음. 

그래. 그런 눈으로 봐라.

너희에겐 다신 없을 기회야. 생각하는 것처럼 불사조란 이명을 쥔 내 살점들은 꽤 가격이 나갈거다. 피부와 뼈 안구 혈액 뿐만 아니라 손발톱까지도 돈이 붙을테니, 되도록 잘게 많이 조각을 내 팔아 치워, 아니 헐값에 팔아도 개의치 않으마. 시신이 갈기갈기 찢겨 팔려 나갔다 한심하다 손가락질해도 웃어줄 수 도 있다.  

그 대가가 꽤 비쌀테니까.

“하하하!”

마르코가 낄낄 웃음을 터트렸음.

갑작스러운 행동에 마르코를 맞이하던 여관 주인과 안내하던 이들까지 한 발 뒤로 물러섰음. 

그래, 치뤄야 할 대가는 많이 비쌀거다.

잠복기는 약 한 달, 몸에 침입한 바이러스는 서서히 몸 전체로 퍼져 숙주의 면역력을 약화시키지. 온 몸에 바이러스가 퍼지면 본격적으로 발병 그리고 몇 시간 내로 사망. 

시신에서 퍼지는 그 병에 예방 주사를 맞은 이들은 모비딕과 산하 해적단, 그리고 마르코를 치료하겠다 협력한 하트 해적단 밖에 없었음. 그러니 제 시체를 조각낸 놈이나 그것을 만지고 옮기고 산 놈들은 모조리 저와 같은 병에 감염되어 죽을 게 분명했음.

불쌍한 새끼들.

마르코가 무슨 문제라도 생겼냐며 벌벌 떠는 여관 주인에게 아무것도 아니라며 웃었음. 의사로서 해선 안 될 일이라는 건 알았지만 의사와 동시에 해적인 마르코로선 전혀 개의치 않았음. 제 시체를 조각내고 팔고 샀다는 건, 감히 흰수염 해적단을 우습게 봤다는 것과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래 감히.

한달쯤 뒤부터 서서히 이야기가 퍼지겠지. 불사조 마르코의 시체를 토막 낸 자들이 죽었다더라. 아니 그 시신를 판 사람도, 만진 이도. 살점이 팔려나가는 경매에 참여한 자도 먹고 마시고 장식한 자까지 모조리 죄다 죽어나갔다고.

마르코는 수십 년간 이 바다를 항해했고, 소문이 어떻게 퍼지고 확대될지는 대충 예측할 수 있었음. 의학적 소견이 있는 이들은 단박에 병이라는 걸 알아차리겠지만, 과연 그게 몇 명이나 될까?

불사조인 자신도 한 달 조금 넘게 버틴 병이었음. 아마 대다수는 자신이 왜 죽는지도 모르고 숨이 끊어지겠지. 가족들이 제 복수를 하겠다 나설 때쯤엔 관련된 이들은 모조리 죽어 있을 테고. 그리고 그 건 가족들이 괜히 마르코 라는 과거에 묶여 마음 쓰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었음.

자신이 죽은 뒤 사람들은 흰수염 해적단 1번대 대장 마르코가 죽어서도 저주나 뿌리고 다니는 지독하고 끔찍한 해적이었다 이야기 하겠지. 아마 운이 좋다면, 그래, 마르코 자신에게도 행운이 있다면. 그래서 현명한 아버지가 저를 쫓아냈다는 소문이 덧붙여 질 수도 있고. 후임으로 들어올 새 1번대 대장을 선발해 항해를 다시 시작하기에도 딱 좋았음.

뻔뻔하고, 끔찍한….

사실 그 누구보다 제 형제들이나 아버지도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르지. 서글프진 않았음. 틀린 말도 아니지 않나. 가족들이 어떤 마음인지 뻔히 알면서도 끝까지 이 짓을 하는 새끼인데.

마르코는 여관 주인이 준 열쇠를 들고 천천히 방으로 올라갔음. 3층에 있는 끝 방은 살이 에일듯하게 차가웠으며 벽은 반쯤 무너져 있었고 부서진 침대에선 지독한 피 비린 냄새가 났음. 가족을 배신한 놈의 무덤으론 너무 호화스러워서 마르코가 작게 웃었음.




저번화를 2021년에 올렸다는 걸 알고 두 눈 질끈 감은 사람 저야저.  (T.T  ) 다음화에 사건 터질거라고 해놓고 안터졌습니다. 죄송합니다. 존버하신다는 덧글/페잉 보고 무릎 꿇은 사람 올림.


마블 원피스 좋아해요 @luned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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