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장이 남수네 집 앞에 살펴보라고 보냈던 부하직원은 이 회사에서 일한지 5년차 정도 된 나름 이제 제법 회사 사람 티를 내던 30대 초반의 아저씨였음. 이 아저씨는 강세를 꽤나 이뻐했음. 회사 왔다갔다하면서 자주 봤던 장난끼 많게 생긴 애가 회장아들이었다는 걸 알았을 땐 정말 경악 그 자체였음.

 애초에 강세가 회사 내 엉아(?)들이랑 허물없이 살갑게 지내던 터라 이 아저씨도 자연스럽게 강세랑 친해졌음. 애 자체가 워낙 스스럼이 없고 낯도 가리지 않았고. 그래서 강세가 학교 빠지고 탈선 시작했다고 했을 때 걱정을 많이 했었음. 실장이 살펴보라고 보냈을 때도 강세 감정에 이입해서 더욱 열심히 보고하고 그랬고. 그 넉살 좋게 손 뻗으면서 하이파이브 날리던 애가 고개 숙이고 딱 봐도 나 우울해요. 힘들어요. 뿜뿜하면서 풀죽어서 다니는 거보고 참 마음이 아팠는데. 이제 갓난배기 아이도 생겼을 무렵이었던 터라 더욱 마음이 쓰였고. 그렇게 실장이 당부했던 말을 어기고 강세에게 남수에 대한 정보를 전달해줬던 것이었음.

 아마 강세는 어렴풋 알았을 거지만.. 남수가 사촌네 집에 있다는 걸. 다만 다짐해놓은 게 있으니 애써 멀어지려고 눈 돌리고 귀를 닫았던 것인데, 아저씨는 강세가 친구(남수) 어딨을까 찾아 다닐까봐 귀띔을 해줬던 것이고, 그게 차분히 내적 인내심 수련 쌓아가던 강세 마음에 틈을 줬던 것이었음.

 뭐 밤엔 누가 데려가고 아침에 온다 이런 식으로 실장에게 하는 것처럼 자세하게 보고는 하지 않았음. 그냥 네가 찾는 애 잘 지내고 있는 거 같다. 그 집에서. 정도만 이었는데 그게 강세 마음을 뒤흔들어 놨음. 진짜? 진짜 잘 지내요? 그랬으면 좋겠다. 걔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한테 멀어져도. 그래도 괜찮으니까. 괜찮으면 정말 좋겠다.

 오전, 아저씨에게 그 이야기를 전해들은 강세는 저도 모르게 학교가 아닌 사촌네 집을 향해 걷고 있었음. 아저씨는 아마 상상도 못했을 것이었음. 친구 잘 지낸다니까. 괜찮겠지.

 강세는 홀린 듯 사촌네 집으로 걸었고, 그 앞에서 마침 대문을 걸어 나오던 남수를 만났음. 둘은 서로를 바라봤고, 한참이나 말없이 그러고 있다가, 남수가 그 날처럼, 그 새벽 대문을 뛰어나왔을 때처럼 뛰어서 강세 품에 안겨들었음.

 남수와 강세는 서로를 꽉 끌어안고 이유모를 눈물을 흘리면서 벌건 대낮, 한참이나 그렇게 안고 있었음. 강세는 그 아저씨 말대로 제법 혈색이 좋아보이고 살도 오른 남수 바라보면서 살며시 미소지었음. 남수는 강세를 걱정스러운 듯 바라보고 있었음. 기가 넘쳐흘러 활력 덩어리 같던 강세는 제법 수척한 얼굴이었음. 전보다 얼굴이 마른 것 같고. 말수도 없어졌고.

 전에 강세가 남수를 걱정스럽게 바라봤던 것처럼, 남수도 강세를 걱정스럽게 바라봤음. 그때 어디 갔었느냐. 날 왜 버리고 갔었느냐. 물어보고 싶은 것들이 산더미였는데 강세 얼굴을 보고 남수는 입을 다물었음.

 울어서 서로 눈은 벌게진 상태로 울망울망 한참을 바라보다 강세가 고개를 내려서 남수 입술에 가볍게 키스했음. 한산한 주택가 골목이어도 누가 볼지도 모르는데. 심지어 사촌네 집 앞인데. 그런 건 상관도 안하는 듯, 쪽, 쪽쪽.. 그리고 남수 뒷머리 받쳐들면서 더 꽉 품안으로 끌여들어 안았음.

 그리고 다시 팔 풀어서 얼굴 마주하고, 갈 곳도 아무것도 없는 강세는 멍하니 남수를 바라보기만 했음. 짧은 키스로 붉어진 남수 볼 쓰다듬어 주면서 옅게 미소짓고. 이젠 정말 괜찮아 졌구나. 다행이다.. 라는 것처럼 보였음. 강세는 눈물이 다시 흘러나오려는 눈자위를 예쁘게 휘면서 말했음.

 

 “나 이제 가볼게.”

 

 강세 역시 남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산더미 같았는데, 자퇴는 왜 했는지,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얼굴 보니까. 이렇게 있으니까 그냥 다 괜찮은 것 같았음. 마음은 어째서인지 좀 아프고, 가슴이 벅차올라 다리가 후들 거렸지만. 네가 괜찮아진 것 같으니까, 나도 괜찮아..

 

 “다음에 또 올게.”

 

 하면서 얼굴 쓸어주고 그대로 등을 돌렸음. 그때 남수가 강세 손끝을 잡아들고 소매를 당기면서 조용히 읊조렸음.

 

 “어디가..?”

 “가지마..”

 

 하면서 잡힌 손깍지 껴서 잡아들고 강세 등에 얼굴을 기대고 부볐음.

 그렇게 손 꼭 잡아 든 상태로 어디론가로 걷기 시작하는 남수와 강세. 사촌네 집앞 골목 어딘가에서 그 모습을 계속 지켜보고 있던 누군가가 경악으로 입을 벌렸음. 실장아저씨가 집 감시하라고 보낸 다른 부하 직원1 이었음. 원래 보던 아저씨랑 교대하고 있었는데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갈 곳 없던 강세는 머뭇거렸고, 오히려 남수가 조금 앞서서 걸었음. 대체 어디로? 우린 갈 곳이 없는데.

 걷고, 걷고.. 걷다보니 어느새,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음. 그 날 새벽처럼. 그 친구네 자취방 앞. 강세는 계속 머리가 멍했음. 남수가 한 계단씩 앞서 올라가고 강세는 깍지 껴진 손 따라 이끌리듯 따라 올라갔음. 그리고 친구네 자취방 앞에 서서 남수가 강세를 올려다봤음. 말은 없었지만 문을 열어달라는 것 같았고 강세는 제 집처럼 드나들던 친구네 집 문을 열였음. 이른 오전, 친구는 아르바이트를 나갔는지 다행히 비워져 있었음. 그렇게 문 앞에 서서, 좁은 신발장 앞에 서로 바라보며 서서. 신발을 벗다가 잠시 눈이 마주쳤는데, 바로 강세가 달려들어 입을 맞췄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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