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터를 통하여 존재했던 이의 이름을 받긴 하였으나 약간의 수정 후 사용하였음을 명시합니다. 그렇지만 픽션에도 현실이 담기기 마련이니 혹여 내용과 비슷한 어떠한 일이 생겼다 한들, 우연으로 인한 일이라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경찰대 응시하기까지 2년, 경찰대학 4년. 그리고 배치까지 1년과 지금의 형사팀 막내직까지 또 1년. 30대를 바라보는 나이가 된 송혜경은 살면서 지금처럼 떨려본 적이 없다. 경찰대 시험을 앞둔 새벽과 발령받아 첫인사를 목이 터져라 외치던 날에도 이렇게 떨지 않았다. 오히려 아드레날린이 너무 넘쳐 문제라면 문제였는데.

장미다방으로 오세요. 어딘지는 알겠죠.

서도 아니고, 집 우편함에 작게 꽂힌 엽서 한 장이 30살을 딱 몇 달 남긴 가슴을 송두리째 흔들어버린 거다. 정갈한 글씨와 소담한 꽃이 그려진 작은 종이 주제에.






챕터2: 미래수퍼에 뭐가 있다, 그래서?




평소보다 조금 늦게 퇴근한 참이었다. 어쩌다 술을 자주 마시지도 않는 정은이 오늘따라 속이 갑갑하다며 맥주를 드셔야겠다 선언하셨고, 그 제안에 단톡방에서 가장 이야기를 많이 하는 동사무소 직원 곽아름이 잔뜩 신이 나 동조했다.

그러니 바로 추진이 됐다. 그렇게 2차 3차 이어진 술자리는 새벽까지 이어졌다. 마침 혜경은 다음날이 오프라 괜찮았지만, 다른 사람은 일이고 뭐고 일단 마시고 보는 것 같았다. 저러고 내일 꼬박 후회할 거면서.


적은 양이었지만, 그래도 오랜만의 술이라 알딸딸한 상태로 열심히 귀가를 하는데 눈에 걸렸다. 우편함에 들어 있는 조그맣고 예쁜 색의 엽서. 고지서를 제외하곤 올 게 없는 집에 예쁜 색의 무언가가 있다니 이상했다. 술기운에 옆집 물건을 설마 잘못 봤나 하기엔 그렇게까지 취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천천히 보니까 진짜였다. 진짜 611호 우편함에 꽂혀 있는 게 맞았다. 갑자기 등 뒤로 바람 하나가 지나갔다. 어깨가 움츠러들려 하는 걸 겨우 형사라는 가오로 참아내고 봉투를 열었다. 고백이라든가, 어딘가의 알지도 못하는 가게의 이상한 홍보일 거란 기대는 처음부터 하지 않았다. 그렇다 해서 이게 이런 말이 있을 거라고도 당연히 생각하지 못했고.

장미다방으로 오세요. 어딘지는 알겠죠.

술기운이 이렇게 순식간에 사라질 수도 있구나. 가장 처음 든 생각은 고작 그거였다.

 



장미다방이 어디냐면, 혜경이 마지막으로 방문했던 다방이다. 여기선 거리가 있는 구의 작고 허름했던 가게. 사장님이 유달리 매섭게 반응하던 게 선명했다. 반응이 워낙 날카로워 이상하다 싶긴 했지만, 정말 뭔가 있을 줄은 몰랐다.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 냉큼 집으로 들어가 빠르게 샤워부터 하고 소파에 누웠다. 침대에서 자는 것도 사치처럼 느껴졌다.

집에서 장미다방까지 차로 이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약 2시간 24분 정도다. 당장 걷고 뛰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으나, 참아보기로 한다. 하루의 반을 그렇게 쓸 수는 없으니까. 오랜만에 택시를 타게 생겼다. 평소엔 늘 뛰고 걷느라 바퀴와는 멀리 살았다. (사실은 멀미가 심하고, 넘치는 체력을 주체하지 못하니 직접 움직이는 게 익숙한 것뿐이지만. 가오로 살아가는 인생이니 다들 모른 척 그렇구나 넘어가주시라)

이제 눈만 감으면 되는데, 대뜸 없이 고민 하나가 떠올랐다. 선배에게 선보고를 해야 할까. 그렇지만 확인부터 하고 싶다. 어떤 일이 생겨도 좋으니 고스란히 혼자 감당하고 싶은 욕심이 앞선다. 거길 대체 왜 가냐는 말로 평소처럼 두들겨 맞는 것보다도, 이미 가지고 있는 불안감을 모른 척하고 싶은 게 더 컸다.

그러니까 이게 전부 거대한 함정이니 뭐니 그런 게 아니라 사실 아무것도 아닌 일이라 아무것도 없으면 어떡하나 하는 마음을 꾸역꾸역 삼켜내는 중이다.

 


다음 날 도착한 장미다방엔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마치 미래수퍼가 사라졌던 그 자리처럼, 언제 가게가 있었냐는 듯 텅 비어있었다. 창문에 붙은 문구부터 간판까지 깡그리 비어있다. 어떤 흔적도 없이. 말끔하게.

“사장님, 여기 있던 다방 어디 갔어요?”

“다방? 어느 다방 말하는데.”

“저기 저 자리에 있던 장미다방이요.”

“나간 지 며칠 됐어. 사흘은 됐나.”

“어디로 간다는 말은 없었어요?”

“다방이 무슨 그런 말을 해.”

근처 청과점 앞에서 하릴없이 담배나 피우던 아저씨가 귀찮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그래, 그런 말을 하는 것도 이상하지. 뭐하러 그런 말을 하겠어. 그래도 혜경은 구태여 빛없이 좁고 어두운 계단을 올라갔다. 오라고 했으니까. 오라고만 했지, 장미다방이 아직 있다는 말 같은 건 안 했으니까.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계단 위로 오르고 또 올라, 투명하고 두꺼운 유리문을 밀어 연다. 바닥이며 천장까지 부스러기와 먼지만 가득한 공간 안은 전화기의 후레시 빛으로나마 겨우 앞이 보이는 정도다. 그렇게 어렵사리 발을 디딘 안쪽. 작은 테이블 같은 탁상 하나가 있다.

마른 침을 한 번 삼키고 천천히 다가서는 동안 핀 조명처럼 떨어진 좁은 시야에 익숙한 색이 들어왔다. 여기까지 오게 한 그 봉투다.

성실하시네요.

또 고작 한 줄.

 




 이번엔 정은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아서, 좀 아프다.

“제발 무슨 말이라도 해주시면 안 됩니까?”

“거길 그렇게 간 것부터 욕 한 사발 해주고 싶은데, 그렇게 홀라당 당하고 온 건 욕으로 탑차를 쌓아야 할 것 같으니까 참는다.”

표정과는 달리 아주 곱게, 어디 하나 전혀 구겨지지 않은 상태로 카드를 쥐고 계신 침착함에 등 뒤로 땀이 뻘뻘 흘렀다. 무섭고 민망하니 손이 자꾸 버벅댔다. 그게 또 거슬린 정은이 정신 사납다며 가만히 좀 있으라고 했고, 듣던 중 아주 감사한 말씀이라 냉큼 열중쉬어 자세를 취했다.

“필적 대조해볼 만한 샘플이나 뭐, 다른 건 하나도 없는 상태지.”

“예.”

“지금 그러니까 이게 고작 손으로 들어온 첫 단서다.”

“…예.”

“12일 만에.”

“그렇죠.”

“이제 어쩔 거야. 이거 두 장으론 할 게 없는데.”

“아직은 미래수퍼의 이동 경로를 명확하게 모르는 상태고, 사망자가 얼마나 나왔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끝까지 해보시겠다?”

“예.”

“너도 참, 너다.”

곧게 뻗은 손끝에서 카드를 받아들자, 정은이 빳빳한 머리 위로 거친 손을 휘저었다.

“아아! 선배, 제 머리 세팅 완전 빡세게 하는 거 아시면서!”

“그러니까.”

“에에?”

“빡세게 할 시간에 좀. 주변을 봐. 넓게 생각하고.”

알쏭달쏭한 말이나 툭 던진 정은이 먼저 사무실에 들어가 버렸다. 덩그러니 남아 엉망진창이 된 머리통으로 그만큼 엉망인 머리털이나 정리하는 동안, 아주 조금 울고 싶었다. 조금.



굳이 오프에 근무 중인 상사를 불러내어 멍청한 짓을 했다, 전부 보고하고 나니 기운이 영 나질 않는다. 지나가던 채소 가게 사장님과 생선가게 사장님이 우리 무대뽀 경찰 선생에게 무슨 일 있냐 물어볼 정도로 시들해져 터벅터벅 걸어가는데, 자전거를 타고 유유히 지나가는 윤세련을 봤다. 임경자의 단짝이라는 그 사람. 형광등이 하나 빠르게 켜진다.

쌩쌩 달리던 자전거 바퀴가 멈춘 곳은 다행스럽게도 미용실이었다. 그래도 이런 운은 타고났다니까. 서둘러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사 들고 마치 지나가던 것처럼 들어서자, 가운을 걸친 채 막 자리에 앉은 세련이 작게 굳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척 경쾌한 인사부터 내놓고 본다.

“안녕하세요!”

“어머, 형사 선생님이 무슨 일로 오셨어. 머리하려고?”

“그냥 지나가다가 우리 원장님 심심하고 목마르진 않으실까 하고 왔죠. 마침 커피도 샀는데, 아. 손님이 계셨네! 안녕하세요!”

“어어, 젊은 아가씨가 형사야?”

“예에. 하하. 막내라 하는 건 없지만요.”

“없기는? 얼마나 싹싹하고 똘똘한 사람인데. 젊은 친구가 여기저기 다니면서 일 처리도 빠르고 아주 착해요. 저기 어디야, 지구대 양반들보다 훨씬 낫더니만.”

“아유, 사장님도. 그래도 같은 한솥밥 먹는 사이인데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 진짜, 기분은 좋아요.”

깔깔 넘어가는 사장님과 세련의 손에 커피를 하나씩 쥐여주고 소파에 앉았다. 어깨에 약간 닿는 정도의 기장인 머리칼을 롤에 감는 사장님과 가볍기 짝이 없는 대화를 나눴고, 결코 티 나지 않게 세련을 살폈다. 이쪽으로는 결코 시선 하나 두지 않은 채 아무 일도 모른다는 태도에 선배가 말한 게 이거구나,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세련 씨가 조용하네. 왜, 오늘 컨디션이 안 좋으셔?”

“아니, 뭐. 그냥. 자기는 대화 상대도 있고.”

“와, 선생님 성함 정말 멋지시네요.”

“그치? 개명하신 지 2년 됐나? 그 뒤로 꼭 세련이라 불러 달라 신신당부를 해서 내가 세련 씨, 세련 씨 하잖어. 아주 멋쟁이셔, 그렇죠.”

어색하고 탐탁지 않은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것에 반해 사장님은 여전히 신나서 여러 이야기를 해댔다. 세련이 시선을 보내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다. 조금씩 아주 짧게, 기색을 살피는 듯한 눈치에 비슷한 주기로 웃어주는 게 반복됐다. 중화제가 쭉쭉 뿌려지고, 색색의 롤이 감긴 머리통 위로 뭔지 모를 기계가 빙글빙글 돌아가기까지 계속.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커피 한 잔을 다 마시도록 눌어붙어 있던 혜경은 대뜸 없이 들어갔던 것처럼 산뜻하게 일어나 가게를 나왔다. 이 정도면 충분했다. 또다시 연락이 올 거란 확신이 들었다.

 

 




 



“안 오는데.”

“………아프다고요.”

“너는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거니.”

“주변을 살피라고 하셔서, 주변을 좀 살폈죠.”

“요즘 사무실 분위기 어떤지 알고는 있냐?”

“예?”

“이거 봐라, 하여간.”

진짜 몰랐다. 지난 일주일간 연락이나 기다리면서 미래수퍼에 집착하는 동안 형사1팀이 완전히 깨지고 형사 2팀까지 시시콜콜 경위서를 쓰고 있단 지극히 가까운 주변의 현실은, 조금도 관심 두지 않았다.


하마터면 또 큰일이 날 뻔했다. 조용히 앉아 쌓여있던 서류 업무나 착실하게 처리하면서 눈치 보는 티조차 내지 않고 얌전하게 있어 보기로 한다. 어디서든 불똥이 튈 게 뻔하니 없는 것처럼 있어야지.

“어이, 막내.”

망할. 하여간 성가신 자식.

“옙!”

“많이 편해졌나 보다? 개인 물품도 사무실로 받고.”

“예?”

“편지 왔어, 편지. 송 혜 경 귀 하.”

가장 흔하디흔한 하얀색 봉투 겉면의 정갈한 글씨. 여기서 흥분하거나 다급한 모습을 보이면 절대 안 된다. 당장에 뭐가 뭔지 박박 찢겨 한 달이 넘도록 달달 볶일 수도 있다. 그러니 보여야 할 반응은 하나다.

“에? 딱히 올 게 없지 말입니다. 동네 어르신이 보내셨나.”

“글씨가 좀 그래 보이긴 한다, 야.”

“송혜경 또 어디서 귀찮은 일 하고 업보 쌓았냐.”

서장과 함께 잠시 나갔던 정은이 남선배와의 대화를 뚝 끊어먹었다. 경찰대 출신의 경위 막내가 탐탁지 않은 건지, 아니면 그냥 태생이 저래 먹은 건지 모를 남선배는 그래도 정은에겐 퍽 고분고분했다. 그게 언젠가 한 번 심하게 욕을 먹고 난 이후라고는 하는데, 정확한 이야기는 모른다. 그걸 또 알아야 할 필요는 없고. 우리 파트너께서 내 편 들어주신다면 그걸로 충분했다.

정은의 손에서 가볍게 날아든 봉투를 대충 욱여넣는 척 절대 구겨지지 않게 품에 잘 보관해본다. 이렇게 또 확신을 얻었다. 미래수퍼가 거쳐 간 동네의 할머니와 미래수퍼 주인 간의 강력하고 아주 끈끈한 연대. 그리고 그들이 송혜경을 파악해, 주시하고 있단 사실. 그걸 굳이 숨길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까지도.

 

 



길가의 모든 것들이 점점 짙어진다. 이미 다 터져서 바닥에 눌어붙은 은행의 잔해 위로 곱디고운 낙엽들이 나부끼고, 단풍의 절정을 한껏 만끽하고 온 엄마에게서 온갖 여행 사진들도 날아오는 주말. 축축 무거워지는 몸과 마음을 달래기 위해 단골 포차 앞에 있다.


펄펄 쏟아지는 김을 맞이하며 겨우 마스크를 내려본다. 보둥하게 단단하던 뺨이 홀쭉해졌다며, 사장님이 국물부터 퍽퍽 퍼준다. 며칠 잠을 설친 탓에 그조차 몰랐던 혜경은 요즘 일이 고되냐는 말엔 허허 웃어 보였다. 국물을 후후 불어 들이켜봐도 뜨끈함은 입안에만 머물지, 속으로까지 퍼지진 않았다. 당연하다. 그보다 속이 더 절절 끓고 있으니 별수 없다.

늙은이 일에 그렇게 열심일 필요가 있나요.

사무실에서 받은 편지엔 그 말 하나가 있었다. 경고나 회유가 아니라, 체념 비슷한. 마치 너도 곧 다 포기할 거란 거 알고 있단……. 그 어떤 외로움.



단지 이상하다는 게 이유였다. 그러니까 마음에 걸리는 걸 어떻게든 해소하고 싶은 게 시작이었고, 뭐든 시작을 하면 끝을 봐야 하는 성미인 탓에 여기까지 왔다. 묻고 싶은 것도 많았고, 알고 싶은 것도 있었다. 얼굴이라도 마주하면 그게 어떻게든 해결이 될 것 같았다. 할 수 있는 일이 분명 있으리라 믿기도 했다.

섣부른 판단이었을까. 경찰이라는 직업정신으로 오만해져, 정말 중요한 걸 못 본 건 아닐까. 어떤 사정이 있었을진 짐작이 됐다.


여태 나온 사망자가 박윤식을 비롯해 이용태, 추하열, 정재학, 엄백한, 이종부, 한윤수, 최용환, 김길희, 정업숭, 구한진, 천재동, 이재도, 권대일, 황영수, 곽한규, 한재찬까지. 열 댓을 웃돈다.

아직 미처 알지 못한 죽음이 더 있을지도 모른다. 평균 연령 82. 6세 정도인 이 노인들은 한평생 여자를 괴롭히기만 한 사람들이다. 개중엔 당연히 전과자도 있다. 어쩌면 그들은 죽기 바로 직전까지도 여자를 죽일 수 있었다.

아니, 아니다. 정말 마지막 숨까지도 여자를 죽이는 칼을 내뱉고 있던 존재였다. 가정폭력은 기본이고, 바깥에서도 무수히 범죄에 준하는 일을 했다. 함께 사는 것 말고는 선택권이 없거나, 그걸 선택하고 싶지 않았음에도 다른 방도가 없어서 겨우 한 지붕 아래에서 버텨냈다. 그들의 죽음까지.

기록마다 당연하다는 듯 존재하는 범죄 이력을 볼 때마다 숨이 막혔다. 대체 이게 다 무슨 소용일까. 바닥까지 들여다본 현실은 참담하기만 하다.


경찰이 되고 싶었던 이유는 딱 하나다. 옳고 그름은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도움이 되고 싶었다. 어릴 때부터 사람 보는 거 하나는 잘하니까. 그걸로 누군갈 도울 수 있겠단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대체 무슨 도움이 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분명 미래수퍼엔 뭔가 있다.

그래서……. 할머니들이 겨우 살아난 거라면?




오뎅 먹다 말고 냅다 뺨을 철썩철썩 쳐대자 떡볶이를 휘젓던 사장님이 깜짝 놀라 호통부터 친다. 졸려서 그랬다는 변명도 먹히질 않는다.

“아니, 그래도 그렇지. 그렇게 때리면 쓰나, 귀한 얼굴을!”

“맞아요. 귀하죠, 그렇죠.”

“그럼. 사람이 다 귀하지. 형사 아가씨도 귀하고, 나도 귀하고. 생명은 다 귀해. 저기 지나가는 고냥이도 귀한데 왜 때려, 때리길.”

그래. 목숨은 귀하다. 죽어도 마땅한 사람은 있을지 몰라도, 목숨은 분명 귀하디귀하다. 그러니까 그 죽어버린 늙은 남자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비슷하게 빼곡히 나이 먹어갈 당신을 위해서라도. 여기서 그만둘 수는 없겠다.

사장님에게 연신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결제를 끝내고 돌아섰다. 송혜경은 경찰이다. 옳고 그른 걸 판단하는 건 원하지도 않았다. 어떤 문제가 생기면, 그걸 파고들어서 사건 경위를 파악해야만 하는 위치에 있다. 누군갈 도울 수 있다고 믿어야만 한다.

도덕 윤리적으로, 미래수퍼 사장님이 누군가에겐 한없이 옳은 일을 어떻게 하고 있건 간에. 그를 돕기 위해선 계속할 수밖에 없다.


주머니로 찔러 넣은 주먹으로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간다. 안에서 빙글 돌던 천 원짜리 지폐가 덕분에 낙엽처럼 구겨진다. 유쾌하지 않은 마음도 구겨지려는 것을 펴내어 무대뽀 정신으로 채워내 본다. 젊은이의 긍지나 사명 같은 건 사실 잘 모르겠지만, 어른들 일에 깊이깊이 끼어드는 건 어릴 때부터 잘하던 일이다.

“식은 죽 먹기지.”

주눅 들지 않으려 어깨를 판판하게 펴면서 편지와 함께 품에 있던 선글라스를 꺼내 껴본다. 사실은 죽 같은 거 절대 싫은 형사 송혜경은 지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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